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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福34 제78차文化遺産踏査; 昌德宮-後苑-昌慶宮(4-2); 昌德宮 後苑
昌德宮 後苑 -사적 제122호-
後苑은 북악산의 한 줄기인 매봉을 등지고 自然地勢에 따라 樓亭과 연못이 배치되었으며
곳곳에 차고 맑은 샘물이 솟아난다.
창덕궁 후원은 옛 기록에 後苑 외에 後園·北苑·北園·禁苑 등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日帝强占期에는 秘苑이라고 했으나 王朝實錄에서 보편적으로 부른 명칭이 後苑이었다.
따라서 근대에 秘苑이란 명칭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최근에는 通常 後苑으로 칭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전통건축의 특징 중 하나는 집 앞에 園林(庭園)이 있고 뒤에 건물이 나오는
‘前園後舍’이나 宮闕建築은 건물을 앞에 배치하는 ‘前宮後園’으로 조성하였다.
창덕궁에 후원이 조성된 것은 太宗이 離宮으로 昌德宮을 창건하고, 太宗 6년(1406)
後苑을 조성했으며, 世祖 8년(1462) 확장하고 燕山君 즉위년(1494) 後苑을 꾸미고
仁祖 14년(1636) 후원 玉流川에 逍遙亭 등을 건립하였다.
正祖는 昌德宮 後苑(上林)에서 아름다운 전경 10곳을 뽑아 詩를 남겼는데, 후원에는
‘後苑의 열 가지 아름다운 경치’, 즉 正祖의<上林十景>이 있다.
1. 觀豊春耕(관풍춘경) / 창경궁 觀豊閣에서 임금이 봄에 밭갈이하는 광경
2. 望春聞鶯(망춘문앵) / 望春亭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는 것 (*鶯: 꾀꼬리 앵)
3. 天香春晩(천향춘만) / 天香閣의 늦은 봄 경치
4. 魚水泛舟(어수범주) / 魚水門 앞의 芙蓉池 뱃놀이 (*泛: 뜰 범)
5. 逍遙流觴(소요유상) / 逍遙亭의 曲水에 술잔 돌리기 (*觴: 잔 상)
6. 喜雨賞蓮(희우상련) / 喜雨亭에서 연꽃구경
7. 淸心霽月(청심제월) / 비 갠 밤 淸心亭에서 바라보는 맑은 달 (*霽: 갤 제)
8. 觀德風林(관덕풍림) / 창경궁 觀德亭의 단풍구경
9. 暎花詩士(영화시사) / 映花堂에서 科擧를 치르는 선비를 보는 것
10. 凌虛暮雪(능허모설) / 凌虛亭에서 바라보는 눈 내리는 저녁풍경 (*凌: 업신여길 능)
昌德宮 後苑은 크게 네 구역으로 구분된다.
=芙蓉池 일대; 입구의 언덕을 넘어서면 만나는 네모난 못 주위에 芙蓉亭, 魚水門과 宙合樓,
映花堂 등이 들어선 지역이다.
=愛蓮池 일대; 芙蓉池에서 북쪽으로 산자락 하나를 감돌아 나가면 만나며, 寄傲軒, 愛蓮亭,
延慶堂 등이 자리잡고 있다. (*傲: 거만할 오)
=觀覽池 일대; 平面이 부채 모양인 觀纜亭과 二重 지붕을 이고 있는 尊德亭과 砭愚榭 등이
모여 있다. (*砭: 돌침 폄 *愚: 어리석을 우 *榭: 정자 사)
=玉流川 일대; 후원에서 가장 깊고 은밀한 지역으로 다섯 개의 정자를 비롯하여 옥류천과
폭포가 숨어 있는 곳이다.
昌德宮 後苑 사진
(43) 芙蓉池와 宙合樓 일원
(44) ‘天圓地方’의 芙蓉池
‘芙蓉’은 ‘연꽃’을 뜻하며, 昌德宮 後苑의 대표적인 方池인 芙蓉池는 동서 34.5m,
남북 29.4m에 이르는 네모 반듯한 연못으로, 연못 중앙에 소나무를 심은 작고 둥근 섬이
떠 있다.
