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라도_구레네 시몬의 십자가
마가복음 15:21-24
21. 그때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올라오다가 그 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병사들은 그를 붙들어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22. 그들은 예수를 끌고 골고타라는 곳으로 갔다. 골고타는 해골산이라는 뜻이다.
23. 그들은 포도주에 몰약을 타서 예수께 주었으나 예수께서는 드시지 않았다.
24. 마침내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주사위를 던져 각자의 몫을 정하여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의 종교입니다. 이 말은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고, 부활의 소망 없는 십자가는 무의미한 고통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와 부활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어느 하나 없이 다른 하나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은 부활의 삶보다는 십자가의 삶을 더 많이 살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소수에게 권력과 부가 집중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비민주적인 사회, 빈부 격차가 심한 사회, 차별이 많은 사회일수록 부활보다는 십자가가 더욱 요구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 역시 십자가의 고난이 부활의 영광 보다 더 요구되었던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의 삶은 가난하고 억눌린 민중들과 함께 하는 고난의 과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중들과 함께하는 예수님의 고난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고난은 부활의 영광으로 뒤바뀌는 거죠.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새 하늘 새 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이것이 예수 부활의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첫 부활이 되셔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뒤를 따르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이끄십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으신 예수님은 로마 병정들의 모진 채찍을 맞고 골고다로 끌려갑니다. 그에게 내려진 죄목은 유대인의 왕을 자처하며 반역을 하였다는 것이죠.
성서의 묘사에 의하면 유죄의 확신이 없었던 빌라도는 예수를 채찍질만 하고 풀어주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형을 요구하는 군중들의 요구에 못 이겨 십자가형까지 선고해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더욱 처절한 고통의 길이 되어버린 것이죠.
예수님이 당한 채찍질은 정말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 쓰던 채찍질은 두 가지었는데, 하나는 노예들에게 작업을 강요하려거나 군대에서 군율을 위반한 병사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할 목적으로 때리는 채찍질입니다. 또 하나는 진짜로 죽일 생각으로 때리는 채찍질인데 십자가형에서 휘둘러지는 채찍질은 후자의 경우였습니다.
사형 집행용 채찍은 보통 39개 가닥의 가죽끈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가죽끈에는 날카로운 뼛조각, 쇳조각 등의 온갖 위협적인 흉기들을 달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채찍질을 당하면 멍뿐 아니라 살이 찢겨져 나가게 되죠. 때문에 예수님은 로마 병정들의 채찍질에 피범벅이 되었고 십가가를 지고 걷기조차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십자가형은 사형수에게 처형장까지 직접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는 형벌입니다. 짊어져야 할 십자가 형틀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20kg에서 50kg 정도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채찍질을 당해 빈사 상태인 사람이 쉽게 지고 이동할 만한 무게는 아니었다는 것이죠. 이동할 때도 사형수가 넘어지거나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어김없이 채찍이 날아들었다고 합니다.
채찍질의 고통도 심했지만 십자가형은 그야말로 가장 고통을 극대화하는 형벌이었습니다. 폐위된 로마 황제 네로가 십자가형을 받을 것이라는 말에 자살을 택했다는 설도 있으니 십자가형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형벌이었던 것이죠.
사형수가 십자가를 메고 형장으로 오면 매달 준비를 합니다. 먼저 사형수의 속옷까지 모두 벗겨 나체로 만들죠. 성경은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겉옷꽈 속옷을 벗기고 겉옷을 4등분하여 나누어 가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사형수를 십자가에 눕히고 손목과 발뒤꿈치에 사람의 몸무게를 지탱할 만한 초대형 대못(5~7인치)을 박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세워 사형수가 죽을 때까지 매달아 둡니다. 십자가형의 최악의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못 박힌 상처에 몸무게가 더해져 살과 뼈가 부서지는 고통이 엄습합니다. 못 박힌 팔은 몸무게로 인해 늘어나다 못해 양쪽 어깨가 탈골되죠. 온몸의 다른 관절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어그러집니다.
