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속에서 밝은 빛을 내야 합니다
信天함석헌
오늘은 아주 좋은 날입니다. 오늘만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서 좋은 날은 아닙니다. 옛날 사람은 무슨 날에 좋고 나쁜 것이 있는 줄을 알고. 음양 이치를 풀어서 그 날을 골라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좋고 언짢고가 본래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우리 마음이 하나님한테 절대 순종할 생각을 하고 결정을 하면 그 날이 곧 가장 좋은 날이요 그 시간이 곧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오늘 두 분이 새로 약속을 하고 일생을 같이 지내가기를 맹세하고 새집을 이루는 날입니다.
이제 한두 마디 내가 말씀을 할랍니다. 오늘 두 분은 결혼식을 하는데 아주 자유하는 양심의 뜻을 가급이면 제대로 발표해 보자는 생각에, 주례고 무슨 문답이고 그런 것도 없이 두 분이 스스로 자진해서 맹세했습니다. 시대적인 말로 한다면 가장 민주주의적인 방법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두 분은 이제 오늘 새집을 이루는데. 퀘이커의 길을 걷기로 작정한 분들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데는 각각, 물론 한길이지만, 인생의 마땅히 걸어야 하는 길은 하나가, 하나의 환하게 뚫린 길이 있는 거지만, 사람의 마음은 자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각 자기네로서 취하고 싶은 방식의 길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퀘이커의 길이라는 겁니다.
넓게 말하면 기독교의 길이라고 그럼 수도 있지요. 이천년 전에 예수라는 이가 오셔서 세상에서 보여주셨던 그 정신을 따라서 그렇게 살아가자는, 그이 말씀 중에 “내가 길이요. 내가 진리요. 내가 생명이라” 그랬어요. 그러하셨던 그 정신을 따라서 살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퀘이커는 퀘이커 나름대로, 자기네 나름대로 체험을 해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내가 한두 마디 말씀을 드리는데. 새집은 첫째 밝아야 해요. 새집이란 밝아야 해요. 퀘이커들은 각 사람의 마음의 속에 빛이 있다고 그럽니다. 그것은 성경 속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기를 자기 모습대로 지었다하는 그것과 같은 말입니다. 속의 빛을 가진 것이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스스로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다. 그렇게 만하지만 퀘이커들은 조금 다르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모습이 우리 속에 빛으로 있어. 또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씨라 그러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씨가 우리 속에 있어.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잘 찾아내면 우리 속에서 밝은 것이 나올 수 있다. 마치 촛불에다가, 촛불이 깜깜한 것이지만 거기다가 불을 갖다 붙이면 그 속에서 빛이 환하게 나오는 모양으로 나올 수 있다 하는 것이 퀘이커의 길의 하나입니다.
두 분이 다른데, 이 세상이 지금 굉장히 복잡해서 사람의 만든 기구가 너무 지나치게 많아가지고, 덮어 누르는 때입니다. 흐린 물이 올라오면 바위를 잠가버리는 수도 있는 모양으로, 그렇지만 흐린 물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진할 때가 있고, 서있는 바위는 제대로 변함없이 있을 것입니다. 한동안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우리 속에 있는 그 빛이 그대로 그 빛의 씨가. 하나님의 씨가 살아있기만 하면 세상을 밝힐 수도 있습니다. 새집을 이루는 목적의 하나는 둘이서 손을 잡고 살아가는 것이 편리도 하고 재미도 있다. 그래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을 밝히자는 것이 우리의 새살림을 이루는 목적의 하나다. 그렇게 생각을 하셔서 속에서 하나님이 본래 넣어주신 그 빛이 빛을 발해 나오도록 하길 바랍니다.
바깥에, 밖에 바라지 마시고 밖에 어려운 조건이 아무리 있더라도 겁내지 말고 그 속에 있는 빛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이니까 무엇을 가지고도 그것을 가리울 수 없고 없엘 수도 없는 빛이니까 두 분이 하나로 돼서 그 빛을 발하도록. 성냥 한가치가 대단히 미약한 거지만 이렇게 합해 놓으면 그 빛이 한층 더하는 걸 우리가 실험해 압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하신 것은 그래 하신 말씀일 겁니다.
