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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일(일), 맑음, 국립중앙박물관
오랜만에 문화생활을 했다.
우리나라 근대 서화의 거장인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1861~1919)의 100주기 특별전(2
019.4.16.~6.2)을 마지막 날에 가서 보았다. 심전 안중식은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1843
~1897)을 계승한 조선의 마지막 화원이자 이상범(李象範, 1897~1972), 노수현(盧壽鉉,
1899~1978) 등 한국 현대 화단의 대가들을 길러낸 스승이다. 그는 우리나라 화단의 ‘조선
조와 근대의 가교’였다.
작품 전시실은 여느 전시회와는 달리 특히 어두웠다. 밝은 빛으로 해서 이 귀중한 작품들이
손상되는 것이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진 촬영은 허용하되 카메라의 플래시 사용은 당
연히 금지하였다. 그래서 사진은 감도를 높이고 조리개는 최대한 개방하여 찍었다. 전시회에
전시된 많은 작품 중 일부 작품만 골랐다. 설명은 게시한 작품의 설명문과 별도 판매하는 도
록(42,000원)을 사서 관련 내용을 추려서 옮겼다. 이 과정에서 제시(題詩), 제발(題跋)의
한문이 어려웠다.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한자가 숱할뿐더러 일일이 자전(字典)에서 찾아
야 했다.
1-1. 안중식, <영광풍경도> 1915, 일부
비단에 엷은 색(絹本淡彩), 170.0×473.0cm, 삼성박물관 리움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와 함께 안중식의 대표작품이다. 1915년 초 여름 영광의 이름난
부호이자 서화애호가였던 학천 조희경(鶴川 曺喜璟)과 인곡 조희양(寅谷 曺喜陽) 형제의 간
청으로 영광에 머물던 중 제작한 그림으로, 고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2층 누각 체화정(棣
花亭)에서 바라본 풍경을 담았다. 서양식 원근법을 이용하여 풍경의 현장감을 선명하게 부
각시키고 일상적인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이 작품은 전통화풍을 벗어나 변화를 모색했던 안중식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1-2. 안중식, <영광풍경도> 1915
비단에 엷은 색(絹本淡彩), 170.0×473.0cm, 삼성박물관 리움
제발(題跋)의 일부이다.
韡韡棣花欄盈門 활짝 핀 체화(棣花, 앵두나무)가 문에 가득하니
行人說是曺家圍 길가는 이가 이곳은 조가(曺家)의 정원이라고 한다.
重樓複閣淸霽起 겹겹이 쌓인 누각은 맑은 밤에 솟아나 오고
武靈眉目耀南藩 무령(武靈, 영광의 옛 이름)의 걸출한 인물은 남쪽에서
빛난다.
2. 안중식,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 1915, 여름, 가을
비단에 엷은 색(絹本淡彩), 197.5×63.7cm, 202.0×65.3cm
봄날 새벽녘 경복궁과 백악산을 소재로 한 안중식의 대표작으로, 동일한 두 점의 작품이 전
한다. 같은 해 여름과 가을에 그렸다. 이 그림이 그려진 1915년은 조선총독부가 이미 경복궁
의 많은 전각을 헐어내고 신식 가건물과 서양식 건물들을 건립했던 시기이다.
화제인 백악춘효(白岳春曉)를 당 시인 맹호연(孟浩然, 689~740)의 시 <춘효(春曉)>와 연
계하여 본다면, 망국의 현실 속에서 사라져가는 궁궐의 지위와 위상을 복원하고, 새로운 조
선의 봄날을 꿈꾸었던 안중식의 염원이 담긴 것을 볼 수 있다.
春眠不覺曉 봄 잠에 날 밝는 줄 몰랐는데
處處聞啼鳥 여기저기서 새소리 들려온다
夜來風雨聲 간밤에 비바람 소리 들렸으니
花落知多少 꽃잎은 얼마나 떨어졌을까?