네모난 연못과 둥근 섬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동아시아 전통 宇宙論의
基本命題의 하나인 ‘天圓地方’ 思想을 반영한 것이다. 연못은 長臺石으로 쌓아 올리고,
남쪽 모서리에는 물고기 조각이 하나 있다.
(45) ‘天圓地方’ 芙蓉池의 둥근 섬
(46) 昌德宮 芙蓉亭 -보물 제1763호(2012.03.02)-
부용정은 肅宗 33년(1707) 이곳에 澤水齋를 지었는데, 正祖 때에 이를 고쳐 짓고 이름을
‘芙蓉亭’으로 바꾸었다. “연못 안에 채색하고 비단 돛을 단 배가 있어, 正祖가 꽃을 감상하고
고기를 낚던 곳이다”라고 하여 이곳에서 왕이 科擧에 급제한 이들에게 酒宴을 베풀어
축하해 주기도 하고, 臣下들과 함께 꽃을 즐기고 詩를 읊기도 했는데, 기둥에는 이곳의
風光을 읊은 시를 적은 柱聯 10개가 걸려 있다. 外觀은 북쪽은 간결하고 남쪽은 화려하여
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며, 난간과 창호도 위치에 따라 다양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窓戶는 연못으로 내민 부분에는 亞字살문, 다른 쪽은 띠살문이며, 十字 모양의 평면,
空間構成, 건물의 장식 등이 뛰어난 비례와 對比로 건물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건물로, 자연의 仙境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풍류를 통해 修養하는 한국 亭子建築의
대표적 작품으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으로 보존가치가 높다.
(47) 昌德宮 芙蓉亭 남쪽 언덕 花階에 있는 怪石
(48) 芙蓉池 북쪽의 宙合樓 一圓
주합루 주변은 3단의 花階에 庭園을 꾸몄으며, 花階 첫 단에는 魚水門을 두어 宙合樓에
오를 수 있게 했다. 宙合樓 왼쪽(서쪽)에 있는 書香閣은 宙合樓 1층 奎章閣의 부속건물로
御眞과 임금의 글과 글씨, 그 밖의 書籍 御製(임금이 지은 글)를 널어 말리던 곳이다.
‘書香閣’이라는 이름은 ‘책 향기 나는 집’이라고 붙인 것도 이런 용도 때문이다.
正祖 元年(1777)에는 王妃가 養蠶을 직접 試演하는 親蠶禮를 행했던 장소이기도 하며,
지금도 <親蠶勸民>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고 한다. <書香閣> 扁額은 正祖 때의 명필
松下 曺允亨의 글씨라고 한다.
(49) 宙合樓 魚水門
魚水門은 宙合樓로 올라가는 문으로, 王이 출입하고 臣下들은 어수문 양 옆에 있는 夾門으로
출입하였다. 魚水門은 ‘물고기와 물의 문’이라는 뜻으로 임금을 물에, 신하들을 물고기에
비유하여 君臣은 서로 融和하는 관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一柱門 형태의 작은
문이지만 팔작지붕에 龍 彫刻을 치장하는 등 단청장식이 화려하다.
魚水門은 왕과 신하가 만나는 상징적인 문으로, 芙蓉池의 물고기가 현명한 물을 만나 魚龍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人材登用의 登龍門이다. (*夾: 낄 협)
(50) 昌德宮 宙合樓 -보물 제1769호(2012.08.16)-
宙合樓는 正祖 즉위년(1776) 昌德宮 後苑에 御製·御筆을 보관할 목적으로 건립한 2층 건물로,
1층은 왕실의 도서를 보관하는 奎章閣, 2층은 閱覽室이며, 이 열람실을 宙合樓라고 했으나
지금은 이 건물 전체를 宙合樓라고 한다. 正祖의 정책개발과 개혁정치, 朝鮮 中期
文藝復興의 産室로 茶山 丁若鏞과 楚亭 朴齊家, 冷齋 柳得恭, 炯庵 李德懋 등 여러 인재들이
활동하던 중요한 공간이며, 正祖가 지은 御製와 御筆, 御眞, 印章 등을 보관하던 장소로
그 原形이 잘 남아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正祖는 世孫 때부터 政敵들로부터 끊임없는 嫉視와 威脅에 시달렸는데 이에 굽히지 않고
學問硏究와 心身鍛鍊에 힘써 위대한 啓蒙君主가 될 수 있었다. 건물은 경사진 높은 지형에
배치하여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으며, 1층은 왕실도서 보관에 적절한 퇴와 四分閤
들문을 설치하고 내부는 온돌을 두었다. 2층 열람실은 四方의 빼어난 경관을 展望할 수 있게
배치하는 등 건물의 機能에 맞게 충실히 반영되었다. 宙合樓는 歷史的, 建築史的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炯: 빛날 형 *懋: 무성할 무 *嫉: 미워할 질 *鍛: 불릴 단)
(51) 魚水門과 연결된 宙合樓의 翠屛 (*翠: 푸를 취 *屛: 병풍 병)
翠屛은 조선시대의 독특한 造景技法의 하나로 푸른 병풍처럼 만든 울타리이다.
