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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산을 그리다(4)-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특별전
77.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단발령(斷髮嶺)
김응환(金應煥, 1742~1789), 조선 1788~1789년, 4책 총 113면 첩,
비단에 엷은 색(絹本淡彩), 각 32.2×43.0cm
김응환은 1788년 정조의 명으로 김홍도와 함께 영동지방과 금강산을 유람하고 ≪해악전도
첩(海嶽全圖帖)≫을 제작하였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다양하게 재단하고 독창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동시대 어느 화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김응환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오다연)
단발령은 이 고개를 올라서 금강산을 보노라면 머리를 깎고 세속을 떠나고 싶어진다 하여 그
렇게 이름하였다고 한다. 동주 이민구(東州 李敏求, 1589~1670)의 「단발령에서(斷髮
嶺)」라는 시이다.
나막신 손질할 때 가을이 반쯤 지났었는데 理屐秋始半
지팡이 짚으니 가을 저물어 간다 攝筇商欲末
서늘한 바람 숲 기운을 씻어 내고 涼颸蕩林氣
맑은 안개는 물 아지랑이 흩트리네 淸霧潰川靄
서리 흠뻑 내려 시내 바위 미끄럽고 霜繁溪石滑
해 나오자 산 빛이 반짝이누나 日出山光發
옷 벗어 바위 옆에 두고 解衣傍巖坳
물가 모래밭에서 도시락 먹네 進飯就沙汭
앞선 자취 밟으며 험한 길 올라 躋險躡前趾
고갯마루에 오르니 단발령이라 하네 陟嶺聞斷髮
눈썹 가지런히 구름 산이 떠 있고 齊眉雲嶠浮
면모 드러낸 옥 같은 봉우리 늘어섰다 露面瓊峯列
밝게 비치는 옥녀성이며 照爛玉女星
휘날리는 요대의 눈발이네 揮霍瑤臺雪
하늘색 고요하다가 바람 휘몰아치고 空色定還飄
우담화 나타났다 다시 사라지네 曇華現復滅
일찍이 상평의 유람 가슴에 품었더니 夙懷尙平游
우연히 허순과 함께하게 되었네 偶與許詢契
수행이 이미 원만하고 脩行已圓滿
깨달음의 길에서 초탈하였으니 覺路永超脫
곧장 동천 열리길 기다려 直待洞天開
장차 세인들과 이별하리라 將從世人別
주) 상평은 후한(後漢)의 은사인 상장(尙長)을 가리키며, 향장(向長)으로도 부른다.
허순(許詢)은 동진(東晉)의 은사로, 승려 지도림(支道林)과 교유하면서 청담(淸談)으로 일
세를 풍미한 인물이다. 동행한 허보와 성이 같기 때문에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78.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만천교(萬川橋)
만천교(萬川橋)를 건너면 왼쪽 산언덕에 장안사가 있다
79.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장안사(長安寺)
골짝에 가을 깊고 돌길은 긴데 洞府秋深石路長
비 온 뒤 봉우리는 다시 푸르네 峯巒雨後更蒼蒼
휘장 걷은 장사가 서릿발 같은 칼날에 기댄 듯 披帷壯士憑霜鍔
장막 헤친 가인이 담박하게 화장한 듯 捲幕佳人倚素粧
단풍 숲 지금 삭막하다 탄식마오 莫歎楓林今索寞
이내 바위와 계곡이 더욱 청량해지리라 便敎巖壑轉淸涼
최근 산중에 볼거리 더해졌으니 山中近日添新覯
백 자나 되는 비홍교 돌다리 놓였네 百尺飛虹駕石梁
―― 한포재 이건명(寒圃齋 李健命, 1663~1722), 「저녁에 장안사에 도착하여(夕到長安寺)」
80.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명경대(明鏡臺)
명경대(明鏡臺)는 불그스레한 비면(碑面)과 같은 암석으로 바위 면이 갈아 낸 것처럼 반들
거려서 마치 큰 경대를 세워 놓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천동을 따라 1리(里) 정
도 오르면 나타나는 황천강(黃泉江)의 물굽이를 따라 올라가면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
에 자리하고 있다. 북쪽에는 석가봉(釋迦峰), 남쪽에는 시왕봉(十王峰)이 솟아 있고, 이곳에
서 황천강을 따라 더 오르면 영원암(靈源庵)이 나타난다.
