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의 기원
1) 사도들이 만들었다?
이 주장의 근거는 '로렌조 발라'( Lorenzo Valla. 1406-1457) 이탈리아 문헌 학자 수사학자
로마교황 '니콜라우스 5세" 때에 로마 교황청의 바티칸 도서관에 있는 장서들을 이용해 몇권의 저술을 남겼다.
'라틴어의 세련미 <1441> '가짜 콘스탄티누스 증여 문서에 관한 선언" <1440>
로렌조 발라가 연구한 문헌 자료를 이용한 존 리스(John H.Leith ) 가 쓴 Creeds of Churches '(1963) 와 헨리 벤턴슨 (Hinry Bettenson) 이 쓴 Docunents of the Christian church " (oxford 1973) 에 의하면 11제자가 예수님이 승천한 후 10일이 지나서 성령에 영감되어 사도신경을 작성했다고 한다.
주후6세기에 발굴된 갈리칸 성례집 (Sacramentary Gallican)과 갈라디아 감독 안시라 ( Galatia a bishop of Anccyra) 의 헬라어 사도신경 사본에 의하면 사도신경이 12 사도의 작품이 이라고 했다. 여기서 보면 예수님 승천 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과 여성도들이 12사도와 함께 기도에 힘쓰고 있어다. 이때 베드로를 비롯하여 12사도가 한 절씩 신경을 공헌하여 12절의 사도신경을 작성하였다고 한다.
조금 완와된 주장은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직접 제정하지는 않았지만 사도들의 신앙 고백이였다는 구전에 근거해서 사도신경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2) 5세기에 완결된 사도신경이 생겼다는 견해
이 주장은 한스 큉'(Hans Kung) 신부가 주장 --> 튀빙겐 대학 신학부 교의신학 교수
사도신경은 400년경 처음으로 '사도신경'이라는 이름과 사도적 기원에 관한 설화가 생겨났고 5세기에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완결된 형태를 가지게 되었고 10세기에 오토대제(Otto 1, 912-973 재위) 에 의해서 니케아 신경이나 콘스탄티노풀 신경 대신 세례식 때 사용되는 사도신경이 도입되었다" 카톨릭계의 대표적적인 신학자요 교회일치 연구소장이기도 한 한스 큉 신부는 5세기설을 주장했다.
3) 8세기에 완성되었다는 견해
필립사프(Phillp Schaff 1818-1893) ---> 세계적인 교회사가
튀빙겐대학. 할레대학. 베를린대학. 등에 공부한 그는 1844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 머서즈버그에 있는 독일 개혁교회 신학교의 교회사 및 성경 문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1870년부터 죽을때 (1893)까지 뉴욕 유니언 신학교 교수로 지냄.
<기독교회사 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 7권을 1858-1892년에 발표 그리고 기독교 신조들 3권등을 저술 하고
1888년 미국교회사협회'를 설립하여 초대회장을 지냈다.
샤프는 사도신경이 주후750년경 로마 카톨릭교회가 여러차례의 첨가를 한 뒤 현재와 같은 사도신경으로 완성하였다고 함.
이상 세가지 견해가 있다.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주장은?
김의환 교수의 저서 <기독교회사> 에서 샤프의 <기독교 신조들> 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재철 목사가 쓴 <성숙자반> 은 2세기 고대 로마신조는 문답형 신조였고 4세기 때의 신조는 고백형으로 바뀌어서 주후 750년경 확정된 '공인 원문 (Forma Recepta) 이 현재 로마 카톨릭교회와 영국 국교회<성공회> 모든 개신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함. 이재철 목사는 사도신경이란 사도들이 신경을 만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사도들의 신앙 고백과 그들이 전해준 복음에 뿌리를 둔 신경이라는 뜻이라고 함.
조영엽 박사 < 사도신경 변호> 에서 사도들의 합작으로 12사도들이 작성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도들이 합작했다는 주장이 맨 처음 암즈로스 (Ambrose 340-397) 에서부터 시작되어 제롬 (Jerome 345-419) 에 이어졌다고 했다.
그외 한경직' 손봉호. 곽선희. 나채운 로호만 저. 오영석 역. G. Rayn 저 김용상 역. 등 수많은 사도신경 강해가 사도들에게서 그 기원이 되었다는 견해이다.
사도신경 내용은 여러 단계의 발전을 거치면서 내용이 다듬어지고 첨가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사도신경 내용은 처음 만들기 시작해서 최종 완성한 주체가 로마 카톨릭교회다.
로마카톨릭 교회는 사도신경이 구전과 전승을 근거로 주후 55년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에서 12사도가 한 구절씩 공헌하여 합작을 했다고 하고 사도들이 믿었고 사도들이 신앙고백했고 사도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사도신경이란 이름이 붙어였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으며 사실도 아니다.
역사속에 '사도신경'이란 용어 자체가 언제 등장했는가?
사도시대에 등장하지 않았다. 사도들이 기록한 신약성경외에 사도신경과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는 아무근거는 없음
역사적 문헌에 의하면 공의회에서 제정한 니케아 신조 (325) 콘스탄티노플 신조 (381) 이전에 개인적인 신조들이 있었다는 것은 증거되고 있다. 몇가지 사례들을 보겠다.