內部가 보이지 않게 가림막 역할과 공간을 分割하는 담의 역할을 하면서 空間을 깊고
아늑하게 만들어 生氣 나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宙合樓의 翠屛은 1820년대의 <東闕圖>(국보 249-1호)의 그림을 토대로
<임원십육지관병법>에 기록한 製作技法대로 대나무틀을 짜고 조릿대를 심어 再現하였다.
(52) 芙蓉池 御井
2008년 12월 四井記碑閣에서 북쪽으로 5m정도 떨어진 곳에서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발굴된 우물로 世祖 때 판 摩尼, 玻瓈, 琉璃, 玉井 네 우물 중 2개로 추정하고 있으며,
한 우물은 肅宗 때 이전에 廢棄되고 다른 하나는 肅宗 16년(1690)에 보수하여 근래까지
사용된 것으로 推定하고 있다. (*玻: 유리 파 *瓈: 유리 려 *琉: 유리 유 *璃: 유리 리)
(53) 芙蓉池 水入口, 龍頭의 입
부용지의 水源은 땅 속에서 솟아나는 물이며, 비가 많이 올 때는 四井記 碑閣 북쪽에 있는
石物인 龍頭의 입을 통해 계곡물이 연못에 흘러 들었다고 한다.
(54) 昌德宮 四井記 碑閣
芙蓉池 서쪽 가에 있는 碑閣으로 肅宗 16년(1690) 옛 述盛閣 자리에 세웠다.
四井記碑에는 芙蓉池를 만들게 된 배경 및 과정과 世宗 6년 永順君과 烏山君을 시켜
우물을 찾게 하고, 그때 찾아낸 네 우물에 摩尼, 玻瓈, 流璃, 玉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永順君은 세종의 다섯째 아들 廣平大君의 아들이며, 烏山君은 세종의 넷째 아들
臨瀛大君의 아들이다. (*瀛: 바다 영)
(55) 昌德宮 暎花堂 옆 모습, 왼쪽에는 芙蓉池가 있다. (*暎: 비칠 영)
芙蓉池 동쪽에 있는 건물로, 光海君 때 처음 건립되었으며, 지금의 건물은
肅宗 18년(1692)에 再建된 것이다.
(56) 暎花堂 옆 仰釜日晷 (복제품) (*晷: 그림자 구)
仰釜日晷는 世宗 16년(1434) 蔣英實, 佛谷 李 蕆, 拙齋 金 銚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로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이 솥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고 仰釜日晷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둥근 地球모양을 표현한 것이고 작은 크기로도 時刻線, 季節線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이다. 오목한 時計板에 세로선 7줄과 가로선 13줄을 그었는데 세로선은 時刻線,
가로선은 季節線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時刻線에 비추어
시간을 알 수 있다. 또 節氣마다 태양의 高度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나타나는
그림자를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다. (*蕆: 신칙할 천 *拙: 옹졸할 졸 *銚: 가래 조)
*國立古宮博物館에는 보물 제845호로 지정된 <仰釜日晷>가 있다.
(57) 昌德宮 暎花堂 앞쪽 (*暎: 비칠 영)
영화당은 왕과 신하들이 宴會를 베풀거나 활을 쏘기도 한 곳이었으며, 원래는 건물 앞쪽에
‘春塘臺’라는 마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昌慶宮의 담으로 막혀 있으며 ‘春塘池’라는 연못으로
바뀌었다.
