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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뿔산 연릉, 상고대 눈꽃이 피었다
생각하면 지난 일이 부끄럽고 卽事羞前事
올해는 또 지난해가 아쉬워라 今年悔往年
갈림길에서 무단히 헤매다가 無端岐路上
세월을 얼마나 그냥 흘려보냈을까 歲月幾推遷
―― 택당 이식(澤堂 李植, 1584∼1647), 「만성이수 1(漫成二首 1)」
▶ 산행일시 : 2019년 1월 5일(토), 맑음, 안개
▶ 산행인원 : 19명
▶ 산행거리 : 도상 13.8km
▶ 산행시간 : 8시간 22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15 ~ 08 : 20 - 홍천군 두촌면 괘석리 달음재, 산행준비, 산행시작
08 : 54 - 921m봉
09 : 00 - 930m봉, 첫 휴식
09 : 14 - 940.4m봉(삼족산)
09 : 27 - △916.3m봉
10 : 18 - 825.8m봉
11 : 27 ~ 12 : 22 - 용소계곡 주차장, 점심
13 : 00 - 670.5m봉
13 : 27 - 719.8m봉
13 : 53 - 751.0m봉, ┣자 능선 분기, 오른쪽은 가족고개 가는 길
14 : 12 - 808.4m봉
14 : 28 - 안부
15 : 02 - △878.0m봉
16 : 03 - 674.0m봉
16 : 20 - 514.3m봉
16 : 32 - 묵은 임도
16 : 42 - 솔밭교, 가령폭포 주차장, 산행종료
17 : 28 - 홍천, 목욕, 저녁(파레스는 휴가라서 낙원식당으로 갔다)
20 : 21 - 삼패사거리
1. 산행지도(영진지도)
2. 산행고도표
▶ 940.4m봉(삼족산)
신년 산행. 근래 드문 만차다. 어둠 속에 서울을 빠져나가 먼동이 트자마자 자욱한 ‘안개 낀
고속도로’이고, 화양강휴게소에서 바라보는 빙하의 화양강 건너 공작산 연릉 또한 안개 속에
흐릿한 것이 오늘도 날이 매우 맑을 조짐이다. 삼족산 들머리인 달음재 고갯마루에 ‘여기는
괘석리입니다’라고 새긴 커다란 자연석의 표지석이 있다. 그 뒤쪽으로 서둘러 산행준비를 마
치는 대로 줄줄이 오른다.
해발 650m가 넘는 준령인 달음재에 대한 홍천군 지명유래의 설명이다. “다름-재 [다음재,
다음동(多陰洞), 월림동(月林洞), 월음동(月陰洞), 월림골] : 괘석 서쪽에 있는 마을. 사방이
산으로 둘려 있음.” 한편 괘석리(掛石里, 掛夕里)는 많은 바위들이 층을 이루고 괴어 있는 것
같다 하여 괘석이라고 한다. ‘掛石’보다는 저녁을 걸어 놓은 ‘掛夕’이 무언가 있어 보인다.
북쪽 사면이나 능선에는 기껏 낙엽을 덮을 만큼만 눈이 쌓였다. 모름지기 겨울산행은 매서운
설한풍에 맞서 깊은 눈밭을 다리에 가래톳이 서도록 러셀하며 누비는 맛이고 멋인데 번번이
싱겁기 짝이 없는 겨울산행이다. 러셀할 데가 없어서 그저 줄달음이니 뒤쫓아 가기 바쁘다.
아쉬운 대로 먼발치로나마 봉봉이 설원과 설릉을 오르니 눈에는 겨울산행이다.
선답의 인적이 뜸하여 잡목을 헤칠 때는 경험칙상 앞사람의 덕을 보기는커녕 절대 안전거리
를 유지한다. 줄곧 오르막이다. 완만하고 얕은 눈길이라 뒷걸음질할 염려는 없다. 숨이 차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이 근방 맹주인 소뿔산과 그 연릉을 나뭇가지 사이로 기웃거
린다. 거기는 상고대 눈꽃이 만발한 설산이다.
30여분을 냅다 올려쳐서 삼족산 연봉이다. ‘삼족산 1봉, 921m’라고 쓴 3,000산 한현우 님의
표지가 보인다. 오늘 우리 산행에서 국립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이름 붙은 산이 하나도 없
고, 무명봉-삼각점(△) 또는 표고점(×)인 봉우리-이 12좌이다. ‘삼족산 1봉, 921m’은 무
명봉 축에도 끼지 못한다. 한 피치 더 오른 Y자 능선 분기봉(930m)에서 첫 휴식한다. 메대
장님의 과메기 안주하여 입산주 탁주 들이켠다.
