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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5장 강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뜻
데살로니가전서 5장 1-데살로니가전서 5장 28
요절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 “쉬지말고 기도하라"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우리는 하루하루 당장의 일로 슬퍼하고 기뻐합니다. 때로는 원망하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좀더 넓은 미래에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지금의 슬픔으로 슬퍼하지 않고 지금의 기쁨으로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의 일로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합니다. 2016년 쉬지 말고 기도하여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
1, 2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사도 바울은 재림의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쓸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재림은 도적 같이 아무도 모르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재림의 때는 천사도 모르고 심지어 예수님 자신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마24:36).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사실밖에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와 시기가 언제인가에 대해서는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재림하는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말했다가 창피를 당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재림의 때를 말했다가 부끄러움을 당한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왜 재림의 때를 말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에 넘어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들은 기회주의적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시험 보는 날짜에 관심을 갖습니다. 벼락치기 공부를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평상시 제멋대로 살다가 그때만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재림의 때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시험에 대해서 전혀 관심도 없는 꼴찌들도 있습니다. 재림에 대해서 전혀 관심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때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불안한 심리를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헌신을 강요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이단의 세력들이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이용하여 자신의 추종자들을 모으기 위해서 재림의 때를 말합니다. 재림의 때가 언제이니 재산을 팔아 바치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이단들이 계시록을 통하여 때를 강조하고 자신들만 구원 받는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때와 시기에 대해서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평상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처럼 평상시 열심히 신앙생활하여 오늘 예수님이 오셔도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하는 성도들)
3,4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예수님이 재림의 날은 불신자들에게는 도적같이 임합니다. 불신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전혀 준비없이 살아갑니다. 그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며 먹고 마시며 살아갑니다. 하루하루의 재미에 취해서 살아갑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 도둑처럼 홀연히 갑작스럽게 임합니다. 하지만 우리 신자들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않습니다. 신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항상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신자들에게는 반가운 손님과 같이 임합니다. 여인이 자신의 해산날을 정확히는 몰라도 어느 정도 짐작합니다. 열 달이라는 시간을 계산합니다. 산통의 주기가 빨라지고 강해져도 우리는 해산의 때를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준비된 자세로 해산을 맞습니다. 우리도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대략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압니다. 지진과 전쟁의 횟수나 크기가 커지면 재림의 산통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되면 그제야 끝이 옵니다. 2015년 성탄절을 앞둔 미국에서는 뉴욕시 기온이 섭씨 23도가 넘고 중남부 지역에서 겨울 토네이도로 최소 14명이 숨지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영국에선 성탄절 아침에 홍수 대비 긴급각료회의가 소집됐고, 남미에서는 폭우가 쏟아져 수십만 명이 대피했습니다. 중국과 인도에는 연일 가스실 수준의 스모그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고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온 것을 알고 준비하고 있어야합니다.
(빛의 자녀들)
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지금은 밤입니다. 여기서 밤은 예수님 재림 전을 의미합니다. 지금 밤이 오래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살아갑니다. 하지만 밤은 언젠가 끝이 나고 곧바로 낮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밤이 지나면 낮이 온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낮에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빛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입니다. 여기서 낮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때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밤이 지나고 낮이 오듯이 예수님이 반드시 재림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재림하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빛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환한 대낮에 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낮에와 같이 단정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밤에 살고 있지만 예수님이 재림했을 때를 생각하고 부끄러운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미래지향적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고 방탕함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합니다.(롬13:13,14)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어떻게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까?
(깨어 근신하라)
6,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깨어있는 것의 반대는 잠자거나 술취하는 생활입니다. 사람들은 죄의 잠을 잡니다 돈에 취하고 명예에 취하고 쾌락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마약에 취하고 텔레비전에 취하고 겜, 도박, 쇼핑, 스포츠 에 취하여 살아갑니다. 특히 요즘에는 스마트폰에 취하여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디어사회가 우리를 취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에 취하여 깨어살아가야 합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기도합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살아계신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주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때를 따라서 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합니다. 힘써서 사명을 감당합니다. 안일에 빠지지 않고 일어나 힘써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깨어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을 다시 오셔서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며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을 신뢰하는 방탄조끼를 입자)
8a를 보십시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예수님의 재림을 앞두고 마지막에 사단의 공격이 많습니다. 영적인 전쟁을 하는 우리 신자들은 영적인 무장을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에는 완전 무장에 대해서 나옵니다. 데살로니가서에서는 우리가 꼭해야 하는 두 가지 무장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서 공사판의 인부는 적어도 하이버는 쓰고 다니며 머리를 보호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인 하이버로 투구를 쓸 뿐아니라 가슴을 보호하는 방탄조끼인 흉배를 붙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갈비뼈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갈비뼈만으로 부족합니다. 방탄조끼를 입어야합니다. 우리에게 방탄조끼는 믿음과 사랑입니다. 살아서 실재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영적 심장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면 영적인 심장이 멈춥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성이 끊어지면 우리의 영적인 심장이 멈추어 죽게 됩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과 조건이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도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성도들 간에 사랑의 관계성을 맺어야합니다.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8b,9절을 보십시오.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우리는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더 나아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는 투구를 써야 합니다. 뇌가 손상하면 뇌파가 중단되고 그러면 죽음이 오고 식물인간이 됩니다. 하나님은 뇌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해골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해골만으로 머리를 보호하는데 부족합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이라는 소망의 철모를 써야 합니다. 우리가 절망하면 우리는 영적인 생명이 죽게 됩니다. 자살하는 원인이 절망입니다. 무기력해지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이를 통해서 나를 더 크게 쓰시고자 훈련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죽어도 구원 받을 것이라는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소망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진노하심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 안에서 소망을 든든히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자)
1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신 것은 단 한 가지 목적이 있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깨든지 자든지 예수님과 함께 살기 원하십니다. 요즘에 나온 신과 함께 가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보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우리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실재로 살아계심과 상주심을 믿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외면하고 다른 곳에 눈을 팔기가 쉽습니다. 예수님보다도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쉽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시기하여 화가 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질투는 지옥보다 잔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에 대해서 시기하시고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일이 터지게 하시고 사건을 만드십니다. 우리는 이런 여러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요. 진정 행복한 길입니다.