正祖 때부터 科擧試驗場으로 이용하여 王이 참석한 가운데 試官이 자리하여 試題를 내리고,
初試에 합격한 응시자들이 春塘臺에서 마지막 시험을 보았다. 건물 안에 宣祖, 孝宗, 顯宗,
肅宗의 御筆 扁額이 걸려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塘: 못 당)
*판소리 春香歌에서 李도령이 壯元及第 할 때의 試題가 暎花堂과 관련된
‘春塘春色古今同’이었다고 한다.
(58) 붉게 물든 단풍
(59) 곱게 물든 단풍
(60) 金馬門, 昌德宮 延慶堂∙ 愛蓮亭 圈域으로 들어간다.
寄傲軒과 雲磬居로 들어가는 문으로, 金馬門은 漢나라 때 西安 郊外 未央宮에 있던 문으로,
문 안쪽 殿閣에 王世子가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61) 昌德宮 寄傲軒(왼쪽)-雲磬居 (*傲: 거만할 오 *磬: 경쇠 경)
寄傲軒과 雲磬居는 翼宗으로 追尊된 孝明世子(純祖의 아들)가 代理聽政하는 틈틈이 독서와
詩와 音樂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寄傲軒은 원래 讀書處인 倚斗閤이 있던 곳으로 純祖 27년(1827) 再 建立하여 寄傲軒이라고
했다. 雲磬居는 寄傲軒에 딸린 건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창덕궁
안에서 가장 작은 건물이다. (*倚: 의지할 의 *閤: 쪽문 합)
*’寄傲’는 중국의 대표적 詩人 陶淵明(365~427)의 <歸去來辭>에 나오는 ‘남쪽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앉으니 무릎 하나 간신히 들여놓을 작은 집이지만 참으로 편안하구나
(倚南牕以寄傲 審容膝之易安)’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牕: 창 창 *膝: 무릎 슬)
(62) 寄傲軒-雲磬居 뒤쪽의 築臺
(63) 昌德宮 愛蓮池 및 愛蓮亭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뜻의 愛蓮池는 가운데 섬이 없는 方池이다.
愛蓮亭은 肅宗 18년(1692) 愛蓮池의 물가에 지은 亭子로, 일반 건물에 비해 추녀가 길며
추녀 끝에 있는 잉어 모양의 吐首는 ‘물 기운으로 불 기운을 막는다’는 陰陽五行說에
기초한 것이라고 한다. (*吐: 토할 토)
‘愛蓮’이라는 이름은 宋나라 儒學者 周敦頤가 쓴 詩 <愛蓮說>에서 유래했으며,
肅宗이 지은 <愛蓮亭記>가 ‘宮闕志’에 전한다고 한다. (*頤: 턱 이)
*吐首: 殿閣 네 귀의 추녀 끝에 끼는 龍頭形이나 鬼頭形의 장식.
(64) 演慶堂 앞 蓮池
(65) 演慶堂 정문 長樂門
(66) 昌德宮 演慶堂 -보물 제1770호 (2012.08.16)-
주변 환경은 아름다운 숲과 연못 및 정자 등이 어우러져 理想的인 景觀을 이루고 있다.
‘演慶’은 ‘慶事가 널리 퍼진다’는 뜻이며, <宮闕志>에는 純祖 28년에 총 120칸으로
건립했다고 기록하였다.
演慶堂은 孝明世子가 純祖와 純元王后를 위한 잔치를 베풀고자 건립한 孝心이 담긴 집으로,
士大夫의 살림집을 본떠 王의 사랑채와 王妃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書齋인
善香齋와 뒷마당 높은 곳에는 濃繡亭이 있으며, ‘演慶堂’이란 원래 사랑채를 가리킨
것이었으나 지금은 이 건물들을 통틀어 연경당이라 부르고 있다.
(*濃: 짙을 농 *繡: 수놓을 수)
창건 직후 연경당에서는 孝明世子가 臣下를 접견하거나 進爵禮(尊號를 올리는 禮)를
거행했으며, 哲宗 8년(1857) 터가 서늘하고 濕하다고 翼宗의 초상화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한 동안 빈 집으로 남아 있었다. (*爵: 벼슬 작)
그 후 高宗 때에 外國公使를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중요한 정치 공간으로 이용하였다.
