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셋째주일
순례자의 노래
시편 126:1~6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오늘은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절기 세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이 시작된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광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는 듯 위태위태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속히 코로나19가 진정되고, 우리의 일상이 회복되길 원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어 보입니다. 10개월 가까이 코로나19와 함께하다보니 익숙해져서 ‘왜 코로나19가 창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반성도 없고, 코로나19 이후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야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단지, 백신과 치료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구원자가 될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유럽사회에서는 코로나19이후 ‘인간과 환경을 생각하는 더 나은 사회경제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캠페인이 그것인데, 참여단체 중 ‘웰빙경제연합’이 발표한 ‘더 나은 재건을 위한 10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몇 가지 중요한 것만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첫 번째, 우리의 삶 전반이 환경친화적인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보편적인 기본서비스를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공정한 분배입니다. 네 번째는 국제정치와 세계경제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협력과 연대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깨닫고 경험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파괴하며 살아왔는지를 깨달았고, 코로나가 확산되자 사회적 약자들이 사지로 내몰리는 현실을 보았습니다. 전염병 앞에서 빈부의 격차에 따라 얼마나 불공정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경험했고, 아무리 전 세계가 협력을 한다고 해도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만 내세우며 강짜를 놓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라마다 권력을 유지하거나 쟁취하기 위해서 코로나19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도 적나라하게 보았습니다.
이제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이었던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앵그리라는 분노로 표출되고, 그 분노는 타인을 향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수보다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하는 이들이 더 많은 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더 나은 재건’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와 종교 모든 영역에서 보수와 진보 편 가르기 정쟁만 난무합니다. 이런 시대이기에 의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은 간절히 아기 예수님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길을 내보려고 하지만 너무 어렵습니다. 커다란 돌담, 견고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과도 같은 현실을 경험합니다. 그리하여 대림절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더욱 기다리게 됩니다. 기다림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그분께로 돌아가는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그분께로 돌아가는 것만이 새로운 희망임을 믿고 순례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2020년을 문자로 표현해보라고 했더니 ‘엑스(X)’가 나왔습니다. “2020년은 X였다!” X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없다!’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2020년이지만, 사실 코로나19로 인류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가졌습니다. 특히 기독교는 2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비대면 예배’라는 낯선 경험을 했고, 이번 주도 우리는 그 낯선 경험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성전에 올라가지 못하는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이번 주 성서일과로 주셨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이 붙었고, 표준새번역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포로지에서의 귀환’이라는 주제와 연결시키면, 포로기의 삶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순례자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새번역성경이 조금 더 친절합니다.
순례자하면 ‘떠남’ 혹은 ‘여행’이나 ‘나그네’를 떠올립니다.
여행에 관한 많은 명언이 있습니다만, 요즘은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기 위한 것이다.'라는 말이 많은 공감을 받고 있습니다. ‘장소’라는 의미를 넘어 ‘삶’이라는 의미를 더하면, 더 깊은 의미가 있는 문장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126편 6절 말씀 마지막에 ‘돌아올 것이다!’하는 말씀이 있는데, 순례자의 길은 ‘떠나는 길’이지만 결국에는 ‘돌아가는 길’임을 깨달은 시인의 고백이 담겨있다고 봅니다. ‘순례자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그가 무엇을 노래했는지 세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순례의 길을 통해서 깨달은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순례의 길은 떠나는 길, 버리는 길인 줄 알았는데 막상 순례의 길을 걷다보니 순례자가 깨닫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그 길은 결국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으며, 삶을 회복하는 길이었고, 자신이 본래 있어야할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요, 자기의 자리를 찾는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온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이요, 시원으로, 뿌리로 돌아가는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시편 126편에서 노래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아가던 이들은 광야 혹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순례자들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젠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2020년은 X야!”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목자가 되시고, 광야에 난 길로 오시어 그들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하여 포로지에서 귀향길에 오른 이들은 포로기의 생활을 통해서 자신들이 다시 회복되고,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회복해주신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자신들이 누리는 큰 기쁨의 근원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시대에 순례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길에서 우리가 깨달아야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시간은 다 끝장난 시간이 아니라, 새롭게 우리를 회복시켜주시기 위한 시간,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주시기 위한, 인간의 죄로 인해 끊어진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자기 내면과의 단절, 이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시간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선한 역사로 귀결될 것임을 믿는 믿음을 굳게 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성취를 위한 실천을 하는 시간입니다. 당장에는 힘들고 어려워도 ‘울며 씨를 뿌리는 사람들처럼’ 씨앗을 뿌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순례자의 노래요, 삶입니다.
둘째,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의 기쁨을 염원하는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고백은 이제 개인의 차원을 넘어 모든 백성, 공동체적인 연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개역 성경 4절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라는 말씀을 좀 쉽게 번역하면 “포로로 사로잡혔던 우리들이 흐르는 물처럼 순탄하게 귀향하게 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순례자는 지금 자신이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기쁨에만 달떠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많음을 알기에 그들을 위해 간구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들이 한꺼번에 고향에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1차, 2차, 3차에 거쳐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포로지에 남은 이들은 ‘울며 씨를 뿌리는 사람들처럼’, 눈물을 흘리며 순례의 길을 걸으며 씨앗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순례의 여정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웃에게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울며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백성들이 기쁨의 단을 거두게 해주소서!”라는 기도는 바로 순례자의 삶, 울며 밭을 갈아보았으며, 씨를 뿌려 보았던 이들만이 드릴 수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한국기독교는 지나치게 개인구원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개인구원이 우선인 것은 맞지만, 온전한 개인구원에 이르려면 공동체의 구원과 연대해야만 합니다. ‘나 혼자만 잘 믿고 잘 살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생각입니다. 참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이웃의 구원, 공동체의 구원에도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신앙공동체입니다. 한남교회를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의 기쁨을 누리는 건강한 교회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셋째,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4절은 ‘남방 시내들 같이(개역)’, ‘네겝의 시내들에 다시 물이 흐르듯이(표준새번역)’, ‘네겝의 물이 남으로 한결같이 흐르듯(시편사색)’ 번역본마다 조금씩 느낌이 다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메말랐던 혹은 막혔던 물길이 열려 ‘한결같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물이 흐를 때는 항상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여러분 한강물이 어디를 향해 흐릅니까? 동호대교에서 성수대교 쪽으로 흐를까요, 아니면 한남대교 쪽으로 흐를까요? 예, 남한강과 북한강이 두물머리에서 만나 한강이 되어 팔당댐을 거쳐 미사암사대교, 강동대교, 천호대교, 올림픽대교, 잠실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를 거쳐 서해로 흘러가지요. 이 물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을까요? 거스를 수 없습니다.
즉, ‘네겝의 물이 남으로 한결같이 흐르듯’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총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과 은총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속에서 살아가시는 분들입니다. 물이 흐를 때 늘 잔잔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바람이 오면 물결이 높아지고, 비가 오면 흙탕물이 되기도 하고, 겨울엔 얼기도 하고, 때론 더러운 오염수가 스며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강물은 가수의 노래처럼 제3한강교 밑을 흘러갑니다. 서해를 향해서 흘러가 마침내 바다를 만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습니다.
온갖 세상풍파 속에서 때론 세상의 죄에 오염되어 살아가는 우리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삶에 스며들길 기원합니다.
순례자의 노래, 이 노래가 암울한 코로나 시대에 대림절기를 보내는 여러분의 노래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주님.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주님의 집으로 이끌어주옵소서.
코로나19로 인해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이 시기에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귀한 말씀을 깨닫게 하옵소서. 이웃과 더불어 살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이 거스를 수 없음을 알고 힘 있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