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후서1장1~11절
제목 : 환난 속에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고린도후서는 사도와 고린도 교회의 관계가 악화 되었다가 회복되는 상태에서 기록된 서신입니다.
바울은 먼저 자신이 예수님을 위해 당한 극심한 환난과
그 고난 속에서 받은 하나님의 위로를 감사하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1. 인사와 축복(1~2절)
1절에서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누구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
바울은 그의 사도 된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되었다고 먼저 확언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 후서, 빌레몬서를 제외한 모든 서신에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임을 밝힘으로써 서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은
그리스도에 의해 택함 받은 열 두 제자들 중 한 사람은 아니었지만(막 3:14-19),
그가 개심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특별한 계시에 근거하여(행9:15)
열 두 제자들과 동등한 사도라고 주장하였습니다(11:5;12:11;갈2:6,7).
그런데 바울이 본서신의 서두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본 서신에서 바울이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그를 대적하는 자들이 그의 사도권에 대해 도전해오는 것에 대응하여
자신의 사도됨의 정당성을 밝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2:14-7:4).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소스데네를 공동 발신인으로 언급한 것(고전 1:1)과 달리 디모데를 본 서신의 공동 발신인으로 언급한 것은
디모데가 본 서신의 공동 저자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에게 디모데의 권위를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디모데는 바울로부터 고린도에 파송되어 사역 감당했던 일이 있었지만,
그는 나이가 젊고 담대하지 못하였고(딤전 4:12;딤후 1:7;2:1),
고린도 교회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사역은
미미한 성과밖에 거두지 못하였거나 거의 실패했었습니다(고전4:17;16:10, 11).
이런 일에 대하여 바울은 그의 신앙의 아들이자 가장 절친한 동역자로서
자신과 함께 계속 사역해야 할 디모데의 권위를 다시금 세워주어야 할 필요를 절감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비록 과거에 디모데가 고린도에서 바울 반대파로 인해
별로 좋지 않은 경험을 했던 일이 있지만(고전 16:10,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나 디모데는 그들에 대하여 여전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본 서신의 서두에서 보여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한편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고,
주변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모범적인 젊은이였으며(행16:1, 2),
바울에게는 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딤전 1:2;딤후1:2),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 후서, 빌레몬서의 서두에 언급될 만큼 절친한 동역자이기도 했습니다(행 16:1-3;빌 2:19-22).
바울은 이 편지를 받을 자들이 누구임을 명시합니다.
1)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여기서 '하나님의'라는 소유격은 교회의 소유자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편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 함은
본 서신의 수신자가 고린도 교인들뿐만 아니라
고린도 지역과 그 주변에 있는 교인들이 모두 해당함을 암시합니다.
즉 이 표현은 여러 수신처를 포괄하는 대표적인 언급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첫번째 서신의 초두에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문구에 이어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고전 1:2)라는 언급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도 충분히 지지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두 개의 고린도 서신이 고린도와 그 이외의 지역에서도 읽혀지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2)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로마가 헬라를 지배할 당시 로마는 헬라 전체를 마게도냐와 아가야 두 지역으로 구분하여통치하였습니다.
아가야의 행정 수도는 고린도였습니다.
바울이 본 서신을 보내면서 고린도뿐만 아니라 고린도를 포괄하는 아가야 전지역의 성도들이 읽기를 희망했던 것은
아덴에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는 행 17:34의 기록과
겐그레아에 한 교회가 있었다는 롬16:1의기록과 부합되는 것입니다.
아덴과 겐그레아는 모두 아가야 지역 내에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신약의 성도는 성별된 구약 이스라엘의 영적 계승자로서(벧전2:9,10)
소극적으로 죄악으로부터 분리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헌신 봉사해야 할 자들입니다.
2절에서 인사와 축복을 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심을 제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본절은 삼위일체의 근거가 되는 구절입니다.
성도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여기서 '은혜'(카리스)는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호의' 또는 '선물'입니다.
특히 여기서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세상과 화목하시기 위하여
사람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고 예수께 지우신 것을 의미합니다(5:19,20).
'평강'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구원이 보증된 영혼의 평안한 상태를 가리킵니다(롬 1:7;빌 4:7).
*롬1:7절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빌4:7절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성도는 주 안에 서라(빌4:1)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4:2)
서로 돕습니다(빌4:3)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합니다.(빌4:4)
관용합니다.(빌4:5)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룁니다(6)
2. 환난 중에 위로하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기도(3~11절)
1) 환난 중에서 건짐 받은 일로 인하여 감사합니다.(3~6절)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바울은 찬송을 드리는 이유로
1)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2)자비의 아버지시오,
3)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4절은 위로의 하나님을 설명하여 줍니다.(4절)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우리는 고난을 감사하여야 할 이유를 5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그것은 고난이 넘치는 만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게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 위로는 고난을 견디게 하고도 남을 것을 말씀합니다.
그의 감사의 대상은
(1)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다.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신 때문에 그의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되시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2)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비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보혜사 나오셨고(요15:26), 그 밖의 많은 위로들이 옵니다.
바울이 받은 환난을 여기서“ 그리스도의 환난(고난)”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요16:33절에 관련을 가진 표현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바울이 환난을 당하였으나 그것도 그리스도께서 벌써 십자가 위에서 이겨 주신 것이니 만큼, 그는 그 환난을 당한 결과로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체험담입니다.
교역자들이 환난에서 건짐 받는 위로는 자신들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이 남들에게 유익하게 됩니다.
2) 환란이 얼마가 컷던 것인가를 말씀합니다.(7~11절)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1) 그런 환난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만 믿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2) 그뿐 아니라 그는 인간들이 할 수 없이 된 때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만날 만한 기회임을 암시합니다.
(3) 그리고 이런 과거 환난에서의 구원 체험은 그로 하여금 미래의 환난에서 까지 구원을 내어다보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미래의 환난에서도 구원 받을 것을 믿지 않는다면 이는 과거의 구원체험을 무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4) 바울은 앞으로 환난에서 구원 받을 것을 내어다보면서 고린도 교인들의 기도로써 원조를 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기로 약속하셨으되 우리의 기도를 불가결의 요소로 요구하신 것을 바울은 알았습니다.
(5) 이렇게 구원 받는 목적은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함입니다.(11절)
진정한 종교는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의 목표로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