십자가형은 숨을 쉴 수 없게 만듭니다. 양팔이 대못에 고정되어 있어 가슴을 압박하죠. 그러면서 폐와 횡격막을 늘려 숨을 계속 들이쉬는 상태로 만들어 놓습니다. 사형수는 본능적으로 몸을 올려 숨을 내쉬려고 하는데, 몸을 세우려면 못 박힌 손목과 발목에 힘을 줘야 하니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힘을 빼버리면 또다시 숨을 못 쉬는 상태로 돌아옵니다. 결국 이 과정을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거죠.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십자가형의 수형자들은 못 박힌 상태에서 대략 1,000번 정도 기절했다 깨었다를 반복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지치면 숨을 쉴 수 없게 되어 질식사하거나 심장이 터져 사망합니다.
예수님이 로마 병정의 채찍을 맞으며 십자가를 지고 끌려갈 때 지친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진 인물이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Cyrene, Simon)이라는 사람입니다(마태 27:32; 마가 15:21; 누가 23:26 ).
그는 알렉산드리아 서쪽 약 700km 정도 거리에 있는 북아프리카 해안 마을인 구레네(Cyrene, 리비아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출신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유대인의 규례에 따라 매년 열리는 유월절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재판을 받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예수의 행렬을 구경하게 되었고 운명적으로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입니다.
마침 구레네 시몬이 지친 몸으로 십자가를 힘겹게 지고 가던 예수님 곁에 있었던 겁니다. 로마 군인은 예수님이 이상 걷기 힘들다고 판단하였고, 근처에 있던 구레네 시몬을 붙잡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은 공무 수행을 위해서라면 사람이든지 짐승이든 징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나무 십자가를 대신 짊어졌습니다.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다 오른 후에야 그는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죠. 그리고는 양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지는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그가 짊어지고 온 그 십자가에 주님이 못 박히신 것입니다. 아마도 시몬은 ‘저 십자가에 달린 것이 나였다면?’ 하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켜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날의 사건은 시몬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예루살렘에 남아 오순절 성령의 세례에 참여했죠. 시몬은 오순절 다락방 성령 체험 후 사도 베드로의 연설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분명히 알아두시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행 2:36)"는 말씀이 구레네 시몬의 폐부를 파고들었습니다. 그 순간 시몬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가 바로 자신이 달려 죽었어야 할 십자가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것은 예수였으나 그와 함께 자신의 몸도 십자가에 달린 것을 알게 된 거죠. 죽음을 향해 가던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예수님 대신 진 십자가가 그를 바꾸어 놓은 것이죠.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다는 행적은 공관복음서 3곳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막 15:21; 마 27:32; 눅 23:26-31). 특히 마가는 시몬이 알렉산더(Alexander)와 루포(Rufus)의 아버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막 15:21). 이로 미루어 보면 시몬은 복음서 저자들과 상당히 깊은 관계가 있었다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복음서는 예수 사후 대략 30여 년이 경과한 후부터 기록되었다고 알려져 있죠. 그러니 마가의 기록은 그기간 동안 시몬과 그의 가족들이 초대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끝맺음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는데, 여기에 주목할 만한 언급이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13절에 “뛰어난 주님의 일꾼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해 주십시오. 그의 어머니는 나를 아들처럼 여겼습니다”는 말씀이 있죠. 이를 보면 시몬의 가정과 바울은 아주 친밀한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는 안디옥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이 사역한 곳이고 여기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곳입니다. 1절에는 안디옥교회에 선지자와 선생이 있었다고 기술합니다. “그때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와 교사 몇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와 니게르라고 불리는 시므온과 키레네 사람 루기오와 영주 헤로데와 함께 자라난 마나엔과 사울이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 중 니게르라 하는 시몬을 구레네 시몬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 신도들 중에는 키프로스 사람과 키레네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은 안티오키아로 가서 이방인들에게도 말씀을 전하고 주 예수의 복음을 선포하였다(행11:20)”는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구레네 사람들이 안디옥교회 설립과 복음 전파에 크게 기여했음을 볼 수 있죠. 후에 시몬의 아들 루포는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 됩니다.
