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른 봄날 학생 예배를 마친 나는 집으로 귀가하지 않고 곧바로 장년 예배에 참석했다.
고교생이었던 나는 당시 우리 집이 소재한 서울 금호동에서 버스를 타고 을지로에서 내려
모교회인 필동 교회까지 걸어서 예배 참석을 했었다.
도시 계획에 의해 우리가 살던 동네는 철거되어 사라지고 우리는 어렵사리 금호동까지 이사 오게 되었던 것이다.
철거된 동네가 바로 지금의 서울 남산골 한옥 마을 상부 너머의 부분이었던 것이다.
예배당 안을 둘러보니 학생이라고는 나 밖에 보이지 않았다. 목사님께서 등단하시고 예배가 시작됐다.
설교 본문은 로마서 1장 16절이었고 주제는 복음에 대한 지식과 감격이었던 것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나는 볼펜을 꺼내 어른 주보 여백에 목사님의 설교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설교 기록 습관이 없었고 또 지금까지의 설교 사역에서 무 원고 설교를 하는 내게는 당시 행동이 특별한 것이었다.
그때 어떤 감동에 압도되어 반사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의 예배는 끝이 났고,
예배 후 귀가하면서 설교 내용을 회상하고, 귀가해서는 주보에 기록된 문자열을 더듬어보던 시절.
일곱 살 때 주님과 만남의 경험을 한 후 예배 시간이면 하나님 말씀에 견인되던 어린이가
열다섯에서 열여섯살로 넘어가는 어느 시기 내면에서 솟구치는 거룩한 압력에 따라
무작정 신약성경을 들고 펴서 마태복음부터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던 것이 내 성경 읽기의 시작이다.
하루 다섯장씩, 어떤 때는 복음서 한 권 전체를 빨간 볼펜으로 마음에 부딪치는 구절에 밑줄을 그으면서,
다 읽고는 밑줄 친 부분을 암송하던 그 시절. 당시 조용한 공간에 혼자 앉아 성경을 펴면
하얀 여백과 검은 활자가 어울려 내 눈과 마음에 환한 빛을 반사하곤 했었다.
또 설교를 들을 때면 어느 순간 머리 위로부터 강렬한 전기 세례 같은 것이 몸에 소름을 일으키곤 했었다.
그때 그날도 말씀과의 만남에서 나는 주보지와 볼펜을 동반시킨 것이다.
성경을 사랑하며 읽는 사람들은 단순히 '읽는다'라는 개념을 넘어서 '깊은 어울림' 또는 '일치'를 경험하는데
나는 그런 종류의 체험을 복음과의 포옹, 또는 복음과의 키스라고 표현해본다.
그것이 복음을 접할 때 그를 덮어오는 거룩한 실체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라고 본다.
그 후로 나는 세계문학, 에세이, 철학, 사상, 역사의 열람실을 지나왔다.
그것들을 읽으며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외워보기도 했고 반추해보기도 했다.
예컨대 나는 "인간은 만유와 허무의 중간자"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같은
파스칼의 사상과 문장에 매료를 느껴 그 문장들을 외우면서 마음에 저장도 했었다.
"진실한 종교란 인간 생활을 무한한 것과 결합시키는 것이다"
"인생을 악하게 살아가는 주된 원인은 거짓 신앙이다" 톨스토이 인생독본의 이런 내용들에 대해 공감했었고,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 같은 플라톤의 문장엔 울림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포옹이 아니며 키스도 아니다. 내가 포옹을 하고 키스를 나눈 것,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내게 다가와 포옹을 하고 잊을 수 없는 깊이로,
내 마음에 입맞춤으로 도장을 찍어 준 것은 복음이었다. 복음은 한 마디로 창녀와 결혼한 왕자의 이야기다.
보라, 이 세상에 그 얼마나의 악과 고통이 창궐하는지. 그 슬픈 어둠 속에서 인간은 길을 잃는다.
그러나 그 악과 고통의 총량을 초월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를 모두 헤아릴 수 없고, 우리는 이 세상을 다 이해할 수도 없으며,
우리는 때때로 이 세상의 악과 고통에 상처를 받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이 아들을 주셨으며,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손익계산서는 눈물로 젖지 않을 것이다.
2024. 4. 15
이 호 혁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길 기도합니다.
아멘. 복음이 입 맞추는 경험을 더 강렬하게 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