―― 맹호연(孟浩然, 689~740), <춘효(春曉)>
3. 안중식,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 1901. 일부
비단에 색(絹本淡彩), 198.0×464.0cm
화조, 영모, 어해 등 각기 다른 소재들을 열두 폭에 그린 병풍이다.
안중식은 장승업에 배워 장승업 화풍의 화조영모 병풍을 여럿 남겼다.
제시(題詩)의 내용이다.
(왼쪽)
草細泉香野色新 여린 풀 샘물 향기 들판 경치 새롭고
五花驕氣散春雲 오화마의 굳센 기운 봄 구름 흩어버리네
昂形似憶當年事 다리 높여 걷는 자태에 지난 일 떠오르니
立仗凌寒夜正分 병기 곧추 세우고 추위에 떨던 그 밤이라네
출전 : 진정(陳政, 1418~1476),「題牧馬圖」
(오른쪽)
昨夜西風冷釣磯 지난밤에 서풍 불더니 낚시터는 차갑고
綠荷消瘦碧蘆肥 푸르던 연꽃 수척하고 푸르던 갈대 살졌네
一江秋色無人問 강변의 가을경치 묻는 이 아무도 없는데
盡屬風標一雪衣 눈처럼 흰옷 입은 두 마리 의젓하게 서 있네
출전 : 범성대(范成大, 1126~1193), 「題秋鷺圖」
4-1. 김응원, <묵란도(墨蘭圖)>
종이에 먹(紙本水墨), 184.0×77.6cm, 1981년 이홍근(李弘根) 기증
유길준의 글이 있는 난초그림으로 힘 있는 필치가 돋보이는 김응원(金應元, 1855~1921)의
묵란도다. 김응원은 어린 시절부터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집에서 일하
며 난초 그림으로 유명했던 대원군의 화법을 스스로 터득했다고 한다. 그는 40대 초반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서화를 남기기 시작했으며 안중식, 조석진(趙錫晉, 1853~1920) 등과 합작
하기도 했다.
화면 위쪽의 제시(題詩)는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이, 왼쪽의 제시는 김응원이 스스로
적었다. 김응원의 제시는 중국 원대 문인 조맹부(趙孟頫, 1254~1322)의 묵란도에 대한 승
려 종연(宗衍, 1309~1351)의 글을 빌린 것이다.
유길준의 제시다.
墨痕香沁影敧斜 먹과 향 스며드니 그림자 비스듬하고
紙上參差盡着花 종이 위 길고 짧은 선으로 꽃을 나타냈네
不愛仙源種桃李 신선들은 본디 복사꽃과 오얏꽃 사랑하지 않으니
只冝供養讀書家 다만 마땅히 동서하는 이가 공양할 뿐이라네
김응원의 제시다.
湘江春日靜輝輝 소상강 봄날은 깨끗하게 빛나는데
蘭雪初晴翡翠飛 난초에 눈이 개이니 비취가 나는 듯
拂石似鳴蒼玉佩 바위에 떨어지니 창옥패의 소리나고
御風還著六銖衣 바람 맞으며 다시 가벼운 옷을 입었네
夜寒燕姞空多夢 차가운 밤에 제비는 헛꿈도 많고
歲晩王孫尙不歸 해 저물어도 왕손은 아직 오지 않았네
千載畵圖芳點綴 오래도록 이렇게 아름답게 그림 그렸는데
所思何處寄芳菲 무엇을 생각해 이 어여쁜 꽃을 보냈나
출전 : 종연(宗衍, 1309~1351), 「題趙松雪墨蘭」
4-2. 민영익, <묵란도(墨蘭圖)>, 20세기 초
종이에 먹(紙本水墨), 130.2×59.1cm
민영익이 상하이에서 그린 난초 그림이다.