演慶堂은 건물배치와 空間構成 등이 당시의 儒敎的 哲學이 적용된 궁궐 내 士大夫 집으로
당시의 주택과 비교해 볼 수 있는 韓國住宅史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궁전의 造影法式과
기술력으로 건축되어 세련되면서 端雅한 세부양식이 宮闕建築 고유의 품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67) 演慶堂 지붕 기왓골에 내려앉은 낙엽
(68) 昌德宮 演慶堂 안채
(69) 演慶堂 지역 善香齋
선향재는 書齋 겸 응접실로 쓰던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善香齋의 특색은
前面에 설치된 遮陽과 측면 벽체인데 집이 西向임으로 햇빛을 차단하려고 만든 차양은
집의 길이만큼 덧대어 있다. (*遮: 가릴 차)
측면 벽체는 아래쪽 아궁이 부분은 네모진 화강석을, 그 위에서 박공부분까지는 벽돌을
이용해 쌓으면서 중앙에 正方形의 幾何무늬를 넣어 장식하여 독특하며 다분히 中國的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70) 演慶堂 지역 濃繡亭 (*繡: 수놓을 수)
뒷마당 높은 곳에 있는 濃繡亭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지붕집으로 四面의 벽을
모두 완자무늬 四分閤으로 처리하고, 기둥 밖으로는 四面을 돌아가며 쪽마루를 깔고
귀퉁이마다 法首(난간 모서리에 세우는 동자기둥)를 세운 亞字난간을 돌려 건립한 細心한
솜씨의 정자이다.
(71) 붉게 물든 단풍
(72) 昌德宮 不老門
王의 長壽를 祈願하는 뜻으로 세운 不老門은 昌德宮 延慶堂으로 들어가는 길에 세운
돌문이다.
세로 板石에 돌쩌귀 자국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나무문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 문을 지나가는 사람은 無病長壽한다고 전한다. 문의 윗부분에
篆書體로 <不老門>이라고 刻字했다. 모서리의 안쪽은 각지게 마감하고 바깥쪽은
둥글게 공글려 다른 手法으로 처리한 점이 눈길을 끈다. (*篆: 전字 전)
(73) 昌德宮 尊德亭
연못 尊德池에 있는 亭子 尊德亭은 後苑의 정자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며
二重 六角지붕으로 독특한 구조이다.
仁祖 22년(1644) 건립 당시에는 ‘육모정’이라고 불렀다. 24개의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으며, 천정은 우물井字로 구성되고 보개 천장과 같이 화려한 장식으로 구성되었으며,
가운데에 있는 黃龍과 靑龍 雙龍이 如意珠를 희롱하는 그림은 王權의 至嚴함을 상징한다.
<尊德亭> 편액은 憲宗의 御筆이라고 한다.
亭子 내부 북쪽 벽에는 正祖 22년(1798)에 지은 '萬川明月主人翁自序' 현판이 걸려있다.
(74) 正祖의 [萬川明月主人翁自序] 懸板
<萬川明月主人翁自序> (내용 발췌 요약)
‘만천명월주인옹은 말한다. … 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종류는 一萬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 시내에도 달이요, 뒷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數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일만 개면 달 역시 일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론 하나뿐인 것이다. ...
나의 燕居 처소에 ‘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써서 自號로 삼기로 한 것이다.
戊午年(正祖 22년/1798) 12월 3일’이라고 하여, 萬 個의 개울에 만 개의 달이 비치지만
달은 오직 하늘에 떠 있는 달, 바로 正祖 자신뿐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모든 百姓을
골고루 사랑하는 超越的인 君主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正祖 在位 22년에 쓴
‘만천명월주인옹자서’는 재위 20년을 지나 강한 왕권을 확립한 正祖가 백성에게 왕의 德을
고루 베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75) 尊德亭 뒤쪽의 銀杏나무
<東闕圖>의 尊德亭 뒤쪽에는 궁궐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둘레 5m. 높이 22.4m이며 樹齡은 약 250년에 이른다.
正祖가 尊德亭을 정비하면서, 孔子가 弟子를 가르치던 곳인 ‘杏壇’의 例에
따라 은행나무를 심어 學問을 받들고자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76) 昌德宮 勝在亭
觀纜에 있는 정자로 정면 1칸, 측면 1칸에 겹처마 사모지붕으로 작고 간결한 구조이다.
