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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0월11일(목).여행 14일 차이다. 몬트리얼 호텔에서 나오니까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바람 까지 심하게 불고...여행을 다니면서 어찌 할수 없는것이 날씨 이다. 하늘이 하는 일은 우리 같은 중생들이 감히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2016년9월 노르웨이 갔을 때가 생각 난다. 2016년9월18일(일) 북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인 노르웨이의 게이랑게르 피요르드와 송네 피요르드를 관광 하는 날이었다. 아침에 호텔을 출발 할때의 날씨는 좋았었는데 오따와 롬을 거쳐 달스니바 전망대 입구인 람스달에 도착 하니까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주변의 산과 빙하들이 하나도 안보인다. 청색의 빙하를 바로 눈앞에서 볼수있는 해발 1600m의 달스니바 전망대에 올라왔는데도 개스가 가득 하다. 미치고 환장 하겠는거 있지... 이렇게 온통 구름만 보이면 우리 아파트에서 곡교천 바라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오호 ! 통 제 라 ! 일행들이 서로를 보면서 나는 괜챤은데 네가 재수 옴 붙었다고들 난리 부르스 이다. 그러기를 약 15분.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거짓말 같이 개스가 싸그리 겉히는거 있지. 정말 감격스런 순간 이었다. 까마득히 밑에 있는 게이랑게르 피요르드를 비롯해서 바로 눈앞에 퍼런 빙하까지 완벽한 풍경을 보여준다. 그럼 그렇지 ! 누가 왔는데 ! 다들 야단법석 이다. 결과적 으로 이번 퀘벡에서는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점점더 거세게 바람불고 비가 왔다는.... 신의 조화여 ! 시 방 ! 07시40분 호텔을 출발하여 퀘벡 다리를 넘어서 퀘벡에 진입 한다. 퀘벡시(Quebec City) 퀘벡주의 주도인 퀘벡시는 카나다 원주민어로 "좁은 수로"를 뜻하는 말이다.실제로 퀘벡시는 세인트로렌스강의 강폭이 좁아지는 지형에 자리 잡고있다. 북미 유일의 성곽도시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역사 도시로 등록되어 있다. 성벽을 경계로 언덕위의 Upper Town과 강가의 Lower Town 으로 나뉜다. 오래된 성벽으로 이루어진 낭만적인 고도이고 세인트 로렌스강과 로렌시앙 산맥이 넓게 펼쳐진 지역이다. 원주민과 함께 프랑스와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각자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있다. 도시의 역사는 1608년 프랑스 탐험가 사무엘 드 샹플랭이 목조 요새를 지으면서 부터 시작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7년 전쟁의 불똥이 식민지로 번져 1759년 퀘벡시 에이브러햄 평원에서 프랑스군이 영국군에게 패하자 프랑스는 식민지의 권한을 빼았기게 된다. 이로인해 퀘벡주 에서는 프랑스계 카나다인들 보다 영국계 카나다인들이 지위가 높고 수입도 많았다. 1940년대 후반 까지만해도 프랑스계 카나다인들은 초등학교만 마치면 취업전선에 뛰어 들었고 기술자나 경영자가 되는 프랑스계 카나다인은 거의 없었다. 1950년대부터 인구의 81%를 차지하는 프랑스계 카나다인들의 개혁운동이 시작된다. 정치,사회적 으로 스스로의 영향력을 높이고 경제력을 키우는 프랑스계 카나다인을 증대 시키려는 노력 이었다. 이런 인련의 사회적 변혁은 1960년대부터 퀘벡주에서 정권을 잡은 자유당에의해 조용한 혁명으로 강력하게 추진 되었다.그러다가 분리 독립까지 외쳤지만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 버린다. 1976년 여름 다른주의 협력을 얻지 못하고 자신 들만의 힘으로 몬트리올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 하였고 이듬해에는 퀘벡당이 퀘벡주에서 프랑스어만을 공용어로 채택하는 프랑스어 헌장을 통과 시켰다. 퀘벡주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Je me souviens"(나는 잊지 못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있다.퀘베코(퀘벡인)들은 아직도 가슴속의 응어리를 자동차 번호판에 까지 새겨넣고 그들만의 좌우명으로 삼고있다. 