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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 여행
2024.5.1~5.5 (4박 5일) 숙박(아들 아파트) 투어(홍투어 이용)
Day4-5월 2일(목)
(북경 외곽 관광)
-4박 5일 일정- *제1일(수) 김포-북경 (1박) 아들 아파트 *제2일(목) 북경 고북수진 관광 (2박) 아들 아파트 *제3일(금) 북경 시내 관광 (3박) 아들 아파트 *제4일(토) 북경 외곽 관광 (4박) 아들 아파트 *제5일(일) 북경-김포-통영 |
Day-4 오늘은 서태후의 여름별장인 이화원 관광, 팔달령 장성 관광, 소계림이라 불리는 용경협 관광을 하는 일정이다. 꿈에서 깨어나니 4시 49분, 먼저 날씨 부터 살피니 오늘은 좀 흐릴 모양이다. 며느리가 해준 아침밥을 먹은 후 7시 25분 아들과 셋이서 걸어서 왕진역으로 이동한다.
특히 투어 마지막 날인 오늘은 아들과 함께 하는 날이라 더욱 의미가 있는 날이다. 늘 만냤던 장소인 왕징역 앞에 오니 첫 날 고복수진 가이드 선향란씨가 반긴다. (오늘 투어 인원은 33명이다) 8시 6분 버스 출발 8시 34분 이화원 주차장 도착한다.
이화원 가는길
투어인원 33명 중 어제 투어를 함께 했던 젊은 여성 한 사람과 연짱 3일을 함께 했던 중국 모처에 살고 있는 부부는 구면이고 나머지는 모두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다. 이화원은 30여 년 전 통영시 약사회 약청회(약사 청년회 준말) 회원들과 온 적이 있다. 그 당시 천안문광장 자금성도 갔지만 지금 처럼 여행기를 쓰지 않던 새파랗게 젊은 시절이라 기억이 날 리가 없다. (이화원 호수와 천안문 광장의 모택동 사진만 기억에 남아 있다)
이화원(頤和園)은 북경 서북부의 하이덴구에 위치한 정원 공원이자 궁전이다. 주로 60m 높이의 만수산과 쿤밍호에 많은 공을 들여서 공사를 하였다. 이화원의 면적은 2.9km²이고 이중에 3/4이 호수로 구성되어 있다. 쿤밍호는 2.2km²를 차지하며, 사람을 동원해서 바닥을 파낸 완전 수작업 호수이다. 파낸 흙은 만수산을 쌓는 데 사용되었다. 7만km²의 공간에 궁과 정원 그리고 고전적인 건축을 살려낸 것이 특징이다. 이화원으로 바뀌기 이전의 이름은 청의원(淸漪園)이다. |
동궁문(東宮門)
이화원의 정문으로 앞에는 한 쌍의 청동사자가 놓여 있고 문에는 3개의 통행용 출입구가 있는데, 황제나 황후가 출입하던 가운데 문은 어로문(御路門)이라고 불렸다. 문 위에 걸린 이화원(頤和園) 세 글자의 편액은 광서제의 친필이다.
인수전(仁壽殿)
1750년(건륭 15년)에 지어질 때는 근정전(勤政殿)이었다가 광서제 때 재건하면서 인수전으로 개칭했으며, 동향으로 된 정면 9칸의 전각이다. 서태후와 광서제는 이곳에서 정무를 돌보며 외국 사절과 그들의 부인을 접견했다.
인수전 앞에는 건륭제 때 청동으로 주조한 봉황, 용, 항아리, 향로가 놓여 있는데 중국 고대의 예제에 따르면 용은 제왕을 상징하므로 가운데에 놓여야 하지만 서태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부터는 용을 밀어 내고 봉황을 가운데에 놓아 황제 보다 우월한 서태후의 권력을 과시했다. - 사진속은 기린(驥麟)으로 용의 머리 사슴의뿔 사자의 꼬리 소의 발 형상을 하고 있다. 이는 길향부귀 국태민안을 뜻함이라 한다.