각 칸마다 창호를 달았으며 살창이 독특한 문양을 가지고 있으며, 마루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다. 승재정이 언제 건립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나 조선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77) 昌德宮 觀纜亭 (*纜: 닻줄 람)
韓半島 모양을 닮았다는 觀纜池(半島池)에 있는 정자로 觀纜亭은 한국에서 유일한
부채 모양의 정자이다. 1820년경에 제작된 조선시대 궁궐을 묘사한 <東闕圖>에는
나타나 있지 않아 그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자의 모양은 부채꼴[扇形] 기와지붕을 한 굴도리집으로 매우 독특한 형태이다.
건물의 일부가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이며 6개의 圓柱를 세우고 원주마다 柱聯을 달았으며
난간을 돌렸다. 지붕은 추녀마루 6개가 각각 3개씩 모이고, 그 사이에 용마루를 설치하는
양식을 취했으며, 工藝的인 手法을 많이 구사한 정자이다. (*扇: 부채 선)
(78) 昌德宮 觀纜池
창덕궁 후원에 있는 연못의 하나로, 韓半島처럼 생겼다고 ‘半島池’라고 했다가 觀纜池로
명칭이 바뀌었다. 1908년 무렵 제작된 <東闕圖形)>에는 연못이 호리병 모양이었으나
高宗 때 日帝가 연못의 모습을 意圖的으로 고쳤다고 한다. 咸鏡道 지역을 남쪽에,
慶尙道∙全羅道 지역을 북쪽에 배치하여 韓半島의 地形 方向을 바꿔놓았다고 알려지면서
명칭을 바꾸게 되었다.
(79) 아담한 虹霓 石橋
석교 양쪽에는 石物들이 있다.
(80) 곱게 물든 단풍
(81) 昌德宮 聚奎亭 (*聚: 모을 취)
仁祖 18년(1640)에 세운 정자로, 觀纜池에서 玉流川 쪽으로 가는 언덕 위에 서 있으며,
‘學者들이 모인다’라는 뜻의 聚奎亭은 휴식과 독서를 위한 공간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纜: 닻줄 람)
昌德宮 後苑 玉流川 一圓
仁祖 14년(1636) 昌德宮 後苑 북쪽의 깊은 골짜기에 조성했으며, 北岳山 동쪽 줄기에서 흐르는
물과 仁祖가 팠다고 알려진 御井으로부터 溪流가 흐른다. 널찍한 바위 逍遙巖에 U자형 홈을 파고,
샘물을 끌어 올린 다음 작은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게 만들었는데 임금은 이곳에서 신하들과
더불어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소요암에는 仁祖가 쓴 <玉流川>이라는 글씨를
비롯하여 肅宗의 御製詩를 새겼다. 翠寒亭, 逍遙亭, 淸漪亭, 太極亭, 籠山亭, 翠寒亭 등의 정자가
玉流川 옆에 있다. (*翠: 푸를 취 *漪: 잔물결 의 *籠: 대바구니 농)
(82) 昌德宮 逍遙巖
仁祖 14년(1636) 커다란 바위 逍遙巖을 다듬고 너럭바위 위에 홈을 파 휘도는 曲水溝의
물길을 끌어들여 작은 폭포로 떨어져 玉流川이 시작된다.
때로는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詩를 짓는 ‘流觴曲水宴’이 벌어지기도 했다.
逍遙亭, 太極亭, 濃山亭, 翠寒亭 등 작은 규모의 亭子를 세워 매우 은밀한 庭園을 이루었다.
(*觴: 잔 상)
(83) 逍遙巖과 流杯渠 (*杯: 잔 배 *渠: 개천 거)
逍遙巖 앞에 있는 널찍한 너럭바위에 술잔을 띄워 놀던 流觴曲水의 흔적이 있다.
半圓形으로 둥글게 물길을 파 위쪽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위를 빙 돌아 아래로 떨어지게
했는데 이를 流杯渠라고 했다. 유배거는 술잔을 띄워 흐르게 한 도랑이라는 뜻이다.