(피차 덕을 세우라)
1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사도바울은 재림을 준비하는 교회생활을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교회 생활의 일반적인 원리를 말씀하십니다. 피차 덕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덕을 세운다는 의미는 건물을 세우듯이 상대방을 세워주는 것을 말합니다. 건물은 이 세상의 폭풍과 비바람에 흔들리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이와같이 성도들은 서로 권면하여 위로하고 서로를 넘어지지 않게 세워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세워주어야 합니다. 험담으로 무너뜨리지 말아야합니다. 서로 칭찬하고 박수를 쳐주어야합니다.
(다스리는 자를 가장 귀히 여기라)
12,13a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교회 생활에서 먼저 교회의 지도자에 대한 자세를 말씀하십니다. 교회에는 양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다스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양들을 위해서 말씀을 공급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양들의 생명을 자신이 책임진 것처럼 기도하고 노심초사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목자라고 합니다. 일대일 목자도 있고 요회 목자도 있고 책임목자도 있습니다. 양들은 이런 분들의 수고를 당연히 여기기 쉽습니다. 이들을 이해하기보다 요구하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목자들도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과로하면 피곤하고 못 먹으면 배고픈 사람들입니다. 잠을 자지 않으면 졸리고 양들이 말 안 들으면 지치는 사람들입니다. 양들은 이런 목자를 이해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사도 바울은 이런 목자들을 가장 귀히 여기라고 합니다. 목자를 귀히 여기라는 말은 존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듯이 목자를 존중히 여겨야합니다. 목자를 귀히 여길 때 공동체이 질서가 잡히고 공동체가 굳게 설수 있습니다. 버스 기사가 졸면 다 사고나는 것과 같습니다. 목자를 귀히 여겨야 말씀이 잘 들리고 하나님이 복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가 목자를 존중히 여기게 됩니다. 목자를 귀히 여기면 자신도 존경받습니다. 자신도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너희끼리 화목하라)
13b를 보십시오. “너희끼리 화목하라” 지도자에 대해서 말하고 성도들 간에 관계를 말씀하십니다. 성도들간에 화목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집니다. 화목한 모임이 부흥합니다. 화목한 모임이 될 때 세상사람들도 그 모임을 사모하게 됩니다. 화목한 모임이 되어야 아름답습니다. 화목한 모임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꿀처럼 그 모임에 떨어집니다. 화목해야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됩니다. 예수님은 예물을 드리다가 사람들과 불화한 것이 있으면 먼저 화목하고 와서 예배를 드라고 말씀했습니다. 예배보다 중요한 것이 화목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래참으라)
14절을 보십시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사도바울은 계속하여 성도들 간의 관계를 권합니다. 게으른 자들을 책망하여 부지런하게 해야 합니다. 잘 놀라고 두려워하는 자들은 격려해서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힘이 없어서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자들은 손을 잡아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오래 참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오래참아야 합니다. 오래참는 것은 오래 고난을 겪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오래 참는다는 것이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을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고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변화되기까지 그 연약한 점을 담당해야합니다. 자신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자들에게도 오래 참아야 합니다. 그들을 세워주어야합니다. 우리는 양들을 오래참고 동역자를 오래 참고 세워주어야합니다. 그러면 화목한 교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화목해야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
15절을 보십시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한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교회 안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 원수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원수갚는 것은 내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원수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합니다. 우리는 원수같이 보이는 사람에게도 같이 악하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악에게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겨야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16절을 보십시오. "항상 기뻐하라. ." 16-22에서는 성도들의 개인적인 신앙생활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첫째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으로 인해서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기쁨을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손에는 쇠사슬이 채워지고 지하 감옥의 습기가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인해서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빌립보서에 보면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우리는 슬픈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이 오래 지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슬픔을 오래 지속하면 우울증이 됩니다. 자살충동이 생깁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자매들은 기뻐하는 것보다 더 좋은 화장품이 없습니다. 형제들이 기뻐하면 힘이 넘칩니다. 기뻐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기뻐하면 사람들이 교회에 찾아옵니다. 기뻐하는 것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입니다. 괜히 심각하게 인상 쓰고 다니며 얼굴이 시커멓게 해가지고 다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것입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라)
17절을 보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기도가 사단과 싸우는 최대의 무기입니다. 우리가 부상병이 되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뻐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 기뻐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승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려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시간을 정해놓고 절대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은 목숨을 걸고 하루에 세 번 기도하였습니다. 성전에서는 제사장이 아침 저녁으로 분향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처럼 시간을 정하고 정한 시간에 기도해야합니다. 절대적으로 기도해야합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마음을 향하고 생각하는 것이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도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매일 새벽 기도합니다. 그리고 저녁 9시에 기도합니다. 우리는 또한 일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해야합니다. 저는 사십 살부터 절대적인 새벽기도를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은혜로 20년을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크신 축복을 너무나 많이 받았습니다. 그것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몸이 건강해졌습니다. 천식도 치료되고 허리도 건강해졌습니다. 머리숱도 빠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한번도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절망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녁기도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이 잘되자 저녁기도를 쉬었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여름수양회를 계기로 저녁 아홉시 기도를 다시 시작하게 도우셨습니다. 