이화원은
1750년 건륭제 재위 15년에 공사를 개시하였다. 솜씨좋은 장인들은 정원양식의 다양한 궁궐을 창조해 내었다. 쿤밍호는 기존의 작은 연못을 확장하여 항저우의 서호를 모방하여 만들어졌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으로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공격에 의해 수난을 당했고, 모조리 약탈당했다. 1900년에도 의화단의 운동 때도 8개국의 서양 열강에 의해 공격당하였다. 다행히도 완파되지는 않아서, 1886년과 1902년에 서태후에 의해 재건되었다
1888년 현재의 이화원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서태후는 이곳을 여름 피서지로 사용하였다. 서태후는 이곳을 재건하기 위해, 해군 예산 30만은을 유용하여, 재건과 확장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1988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유네스코는 중국의 조경과 정원예술의 창조적인 예술을 빼어나게 표현하였다고 선언하였다. (촬영 선향란 가이드)
불향각(佛香閣)
만수산 전산 비탈 높이 20m에 기단을 쌓아 만든 41m 높이 8각 4중 처마의 3층 목탑으로 이화원 내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자 이화원 전경을 담은 사진에서 빼놓지 않고 나오는 건물이다. 강남의 황학루를 본따서 지었는데 1750년(건륭 15) 건륭제는 이 자리에 9층탑을 지으려고 했다가 원안을 수정해 8층탑으로 변경했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때 영.불 연합군의 방화로 소실되었다가 1891년 서태후가 3층으로 중건시켰다.
17공교(十七孔橋)
남호도와 동제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리로 아치 열 일곱개가 있다. 길이 150m, 너비 8m 이고 난간에는 돌사자 조각 544개가 있다.
문창각(文昌閣)
곤명호의 동제 북단에 위치한 성관(城館)식 건축이다. 관문 위에 십자형 2층 누각이 있고 누각 안에는 문창제군(文昌帝君)의 동상이 안치되어 있다.
장랑(長廊)
건륭제가 어머니 효성헌황후의 산책을 돕기 위해 만든,낙수당 서원(西院)에서 시작해 석장정(石丈亭)에서 끝나는 길이 728m, 273칸 짜리 길다란 회랑이다.
장랑에서 가이드 선향란씨는 약 30분간의 자유시간을 주었다. 이젠 우리끼리 걷는데 나는 자꾸만 뒤쳐진다. 다 그놈의 사진 촬영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자칫 방심하면 이산가족이 된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다. 아래의 사진 참조
배운문(排雲門) 맞은편의 구름 관광객들
배운문(排雲門) 앞의 구름 관광객들
배운문에서 슬쩍 들여다 본 배운전(排雲殿) - 매표를 해야 들어갈 수 있어 밖에서만 봄
배운전은 만수산 남쪽 중턱에 위치한 정면 7칸, 측면 5칸의 전각으로 원래는 명나라 때 홍치제가 세운 대보은연수사(大報恩延壽寺)의 대웅전이 있던 자리였다. 서태후가 이곳에서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도 했다. 명칭은 '신선이 구름을 헤치고 나오니 (神仙排雲出) 보이는 것은 금과 은으로 된 대였노라(但見今銀臺)는 시구에서 비롯되었다.
우측에 보이는 정자까지 가서 되돌아 오기로 한다.
일행들과 만나 되돌아 간다.