그런 지난 역사들이 오늘날까지 사회의 불안 요소로 남아있는것이 카나다 퀘벡의 현실이다. 17세기 시대의 건축물 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카나다 최대의 역사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1852년도에 설립된 카나다 최고의 라발대학교는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 문화의 발달에 크게 기여해온 곳이다. 09시53 세인트 앤 그랜드 캐년에 도착 한다.옵션 관광으로 진행 했다. 퀘벡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자랑하고 있는 숲과 험준한 계곡에 높이 74m 의 시원한 폭포가 흘러 내리는 아름다운 협곡 이었다. 가파른 계단과 아찔한 구름다리를 여성 분들은 힘들어 한다. 절경과 단풍을 사진에 담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비가 와서 미끄럽고 활동에 제약을 많이 받았지만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10시55분 세인트 안 협곡을 출발하여 11시15분 세인트안 드 보프레 대성당을 지나친다. 몽모랑시 폭포와 세인트안 협곡의 중간에 위치한 북미 카톨릭의 3대 성지이다. 난파당한 선원이 기도를 올리자 기적이 일어났다는 데서 성지가 되었다. 현재 건축물은 1932년에 세워진 건축물로 고딕 양식의 웅장한 건물이다. 11시25분 몽모렌시 폭포에 도착 했다. 여전히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분다.12시17분 몽모렌시 폭포를 출발하여 12시27분 뷔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13시35분 식당을 출발하여 13시45분 다름광장에 있는 퀘벡주 의사당에 도착 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부니까 일행들은 아무도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다름광장은 프랑스군의 훈련과 행사장으로 썼던 구시가지의 중심광장으로 퀘벡 최초의 신부 도르보의 동상이 서있다. 광장 바로 옆에는 샤토 프론트낙 호텔이 웅장하게 서있다. *샤토 프론트낙 호텔. 세인트 로렌스강과 퀘벡시티가 내려다 보이는 어퍼타운에 웅장하게 서있는 호텔이다. 이 호텔은 1893년에 착공하여 1983에 완공 될때까지 거의 1세기가 걸렸다. 고성을 모방한 디자인은 기품이 넘치고 갈색벽 외관과 녹색 청동의 대비가 아주 멋지다. 객실의 수가 600여개에 달한다. 이 건물의 역사는 1893년 대륙횡단 철도의 개통과 함께 카나다 태평양 철도회사가 퀘벡시에 호화 호텔 건설을 결정 하면서 부터이다. 미국의 건축가 브루스 플라이스를 초청하고 호텔 이름은 2대에 걸쳐 누벨 프랑스 총독을 역임한 프론트낙 백작의 이름에서 따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 처칠과 루즈벨트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결정한 연합군 회의가 열렸던 장소로 유명하다. 뒤프랑 테라스에서 내려다 보이는 세인트 로렌스강이 아주 멋지게 보인다. 그 옆에는 퀘벡시의 조상인 사무엘 드 샹플랭의 동상이 서있다. 화가의 거리, 루아얄 광장,승리의 노틀담 교회, 프티 샹풀랭 거리,벽화건물,등을 돌아보고 15시45분 샤토 프론트낙 호텔을 출발한다. 나는 먼저번 왔을때 좋은 날씨에 구석구석을 돌아 본 곳이지만 이번에 처음온 일행들은 퀘벡의 맛도 못보고 가는 꼴이 되어 버렸다. 두번째 보는 나만 우중의 퀘벡을 맛있게 먹고 가나보다. 많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올때는 좋은 날씨 속에서 많이 보고 즐기삼 ! 우중에 퀘벡 다리를 건너 20시12분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에서 면세점에 들른다. 이곳도 3년전에 들렸던 곳이다. 여기서 메이플 시럽 1 리터 짜리 사가지고 가방에 넣고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서 짐 부쳤다가 x-레이 검사에서 폭탄 인줄알고 내가 수십년 끌고 다녔던 가방을 가차없이 빠루로 제켜서 검사하고 검사 했다는 A4용지와 테이프로 둘둘 감은 가방을 인천에서 찿았다는...ㅋㅋㅋ 21시 국경을 통과하여 21시30분 옥화루 중식 뷔페에서 식사를 하고 22시10분 뉴욕주 북쪽 끝에 있는 플래츠버그에 있는 Hollyday Inn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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