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ἀλήθεια - truth)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리는 객관적이지 않은 개인적인 신념을 진리처럼 생각하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진리가 '참된 이치. 또는 우주의 근원적 원리'로 철학에서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인식'으로, 논리는 '어떠한 명제가 사실과 일치하거나 논리의 법칙에 맞음' 이라고 되어 있다.
진리란 '상황이 변해도 변하지 않고, 시간의 흘러도 변하지 않으며, 언제 어디 어느때 누구에게나 보편 타당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며 달라지지 않는 언제나 한결 같음이 있을까? 진리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의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요한복음 18:35-38)
성경에서 진리로 번역된 헬라어 ἀλήθεια(알레데이아)는
진실한, 참, 참된, 진리를 사랑하는, 진리를 말하는, 뜻의 ἀληθής(알레데스)에서 파생된 단어로 사실, 진리, 진실성, 참되다, 객관적인 진리, 주관적인 경험적 진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ἀληθής(알레데스)는 부정적 불변사로서 ἀ(아)와 감추다, 무지하다, 깨닫지 못하다, 숨기다,의 뜻을 가진 λανθάνω(란다노)의 합성어에서 유래된 단어다. ἀ + λανθάνω = ἀληθής
ἀλήθεια(알레데이아)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진리, 진실, 확고함, 충실함의 뜻을 가진 에메트(אמת)인데
이를 분석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완성’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말씀(מ-멤)이 '처음, 시작(א-알레프)과 나중, 끝'(ת-타우)이란 단어의 사이에 있어, 중보자로서의 말씀이신 예수란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 육신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요, 예수님은 “내가 진리(ἀλήθεια)다”(요14:6)라고 말씀하시므로 계시록에서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Α)와 오메가(Ω)이다”(계1:8)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성경은 진리(ἀλήθεια)에 대해서 “예수님은 진리가 충만하신 분”(요1:14)이요 그래서 “진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온다”(요1:17)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리”(ἀλήθεια)로 해야 하며(요4:23), 그러면 “진리(ἀλήθεια)를 알게 되는데 그 진리(ἀλήθεια)가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요8:32).
그러나 주님께서 진리(ἀλήθεια)를 말하여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요8:45).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고 스스로가 선악의 주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선악의 주체가 되어버린 인간이 스스로 진리(ἀλήθεια)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이 진리(ἀλήθεια)이시다(요14:6)라는 말씀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너희는 진리(ἀλήθεια)아니다’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한 것이다”(요일1:8).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진리 아닙니다’ ‘나는 죄인이 맞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자(성령 하나님의 알게 하심과 감화 감동의 역사가 있어야 고백할 수 있다)가 바로 그가 진리(ἀλήθεια)을 품은 자요, 진리로 사는 자인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어버린 인간은 진리를 담을 수 없기에 ‘비 진리’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며 눈에 보이는 ‘비 진리’를 통하여 그 안에 숨겨진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1,32) 진리를 찾은 자가 구원을 얻게 된다.
요한복음 17:15-19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비 진리인 내가 죽고 진리이신 그리스도로 사는 자’ 이기에 그로 인하여 담대히 ‘그리스도의 진리(ἀλήθεια)가 내 속에 있다’고 고백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어떠한 까닭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고후11:10,11)
그 진리(ἀλήθεια)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은 표피적인 것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생명의 마음인 말씀 즉, 진리(ἀλήθεια)의 말씀을 마음으로 품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