Y자 능선이 분기하는 오른쪽은 쉬인재 넘어 고석산(高石山, △832.7m)으로 간다. 거기는 가
깝게는 2015년 4월 4일에 지나왔다. 오늘은 왼쪽으로 간다. 살짝 내렸다가 바짝 오르면 표고
점(×) 940.4m봉이다. 잡목 숲속 나뭇가지에 달아놓은 ‘삼족산, 930m’ 표지판은 대구 김문
암 님의 작품이다.
봉봉을 올라도 울창한 나무숲속이라 조망이 없기로는 안개가 걷힌들 아무 소용이 없다. 왼쪽
사면의 덤불숲을 헤치고 내려가 장릉인 영춘기맥 소뿔산의 연릉과 가마봉을 어렵게 카메라
에 담는다. 여기 삼족산 주변도 공기가 알싸하더니만 여리게나마 상고대 눈꽃이 피었다. 삼
족산 다음의 △916.3m봉의 풀숲에 묻힌 삼각점은 ‘어론 438, 2005 복구’이다.
△916.3m봉 내리막은 급전직하로 겁나게 떨어진다. 눈이 아닌 수북이 쌓인 낙엽을 러셀하며
내린다. 조망이 가려 볼 것이 없으니 주변 풍경에 눈을 돌린 탓일까 낙엽송 숲이 볼만하다.
낙엽송의 정명은 ‘일본잎갈나무(Larix kaempferi (Lamb.) Carrière)’다. 소나무과 속하는 침
엽수이면서 잎이 가을이면 다 떨어지고 봄에 새로 나기에 ‘잎을 간다’라는 의미로 ‘잎갈나
무’라고 한다.
3. 북쪽 지능선 오르막은 눈길이다
4. 북쪽 지능선 오르막은 눈길이다
5. 삼족산 오르는 마지막 피치
6. 건너편 소뿔산 연릉이 가깝다
7. 가마봉, 안개가 끼어 흐릿하다
8. 소뿔산, 상고대 눈꽃이 피었다
▶ 용소계곡 주차장
우리나라에 일본이 원산지인 일본잎갈나무가 들어온 때는 여러 학자(이유미, 강판권 등)들
이 1904년이라고 한다. 대충 1900년대가 아니고 왜 하필 1904년이라고 특정했는지 무슨 까
닭이 있을 법하여 나중에 알아볼 숙제로 남겨두었다. 한편 한반도 북부에 자생하는 낙엽송은
‘잎갈나무(Larix olgensis var. koreana (Nakai) Nakai)’인데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백두
산 근처에 이 낙엽송이 울울창창하여 꽤 볼만했다고 한다. 어쩌면 거기의 풍경이 여기와 같
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에게 「청춘예찬」의 작가로 잘 알려진 우보 민태원(牛步 閔泰瑗, 1894~1935)의 「白
頭山行」중 ‘惠山鎭에서’에서 낙엽송 운운한 대목이 나오고,
“天下第一郡 厚峙嶺上으로부터는 新設郡 豊山의 管內이며 高原地帶의 始初라 이로부터 山野
의 光景이 一變한다. 植物에는 樺, 白樺, 落葉松 等이 잇고 田野에는 麥穗가 靑色을 不免하야
南으로 보면 數千尺의 峻嶺이, 北에서 보면 不過 一個 平凡한 坂路이라 豊山은 一郡의 全體
가 高原地帶에 잇서 夏日에도 오히려 袷依를 입게 된다고 한다. 그럼으로 일으기를 ‘하늘아
래 첫재 골’이라고 한다. 白頭山이 보인다.”(1921년 8월 24일자 동아일보)
그의 「白頭山行」중 ‘三池淵에서’에서도 낙엽송이 나온다.
“太古의 靜寂 胞胎洞을 出發한 一行은 南胞胎의 山麓 落葉松의 密林中을 穿過하게 되엿다.
울어보면 矗矗한 千年古木이 天日을 가리고 굽어보면 羊齒科의 植物이 地面에 가득하며, 오!
