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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식(全炳植)
청와대 경제 산업비서관
재임기간/1980.10.14 ~ 1985.12.17
경복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육사 교관을 지냈다. 이후 상공부에서 국장으로 근무하다 5공 출범과 함께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지냈다. 1982년 청와대를 나온 뒤 1990년까지 국립공업시험원 원장을 지냈다.
◎ ‘알짜’ 바이오 벤처 이끄는 오누이 사업가 全世華·全在昱
세계 최초 피부줄기세포 배양 치료 상용화 성공-국내 생산실적 60% 점유
글 :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 화상 치료제 개발한 세포생물학자 CEO 동생과 회사 규모 키우는 정치외교학 출신 CSO오빠
⊙ 당뇨성 족부궤양 치료제 시판… 해외시장 진출
全世華
⊙ 1966년생.
⊙ 서울대 화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종양학 박사.
⊙ 하버드 의대 하워드 그린 박사 연구소 연구원, 보스턴 어린이병원 선임연구원 등 역임.
⊙ 현 테고사이언스 대표이사.
全在昱
⊙ 1963년생.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플레처 외교대학원 국제관계학 박사.
⊙ 여의도연구소 연구위원, 이회창 대통령 선거 후보 보좌역 등 역임.
⊙ 현 테고사이언스 전략담당이사(CSO).
2002년 5월 9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곧바로 신생아 포경수술이 실시됐고, 절취한 포피(包皮)는 세포연구실로 옮겨졌다. 이후 아기의 작은 세포 하나는 수만 화상 환자의 피부를 재생 치료할 수 있는 약품으로 변신했다. 이 세포주(株)는 앞으로 수천만 개를 더 생산할 수 있다.
일반인들에겐 ‘기적’으로 보이는 이 일이 전세화(全世華), 전재욱(全在昱)씨에겐 일상이자 사업이다. 2001년 3월, 바이오 벤처기업 ‘테고사이언스’에서 대표이사(CEO)와 전략담당이사(CSO)를 맡은 오누이는 연구와 경영 부문에서 각자의 역량을 발휘해 오고 있다.
“바이오벤처라고 하면 먼저 의심부터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간판만 걸어 놓고 투자금 모아 임상시험하다 끝내 버리는 기업들이 꽤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저희는 지금까지 조용하게 사업에만 집중했어요. 이렇게 언론에 등장하는 것도 좀 부담스럽습니다.”
전재욱씨는 ‘바이오벤처’라는 말 자체도 쓰지 않길 원했다. 회사가 또 하나의 ‘바이오 거품’으로 비치는 것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그는 “테고사이언스는 의약제품을 직접 연구, 생산해 판매하는 벤처기업”이라며 “의약 서비스가 아니라 미니 제약회사”라고 강조했다.
환자의 피부세포 배양해 중화상 치료
핵심 제품은 ‘홀로덤’과 ‘칼로덤’ 두 가지로, 모두 화상 환자의 피부 치료를 위해 쓰인다. 예전엔 화상을 입으면 엉덩이나 허벅지 등 성한 부분을 떼어내 이식 수술을 했다. 하지만 떼어낸 부위도 2도 화상에 준하는 손상을 입기 때문에 따로 추가 치료를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또 화상 부위가 넓을 경우 성한 피부가 부족해 이식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홀로덤’은 환자의 피부 중 아주 작은 조각을 떼어내 피부각질세포를 추출한다. 이를 배양하면 2~3주 만에 전신을 덮을 수 있는 크기의 피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자기 세포를 복제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피부 줄기세포로 보면 된다. 전세화씨의 말이다.
“개념이 조금 모호하긴 합니다. 한국에선 흔히 줄기세포라고 하면 예전 황우석(黃禹錫) 박사의 배아줄기세포나 골수에서 유래한 성체줄기세포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희 제품은 피부로 분화한 세포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피부줄기세포입니다.”
처음 확보된 피부세포는 영구보관이 가능하다. 화상환자는 필요할 경우 언제든 자기 피부를 추가로 주문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금까지 500여 명의 중증 화상환자가 치료를 받았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500회 이상 이런 치료를 한 케이스는 테고사이언스가 유일하다.
한 명의 피부세포로 치료제 수천만 개 생산 가능
그들의 기술은 많은 사람을 살렸다. 2003년 충남 천안의 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불이 나 어린이 8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코치와 학생 등 17명이 연기에 질식하거나 화상을 입었다. 전신의 45%에 화상을 입은 윤장호군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3도화상을 입은 그의 몸은 표피뿐 아니라 진피(眞皮·표피와 피하조직 사이의 부분)까지 제거돼 진물이 흐르고 감염까지 진행됐다.
