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말, 겨울 수련회를 마친 다음날이었다. 일어나보니 아무도 없어서 혼자서 뭘 할까 하다가 수련회도 잘 마쳤으니 감사기도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중언부언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갑자기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때가 되었나보다. 리브가를 통해 이삭에게 위로를 주신 하나님께서 고난 가운데 있는 나를 위로해주는 배우자를 주시려나보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우자와 결혼을 위해 기도했다.
당시 나의 소원은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예쁜 딸아이의 손을 잡고 교회에 가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나에게 예쁜 딸 대신 군대 장관감인 거친 사내아이 둘을 주셨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때는 왠지 모르게 딸을 간절히 원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이 내 마음에 주신 말씀은 배우자도 아들도 딸도 아닌 천둥 벼락 같은 말씀이었다.
“내가 원한다면 너는 사도 바울처럼 복음을 위해 혼자 살 수 있겠느냐?” 아니 이건 날벼락 중에서도 상 날벼락이었다.
지금까지 고생도 다 이해할 수 있다. 그토록 고생하며 내가 주님께 간절히 바란 것은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딸의 손을 꼭 잡고 교회에 가는 건데, 아버지 어머니 어느 쪽 누구도 그리스도인을 찾아볼 수 없는 영적 광야와 같은 집안에서 태어나, 이제 처음으로 믿음의 가정을 한번 이루어보겠다는데 이게 대체 웬 말씀이란말인가!?
나는 “네. 뜻대로 하십시오”라는 말 대신 너무 당황한 나머지 “사단아, 물러가라”고 할 뻔했다.
“하나님, 이러시면 안 되죠.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아니죠. 제가 뭘 바랬습니까? 그저 황량한 저희 집안에 믿음의 가정 하나 세우는 거, 이게 다였는데 이것마저도…. 이것만은 안 돼요, 진짜 안 될 말씀입니다!!” 정말 죽기 살기로 주님 앞에서 발버둥친 것 같다. 나중에는 속으로 ‘괜히 결혼 기도는 시작해가지고…’ 후회하면서 두 시간 가까이 씨름했다.
그러나 결론은 뻔했다. 정말이지 서럽게 울면서 “주님, 주님이 원하시면 그렇게 할게요.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위해 혼자 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런데 그 고백을 마치자 마음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음성이 있었다.
“이제 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결혼을 내려놓으라는 것은 주님의 테스트였다.
주님의 뜻에 내가 ‘이것만은 안 돼요’라고 했던 것마저 내려놓기를 원하신 결정적인 순종 테스트였던 것이다.
놀랍게도 새해 1월 남침례신학대학원 본교인 켄터키 루이빌 캠퍼스에서 나는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혹시 마음 가운데 ‘이것만은 안 돼요’라고 하는 것이 있는가? 미안하지만 그럴 경우 반드시 ‘내려놓음’을 통과해야만 한다. 팁을 하나 드리자면 “이것만은 안 돼요”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생이 힘들어진다. “그냥 알아서 하세요” 이것이 여러 모로 좋다.괜히 하나님과 밀당 하려고 하다가는 엄청 깨진다.
그러나 한 가지를 반드시 기억하라. 그분은 나를 향한 최선이 무엇인지 아시며, 나를 그 최선으로 인도하기를 기뻐하신다. 그분이 우리 아버지시다!!
<올인> 윤성철p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