손의 비린내와 水分의 冷濕氣가 中間에 波動하야 太古와 가치 靜寂한 가운데를 黙黙히 前進
하니 蓋露根朽樹가 脚下에 縱橫하야 一分一秒의 放念을 不許하는 故이라 (…)”(1921년 8월
30일자 동아일보)
또한 1937년 8월 11일자 동아일보의 ‘山林視察團隨行記’(혜산진지국 梁一泉 기자)를 보면
장관을 이룬 낙엽송의 모습이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다.
“白頭山 속으로 十里를 가도 密林이요 二十里 五十里를 가도 密林이다. 落葉松! 이것은 이 땅
의 特産이다. 二十丈 내지 三十丈 되는 巨木! 衝天의 氣勢로 이 땅을 뻐치고 섯는 落葉松! 가
늘피고도 키가 훨신 큰 미끈한 紳士와 같은 落葉松! 사지가 성긋성긋하면서도 上下四方의 調
和가 어울니고 빛이 파랏코 맑고 깨끗한 落葉松! 군데군데 힌 가죽을 둘으고 섯는 白樺나무
그리고 여기저기 豪氣를 다투고 잇는 紅松, 杉松, 황철나무 느릅나무 ……”
그런 낙엽송을 심방하는 산행이다. 등로는 잠시 잠잠하다 마지막 피치인 825.8m봉을 서서히
오른다. 오늘의 히어로는 대포 님이다. 대포 님의 손은 미다스의 손이다. 나무를 휘감고 올라
간 덩굴이 너무나 굵기에 이게 더덕줄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혼잣말을 하며 지나치다 다
시 뒤돌아서 살펴보니 더덕줄기이더라나. 눈 밝은 대간거사 총대장님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
냥 갔는데.
금년 겨울은 비가 적게 내려 여느 해보다 땅이 언 강도가 약하다는 대간거사 총대장님의
진단이다. 그러니 대물을 몇 번의 연장질로 쑥쑥 뽑아낸다. 예전겨울에는 어떠했던가?
언 땅이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하여 흉상(胸像)의 더덕 모양으로 조각하기 일쑤요, 정 끝에
번쩍번쩍 튀기는 불꽃은 산불로 번질까봐 사계청소를 하였지만 시종 조마조마했었다고 여러
일행에게 일러준다.
삼족산 남릉이 용소계곡에서 맥을 놓을 때까지 한발자국도 어긋나지 않고 쭉쭉 내린다. 낙엽
송처럼 쭉쭉 뻗어 오른 잣나무 숲을 사열하며 내리고 산기슭 농가 텃밭을 지나고 마당을 가
로질러 농로를 간다. 빙하인 용소계곡 경수천(鏡水川) 지천을 살금살금 건너고 산모퉁이 돌
아가면 용소계곡 주차장이다.
주차장 위쪽에 두 동의 비닐 쉘터를 친다.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 양지에는 비닐 쉘터가 없어
도 견딜만하지만 그렇다고 겨울산행의 묘미를 도외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밖은 영하 8도라
는 혹한인데 버너 불 피운 비닐 쉘터 안은 따뜻한 봄날이다. 몇 번이나 비닐 쉘터 밖으로 더
운 머리를 내밀어 식혀야 했다. 점심도 산행의 한 과정이니 그 시간이 늘어진다고 하여 조금
도 서운해 할 일이 아니다.
9. 낙엽송 숲, 흑림이다
10. 앞에서도 그랬고 나뭇가지 사이로 어렵게 찾은 소뿔산 전경이다
11. 영하 8도인데 지난주에 비하면 봄날이다
12. 이 산비탈을 내리면 용소계곡 주차장이다
13. 용소계곡 경수천 지천을 건너며
14. 방화선 같은 능선도 지난다
▶ △878.0m봉, 솔밭교, 가령폭포 주차장
이곳 주차장에서 백우산 북릉은 진작 올랐고 미답은 장가터 위쪽 능선이다. 만복 안고 그에
다가간다. 산자락 빙 둘러 철조망을 튼튼하게 쳤다. 산자락 맴도는 우리 곁을 지나가던 트럭
이 서행하더니 특용작물을 재배하였다고 한다. 느슨한 사면을 골라 낮은 포복하여 잠입한다.
곧 가파른 오르막의 생사면과 맞닥뜨리고 연속해서 대자 갈지자 그린다.