한강성심병원 성형외과 장영철(張永喆) 과장으로부터 소식을 들은 테고사이언스는 무상으로 홀로덤을 제공했다. 그의 떼어낸 작은 세포는 배양 과정을 거쳐 손상된 피부에 이식됐다. 이후 회복은 놀라웠다. 현재 18세 청소년이 된 윤군은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7명의 사망자와 81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한 2009년 2월 경남 창녕군 화왕산 화재 참사와, 같은 해 11월 발생해 한국인과 일본인 15명이 숨진 부산 사격장 화재 사건 때도 홀로덤 치료가 시도됐다. 사격장 화재 당시 사고 직후 일본인 6명의 피부를 채취해 곧바로 배양에 들어갔다. 전재욱씨의 말이다.
“안타깝게도 배양 도중 사망해 치료를 마무리할 수 없었습니다. 홀로덤을 적용하는 환자는 워낙 중증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죠. 중화상 환자의 경우 세포 배양 중 사망할 확률이 40% 정도 됩니다.”
테고사이언스의 매출은 주로 두 번째 제품인 ‘칼로덤’이다. 2002년 신생아의 포피를 배양해 만든 약품은 2009년에만 1만2000여 장이 판매됐다. 누적 생산량은 6만 장이며, 현재 한 달에 1500~1600장 정도가 판매되고 있다. ‘포스트잇’ 정도 크기인 칼로덤은 중증이 아닌 화상 치료에 사용된다. 전세화씨는 두 제품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간단히 말해 홀로덤은 본인의 피부 세포를 배양해 자신에게 이식하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잔디 모판을 심는 격이죠. 칼로덤은 다른 사람의 세포를 상처에 붙이는 겁니다. 군데군데 씨가 남아 있는 잔디밭에 비료를 뿌려 주는 개념입니다. 자신의 세포가 잘 자라도록 도와 상처가 잘 아물고 흉터가 줄어들게 합니다.”
―한 해 1만2000장 이상이 판매됐다면, 세포 기여자도 많을 텐데요. 몇 명 정도 됩니까.
“단 한 명입니다. 2002년 신생아의 세포 하나에서 모두 나왔죠. 신생아의 세포가 안전한 데다 그날 그 포피가 여러 포피 중에서 가장 상태가 좋았습니다. 식약청 안전기준에도 완벽하게 부합했고요. 집중 연구를 통해 최상의 조건을 갖춘 가장 안전한 세포를 만들었습니다. 현재 수천만 개까지 추가 생산이 가능해요.”
하버드 연구소와 大選 캠프 근무
―전문분야가 아닌 사람들은 잘 이해가 안될 것 같습니다. 세포 몇 개당 몇 장, 그런 원리가 따로 있습니까.
“세포 한 개당 몇 개, 그런 식이 아니라 세포 하나를 계속 키워 나가는 방식입니다. 하루에 2개로 분화한다고 가정하면, 열흘이 지났을 땐 2의 10승이니 1024개가 되는 거죠. 11일째는 2048개가 되고요.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이죠.”
기술의 시작은 미국이었다. 서울대 화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주립대에서 종양학 박사 학위를 얻은 전세화씨는 피부각질세포 연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진 하버드 의대의 하워드 그린(Green) 박사와 함께 배양법을 연구했다. 연구소에선 이미 1980년대 초부터 환자의 세포를 떼어내 배양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전세화씨의 말이다.
“1999년쯤이었어요. 사업 쪽에 관심이 생겨 미국 비즈니스 스쿨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오빠(전재욱)가 그랬어요. ‘비즈니스 스쿨 가서 미국 제약회사에 들어가느니, 한국에 와서 창업하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마침 한국에서 막 바이오 붐이 불기 시작하던 때였죠.”
전재욱씨는 동생과 서울대 동문이다. 1986년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플레처(Fletcher) 외교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귀국해 3년 반 동안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에서 외교·외신 전략을 담당했고, 2002년 대선 땐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후보 캠프에서 보좌역으로 활동했다.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면, 바이오 회사가 아니라 청와대에 들어갔겠습니다.
“그랬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역사에 가정은 없죠.”
―원래 꿈이 뭐였습니까.
“대학교 땐 외무장관이 되고 싶었습니다. 학창시절엔 고고학자나 인류학자가 꿈이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회사 경영이 재미있어요.”