조선 말기의 정치가이자 서화가인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이 그린 묵란도로, 화면 왼쪽
위에 “민원정이 뜻을 그리다(閔園丁寫意)”라는 글귀와 함께 그의 호인 ‘천심죽재(千尋竹
齋)’를 새긴 주문방인이 찍혀 있다. 제시는 청나라 말기 서화가인 포화(蒲華, 1832~1911)
가 썼다. 민영익은 포화와 교류하였다.
畢竟山中芳草多 산속이라 방초가 많기도 하니
妙香到處逐風過 골짜기마다 좋은 향기 바람 따라 실려 오누나
滋蘭樹蕙知誰是 고운 잎 가득 달린 저게 바로 혜초로구나
一片幽情滿澗阿 한 조각 그윽한 정 시냇가에 가득하네
5. 안중식, 조석진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1902
비단에 색(絹本淡彩), 각 폭 138.0×33.0cm,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안중식과 조석진이 함께 그린 기명절지 8폭 병풍은 안중식이 양 끝의 두 폭을 그리고, 나머
지 여섯 폭은 조석진이 그렸다. 이 작품은 1902년 고종의 재위 40주년을 기념한 어진 제작
에 안중식과 조석진이 함께 참여했던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일본 체류 이후 고종의 어진화사
로서 화단의 중심에 선 시기의 화풍을 잘 보여준다.
6. 안중식, <화조연모도(花鳥翎毛圖)> 1901. 일부
비단에 색(絹本淡彩), 198.0×464.0cm
맨 왼쪽 그림의 제시다.
石邊隱睡小華胥 바위 가에 편히 조는 작은 꽃들
哺乳溫胞樂有餘 젖 먹이니 따뜻하게 배불러 즐거움이 넉넉하네
花氣氤氳春畵永 꽃기운 화창하게 어려 봄 그림 오래가니
牧丹架畔日斜初 모란 심은 시렁 가에 이제야 햇살 비껴드네
가운데 그림의 제시다.
晩來無事理扁舟 저물녘 하릴없이 쪽배를 수리하니
喚起騷人漫浪愁 문득 시인의 쓸데없는 시름 일어난다
過眼飛鴻三兩字 눈앞을 지나는 두세 마리 나는 기러기
淡烟寒月荻花秋 옅은 안개 낀 차가운 달 갈대꽃은 가을이네
출전 : 이응중(李膺仲), 「題自畵蘆雁」
맨 오른쪽 그림의 제시다.
樂矣, 莊生濠上水 즐거움이여, 장자의 호수에 사는 일이네
物乎, 西伯沿中天 만물이여, 주 문왕은 하늘 가운데를 따랐네
출전 : 『장자』 제17편 「秋水」의 내용에서 유래
8. 안중식,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 1901. 일부
비단에 색(絹本淡彩), 198.0×464.0cm
맨 왼쪽 그림의 제시다.
不羨游魚不是蜉 노니는 물고기 부러워 않고 하루살이도 아닌데
亦宜煙水亦宜沙 안개 낀 물가도 모래밭도 좋아하네
縱橫獨於秋江上 가을 강가에 홀로 종횡으로 다니니
豈數區區井底蛙 어찌 구구하게 우물 안 개구리처럼 헤아리리
가운데 그림의 제시다.
玉勒追隨子夜風 옥 재갈 장식 수레 따라 한밤중 바람 일고
金鈴搖月吠梧桐 금방울은 달빛에 흔들리고 오동나무 잎 떨어지니 개 짖네
明朝較獵長楊去 내일 아침 장양관에서 수렵을 겨루는데
萬騎叢中第一功 만 마리 기마 중에서 가장 큰 공 세우리
출전 : 장봉익(張鳳翼, 1527~1613), 「題犬」
맨 오른쪽 그림의 제시다.