인적이 한가한 능선에는 군부대 경계표지석이 보초 선다. 육군 과학화전투훈련단의 위수지
역이다. 준봉인 듯 오르면 그 뒤로 더한 준봉들이 기다리고 있다. 670.5m봉 너머가 그러하
다. 땀난다. 암봉을 오른쪽 아래로 돌아 넘고 한 피치 오르면 719.8m봉이다. 등고선이 동심
원이기에 펑퍼짐한 사면을 한참 누비다 발로 옅은 능선마루를 찾는다.
이 다음의 751.0m봉은 ┣자 능선이 분기한다. 오른쪽은 가족고개(可足--)로 간다. 오후에
들어 산정무한 님이 갑자기 컨디션 난조에 빠지고 751.0m봉에서 가족고개로 탈출하겠다고
한다. 아름다운 동행은 사계 님이 앞장서 자청했다. 방화선 같은 능선이다. 오후에도 조망은
내내 가렸고 그 대신 낙엽송 숲만은 볼만하다.
산릉은 크게 원을 그리며 군부대 경계표지석과 함께 왼쪽으로 돈다. 그 정점이 808.4m봉이
다. 서래야 박건석 님이 ‘가족봉 800.2m’이라는 표지를 걸어놓았다. 박건석 님이 고증 없이
임의로 작명한 이름이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종이에 비닐 씌운 표지 또한 앞서의 940.4m
봉에서 대구 김문암 님의 목재 삼족산 표지판과 같은 정성이 보이지 않아 불신에 한 몫 한다.
불과 100m쯤 벗어난 △797.2m봉도 조망이 무망일 것이라 들러 삼각점을 알현하고 싶은 생
각이 나지 않는다. 긴 시간 휴식하고 북동진하여 내린다. 여태 숨 가쁘게 저축한 고도를 단숨
에 가파르게 다 까먹는다. 바닥 친 안부 지나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저축한다. 멀리서는 백암
산의 전위봉으로 보이던 △878.0m봉의 품에 든다.
거기에 오르자면 봉우리 3개를 넘어야 한다. 그중 797.1m봉은 첨봉이다. 거기는 조망이 트
일 듯하여 얌전한 왼쪽 사면의 우회로를 마다하고 직등하였다가 생눈물이 찔끔 나게 잡목에
된통 휘둘리고만 내려간다. 여전히 하늘 가린 숲속 길이다. △878.0m봉 역시 사방에 키 큰
나무숲이 둘렀다. 삼각점은 얼음이 꽁꽁 얼어붙어 판독하지 못하였다.
이제 백암산을 오르지 않을 바에야 하산할 시간이다. 어디로 내릴까? 밤까시 쪽의 일반등로
를 잡자고 했다가 가령교를 겨냥했다가 늘악교를 고집했다가 절골로 수그러들었다가 솔밭교
에 덤빈다. 열 걸음이 멀다하고 여러 지능선이 서로 여기다고 주장한다. 미로를 찾아간다. 후
미가 낫다. 섣불리 앞장서다가는 해피 님처럼 골로 갈 뻔한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674.0m봉은 무덤이 자리 잡았으나 아직 동네가 멀다. 674.0m봉 내리막은 특히 가파르다.
낙엽사태 만들어 그 무더기와 휩쓸려 내린다. 안부. 이번에는 자연 님이 그예 오른쪽 작은여
창 쪽으로 탈출한다. 아름다운 동행은 우리의 믿을맨인 해마 님이다. 514.3m봉이 마지막 봉
우리인 줄 알았는데 깊은 협곡 건너 456.8m봉이 버티고 있다.
낙엽을 지친 앞사람의 발자국을 살피니 산허리 도는 묵은 임도가 나오자 협곡으로 직하하지
않고 그 임도로 내려갔다. 어쩔 수 없어 456.8m봉을 놓아준 것이다. 456.8m봉까지 붙잡았
다가는 곧바로 산상반란이 일어날 것 같더라는 대간거사 총대장님의 고충이 있었다. 임도는
산골짝 농로로 이어지고 이윽고 451번 도로 솔밭교다. 오늘 신년 산행이라고 별 것이 없다.
지난주 산행이 그랬고 다음 주 산행이 그럴 것처럼.
15. 백암산 전위봉 격인 △878.0m봉에서
16. 백암산 전위봉 격인 △878.0m봉에서, 단체사진 부분
17. 낙엽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18. 갈림길에서 교통 정리하는 오모 님
19. 황혼녘의 낙엽송 숲이 고즈넉하다
20. 우람한 소나무 숲을 자주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