81.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수렴폭(水簾瀑)
82.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백탑(百塔)
험한 구룡연을 거쳐서 가노라니 經險九龍淵
즐거움이 남은 끝에 정신이 오히려 분주하다 樂餘神猶奔
백탑에 대한 미련 버리지 못하여 遺想在百塔
가서 고승의 말을 실천에 옮기노라 往踐高僧言
흔들흔들 쇠지팡이 앞서서 가고 飄颻金策先
너울너울 소나무겨우살이 번뜩인다 颯纚蘿衣翻
화창한 날씨에 한 길에 올라서 氤氳登一路
이리저리 천지의 원기를 찾노라 屈折訪渾元
푸른 절벽은 수려한 것들 많고 翠壁多瑩秀
붉은 봉우리는 서로 우뚝 솟았다 丹嶂互飛騫
절은 아스라한데 잔도는 끊어졌고 寺遠棧梯斷
무성한 풀밭에 괴상한 돌 서 있네 莓莓怪石立
――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 1653~1722), 「백탑동(百塔洞)」
83.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영원암(靈源庵)
84.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백천동(百川洞)
수천 봉우리 화려한 빛깔이 갠 하늘에 기댔는데 千峯秀色倚晴空
굽이굽이 돌아내린 맑은 시내에 길도 막혔어라 百轉淸溪路亦窮
보일락 말락 두어 무더기 외로운 대숲 속에 隱暎數叢孤竹裏
무너진 담장은 옛 동궁을 아직도 기억하누나 壞垣猶記古東宮
명경대 앞에서 지팡이 짚고 거닐다가 明鏡臺前携一杖
영원사 안에서 한가로이 점심 지어 먹네 靈源寺裏午炊閑
앞 숲에 길 끊어져 물어볼 이 없으니 前林路絶無人問
온 산에 날 저물 제 서글피 홀로 돌아가네 日暮千山悵獨還
―― 창계 임영(滄溪 林泳, 1649~1696), 「백천동(百川洞)」
85.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삼불암(三佛庵)
열 길 푸른 바위 섬세하게 갈아 蒼巖十丈細磨礱
세 불상 쪼아 만드니 하나하나 같구나 琢作三軀箇箇同
과거도 미래도 모두 객이니 過去未來俱是客
다만 인연 따라 일가의 풍이 있을 뿐이지 只緣曾有一家風
―― 동주 이민구(東州 李敏求, 1589~1670), 「삼불암에서(三佛巖)」
86.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백화암 부도(白華庵 浮屠)
87.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헐성루(歇惺樓)
높은 누에 올라서 신선 세계 바라보니 高樓一嘯攬蓬壺
하늘이 금강산을 조망하게 마련한 곳 天備看山別作區
무수한 봉우리들 모두 노한 듯하지만 無數飛騰渾欲怒
때론 홀로 떨어져서 외롭게 솟았어라 有時尖碎不勝孤
석양은 산 정상에 닿아 빛이 일렁이고 夕陽到頂光難定
잔설이 남은 산은 자태가 각각이네 淺雪粘鬟態各殊
향로 연기 부들자리 읊조리기 편안하니 香縷蒲團吟弄穩
사공이 등산했던 어리석음 비웃노라 謝公登陟笑全愚
앞을 보면 부처인데 뒤를 보면 신선 모습 前瞻如佛後如仙
기이한 몸 생겨난 지 몇만 년이 되었을지 怪怪身成幾億千
만고토록 은하수와 기가 서로 통하였고 萬古氣通星漢內
사시사철 높은 누대 눈서리 가에 섰네 四時樓倚雪霜邊
세상 먼지 나는 곳에 자리 잡지 않았으니 排張未有生塵地
솜씨 부려 천공에게 바치느라 애썼을 터 刻畫應勞獻技天
이틀 동안 남여가 세 번이나 이른지라 兩日籃輿三度至
떠나려니 가부좌한 중들 보기 부끄럽네 去時終愧結趺禪
――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 1720~1799), 「헐성루에서 만이천봉을 바라보다(歇惺樓
瞰萬二千峯)」
88.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용곡담(龍曲潭)
만폭동 북쪽에서 청호연(靑壺淵)을 거슬러 올라가면 용곡담(龍曲潭)이 있고, 또 용추(龍
湫), 구류연(九留淵), 만절동(萬折洞), 태상동(太上洞), 청령뢰(淸泠瀨)가 있다.
