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차 소리도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든 움직임이 끊어진 것 같은 상황에 서면
나는 죽어버린 침묵이 아니라 살아있는 정숙의 세례를 받는다.
그때 나는 인간이란 이 세상에서 밥과 물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 앞 청정한 정숙의 숨결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사실에 직면하고는 한다.
아득히 멀어져간 어린 날들,
여름방학이 되어 남산에 올라 숲속을 진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정적에 휩싸이곤 했다.
저 아랫마을에서 사람들 떠드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등 속세의 소란스러움이 끊기고
시간도 공간도 멈춰버린 것 같은 나를 둘러싼 순정한 침묵.
전방 근무를 하던 군인 시절에도 숲 속 깊이 들어가면 비슷한 경험을 하곤 했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게 아니며 그렇다고 정신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축적됐던 감정적 오물을 씻어주면서
물이나 양식과는 질이 다른 자양분을 조용히 영혼에 흘려보내주는 영적 피톤치드다.
아, 나뭇잎 그림자 흔들리는 유리창 곁에서 세상이 정지한 것 같은 정숙함 속에서 기도할 때,
그것이야말로 정숙의 세례요 그 속에는 물리적 감각이 아닌 어떤 실체가 있다.
"존재와 침묵은 서로에게 속해있다" '침묵의 세계'에서 소개된 막스 피카르트의 이 명제는 진실이다.
그렇다면 존재와 소음은 서로를 배타한다는 말도 진실이 될 것이다.
침묵이 압살된다. 자동차 소음, TV 소음, 뉴스 소음, 정치 소음, 시위 소음, 음악 소음, 무익한 가십.
우리는 현재 이런 것들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의 인생에 무엇을 남기는 것일까?
끝없이 떠들어대고 가버린 시간 뒤에 남는 것, 끝없이 욕하고 가버린 시간 뒤에 남는 것,
끝없이 농담을 하고 가버린 시간 뒤에 남는 것, 끝없이 잡담하고 가버린 시간 뒤에 남는 것,
끝없이 거짓말하고 가버린 시간 뒤에 남는 것, 끝없이 음담패설하고 가버린 시간 뒤에 남는 것,
끝없이 허튼소리를 하고 가버린 시간 뒤에 남는 것, 끝없이 허튼소리를 듣고 가버린 시간 뒤에 남는 것,
끝없이 정보를 제공하는 소리에 묻혀서 가버린 시간 뒤에 남는 것......
그것은 타버린 연기처럼 영혼에 남는 매캐함이요 백사장에 남은 허무한 발자국이다.
당신과 내 안에는 빵이 아니며, 지식이 아니며, 문화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영적인 공간이 있다.
이 영적 공간은 하나님의 순결한 임재를 요구하고 그분은 순결한 정숙을 입고 계시다.
만일 인간에게 하나님의 정숙이 결여된다면 그에게 남는 것은 심각한 불균형과 불안정이라는 찌꺼기 뿐이다.
인간에겐 대화가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간에겐 정숙 또한 필요한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이 인간의 존재 구조이기 때문이다.
책을 펼치면 하얀 종이 위에 활자로 인쇄된 문장이 있고, 문장과 문장의 행간에는 하얀 침묵이 있다.
만일 책이라는 게 온통 활자로 가득하다면 그런 책을 누가 읽으려고 할 것인가?
행간이 없는 책은 책이 아니며 쉼표가 없는 문장은 사람을 질식시킨다.
생활과 생활 사이엔 고독이 필요하고, 생각과 생각 사이에도 쉼표가 요구된다.
진정한 승자 진정한 부자가 되기 위해선 정보의 소용돌이로 들어오라는 이 시대의 악마적인 거짓말을 떠나
주님 안에 깃든 생명의 정숙함으로 들어가라.
당신의 정원은 무엇인가?
당신에겐 당신만의 비밀의 정원이 있는가?
그래서 당신만의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가는가?
2024. 4. 6
이 호 혁
첫댓글 하나님만이 채우시는 영적인 공간!!
아멘! 늘 비밀의 정원에서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하나님을 소음속에서는 뵙는다는 것은 어려울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