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이제 그가 이와 같이 무소유처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이런 미리 해야 할 일을 하고 비상비비상처를 증득한다. 그때 한 번 혹은 두 번의 마음순간이 지난 뒤 마음 없는 자(acittaka)가 된다. 그는 소멸을 체득한다. 왜 두 번의 마음들 뒤에 그에게 마음이 생기지 않는가? 소멸을 항상 노력 때문이다. 이 비구가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법들을 쌍으로 묶어서 여덟 가지 증득에 오른 것은 차제멸(次第滅, anupubba-nirodha)을 향한 노력 때문이지 비상비비상처를 얻기 위한 노력 때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소멸을 향한 노력 때문에 두 번의 마음 다음에는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44. 그러나 무소유처로부터 출정하여 이런 미리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비상비비상처에 들어가는 비구는 그 다음에 마음 없는 자가 될 수 없다. 돌아와서 다시 무소유처에 머문다.
45. 이전에 가 본적이 없는 길을 가는 사람의 비유를 여기서 말해야 한다. 이전에 가 본적이 없는 길을 가는 어떤 사람이 물이 넘치는 계곡이나 깊은 저습지 넘어 이글거리는 햇볕에 달구어진 바위에 올랐다. 하의와 상의를 단정히 하지도 않고 계곡에 뛰어든다. 그러나 그의 소지품들이 젖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시 올라와 강둑에 서거나 도로 바위에 올라와서는 발이 데어 다시 그 주위에 선다.
46. 여기서 그 사람이 하의와 상의를 단정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곡에 뛰어들자마자, 혹은 달구어진 바위에 오르자마자 되돌아가서 그 주위에 서듯이 수행자도 미리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상비비상처에 도달하자마자 되돌아가서 무소유처에 머문다.
47. 그러나 이전에 그 길을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곳에 와서 한 벌의 옷을 단정히 입고 다른 한 벌은 손에 쥐고 계곡을 건넌다. 혹은 달구어진 바위를 살짝 밟은 뒤 다른 곳으로 간다. 이와 같이 미리 해야 할 일을 한 비구는 비상비비상처를 증득하고 그 다음에 마음 없는 자가 되어 소멸 체득하여 머문다.
48. (7) 어떻게 머무는가? 이와 같이 한정한 시간만큼 머문다. 중간에 수명이 다하거나 승가가 기다리거나 스승이 부르시거나 하지 않는 한 그만큼 머문다.
49. (8) 어떻게 출정하는가? 불환자의 경우 불환과를 얻음으로써, 아라한의 경우 아라한과를 얻음으로써, 이와 같이 두 가지로 출정한다.
50. (9) 출정한 자의 마음은 어느 곳으로 기우는가? 열반으로 기운다.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도반 위사키여, 상수멸의 증득에서 나온 비구의 마음은 멀리 여읨(viveka)으로 향하고, 멀리 여읨으로 기울고, 멀리 여읨으로 기댑니다.
51. (10) 죽은 자와 멸진정에 든 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 뜻도 경에서 이미 설했다. 이처럼 설하셨다. “도반이여, 죽어서 수명이 다한 자는 그의 몸의 상카라들이 소멸되고 가라앉았고, 말의 상카라들 … 마음의 상카라들도 소멸되고 가라앉았습니다. 또한 목숨이 다하고 온기가 식어버렸고 감각기능들이 완전히 파괴되어버렸습니다. 상수멸을 증득한 비구도 그의 몸의 상카라들이 소멸되고 가라앉았고, 말의 상카라들 … 마음의 상카라들도 소멸되고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나 목숨은 다하지 않았고 온기도 식지 않고 감각기능들도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52. (11) 멸진정은 형성된 것인가, 형성되지 않은 것인가? 등의 질문에 대해 이것은 형성된 것이라거나, 형성되지 않은 것이라거나, 세간적이 것이라거나, 출세간적이 것이라고 답할 수 없다. 왜 그런가? 고유성질(sabhāva)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증득한 자가 증득했다고 하기 때문에 이것은 구체적인 것(nipphanna)이라고 설한다. 이것은 추상적인 것(anipphanna)이 아니다.
고요하고 성자들에 의해 개발되고 금생의 열반이라 이름하는 멸진정 성스러운 통찰지를 닦아서 지자는 그것을 증득한다. 그러므로 이런 증득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성스러운 도 가운데 통잘지의 이익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