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에서 돼지감자를, 방콕에서 옥수수를, 번갯불에 콩 볶듯 하였더니
서울은 온통 雪 雪 雪 기더니 이제는 說 說 說 시끄럽다.
민생의 暴雪이 정치의 暴說에 묻히고 말았다.
누구에게는 暴雪, 누구에게는 福雪, 나에게는 무언가.
내가 서울에 있었다면, 100년만의 귀한 손님은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운명을 믿는가.
동남아 출장만 가면 난 편하다.
오랜만에, 5년 만에 들른 방콕은 더 편했다.
방콕은 내게 어쩌면 또 다른 고향.
20여 년 전
30대 후반을 치열하게 보냈던 곳.
그 때 옥수수는 도전이었고 영광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좌절과 울분, 무력함을 만났었다.
끝없어 보이던 번뇌와 투쟁, 그 끝에서 마침내 전환.
오늘의 내 직업이 시작되고 만들어진 곳.
우리의 직업은 운명적으로 예정되어 있는 것인가.
나는 태어나면서 이미 ‘무엇’이 되어 있기로 하였는가.
왜 하필 무슨 학교를 다녔으며, 누구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으며, 왜 하필 귀빠진 날 출장을 가서 100년만의 손님을 만나지 않고, 방콕에서 또 옥수수를 만나게 되었는가.
어느 사건과의 만남, 어느 누구와의 만남이 우리의 다른 내일을 만들어낸다 하였던가.
내일의 나도 이미 ‘무엇’으로 예정되어 있는가.
5 년 후
20 년 후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무엇으로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니 그대로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어 아무리 애를 써도 바뀌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래도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하는 것까지 또는 그렇게 하는 것까지도 이미 예정되어 있음에 포함되어 있다면, 우리 인생은 더 살만한 것인가, 아닌가.
예정되어있는 길을 가고있다는 느낌이 들때 전율과 허무를 느껴요. 강에가면 아빠에게 매맞을 줄 알면서 강에 갔다가 강에 빠진 대학생을 구한 초등학생, 우연이 아닐거예요. 애써 구하며 살아가야 하는 삶이겠지만 그래도 너무 많이 알려하거나 바른길을 알려하는것은 바른길이 아니라는 법정의 말대로 왜 사냐건 웃지요.
첫댓글 오랫만이구만요.장기결석해서 미안합니/고것도 출장이라고 시차라고 잠을 설치게 합니다.왠 운명타령? 나의 옛날 애인 '옥수수'를 다시 만나게 되어, 잠을 깬김에 혼자서 얼중얼중하였음.
방가방가 방장님. 출장갔다 와서 피곤할텐데...학교등교하여 아직 초등하교 티를 벗지 못한 귀여운 녀석들과 마주하고 나와 1교시 시작하기 전 케페방문으로 시작합니다. 또 예졍된 빡빡한 하루의 일과가 기다리고 있어서...
예정되어있는 길을 가고있다는 느낌이 들때 전율과 허무를 느껴요. 강에가면 아빠에게 매맞을 줄 알면서 강에 갔다가 강에 빠진 대학생을 구한 초등학생, 우연이 아닐거예요. 애써 구하며 살아가야 하는 삶이겠지만 그래도 너무 많이 알려하거나 바른길을 알려하는것은 바른길이 아니라는 법정의 말대로 왜 사냐건 웃지요.
장기 출장후 심야에 까뻬 글 올리는 방장 은 멋장이 중의 멋장이다 ...
이래도 저래도 운명이라면, 대충 사는 것도 정해진 것, 거부하는 몸짓도 부처님 손바닥 위의 예정된 것이라면 소위 인간의 의지는 어디에 있는가? 지나간 인생의 궤적은 운명대로 흘러온 것이고 남은 시간은 미스테리 숙제를 풀어가는 학생의 자율학습시간일까나?
'어차피 정해진 것, 케세라 케세라'의 대충사는 의지이면 그런 운명이, 예정된 운명일지라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의지이면 또 그런 운명으로 자라나는 것은 아닐까,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인생이라도.
운명이라는 단어는 살아가면서 가끔 되새겨봅니다. 너무나 무겁고 엄숙한 의미로 다가오는군요.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운명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스스로 정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