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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에베소서2장11~18절
제목 : 십자가로 하나 되어
우리는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믿음의 신학, 은혜의 신학이라고 하였습니다.
은혜와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이은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엡2:8~9).
인간은 결코 자력(自力)으로 어떠한 선(善)도 행할 수 없고,
다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합니다.
지난 시간에(엡2:1-10) 구원을 선물로 받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라"(11절)고 하면서 오늘 말씀을 잇고 있습니다.
생각하라는 말은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은혜는 잊고, 섭섭한 것은 잊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섭섭한 것은 세월이 지나도 잊지 않습니다.
마음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섭섭함이 스트레스가 되어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반대로 섭섭했던 사건들은 빨리 잊고
은혜는 한 없이 간직해야 합니다.
원래는 우리가 하나님과도 하나님의 백성(이스라엘)과도 하나가 될 수 없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사건으로 인하여 하나가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므로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며,
몸 된 교회의 구성원으로 날마다 성장하는데 모든 힘을 다 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를 이루셨고, 적대 관계이던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참 연합과 평화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1. 구원 이전과 이후(11~13절)
1) 과거 이방인으로 있을 때(11~12절)
“[11]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12]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그 때”는 우리의 과거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때가 있었습니다.
(1) 불신자였던 때를 말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육체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①이방인이요,
②무할례당 이었습니다.
이 말은 선택받은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천한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③"그리스도 밖에,
④“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
⑤"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
⑥"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과거에 세상에서 아무리 착하게 열심히 살아도,
하나님도 없는 자,
천국에서 제외된 지옥에 갈 자,
하나님의 축복과 관계없는 자였습니다.
(2) 유대인들은 할례를 몸에 행함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택함 받았다는 증거를 가지고 살았습니다.(출12:48)
*출12:48절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나 이방인(우리)은 이 표식이 없어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은 메시야에 대한 희망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에서도 제외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소망이 없었고, 하나님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거의 모든 이들의 과거 상황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유대인들과 이방인 신자들로 구성된 교회였습니다.
유대인 출신 성도들은 자기들보다 엄격하지 못하고 믿음이 없어
세상에 치우치는 이방인 성도들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싫어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믿음 없어 무절제하고
무지한 성도를 보면 화가 나고 상대하기가 싫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도 한 때 그런 자였다는 것을 잊지 말이야 합니다.
2)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현재 (13절)
“[13]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 때"(11) 이야기는 이미 과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13) 개역성경에는 "그러나"가 빠졌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님 나라 안에, 축복의 약속 안에,
천국 안에 살게 되었습니다.
멀리 있던 상태에서 가까워졌습니다.
둘이었고 양분된 상태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하나 됨의 미학(美學)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중재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행하여야 합니다(골2:6~7절).
*골2:6~7 “[6]○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을 때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세움을 받을 때에 신령한 집이 지어집니다(벧전2:5,6절).
*벧전2:5,6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우리는 건물을 그리스도 안에 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➀ 주님의 계명을 지킵니다(요일3: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➁ 죄를 범하지 아니합니다(요일3: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➂ 주님을 본 받습니다(요일2: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➃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담력을 가집니다(요일2:28)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➄ 열매를 맺습니다(요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➅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➆ 생명을 갔습니다(요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2. 화목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사역(14~18절)
1)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목(14~15절)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둘”(14~16,18절)은 분리된 유대인과 이방인이며,
“원수 된”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14,16절)
둘로 하나를 만드사.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합시켰다는 말입니다.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 있습니다.
지성소는 1년 한 번 속죄일에 대 제사장이 들어가 속죄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때에 그 휘장에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 뒤로 예수를 믿는 자는 모두 제사장이 되어 직접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의문(儀文)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그의 보혈로써 폐하심으로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고전6:11).
*고전6:11절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리라”
2)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16절)
“[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것은 위에 말한 계명의 율법을 십자가로써 폐하신 둘째 목적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율법에 규정된 죄 값을 치러 더 이상 이방인과 유대인 간에 담이 없고 모두 그리스도의 “한 몸” 또는 한 새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한 몸이나 한 새 사람은 교회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엡1:22~23절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도 한결같이
한 몸처럼 구속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하려 하심입니다.
