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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과 경복궁 비교
눈여겨보면 중국의 자금성과 우리나라의 경복궁이 상당히 닮은 점이 많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서울에서는 고궁을 구경하게 되면 경복궁과 덕수궁을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북경을 가면 자금성을 제일 먼저 고궁으로서 구경할 수
있다.
근데 경복궁과 자금성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적 근거에 대해선 인터넷에서도 비교된 것을 찾아 볼 수 없어
그 점이 매우 아쉽지만
경복궁은 1394년에 착공하여 1395년에
준공되었고 자금성은 1406년에 착공되어 1420년에 준공되었다.
즉,
경복궁이 먼저 착공되고 먼저 준공되었다.
(혹시 자금성이 경복궁을 모방한
것은 아닐까? ^^:: )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가 이렇게 고궁을 지을 당시 중국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는 것이다.
추측건데 아마 고궁을 짓기로 결정하였을 때 일부 건축가들을 중국으로 현지답사 보내지
않았을까?
어떤 이유에서 두 고궁이 비슷한 외양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만 일단은 유사함에 "재미"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중국 자금성의 태화전>
<경복궁의 근정전>
근정전과 보화전은 모두 2층지붕형태로 되어 있고 높은 기단 위에 설치되어
있다.
그 정 중앙에 임금과 대소관료가 통행할 수 있는 통로도
있다.
그러나 근정전 앞에는 품계석이 있는 것이 보화전과
다르다.
<경복궁의 잡상>
<경복궁의 잡상>
잡상이란 '여러 가지의 형상'을 뜻하며 추녀마루 끝에 일렬로 앉히는 여러 모양의 조각상을 말한다.
원래 잡상은 서유기에 나오는 인물 및 토신을 형상화하여 살(煞)을 막기 위해 놓아 둔
것이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태종의 꿈속에 밤마다 나타나는 귀신이 기와를 던지면 괴롭히자 문무관을 내세원 둥전문을 지키게 했다는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맨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① 대당사부(大唐師傅), ② 손행자(孫行者), ③ 저팔계(猪八戒), ④ 사화상(沙和尙),
⑤ 마화상(麻和尙), ⑥ 삼살보살(三煞菩薩), ⑦ 이구룡(二口龍), ⑧ 천산갑(穿山甲), ⑨ 이귀박(二鬼朴), ⑩ 나토두(羅土頭)라고
불린다.
즉, 맨 앞은 삼장법사, 그 다음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마화상,
삼살보살, 이구룡, 천산갑, 이귀박, 나토두, 행십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자금성의 답도>
<경복궁의 답도>
경복궁의 전면 기단 중앙에는 답도(踏道)를 두어 그 계단에는 당초문을 새겨 화려하게 장식했고 경사면에는 봉황을 조각하였다. 답도는 '밟는 길'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 왕은 가마를 타고 지나갔다.
경복궁의 답도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으나 자금성에는 용을 그린 답도가 있으며, 훨씬 크다.
즉,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봉황을 임금의 상징으로 하였으며(지금도 대통령 집무실 뒷편엔
봉황이 새겨져 있고 대통령 휘장에도 봉황이 그려져 있다) 중국은 용을 임금이나 황제의 상징으로 하였다.
<자금성의 물 항아리>
<경복궁의 물 항아리 - 드므>
드므란 '입이 넓적하게 생긴 큰 독'이라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궁궐에서 드므는 주요 전각의 월대 모퉁이에 설치하여 그 안에 물을 가득
담아 놓았으며 이는 화마(火魔)가 불을 놓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려 올 때,
드므에 담아 놓은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 도망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자금성에서도 큰 항아리가 있으며 이를 뭐하고 부르는 지는 몰라도 실제로 불을 끄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드므로 근정전이 목재로
된 건물이기 때문에 불을 끄기 위한 용도로 설치하였다고 하나 저장 용량이 매우 적어 실용성에는 조금의 의구심이 든다.
<자금성의 향로>
<경북궁의 정(鼎)>
정의 쓰임새와 용도에 대해서는 향로로 쓰였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구체적인 사료에서 그 용례를 찾아보기 어렵고, 다만 정의 일차적인 의미는
솥(鼎)을 뜻하지만, 왕권(王權)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간주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금성에 있는 것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또 그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첫 눈에 향로로 쓰였을 것이란 추측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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