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여행에 순순히 따라 나선 두 번째 속셈은 순천만습지에서 낙조를 바라보기 위함입니다. 일출이든 낙조든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볼 수는 있습니다. 서울에서도 빌딩 사이로 매일 해가 뜨고, 집니다만 그 정도는 부러 구경할 거리가 못 됩니다.
플람베
불타는 듯한 노을 사진이 없어서 비슷한 이미지로 대치합니다.
십 수 년 전 부석사에서 풍기로 나오는 길에 목격했었던 붉은 노을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전날부터 시작된 폭우는 밤새 퍼붓고도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개었었습니다. 그 덕에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깨끗했었고, 높은 하늘엔 양떼구름이 융단 마냥 펼쳐졌었습니다. 새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던 사과나무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길가에 핀 연보라 빛 코스모스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구경거리였지만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이글거리던 시뻘건 불덩이에는 대적거리가 못 되었습니다. 그쯤은 돼야 이문세 씨가 또 빅뱅이 그토록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라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겁니다.
송광사에서 바라본 하늘
높은 하늘엔 구름이 두둥실 두리둥실
그 때만큼은 아니지만 어제도 종일 비가 내렸었고, 그 덕에 가을하늘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이쯤 되면 석양에 대한 기대를 품어 볼만합니다. 이제 순천만습지를 두루 볼 수 있는 용산전망대로 오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아뿔싸! 송광사에서, 선암사에서, 벌교시장에서 여유를 부린 탓에 일몰 시각이 임박하도록 용산전망대는커녕 순천만습지 입구에도 당도하질 못했습니다.
인월사거리에서 순천만습지로 가는 4.5km 구간은 좁은 왕복 2차선도로로 이미 많은 차량이 몰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순천만습지 탐방을 포기하고 와온해변에서 낙조를 관람하는 방법도 있는데 일몰이 임박했기에 가는 도중에 차 안에서 석양을 허망히 보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새 순천만습지 주차장입구에 도착했으나 바리게이트로 막혀 있습니다. 이미 입장시간이 마감됐습니다.
“어떻해?”
“가스가 낮게 깔린 게 어째 오늘 낙조는 시시할 거 같다.”
“아쉽다. 기대가 컸는데.”
저녁놀
“으..어...으어어허...망했다.”
“왜?”
“저기 좀 봐. 하늘빛이 예쁘잖아.”
차를 되돌려 나가는 길에 산능선을 붉게 물들인 노을과 조우했습니다. 이런 젠장 노을빛이 예쁩니다. 이런 장면이라면 기필코 순천만습지에서 바라봤어야 하는 건데 말입니다. 후회해 봤자 이미 엎지른 물이요, 떠나버린 버스입니다.
느티
산에사네에는 개 한 마리가 장기투숙 중입니다 이름이 ‘느티’인데 유기견이었답니다. ‘나무’란 개도 있었는데 두 마리가 동네를 휘젓고 다니니 이웃들의 원성이 자자해서 ‘나무’는 다른 집에 맡겼답니다. 쓰다듬으면 금새 배를 내보이기도 하고, 산책을 나가려면 앞장서기도 합니다.
“순천만습지는 잘 구경했어요?”
“입구에서 되돌아 나왔습니다. 주절주절...”
“그러게 주말이라서 관람객이 많이 몰린다 했는데...쯧쯧...
산에사네의 안사장님과 바깥사장님께 거푸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혀를 차십니다. 잠시 후 안사장님이 아내에게 한적한 둑길로 달맞이를 가자십니다. 이번에도 느티가 앞장을 섭니다.
달빛산책
휘영청 밝은 달빛을 받으며 아내와 그네를 탔습니다.
한가위를 지낸 후라 달 아래쪽에 그림자가 드리우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아직은 둥그레한 고운 달님입니다. 시골이라 밤이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일 줄 알았는데 그건 순진한 도시인의 충청남도 오산시였습니다. 집집마다, 골목마다 밝혀놓은 조도 높은 LED조명 탓에 달빛도 별빛도 도시에서 보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북두칠성은 끝내 못 찾았고, 카시오페라좌와 오리온좌의 흔적만 겨우 발견했습니다.
“밤중에 둑방길을 산책하면 고즈넉하니 참 좋아요. 달구경도 하고...”
“달빛산책이라...좋네요.”
오늘 밤엔 안사장님의 달빛산책에 우리부부와 옆방의 부부가 함께 했습니다. 도란도란 나누는 정담은 덤입니다.
대갱이무침 & 막걸리
꿩 대신 닭이라고 순천만습지의 낙조는 놓쳤지만 오미마을 둑방길에서 달의 정기를 흠뻑 쐬었습니다. 그 기운을 불사를 차례입니다.. 오늘도 아내가 나서서 카페에 판을 벌였습니다. 어젯밤에는 지리산 피자와 토스카나 와인의 앙상블이었는데 오늘은 벌교 대갱이무침과 태백산맥 막걸리의 마리아주입니다. 벌교 동광식당에서 싸온 것을 산에사네에서 풀었습니다. 오늘은 우리부부와 바깥사장님 뿐입니다. 단출한 대신 서로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일 수 있겠습니다. 구례의 밤은 오늘도 불타오릅니다. 앗싸!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왠지#한곳이#비어있는#내가슴이#잃어버린#것에#대하여#낭만에대하여#최백호
첫댓글 새우깡!!! 어쩔~~~ㅎㅎ
밥벌이터에서도 새벽 3~4시경 나가면 별무리가 보인다나 뭐래나~~~
그나마 우리 세대는 밤하늘에 펼쳐진 은하수를 보기라도 했고. 태우기도 해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