1) 저스틴 마터 (Justin Martyr, 100-165) : 에베소와 로마에서 기독교를 오해하고 조롱하는 2세기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열심히 변호한 기독교 변증가. ''제1변증서 <First Aplogy. 152년경> 와 '제2변증서 <153년경> " 트리포와의 대화 ' 등의 작품이 구드너프 <E. Goodenough> 의 '' The Theology of Justin Martyr" <1923> 과 바너드 '의 '저스틴 마터 의 인생' <1967> 에 발췌 소개되고 있다. 이들에 의해 저스틴은 초대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공예배 시에 사도 신조를 고백했다는 사도 신조의 내용이 무엇이며. 그것이 현재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베드로가 마태복음 16장 15-16절에 고백한 짧은 고백이나. 나다나엘의 고백 (요1:49) 마르다의 고백(요11:27) 등이 아니었겠는가? 라고 추측할 따름이다.
이시기에도 사도신경은 나타나지 않았다.
2) 히폴리투스 문서 <160-236년경>
로마교회 장로 히폴리투스의 문답식 신조는 침례 문답 때 수세자 가 물에 내려가면 시세자가 침례 받는 사람에게 문답한후 머리위에 안수 하였다. 수세자를 물 가운데 세워 놓고 묻고 답하는 형식의 신앙고백을 실시했기에 이것을 "침례신조'라고 했다
3) 테르툴리아누스 <160-220>
기독교 변증가 신학자로서 31편의 저술을 남김. 일부 논쟁적. 변증적. 저서들이 일부 남아있다. <변증 197> . <순교자에게 197> . <영혼의 증거 198> <이단자의 취득시요 203> <영혼 206> <마르시온 논박 208> <기도.> <침례> 등
로버츠 (R. E Roberts) " The Theology of Tertullian<1924> 에서 그의 저술과 사상들이 소개되고 있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신앙의 진술의 내용을 보면
----- 한 전능하신 하나님 세계의 창조주를 믿사오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 하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에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천국에 오르사 성부의 우편에 앉아 계시며 또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고 되어있다. ----
4) 가이사랴 에우세비우스 (유세비우스 325)
니케아 공회에서 니케아 신조 초안을 작성 콘스탄스노플에서 검사장이 되어 마르켈루스를 심문하였다.
저작: 325년에 <교회사> <콘스탄티누스전> <팔레스타인 순교자전 > 등
유세비우스가 만든 개인 신앙의 신조
---- 우리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의 총주이신 한 분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 빛에서 나오신 빛. 생명에서 나오신 생명. 유일한 독생자.모든 창조의 먼저 나신자. 모든 시대들 전에 아버지의 독생자. 그로 말미암아 모든 것들이 창조되고 그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육신을 입으시고 사람들 가운데 사시고 고난 받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시고 성부께로 승천하시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을 믿사오며 우리는 또한 성령을 믿나이다.----
5) 앙키라의 마르켈루스 <336-374>
마르켈루스는 감독 율리우스 1세 <337-352> 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알려졌다.
* 공의회 신조의 등장
1) 니케아 신조 <325>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가 제출한 아리우스주의는 부결되고 (로고스가 피조되었다는 이유) 온건파인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가 자기 교회에서 사용하던 세례신조를 제출하여 이 신조가 토대가 되어 안디옥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의 신조들이 종합되어 니케아 신조가 채택된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 본질 이라는 개념이 주된 의제였다.
2) 콘스탄티노플 신조 <381>
3) 칼케돈 신조 (451)
로마 교황 레오 1세 <440=461> 가 사절 2인과 함께 보낸 그의 서신 (레오의 교서) 이 지침이 되어 칼케돈 신조가 제정됨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완전하게 겸비했는 것을 결정함.
신성과 인성의 양자 관계는 '혼합도 없고 변화도 없고 . 분리도 없다' 는 표현이 신조로 규정된다. 이 칼케돈 신조로 기독론 논쟁의 종지부를 찍고 이때 채택된 삼위일체 신앙은 7세기 이후 교회에서 더 이상 전개치 않기로 결의한다.
* 사도신경의 역사성
1)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합작으로 만들지 않았다. 행12장 1-2절에 주후 45년경 12사도 중 하나인 요한의 형제 야고보사도가 헤롯에 읳 순교당하였는데. 주후 55년에 12사도가 한 절씩 봉헌해서 사도신경을 완성했다는 주장은 과장이고 근거가 없다
2) 사도신경은 5세기 이전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다.
앞서 종교회의인 니케아 공의회.신조 콘스탄티노플 신조 칼케돈 신조에서 보듯이 사도신경에 비해 매우 불완전하지만 최초에 만들어진 신조라는 권위 때문에 카톨릭 교회와 그리스 정교회 영국 국교회. 독일 루터란 교회가 이들 신조를 사도신조와 똑같이 고백하고 있다. 초기 신조들 속에 사도신조의 기본틀은 나타나지만 오늘날 같은 사도신조 내용과는 다른 신조들이었다.
3) 현재 사도 신조는 8세기경 카톨릭 교회가 완성한 것이다.
앞서 본 니케아신조 콘스탄티노플 신조 속에는 오늘날 사도신경 속에 나타나는 " He descended into hell < 지옥에 내려가셨다> 라는 구절이 나타나지 않는다. 거룩한 카톨릭교회'라는 말이 쓰여지지 않았다. 두개의 고대 원시 신조에는 "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이란 구절이 없다. 고대 원시 신조에서 없는 구절들이 현재의 사도신조에 첨가되었다.
* 사도신경은 주후 750년경 로마 카톨릭에 의해서 최초로 제정되었다. 최초의 사도신경은 라틴어로 된 것이었다.
한스 큉 신부가 저술한 <현대인을 위한 사도신경 해설 - 믿나이다. 분도출판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