그 다음은 새로 시작되는 집은 또 깨끗해야 합니다. 그것도 같은 말이지만, 말은 다르게 하면 깨끗해야 합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지금같이 퀘이커고 기독교고 몰랐어도 인간이 본래 있는 천성에 의해서 살다가 그 집에서 사람이 죽던지 그러면 그걸 내버리고 나가서 새로운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고구려 시대, 부여 시대 이래로 우리 민족의 본래 풍습입니다. 대단히 의미있는 겁니다. 지금은 경제가 사람을 너무 지나치게 뒤엎는 시대가 돼서 그럴 수가 없지만. 우리 선조들이 동물의 지경에서 벗어나서, 정신 살림을 해가는 가운데 체험으로 보여준 것의 하나가 더러워지고… 사람이 죽었으면 내버리고 새 출발을 해. 새롭게 그전 있던 그 시장으로, 거기 붙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야. 날마다 새로운 살림을 한다고 하는 의미에서 옛집을 내버리고 가서 새살림을 시작했던 겁니다.
그것은 정신으로는 반드시 살려내야 하는 겁니다. 지금 길거리엘 나가보면 굉장히 발달했다고 하는, 문명했다고 하는 세상인데 어둡기가 짝이 없고 또 더럽기가 짝이 없어. 어둡다는 것은 전기불이 없어 어둡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공부도 많이 했고 제도도 많이 있고 한데, 근본 이치를 밝혀가는 데는 참 어두워.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람들일수록 그전이치에는 어린애만도 못해요. 인간의 기본적인 진리도 모르고, 모를 뿐만 아니라 일부러 무시하고 있는 때입니다. 그런 고로 밝힐 필요가 있어.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이 길거리를 쓸고 지나가는 물결이 뭐냐 그러면 더러운 물결이야. 더럽기가 짝이 없어. 도덕이고 뭣이고 다 없어졌어. 그저 욕심을 부리고, 그저 낮고 낮은 저속한 취미에 밝으려고 하고. 높은 이상도 없고, 이해만 따지려고 그러고. 수단으로 사람을 속이려고 그러고. 그런 것이 다 더러운 것이야. 이러면 이 인류도 망해버릴 겁니다. 그속에 있는 우리나라도 어디 갈 수 없을 겁니다.
새로 집을 이루거든 이 세상의 더러운 것을 맑힌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 하나 되는 것인줄 알아서, 이 기분 될수록은 깨끗하게, 이 사회에서 그 넘치는 흐린 물이, 거기만은 들어가지 말도록.
하나의 조그만 집이 무슨 힘이 있으랴. 말할는지 모르지만 더러운 것은 사람이 만드는거니까 한정이 있는 것이고, 본래 깨끗한 생명의 샘은 영원에서 나오는 거기 때문에, 맑히고 맑히고 맑혀 들어가면 종래는 그 맑은 것이 이기고 마는 겁니다. 그래 노자(老子)는 누가 능히 오래 기다려서 맑게 할 수가 있느냐 그랬습니다. 그 오래 기다린다고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미미한 우리 둘이지만, 조그마한 집이지만 거기서 맑은 샘이 흘러나오면, 세상에서 잘 모를는지 몰라도 끊임없이 흘러나오면 그것이 한 사회를 맑힐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 한가지 더 말한 것은 새 집은 튼튼해야, 짜이기를 튼튼하게, 하나도 허술하게 한 데가 있어서는 못써. 기둥을 단단히 세우고 보를 단단히 놓고 서까래를 놓고 쌓아 올라가기를 그렇고, 하나도 허술한 데가 없이 탄탄하게 지어야. 왜 그런고 하니 이 땅 위에는 이따금 뜻하지 않았던 폭풍이 오는 수도 있습니다. 도둑이 침입해 들어오는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집이라는 건 반드시 건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합해서 하나의 집을 이루면 그것이 곧 이 세상에 대해서 우리 자신을 지켜나가는 한 본진영이 됩니다. 