이렇게 8시 34분~10시 4분 (1시간 30분 동안의) 이화원 관람을 마치고 거용관장성으로 향한다. (원 일정은 팔달령장성이었는데 팔달령장성은 너무 관광객이 많아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해서 거용관장성으로 바뀜)
왕징역~이화원~거용관 장성 궤적 - 10시 6분에 버스 출발하여 거용관 장성에 도착하니 11시 48분이다. (차가 막혀 제대로 속력을 내지 못해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거용관장성(居庸關長城 ) 만리장성에서 가장 유명한 요새 중 하나다. 베이징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60km 떨어져 있다. 북경을 대표하는 관광지인 팔달령 장성으로 향하는 도중의 협곡에 위치한다. 베이징시에서 가장 가까운 장성이기 때문에 예부터 최후방어선으로 중시되었다. 빠다링 고속도로를 이용해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어 일정이 빡빡한 여행자에게도 부담이 없다. 이곳은 케이블카가 설치되지 않은 상태라 걸어서 관람해야 한다. 왕복 3시간 정도 소요된다. |
우리가 도착한 주차장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지막 주차장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좀 더 쉬울 것 같지만 어차피 제한 시간 내에 다녀오는 거용관장성의 한 부분 만을 타는 것이니 어디서 타던지 그 난이도는 마찬가지다. 어디서 퍼왔는지 아들은 팔달령장성의 실시간 영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는데 그야말로 인산인해 그 자체였다. 팔달령장성에 비하면 이곳은 매우 여유롭다.
경사가 무척 가파르다.
저기까지 갔다와야 했는데.. 여기서 걸음을 멈춘다. 지금 생각하니 많이 아쉽다.
이제는 급경사 길로 내려간다. 그 옛날 병사들은 이 길을 수없이 오르내렸을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지는 가히 짐작이 간다. 바람이 세게 불어 모자가 날라갈까봐 아들은 모자를 거꾸로 쓰고 아내는 모자를 잡고 내려간다.
모르고 스쳐 지나가는데 모자가 불러 옆을 보니 이곳에서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이렇게 보니 아들도 나이가 들었다. (살만 빼면 젊어 보일 텐데)
그 바람에 얻은 그림이다. 아이의 앙증스러운 걸음과 아빠로 보이는 남자의 웃는 모습이 해맑다.
이렇게 11시 48분~12시 58분까지 1시간 10분 간의 맛보기 거용관장성 투어를 마치고 (정상적이라면 3시간 짜리 코스) 용경협으로 이동한다. 용경협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1시 55분이다. (거용관장성에서 버스로 약 1시간 걸렸다)
왕징역~이화원~거용관장성~용경협 궤적
중화참을 먹었던 식당 (유룡반점) 14시 10분~14시 26분 배가 고파서 그런지 아니면 사람 수에 비해 반찬이 적어서인지 모두들 게걸스럽게 먹으며 음식을 싹쓸이 했다. (아들에 의하면 이 정도의 수준은 우리나라 돈으로 6~7,000원 정도 라는데 대단히 만족스러운 음식이었다.) 이곳에서는 믹스커피 한 잔에 1,000원(우리돈)에 팔고 있어 아내가 한 잔 사 먹었다. 나와서 가게에 들러 맥주 두 캔 사고 (1캔 중국돈 5위안)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도 싸다며 아들이 산다.
용경협(龍慶峽) 중국 베이징 북서부 옌칭구 구현진에 있는 협곡의 이름이다. 계곡의 모양이 마치 '용'과 같다고 하여 용경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73년 중화인민공화국 장쩌민 주석이 용경협을 둘러본 뒤 특별 지시를 내려 계곡에 댐을 짓고 인공 호수를 만든 뒤 배를 띄워 관광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베이징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댐의 아랫부분에서 댐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용 모양의 에스컬레이터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한다. 곳곳에 중국어와 한국어로 된 관광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유람선을 타고 강의 상류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하류로 돌아내려온다. 깎은 듯한 기암절벽에서 번지점프를 즐길 수 있다. 강물의 색깔은 파란색이 아니라 짙은 초록색이다.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온도가 떨어지며 빙등축제가 열린다. 용경협 근처에 만리장성 팔달령 구간이 있다. |
승합차 몇 대에 분승하여 식당에서 이곳까지 왔다. 산에는 '龍慶峽' 이라 써 놓았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보자
입구 안으로 들어와서 조금 걸으면 멀리 계곡물을 막은 댐이 보인다. 저 댐의 안쪽에 천하절경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산 위에 댐을 이용하여 자연을 즐길 수 있게 인공호수를 만들고 용모양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댐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디어는 과연 중국 다운 발상이다.