<朝鮮王朝實錄>에도 임금이 朝廷의 大臣들과 이 곳에서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君臣이 모여 앉아 유쾌하게 술잔을 기울이던 太平聖代의 분위기가 풍기는 곳으로
‘昌德宮의 鮑石亭’이라고 할 수 있다.
*流觴曲水: 흐르는 曲水에 술잔을 띄우고 술을 마시는 風流 (*觴: 일찍 죽을 상
*渠: 개천 거 *鮑: 저린 생선 포)
(84) 逍遙巖 刻字
昌德宮 逍遙岩, 위쪽에는 <飛流三百尺>, 아래는 仁祖 御筆 <玉流川> 刻字가 있다.
<飛流三百尺>. 玉流川의 秘境을 읊은 肅宗의 御製詩이다.
飛流三百尺(비류삼백척) / 삼백 척 날아 내리는 물줄기
遙落九天來(요락구천래) / 멀리 하늘에서 떨어지네
看是白虹起(간시백홍기) / 바라보면 흰 무지개 일어나더니
飜成萬壑雷(번성만학뢰) / 온 골짜기에 천둥 우레소리 되는구나.
(*遙: 멀 요 *虹: 무지개 홍 *飜: *뒤칠 번 *壑: 골 학)
*肅宗의 詩는 唐나라 詩人 李白의 望廬山瀑布를 연상케 한다. (*廬: 농막집 여)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 향로봉에 햇빛 비쳐 안개 어리고
遙看瀑布掛長川(요간폭포괘장천) / 멀리에 폭포는 강을 매단 듯.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 물줄기 내리쏟아 길이 삼천 자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락구천) /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가.
(85) 玉流川 御井
(86) 昌德宮 淸漪亭 (*漪: 비단결 같은 물결 의)
창덕궁 後苑 玉流川 주변 정원의 가장 안쪽에 있는 정자로 仁祖 14년(1636)에 세웠으며
궁궐에서 유일하게 초가지붕 집이다.
임금은 정자 앞쪽에 논을 만들어 벼를 심고, 收穫 후에는 볏집으로 亭子의 지붕에 이엉을
잇게 하여 농사의 소중함을 백성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해서였고 한다.
(87) 昌德宮 逍遙亭
仁祖 14년(1636)에 건립하여 歎逝亭이라고 부르다가 후에 逍遙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창덕궁 후원의 翠寒亭 위쪽, 옥류천 바로 옆에 있으며 亭子에 앉으면 玉流川과 逍遙巖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翼工系 사모지붕 형식 정자이며, 계자난간을 둘렀다. 肅宗, 正祖,
純祖가 이곳의 경치를 묘사한 詩를 남겼다. 玉流川邊의 逍遙亭, 淸漪亭, 太極亭은
上林三亭이라고 칭한다. (*歎: 탄식할 탄 *逝: 갈 서)
*계자난간: 鷄子多里가 난간대[欄干竹]를 지지하도록 만든 난간. (*欄: 난간 난)
(88) 昌德宮 太極亭
옥류천 주변에 있는 上林三亭의 하나로 仁祖 14년(1636)에 세웠으며, 원래 雲影亭이라고
부르다가 太極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正祖의 ‘太極亭詩’, 肅宗의 ‘上林三亭記’ 등 太極亭을 노래한 御製가 전한다.
(89) 昌德宮 籠山亭
仁祖 14년(1636)에 건립했으며 임금이 玉流川으로 거둥할 때 茶菓床을 올렸던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하며, 정면 5칸∙측면 1칸의 직사각형 건물로 2칸은 대청,
2칸은 온돌방. 1칸은 부엌으로 구성되었다. (*菓: 과자과/실과과)
(90) 昌德宮 翠寒亭 (*翠: 푸를 취)
임금이 玉流川의 御井에서 藥水를 마시고 돌아갈 때 잠시 쉴 수 있도록 만든 소박한 亭子로
정확한 建築 年代는 알 수 없으나 翠寒亭에 대한 肅宗과 正祖의 詩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1720년 이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91) 玉流川의 단풍
(92) 昌德宮 凌虛亭 터
肅宗 17년(1691)에 건립했던 능허정 터이다.
-景福34 제78차 文化遺産踏査; 昌德宮-後苑-昌慶宮(4-3); 昌德宮 樂善齋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