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왔다 사라지는 바다의 신기루, ‘풀등’
바다 위 광활한 모래사막 3.6km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에 위치한 대이작도와 사승봉도 사이에는 만조시에는 바다가 되었다가 간조시에는 물이 빠져 광활한 모래섬이 생기는 '풀등'이라는 바다의 신기루가 있다.
*OBS영상에서 캡처
썰물 때 불과 3 - 4시간 보였다가 밀물이 들면 사라지는 모래섬. 섬사람들은 이곳을 '풀등' 또는 '풀치'라고도 부른다. 모래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모래풀이라고 불러왔는데 그 모래톱의 등성이가 드러난다고 해서 풀등이라고 부른다. 풀치는 물이 흐르는 곳의 가장자리에 두둑하게 생긴 언덕 모양의 둔치에 모래풀이라는 단어를 합쳐서 풀치라고 한다는 설과, 갈치 새끼인 풀치 떼들이 푸른 바다를 길게 휘어가는 모양새라고 해서 풀치라고 불렀다는 설이 주민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다.
실제 이작도 섬 모퉁이에서 내려다 보면 풀치는 영락없이 갈치 떼가 바다 한 가운데를 휘젓고 가는 모습이다. 하루에 두 번씩, 음력 보름과 말께인 사리 때 가장 크게 모습을 드러낸다. 풀등 전체 모습은 대이작도 부아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잘 볼 수 있다.
이 신비의 섬은 그 규모가 무려 30만 평에 이른다. 대이작도나 승봉도에서 들어갈 수 있는데, 풀등에 올라 모래섬을 걷다보면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않는다. 섬인지 육지인지 구별이 안갈 정도이다.
풀등은 이어도의 16배 크기로 동서 약 3.59km, 남북 1.15km에 이른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사리 때는 길이가 5km까지 드러난다. 해수에 잠겨 있는 부분까지 포함하면 32.49k㎡. 길이가 동서 9.8km, 남북 4.4km에 달한다. 오직 모래평원 밖에 없는 시한부 무인도를 2시간-2시간 30분 정도 걸어보는 것도 별난 트레킹 경험이다.
태풍이나 해일의 피해를 막아주는 천연방파제 역할과 해수욕장으로도 활용된다. 풀등은 뛰어난 모래경관과 수산생물의 서식지로서 보호할 가치가 높아 해양생태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처럼 해양생태학적으로 귀중한 모래섬이 점점 줄어드고 있거나 심지어 섬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해양환경관리공단 주관으로 실시한 2012년 대이작도 해양생태계 정밀조사에 의하면, 풀등의 면적은 2008년 1.79k㎡에서 2010년 약 1.59k㎡ 로 2년간 11%나 감소하였고, 2012년 8월 제15호 태풍 볼라벤 내습 후에는 풀등의 정상부가 북쪽방향으로 20-30m 가량 이동한 사실도 확인하였다.
또한 평상시에는 한강하구로부터 유입되는 퇴적물이 대이작도에서 외해 방향으로 서서히 이동되다가 태풍과 같은 강한 에너지에 의해 반대방향으로 역동적으로 이동되면서 풀등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내기도 하였다. 풀등 규모가 줄어드는 원인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지역주민들은 풀등의 침식원인을 1990년대 중반부터 대이작도 남단 선갑도 해역에서 이뤄진 해사채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조속한 과학적 원인분석과 대책이 절실하다.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 모래사막을 계속 걸어본다. 사방은 바다. 철창벽 없는 감옥에서 자유를 만끽한다. 갈매기떼들 만 이방인들을 반겨준다. 웅덩이처럼 움푹 패어진 사구들도 있는 반면, 대부분 지역은 다리미질을 한듯 곱게 다져진 사막이다. 섬 중간 낮은 곳에는 아직 바닷물이 덜 빠져나가 갯골 모양을 이루고 있는 곳도 보인다.
풀등은 대이작도 작은풀안 해수욕장에서 가장 가깝지만 사승봉도 역시 지척이다. 9시 45분 경 모래섬에 입도, 약 1시간 반 정도 걸었을까? 어디까지 걸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정표도 없는 길. 아직도 끝은 보이지않는다.
함께 온 동료 한 명이 보이지않는다. 평지사막이니 당연히 보여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둘러봐도 시야에 들어오지않는다. 자세히 보니 처음 배에서 내렸던 접안지 부근에서 쬐그만 점 하나가 움직인다. 역시 넓다. 발길을 재촉한다.
또 다른 무인도 사승봉도를 가기 위해 아쉽지만 11시 15분에 다시 타고 온 배로 철수한다. 사승봉도 역시 물이 빠지면 길이 4km, 폭 2km의 광활한 백사장이 들어난다. 물이 들어오기 전에 두 섬을 모두 보기 위해 서두른다.
배에 오르면서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이 모래섬을 떠나지않고 그대로 바다로 가라앉으면 어디로 가게 될까? 용궁으로 가는 길이 혹시 보일까? 동화 속 인어공주라도 만날 수 있을까?
*풀등 가는 방법은...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대이작도, 승봉도 가는 여객선에 승선, 대이작도나 승봉도에서 내린다. 풀등은 대이작도에서 제일 가깝지만 승봉도에서도 낚싯배로 10분 이내 거리이다. 낚싯배를 빌려야 갈 수 있지만, ‘섬투어’(032-761-1950 www.seomtour.kr) 등 섬여행 전문 카페나 개인펜션 등에서 대이작도 또는 승봉도와 풀등을 연계한 패키지투어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대이작도로 갈 경우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의 경우 1시간 20분, 차량적재가 가능한 고속페리호는 2시간이 소요된다. 쾌속선 코리아피스호가 매일 8시30분 및 15시에 출발하며, 대부고속페리호는 7시 50분에 1회 출항한다. 인천항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대이작도에서 코리아피스호는 9시40분, 16시20분, 대부고속페리호는 14시30분이다. 대이작도에는 섬을 도는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은 없다. 민박집에서 주요관광지까지 태워주기도 하지만 가능여부는 민박집 사정에 따라 다르다. 선착장에 전기차 대여소가 있는데 4시간 38,500원, 하루종일 66,000원이다. 사전예약 필요 010-2501-5133.
하루 두 번 바다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바다의 신기루 ‘풀등’ 탐방은 바다생태마을운영위원회(010-9019-1224)에서 주관한다. 작은풀안해수욕장 좌측으로 난 해안데크길 끝 정자(正大亭)아래쪽에서 12인승 배가 출발한다. 낚싯배 전세 60만원. 비수기에는 운행하지않는 경우도 있으니 확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