집안 내력이 예사롭지 않다. 두 사람의 외할아버지는 1927년 김교신(金敎臣), 함석헌(咸錫憲) 등과 함께 신앙동인지 <성서조선(聖書朝鮮)>을 창간한 신학자 정상훈(鄭相勳)이다. 그는 부산상고를 졸업한 후 일본 메이지(明治)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일본의 대표적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를 사숙(私淑)한 그는 스승의 만류로 미국 프린스턴대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 <성서조선> 활동을 주도했다.
국내 세포치료제 생산의 60% 차지
아버지 전병식(全炳植) 전(前) 대한요업총협회 회장은 청와대 경제비서관과 국립공업시험원 원장 등을 역임한 엘리트 공무원 출신이다. 1956년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아버지와 불문학과 14회 졸업생인 어머니 정옥희(鄭玉熙)씨까지 포함하면, 4인 가족 모두가 서울대 동문이다.
큰아버지인 전병식(全炳植)씨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 교관을 하다 청와대로 옮겨 경제비서관을 역임했다. 이모 정연심(鄭鍊心)씨는 서울대 약학과 출신으로 제약회사 한국쉐링 사장과 한국여약사회 회장 등을 지냈다.
―부녀(父女)가 같은 과 동문인데요. 아무래도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교육하신 것은 아니에요. 경제개발 계획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어올 정도로 바빴어요. 합숙하는 호텔에 어머니가 아버지께서 갈아입을 옷을 가져다 줄 정도였어요. 공부를 시키거나 진로를 정해 주신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화학 공부를 하고 싶었고, 스스로 진로를 정했습니다.”
2000년 의기투합한 오누이는 구체적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사업은 주로 여동생 전세화씨의 몫이었고, 재욱씨는 조언을 해 주는 정도였다. 전세화씨의 설명이다.
“2001년 3월에 완전히 귀국을 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는데 오빠가 많은 도움을 줬어요. 실험실에 계시던 하워드 그린 박사도 이런 아이템이 상품화되는 것에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적극적으로 밀어 주셨어요.”
많은 벤처회사가 가시적인 연구성과나 수익모델 없이 우회상장을 통해 단기수익을 챙긴다. 하지만 전재욱씨는 지금까지 회사를 ‘소극적’으로 경영해 왔다. 30여 군데에서 우회상장 제의가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회사는 꾸준히 이익을 내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성장했다.
비즈니스를 담당한 전재욱씨와 달리, 연구개발을 담당한 전세화씨는 회사를 현재 규모로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기술적 진입 장벽이 높아 다른 이들이 쉽게 경쟁을 할 수 없는 구조인 데다 현재의 착실한 경영방식이 좋다는 이유에서다. 전공이 다른 만큼 각자의 관심사가 많이 달랐다. 그런데 이들의 ‘조용한’ 경영에도 불구, 회사는 이미 세포치료제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했다.
식약청 자료에 따르면 세포치료제 분야 국내 총 생산실적은 2009년 현재 93억원으로 2004년부터 연평균 39%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테고사이언스의 2009년 생산실적은 약 50억원이다. 국내 세포치료제의 60%를 한 회사에서 생산하는 셈이다.
당뇨성 족부궤양 시장 진출
테고사이언스는 최근 당뇨성 족부궤양 치료에 눈을 돌렸다. 당뇨성 족부궤양은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발 신경이 둔해지거나 심하면 살이 썩는 당뇨합병증으로 일명 ‘당뇨발’로 불리기도 한다.
칼로덤은 당뇨성 족부궤양 치료에도 효과가 있었다. 2009년 환자 59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한 결과 칼로덤을 부착한 이들은 12주 만에 100%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았다. 바셀린 거즈를 사용한 환자들의 완치율은 70%를 밑돌았다. 치료 기간 역시 22일 정도로 짧았고, 깊은 궤양일수록 효과가 더 좋다는 것이 입증됐다.
현재 국내에만 40만명의 당뇨성 족부궤양 환자가 있으며, 연간 10만명 정도가 썩은 부위를 절단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화상 치료의 10배에 달하는 시장규모를 갖고 있어 회사 매출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테고사이언스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명성을 얻었다. 일본 경제산업성과 노동후생성 등 정부 산하기관에서 회사를 찾고 있다. 전재욱씨의 말이다.
“한국으로 치면 지식경제부 산하기관과 식약청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전자(前者)는 일본 내 산업진흥을 위해 우리의 재생의료 기술을 벤치마킹하려고 찾아오는 것이고, 후자(後者)는 이를 적절하게 규제하기 위해서 오는 겁니다.”
두 사람은 “거품이나 유행에 흔들리는 회사가 아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진짜 바이오 기업을 만들고 싶다”며 “해외시장 진출 성공을 통해 한국의 바이오산업에 기여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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