梁苑驚池鹜 양원에서 깜짝 놀라는 물오리
陳倉拂野雞 진창에서 나래 떨치는 들꿩
舉翅雲天近 날갯짓하니 구름 하늘 가깝고
回眸燕雀稀 눈 돌려 노려보니 제비 참새들 거의 없네
출전 : 1, 2구 정요(鄭繇), 「失白鷹」, 3, 4구 경위(耿湋, 734~ ?), 「進秋隼」
10. 장승업, <해도(蟹圖)>, 1891
종이에 엷은 색(紙本淡彩), 154.0×36.8cm
안중식의 글이 있는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의 게 그림이다.
게와 갈대는 과거급제를 기원하는 길상의 의미를 담고 있어 조선 후기에 활발히 그려진 화제
였다.
그림 왼쪽 위의 글은 장승업과 가깝게 지냈던 안중식이 남긴 것이다. 안중식은 글을 몰랐던
장승업 대신 그림에 글을 써주기도 하였고, 장승업이 죽은 뒤 그의 작품에 제발(題跋)을 남
기기도 하였다. 이 작품의 안중식의 제발에 따르면 장승업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뒤인 1899
년 안중식이 그를 그리워하며 화면 상단에 글을 남겼다고 한다.
曾於李書庭齋與張吾園 戱作山畵 陰爲什甲, 一酌一蟹 飮巳一斗矣. 要書庭兄改之 又引盃相噱,
酒興墨緣 日夕源源 乃辛卯夏日事也. 今吾園兄 已歸道山. 追題此畵 不覺潸然. 光武己亥冬日
心田安中植題.
(예전에 이서정재에서 오원 장승업과 함께 산수화를 그리고 있을 때 조심스레 게를 주었다.
술 한 잔에 게 한 마리를 안주로 삼아서 마시니 어느덧 한 말 술이 되었다. 서정 형에게 고쳐
주기를 부탁하면서, 또 잔을 들고 서로 웃었다. 술의 흥취와 묵연이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으
니 신묘년 여름날의 일이다. 지금은 오원이 이미 저 세상으로 갔다. 이 그림에 늦게나마 제발
을 적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구나. 광무 기해 겨울 심전 안중식이 쓰다.)
11. 안중식, <노안도(蘆雁圖)>, 1900/김진우, <묵죽도(墨竹圖)>, 1919
왼쪽 <노안도(蘆雁圖)>
비단에 엷은 색(絹本淡彩), 112.0×42.8cm
안중식이 1900년 일본에 머물 때 그린 작품이다. 갈대와 기러기는 부부의 화목이나 ‘노안(蘆
雁)’과 음이 같은 ‘노후의 평안(老安)’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주로 선물용 그림으로 조선
말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행했다.
제시의 내용이다.
黃蘆碧韋意闌珊 누렇고 푸른 갈대 쓸쓸하고 스산하니
旅食群棲暮雨寒 타향 사는 나그네 함께 모여 들고 해 저물고 비 오니 춥구나
自是江湖十年夢 강호에서 십년이 꿈과 같아
只今時展畵圖看 지금 그림을 펴서 보노라
오른쪽 <묵죽도(墨竹圖)>
종이에 먹(紙本水墨), 130.0×64.4cm
일주 김진우(一洲 金振宇, 1883~1950)가 망명 직전에 그렸다.
그는 일제강점기 묵죽의 대가로 손꼽히던 서화가이자 12세의 어린 나이로 의병대장 의암 유
인석의 문하에서 항일의병 활동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이다.
제시의 내용이다.
古鼎茶煙歇 옛 솥의 차 연기는 꺼지고
秋鐙畵理深 가을 등불 아래 그림의 이치는 깊어지네
寒窓風雨夕 차가운 창에 비바람 몰아치는 저녁에
臥聽老龍唫 누워서 늙은 용의 울음을 듣네
歲己未肇夏 上澣金振宇寫呈緯堂先生法眼
기미년 초여름 상순, 김진우가 그려서 위당선생 법안 아래 드린다.
12. 김진우, <묵란도(墨蘭圖)>, 1919/황철, <전적벽부도(前赤壁賦圖)>, 1916
왼쪽 <묵란도(墨蘭圖)>
종이에 먹(紙本水墨), 130.0×64.4cm
일주 김진우(一洲 金振宇, 1883~1950)가 망명 직전에 그렸다.