이 곳의 랜드마크인 용 모양의 긴 통로형 에스컬레이터를 배경으로 가이드 선향란씨가 찍어 주었다. 아들은 옛날에 이곳에 한 번 왔다고 한다. 한 번 온 곳이지만 부모와 함께 하는 용경협의 느낌은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인공호수에서 쏟아져 내리는 이 물은 베이징 사람들의 식수원이라고 가이드 선향란씨가 말한다.
용의 입속으로 들어가면 용의 뱃속이 바로 에스컬레이터다.
용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엄청난 규모의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절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 아래로 유람선 선착장이 보인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케이블카를 타고 산 위로 올라갈 수도 있다.
유람선을 타고 출발하면 거대한 바위 산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이 곳 저 곳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면서 나오는 탄성이 연이어 들리고 일행들은 연신 주위를 둘러 보며 사진 촬영 삼매경에 빠진다.
이런 선경에 빠지면 서운한 시원한 맥주 한 모금, 아들과 함께 연경비주 한 잔 따서 마시니 천국이 따로 없다.
호수의 양쪽으로 가파른 벼랑이 솟아있고 바위와 나무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진강쓰 절벽에 높이 48m의 번지점프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속으로 몸을 던질 때 정말 짜릿하고 스릴이 넘칠 것이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방금 어느 분이 뛰어내렸다. 아~악! 소리와 함께
일행 중 한 분이 찍어 주셨다. 뉘신지 모르지만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사진을 찍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절벽 위로 금강산, 구연동, 신선원 등과 같은 등산코스도 있다고 한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산을 타며 자연을 만끽하면 정말 즐거울 것이다.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가는 그림들.. 유람선 타고 한 바퀴 도는 것이 어찌 보면 아쉬울 지경이다. 유턴 표시가 있는 지점에서 유람선은 유턴하여 되돌아 간다.
코끼리 바위라고 가이드 선향란씨가 말한다. 그리고 보니 과연 코끼리 처럼 생겼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거대한 맘모스다.
유람선으로 호수를 한바퀴 둘러보는데 약 30분정도 걸렸다. 그 30분동안 아름다운 산세를 감상하며 마음껏 힐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름철에는 평균기온이 북경보다 낮아 휴가를 보내는 장소로 각광받고, 겨울에는 얼음으로 만든 각종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빙등예술축제가 열리는 용경협은 북경에 오면 꼭 가봐야 할 관광명소다.
용경협 관광을 마치고 16시 2분 용경협을 떠난다. 베이징 왕징역까지 2시간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길이 막히는 바람에 3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19시 32분 왕징역에 도착, 택시를 타고 '하이디라우' 라는 훠거집에서 며느리와 손주들을 만나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이 '하이디라우' 라는 훠거집은 맛도 좋거니와 서비스까지 일품이다. 중국하면 서비스는 그저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집은 완전히 자본주의다. 그리고 특별 서비스로 변검배우까지 등장시켜 우리를 놀라게 만들었다. 나중에 가면 벗은 얼굴을 보니 잘생긴 중년 남자였다.
▼훠거 면발을 즉석 공연으로 만들어 주는 코믹 영상이다.
이번 여정에서 처음으로 고량주를 마셨다. 랑이라는 백주인데 맛이 좋아 나중에 마트에서 500ml 짜리 큰 병 하나를 구입하기도 했다. 석식 후 아들 아파트로 돌아가 샤워한 후 셋이서 마사지샵으로 갔다. 난생 처음 아들과 함께 하는 마사지 1시간 30분은 이번 여정의 휘날레였다. 이번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했던 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4박 5일 동안 수고한 며느리도 고맙고 이 여행기 쓰는데 도움을 준 가이드 선향란씨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중국 여행 Day-4 終
다음날 (출국일 5월 5일) 서우두 공항에서 손을 흔들던 아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귀국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