사람은 집이 없으면 못씁니다. 집 없는 사람을 떠돌이라 그래. 부모님이 낳아줄 때 어느 집에서 낳았을 거예요. 가정이 있어요. 하지만 잘못되면, 아버지 죽고 어머니 죽고 그래놓으면 집이 없어지고 세상에 떠돌이로 다닐 수 있어. 자기의 일정한 집이라는 것이 없이, 여기서 자고 저기서 자고. 여기 갔다 저기 갔다. 그러게 되면 우리가 무책임해지고. 우리의 의무라는 걸 잊어버려. 나의 영원한 목적이라는 거 없어져. 살림살이가 임시적인 것이 돼가. 그저 임시로 임시로. 오늘날 사람이 문명은 발달했으면서도 속의 정신으로는 아주 힘이 없어요. 누가 하나 눈만 크게 떠도 꿈쩍 못하고 복종을 하고 말이야. 내가 당당히 옳은데 불구하고 내놓라면 내놓고, 사람의 기백이 당초 없어. 그런 것은 우리 이 마음의 구조가 탄탄하게 돼있지 못해서 그래. 그러기 때문에 둘이 한 사람이 좋지 않다, 둘이 합해서 살아라. 그런 것은 그런 점을 생각하면서 하신 걸꺼예요. 인간이란 좋은 하나님의 모습대로 났지만 또 연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니까 둘이 협력해서 될수록은 이 집이 탄탄하도록, 이쪽에서 마음이 약해질라 할 때 이쪽에서 권면하고 이쪽에서 또 무슨 딴 생각을 할라고 할 때 이쪽에서 충고를 해줘. 그렇게 그렇게 해서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둘이 지내면서. 너보다도 나보다도 더 높고 아름다운 새집이, 새것이 나와. 새 생명이 나오는 거니까, 그럴라면 탄탄해야 돼.
그것이 참이라는 거야. 참을 아니하고는 탄탄할 수가 없어. 나무속에 좀이 먹지도 않았고 잘마르고 그랬어야 탄탄한 모양으로. 세맨콘크리트를 하려면 철근을 넣고. 넣으리만한 세맨을 넣고 그랬어야 하지. 협잡을 해 얼버무려서 넣는 척 하고 안넣고 그러면 약한 모양으로. 외양만을 보기 좋게 꾸미려고 하고 실속을 생각을 안하면 맥이 없어져. 우리가 사는 이 나라의 나쁜 풍조의 하나는 실속은 생각을 안하고 껍대기만 자꾸 꾸밀라고 그래. 집으로부터 길로부터 상점으로부터 모든 거. 그래 학교도 그렇고 교회당도 그렇고 관청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뭣이든지 다 속살보다는 껍데기를 꾸밀려고 그래. 실지로 그 사람에 대해주기보다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할려고 그래. 그렇기 때문에 약한 겁니다.
이제 이 앞의 우리나라의 일은 점점 더 어려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탄탄한 사람이 필요해 탄탄한 사람은 다른 말로 하면 “참음 지키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말이야. 다른 건 몰라도 이 집에는 참이 있도록.
그래 아까하던 말을 다시 반복해 말하면, 밝은 빛이 있어야. 내 속에서 밝은 빛을 내야. 속에 본래 하나님이 준 근원에서 나오는 맑은 샘이 끊어지지 않아야. 그리고 우리 속에 넣어주신 참을 찾는 그 정신이 살아있어서 이 살아가는, 한백년 살아가는 동안에. 그건 물론 백년만 살 건 아니요. 죽은 후에도 계속해 있는 거지만, 참을 지켜서 어떤 위협이라든지. 어떤 유혹이 들어와도 거기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는 그 힘이 있어서, 이것이 남은 몰라도 이 집에서 다음 시대를 위해서 소망이 흘러나와. 빛이 거기 있고 장래 약속이 거기 있다고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1978.10.27 태화관에서 김완순 님의 결혼식에서 하신 말씀이다
씨알의소리 125호 (씨알마당 1995. 4월)
전작집30; 15- 128
전집20;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