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곳곳에 벽보가 나붙고 매일이다시피 총살이 자행되던 ‘더러운 전쟁’이 한창이던 때, 전쟁의 모든 소리를 덮어 버릴 듯이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며 한 소녀가 태어난다. 서슬 퍼런 군부 독재 아래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침묵하지만, 폭력의 소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소녀는 들어도 말하지 않고 보고도 전하지 않는, ‘살아남는 법’을 배우며 자라난다.
소녀의 부모는 이런 정권에 저항하는 지식인들이다. 지하 비밀 방에서 모임이 있는 날이면, 소녀의 엄마는 말한다. “우리 딸, 멀리 가, 아주 멀리.” 소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저 말없이 멀리 떨어진 정원으로, 레몬트리 가장 높은 가지로 올라간다. 소녀를 찾는 엄마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오랫동안 공상에 잠긴다.
저자는 죽음의 수용소, 광기 어린 좌파 척결의 역사, 검푸른 라플라타 강에 수장된 수많은 사람들, 부모와 가족을 잃고도 마음놓고 울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시적인 언어들에 담아 조심스럽게 내보인다. 숨죽인 눈물이 무엇이든 집어삼키는 호수로, 거침없이 흘러가는 강으로, 다시 솟구쳐 떨어지는 폭포로 변하는 모습은 이 시간을 살아내야만 했던 이들의 고통과 분노, 슬픔을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