중간에 막힌 담은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방인의 뜰을 막아 놓은 벽입니다.
성전 둘레에는 제사장의 뜰, 동편에 유대인들의 뜰, 여인들의 뜰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20계단 내려오면 이방인들의 바깥뜰입니다.
높이가 1.5M 가량의 돌로 쌓은 이 벽에는 헬라어와 라틴어로 곳곳에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이 벽을 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시고,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었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평화가 되십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내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로 된 일입니다.
이제는 멀었던 주님이 가까이 계시고, 이방인과 유대인이 가까워졌습니다.
지키기 힘들기만 하였던 율법의 담이 깨졌고,
들어갔다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방인의 높은 담이 허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원수 된 담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단절 때문에 그리고
우리 사이에 평화가 깨어지고 우리 사이에 있는 원수 된 관계들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면서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습니다.
3) 한 성령 안에서 한 백성이 됨(17~18절)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은 화목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위로는 하나님과 화목이고,
옆으로는 이웃과 화목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화평하게 하는 자]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목적이요. 십자가를 지신 목적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화평한 자 끼리는 아주 교제가 잘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성중의 하나가 화평입니다. 화목입니다.
살전5:13절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하였고,
롬12:18절에서도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막9:50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십자가로 인하여 가까워졌으니
이젠 성령 안에서 당당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18절).
이 은혜를 잊지 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합당한 삶을 살아야합니다(19절)
“[19]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이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삶의 모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죄인이었던 약속 밖의 사람이,
십자가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면,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그걸 말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젠 권리가 없는 외국인도,
방문객이나 손님도 아니고 성도요,
하나님의 권속(眷屬)으로
하늘나라의 시민권(市民權)은 물론 하나님의 유업(遺業)을 받을 사람입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출신, 학벌, 혈통, 성격을 초월하여 외지교회의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한 시민이요,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19).
공동운명체가 되었습니다.
전에 멀리 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1)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요1:12~13절)
(2)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았습니다(엡1:3~14절)
(3)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벧전2:5,9절)
(4) 세상의 소금입니다(마5:13절)
(5) 세상의 빛입니다(마5:14~16절)
(6)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고후3:1~3절)
(7) 상속자입니다(롬8:17절)
말씀을 맺겠습니다.
과거 불행했던 죄인의 시대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선언된 것은 화평(和平)입니다.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누구든 그 나라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 한 가족으로 대우받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시므로 담이 허물어 졌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므로 사랑의 교제를 가로막았던 담을 다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화해와 평화를 가져온 사건입니다(14~16절).
하나님과의 반목을 화목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적대감을 평화로 바구셨습니다.
갈등이 봉합된 것이 아니라 치유되었습니다.
평화는 적대감이 제거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것을 요구하니다.
서로 용서하고 포용하며 교제를 나눌 때 비로소 평화가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반목과 대립의 역사를 살던 그들이 주 안에서 ‘한’ 새 사람이 된 것은 ‘만물의 통일’(1:10)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평화의 나라이고, 하나님의 사람은 분열과 다툼이 가득한 세상에 평화를 심는 사람입니다(마5:9).
2)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셔서, 성전에도 들어가지 못했던 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17,18절).
이방인의 영적인 소외를 거룩한 소통과 소망으로 바꿔주신 것입니다.
내 주변에 이 평화의 복음이 필요한 소외된 이웃과 공동체는 없습니까?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에게 자신들의 과거를 떠올려보라고 권면합니다(11,12절).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이 죄와 사망의 속박 아래 있던 그때, 모든 관계는 깨지고 나도 나를 사랑할 수 없었던 그때, 내 안에 참 평화도 소망도 없이 살던 그때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구원받기 이전, 나이 과거를 기억해보십시오.
그러면 내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깨닫고, 아무리 힘들어도 현재를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에게서 소외된 가련한 과거, 그러나 이제 변했습니다(13절).
하나님과 가까워졌고, 신실한 유대인과 가까워졌습니다.
할례의 피를 흘리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운 관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더 이상 외인도 하닙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1:3)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가족입니다.
세상 염려가 이 구원의 감격을 몰아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눈앞의 걱정거리보다 구원의 영광이 더 크게 보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