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
고종 23년 병술(1886) 10월 16일(을해) 맑음
23-10-16[09] 전직이 본원의 사자관인 최익상 등을 군직에 붙여 사진하게 할 것을 청하는 승문원의 계
○ 또 승문원의 말로 아뢰기를,
“전직이 본원의 사자관(寫字官)인 최익상(崔翼相), 임흥식(林興植), 전광묵(全光默), 유한승(劉漢承), 이원익(李源益), 김인동(金仁棟), 김동훈(金東勛), 유한민(劉漢敏), 김한조(金漢朝), 유기호(劉綺祜), 김훈영(金薰泳), 이기복(李基馥), 이윤영(李胤榮), 팽관주(彭觀周), 김영섭(金永燮), 이석우(李奭雨), 이원흥(李源興), 유한춘(劉漢春), 전항묵(全恒默), 백만갑(白萬甲), 김긍수(金肯洙), 한응엽(韓應曄)을 실직(實職)으로 올렸으니, 그 대신 이습(肄習) 김인항(金仁杭), 최택희(崔宅熙), 김인수(金仁樹), 문진식(文晉植), 문겸식(文謙植), 이호선(李浩善), 유석규(劉錫奎), 이원기(李源綺), 김정식(金正植), 이규복(李圭福), 전택성(全宅成), 이한정(李漢鼎), 조석주(趙錫周), 최영덕(崔榮悳), 전규명(全圭明), 김연수(金然壽), 최흥주(崔興柱), 고은상(高殷相), 김의문(金義文), 김의곤(金義坤), 이시무(李始懋), 우태원(禹泰元)을 전례에 의거하여 군직에 붙여 관디 차림으로 항상 사진(仕進)하게 하며, 동몽(童蒙) 이준기(李俊基), 유응상(劉應相), 전규영(全圭永), 김헌수(金獻洙), 김창식(金昌植), 유교상(劉敎相), 곽영근(郭寧根), 조석정(趙錫禎), 정재창(鄭在昶), 홍영석(洪榮錫), 이주모(李周模), 이용재(李龍在), 이봉재(李鳳在), 이경증(李慶增), 이희신(李熙信), 유현상(劉賢相), 최항식(崔恒植), 정재영(鄭在永), 정재홍(鄭在弘), 정재형(鄭在衡), 전상묵(全相默), 전응묵(全應默), 유장희(劉章熙), 김계남(金啓南), 오대승(吳大承), 김광선(金光善), 최영주(崔英柱), 최기상(崔麒相), 최인상(崔麟相)은 필재(筆才)가 자못 성취할 가망이 있으니, 본원의 이습에 소속시켜 필업(筆業)을 단련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