제시의 내용이다.
健碧繽繽葉 굳세고 푸르른 맑고 맑은 잎
斑紅淺淺芳 붉은 얼룩에 잔잔한 향기
幽香空自秘 그윽한 향기 허공에 스스로 숨자
風肯秘幽香 바람은 그 향기를 즐겨 감추네
오른쪽 <전적벽부도(前赤壁賦圖)>
종이에 먹(紙本水墨), 156.5×49.5cm, 일본 사노시(佐野市)향토박물관
사진 도입에 앞장섰던 황철(黃銕, 1864~1930)은 개화파로 몰려 정치적 수난을 겪고 일본으
로 망명했지만 1906년 사면되어 농공상부 협판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강원도 관찰사, 경남도
관찰사를 거쳐 종2품 가선대부가 되었다.
오른쪽의 제발은 소식의 적벽부 중 전편이다.
왼쪽에는 청 강희 연간에 편찬된 <어정역대제화시류(御定歷代題畵詩類)>에 수록된 시를
적었다.
天外靑山半有無 하늘 끝에는 청산이 보일락 말락 하고
江流萬里月明孤 만 리 흐르는 강에는 달빛만 외로워
夜深偶感曹滿蹟 깊은 밤 우연히 조만의 유적에 취하다가
却被傍人作畵圖 도리어 옆 사람의 청으로 그림을 그렸네
13. 지운영, <장송낙일도(長松落日圖)> 1917/지운영, <산림초옥도(山林草屋圖)> 1880년대 말
비단에 엷은 색(絹本淡彩), 134.0×38.7cm/비단에 수묵(絹本水墨), 76.5×35.5cm
왼쪽 <장송낙일도(長松落日圖)>
백련 지운영(白蓮 池雲英, 1852~1935)은 구한말 개화 지식인의 한 사람이자 은둔의 서화가
로 변모한 근대 서화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
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본국으로 압송되어 영변에 유배를 떠나기도 했다. 유배생활 이후 서
화에 몰두하였다.
제발은 청대 건륭제 때의 대학자이자 문장가였던 기윤(紀昀, 1724~1805)의 시를 인용하였
다. 제발에 따르면 1917년 이른 봄에 청대 화가 경강(鏡江)의 그림을 따르고, 기윤의 시를
인용해 춘고 박영효(春皐 朴泳孝, 1861~1939)를 위해 그린 것이다.
長松落日 지는 해 속의 장송
匹馬西風 서풍 속으로 한 필의 말을 타고 간다.
從軍萬里 만리 길을 종군하였으니
磊落英雄 헌걸찬 영웅이로다.
오른쪽 <산림초옥도(山林草屋圖)>
제시의 내용이다.
夙視氷綃上 흰 비단 위에 일찍 보았네
微芒生川嶽 아스라이 냇물과 산악 생긴 것
急捉斧劈毫 급히 붓을 잡아 부벽준으로 그려내니
揮灑神有覺 시원하게 휘두르니 깨달음이 있네
孤松弄澗漪 외로운 소나무는 계곡 물결 희롱하고
荒竹鳴風雹 거친 대나무는 바람과 우박에 어울리네
此境蒼而寒 이곳은 푸르고 차가우니
居人拙且樸 여기 사는 사람은 성품이 졸박하네
苔紋上几席 바위 이끼 위에 안석 펼쳤고
茅宇擁芳葯 띠집에는 향초가 둘러쌌네
山深不設門 산이 깊어 문을 만들지 않았으니
烟景何杳邈 안개 낀 경치 어찌 그리 아득한가
點綴多空幻 공환이 여럿 점철되어
恥從古家學 옛날부터의 가학에 부끄럽구나
若具卞和眼 만약 변화의 안목을 가졌다면
誰無荊山璞 누가 형산박이 없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