◎ 여행 5일차 : 오르티세이~포스데실레스고개~푸에즈산장
어젯밤 숙소에서 곰곰히 생각한바로는 이후 일정을 다소 수정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제, 어제 걸은 산행길로 보아 우리가 그리 빠른 편도 아니고 체력적으로도 더 이상의 장시간은 무리가 따를 것 같았다.
본래의 계획으로는 오늘 7시간, 내일은 8시간의 산행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장시간을 배정한터라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도중에 산장이 없어 길게 잡긴했지만 이틀에 갈 것을 삼일에 나누어가면 좋을 것 같았다.
이틀에 15시간을 3일에 15시간으로 변경하고 대신 그 다음 여정은 조금 여유가 있기에 그때 당기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이번 여행은 과거 힘들게 오르내리던 그런 산행이 아니라 충분히 자연을 느끼고 여유로운 일정을 가지고 진행하고 싶었다.
일본 남,북 알프스를 걸으면서 야영장비가 들어간 20kg이 넘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하루 10시간씩 10여일을 걸었던
그때와는 달라야했다. 그때도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힘든 만큼 보람있고 행복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절반의 배낭으로 하루
5시간 정도의 산행이라면 아주 해피한 여정이 될 것이다.
결정을 하고나니 어제 사쏠룽고가 바라보이는 초원의 산장에서 머무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늘 내일 여정이 길어 지친 몸을 이끌고 부지런히 오르티세이까지 넘어갔는데, 하루 일정을 짧게 조정하고나니 차라리
그 초원에서 머물렀으면 하는 여운이 남는 것이다. 부질없는 생각..
아침식사도 늦은 8시에나 먹을 수 있다기에 짧은 일정이 다행스러웠다.
오르티세이 동쪽에 있는 세체다곤돌라를 타고 해발 2,456m 까지 올랐다. 무려 1,200m를 단숨에 오른 셈이다.
1인당 22유로를 지불했다. 중간에 한번 갈아타는데 상당히 길었다.
세체다에서는 오들레산군에 아름다운 풍경이 기대되었던 곳인데 오늘따라 약간의 비가 내리고 개스가 잔득끼어서 바로
산행길을 재촉했다.
겨울이면 스키 슬로프가 되는 녹지가 펼쳐지고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아담하고 깔끔한 산장이 하나 나왔지만 시간이 일러 잠깐 머물다 바로 떠났다.
예전에 우리나라도 이런 민간산장들이 들어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있었는지 쓰레기처리라든가
주변통제에 어려움을 겪어 주위가 오염되고 질서가 무너지는 바람에 공단에서 모두 흡수하고 지금은 국가가 관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산에서 어떤 음주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삶의 여운은 점점 없어지고 팍팍한 단면만이
엉성하게 드러난다.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는 사회로 전락하고 있지 않은지 깊은 상념에 들게 한다. 이젠 한두방울씩
내리던 비도 완전히 그치고 개스도 서서히 거쳐가고 있다.
산악인의 상징 에델바이스 군락지.
넘어야 할 포스데실레스 고개(2,505m)가 개스가 흩어지면서 모습을 나타낸다.
날씨가 나빠 안보였던 오들레산군이 지나온 뒤로 서서히 드러났다.
고개를 지나 왼쪽으로 와이어가 설치된 조금 위험한 지역을 통과한다.
암릉 아래로 난 길을 따라 이제부터는 알타비아 2코스를 만나게 된다.
가장 잘보였던 순간에 오들레 산군.
사진에 왼쪽 구름이 없었다면 우리가 오늘 걸어 온 세체다까지 모두 보였을 것이다.
알타비아 2루트를 따라 길은 계속 이어지고..
한모퉁이를 돌아서니 푸에즈산군에 새로운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개스가 서서히 걷히면서 드러나는 푸에즈산군.
시간이 여유로워서 사진도 많이 찍고 자주 휴식을 취하며 오래동안 머물었다.
구름이 끼어 있다가도 우리가 가면 서서히 걷히는 모습이 마치 우리를 위한 신의 배려 같기도 했다.
구름이 오가며 산에 걸치는 모습은 그렸다 지우는 화폭 같다. 다시금 멋지게 그려놓고 저만치 물러나는 지우개..
그 변화가 각양각색으로 다양해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그렇게 눈 호강하며 걸으니 어느덧 푸에즈산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후 3시.
알타비아 2코스와 겹치는 곳이라 사람들이 많은 곳인데 아직 시간이 이른지 한산했다.
정확히 7인용의 룸 하나를 배정받고 나니 한시름 놓인다.
아래층 3개는 여성용, 위층 3개는 꽃다지님과 율두스님 그리고 나.
3층 맨꼭대기층엔 이븐님이 자리를 잡았다.
연로한 우리를 배려한 잠자리라 고맙기는 했지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서 여성들은 사다리타기를 하면서 순서를 정했다고 하니 나이 불문하고 공평한 것이 좋을 것 같다.
여기서도 코인을 사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푸에즈산장에서 저녁식사. 아직 본 메뉴가 나오기 전 와인으로 먼저 건배를 했다.
일정을 바꾼 관계로 넉넉하게 산행을 즐기며 자연이 주는 순간순간의 메시지를 몸으로 받아들였던 행로였다.
산을 걷는 새로운 경지가 열리는 것 같았다.
<구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