우리는 십자가 사건을 2천 년 전 예루살렘 골고다에 있었던 과거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는 오늘 현존하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너와 내가 실존적으로 경험하는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란 것이죠. 오늘 이 시간도 세상 권력을 잡은 사탄의 무리들은 부패한 종교 권력과 합세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살해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고 있는데, 그 예수님은 처참한 파괴와 죽음의 현장에 내몰리고 있는 인간과 자연입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지난 8일 96세로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1952년 26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여왕이 70년간 수장으로 통치하는 동안 영국 총리는 무려 15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여왕은 제위기간 동안 냉전 시대와 소련 붕괴, 유럽연합 출범과 영국의 탈퇴 등 격변기를 살면서 54개국의 영국 연방을 유지시킨 구심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은 관례에 따라 열흘 동안의 추모 기간을 지낸 후 오는 19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진다고 합니다.
여왕의 죽음과 관련해 한국 언론들은 매초 단위로 왕실 관련 기사들을 쏟아내었습니다. 더군다나 포털 메인 기사로 장식되는 것을 보면 한국이 마치 영국 식민지인 줄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영국은 근세사에 있어서 가장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착취했던 제국주의의 대표주자였던 나라입니다. 그리고 영연방에 속한 나라들은 과거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죠. 그 중심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있었습니다.
영국은 300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잡아갔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노예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그들이 일으킨 전쟁과 억압, 착취 사례는 너무도 넘쳐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죠. 하지만 영국은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마찬가지죠. 생전에 단 한 번도 식민지 착취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60년대 반제 반란을 일으킨 예멘을 강제 진압하라고 명령까지 했습니다. 식민지 독립운동이 가열차게 일었던 1950~60년대에 영국은 젊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인기 뒤로 숨어 독립운동을 진압했습니다. 그들은 사과하지 않았고, 그들이 영국으로 유출시킨 식민지 부를 토해내지도 않았습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인기와 동화 같은 왕실 이미지를 내세워 영국의 식민지 청산을 지금까지 지연시켜왔던 것입니다.
여왕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아프리카를 비롯해 영국의 식민지 국가들이었던 나라들이 애도를 표하지 않는 이유가 아직도 현존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였던 우리 역사를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한국 언론들은 영국 왕실의 입장만이 아닌 영국의 식민지로 고통당했던 나라들의 입장도 다뤄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 국가인 영국은 피지배국가들의 십자가의 고통을 즐기며 부활의 영광을 누려왔습니다. 아니 식민지 국가들에 십자가의 고통을 안겨주면서 아무 죄책감 없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온 거죠.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처음 부분에 진정한 예배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리라(마5:23-24)”는 것입니다. 제단에 예물을 드리는 의식은 구약의 제사 방식이며 신약 이후에는 예배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진정한 예배가 되려면 사람이나 자연에 대한 착취와 억압에 대한 사죄와 화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에 눈이 멀어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는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남에게 십자가를 강제로 지우게 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입니다. 세계질서도, 국가 권력도, 교회도, 개인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우리의 이웃들에 대한 관심과 그들이 당하는 고통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인간들 때문에 함께 고통당하는 자연과 다른 피조물들에 대한 참회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억지로든 자발적이든 함께 그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이죠.
스스로 원한 것은 아니지만 구레네 시몬처럼 십자가를 대신지도록 강요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기후 위기나,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모두가 그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탄소 중립이나 압제하는 권력에 대한 투쟁, 약자와 함께하는 삶에는 자발적인 동참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쥐락펴락하며 자신들의 안락을 위해 사람과 자연을 희생시키는 무리들을 몰아내기 위한 싸움에 나서는 것은 개인의 결단이기 때문이죠.
혹 용기가 없어 자발적인 투쟁에는 참여하지 못할지라도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라도 지워진 십자가는 기꺼이 받아드려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올 수 없다는 주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길 때입니다. 어둠의 시대를 이겨내고 새 시대의 여명을 꿈꾸는 주님의 일꾼들 위에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이 함께하시길 축원드립니다.
<2022.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