하루에 열 번 기도하는 윤모세 목자님을 만나서 시작과 끝을 기도로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지난 토요일 유성에 최유성 목자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갈 때는 기도하였으나 내릴 때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를 탈 때는 기도하고 내릴 때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형님댁에 어머니 추도예배 때문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에서 출발하다보니 기도를 하지 않아서 차를 세워놓고 다시 기도하고 출발하였습니다. 일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하니 하나님이 함께 하사 실수가 줄어들었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제가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하여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에서 인정하고 믿어드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나의 모든 삶에서 주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주실 것을 믿습니다. 제가 매일 나의 삶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간증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임에도 이렇게 절대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세우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절대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세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18절을 보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셋째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감사해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한 후에 원망하다가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명의 문둥병자를 고쳤습니다. 그 중에 사마리아 사람 단 한 명만이 와서 감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감사하지 않는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찾으셨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구원받은 자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사도들은 매를 맞고 돌에 맞으면서도 감사했습니다. 자신들이 예수님 때문에 능욕받기에 합당한 자가 된 것을 인해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갖자)
첫째 우리의 관심이 하나님의 뜻에 있어야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돈에 있다면 돈이 생길 때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우리의 관심이 자기의 명예에 있다면 자신이 인정받을 때 감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감옥에도 바울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고 밖에도 바울을 시기하여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하여 성령의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이로 인하여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어떤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고난이 있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선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영광스럽게 하실 하나님을 믿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노예가 되고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선을 이루기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감사합니다.
(예수 안에서 살아가자)
둘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가 반드시 승리를 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함께 하심을 믿을 때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19-22을 보십시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우리는 성령이 도우셔야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을 지속적으로 충만히 받을 수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은 불과 같습니다. 성령의 불을 꺼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살면 성령이 소멸됩니다. 슬퍼하고 기도하지 않고 불평하면 성령이 소멸됩니다. 성령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예언의 말씀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말씀은 성령의 불이 타게 하는 장작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않으려면 악을 버려야합니다. 악이 있으면 성령이 소멸됩니다. 범사에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음란한 것이라는 냄새만 나도 그것을 버려야합니다. 우리는 어느 것을 취하고 선택할 것인지 취사선택을 잘 해야합니다. 기뻐할 것인가 슬퍼할 것인가 감사할 것인가 불평할 것인가 선택해야합니다. 죄에 대해서 한칼에 잘라야합니다. 과도하게 텔레비전 보고 스마트폰 보는 것을 단칼에 자를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지속적으로 우리와 거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여주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23,24절을 보십시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십니다. 모든 영과 혼과 몸이 그리스도 예수님이 강림하실 때까지 흠없이 보전해주십니다. 모두가 영광스러운 몸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우리는 평강의 하나님을 믿어드려야 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을 재림의 날까지 지키시고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어드렸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5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기도할 뿐 아니라 기도를 요청합니다. 바울은 형제들에게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바울이 고난 중에 고난을 잘 참고 견디며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합니다. 기도 지원을 받아야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을지어다)
26-28절을 보십시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형제에게 문안해야합니다. 형제들 간에 거룩한 사랑을 해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이 편지를 모든 형제에게 읽어주어 서로 은혜를 나누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은혜가 성도들고 함께 하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은혜가 있어야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국어를 가르치면서 고대소설의 한 가지 특징이 배웠습니다. 그것은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특히 영웅소설을 보면 삶의 과정에는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죽음의 위기를 두 번 정도는 맞이합니다. 그러나 결말을 아는 사람은 그런 위기의 순간에 마음을 졸이고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나중에는 잘 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잠시 실패도 있고 사고도 있고 질병도 있을지라도 잘 되고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합니다. 이를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해야합니다. 2016년 한해 쉬지 말고 기도하여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데살로니가전서 5장 강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뜻
데살로니가전서 5장 1-데살로니가전서 5장 28
요절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 “쉬지말고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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