자운담(慈雲潭)에 이르러 우화동(羽化洞), 적룡담(赤龍潭), 강선대(降仙臺)를 거쳐서 수미
탑(須彌塔)에 이르렀는데, 한 동부(洞府) 안에 각각 동천(洞天)을 이룬 것이 열한 개나 되었
고, 용곡담과 자운담이 가장 아름다웠다. 수미동을 끼고 동북쪽으로 가서 청룡담(靑龍潭)을
거치니 옥녀세두분(玉女洗頭盆)이 있었다. 돌이 확처럼 오목하게 파였는데, 보덕보살(普德
菩薩)이 머리를 감던 곳이다.
백룡담(白龍潭), 흑룡담(黑龍潭), 비파담(琵琶潭), 벽하담(碧霞潭) 등을 지나니 분설담(噴
雪潭)이 나타났다. 곁에는 집채만 한 큰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는 또 진주담(眞珠潭)이 있었
다. 그리고 또 구담(龜潭), 선담(船潭), 화룡담(火龍潭)이 있었는데, 흑룡담으로부터 해서
팔담(八潭)이라 칭하기도 하고, 청룡담으로부터 해서 십담(十潭)이라 칭하기도 한다. 모두
모양을 가지고 이름을 삼은 것이나, ‘용(龍)’ 자가 들어간 네 개의 담(潭)은 용의 굴택(窟宅)
을 가리킨 것이다. 그 밝고 맑은 물결은 진주담과 분설담이 참으로 뛰어난 승경이었다.
―― 임하 이유원(林下 李裕元, 1814~1888), 『임하필기(林下筆記)』
89.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자운담(慈雲潭)
90.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진불암(眞佛庵)
91.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수미탑(須彌塔)
92.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진주담(眞珠潭)
화려한 색채 영롱하니 갠 하늘과 어울리고 浮彩玲瓏霽色宜
만 갈래 구슬 목걸이가 성대하게 흩어진다 萬行瓔珞散離離
당년 여산의 폭포가 어떠했는지 모르겠다마는 不知當日廬山瀑
거꾸로 비친 중향성의 기이한 그림자가 볼만하여라 能見香城倒影奇
――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 1720~1799), 「진주담은 팔담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경치이
다(眞珠潭最爲八潭勝境)」
93.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보덕암(普德菴)
석양 비친 향로봉은 저녁 비취빛 짙은데 日照香罏晩翠深
쇠사슬이 삐걱대어 높은 봉우리에 울리네 鐵繩咿軋響高岑
허주가 단청 그리고 동봉이 기문 지으니 虛舟畫手東峰記
사문의 만고의 마음을 기쁘게 함이 있네 留喜沙門萬古心
덕이 성대한 청한자는 내 벗이자 스승이니 飽德淸寒我友師
일평생 행실과 학업은 유가 경전에 있었지 一生行業在書詩
어찌하여 부처의 얘기를 엉뚱하게 거론하여 如何賣擧浮圖說
인륜으로 하여금 오랑캐로 들어가게 하였나 反使人倫化入夷
―― 추강 남효온(秋江 南孝溫, 1454~1492), 「보덕암(普德庵)에서」
주) 보덕암(普德庵)에 동봉(東峰) 김시습이 지은 기문과 허주 신포(申誧)가 그린 단청 그림
이 있다고 한다.
94.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백운대(白雲臺)
길 다한 곳에 철사 잔교가 쟁글쟁글 울려라 路盡錚鳴靑鐵線
백운대에 올라가면 진성을 기를 만하겠지 雲臺一上定棲眞
내 또한 끝내는 인간 세상의 나그네이기에 黃郞竟是人間客
명산을 사랑하지만 내 몸도 사랑하고말고 縱愛名山亦愛身
―― 매천 황현(黃玹, 1855~1910), 「금강산 백운대에서(金剛山白雲臺)에서」
95.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묘길상(妙吉祥)
구름 자욱해 사방 산은 어둑하고 靄靄四山冥
그림 병풍은 들쭉날쭉 벌여 있네 參差列畫屛
선방은 참으로 적적하기만 한데 禪居眞寂寂
마음은 저절로 성성해지는구나 心地自惺惺
오솔길엔 단풍 숲이 서로 비치고 路映丹楓樹
소나무엔 백학의 깃이 번득이네 松飜白鶴翎
가사 입은 스님은 나와서 읍하고 袈裟僧出揖
서로 대하여 반갑게 맞아주누나 相對雙眼靑
―― 허백당 성현(虛白堂 成俔, 1439~1504), 「묘길상암(妙吉祥庵)」
주) 여기서 그림 병풍이란 울긋불긋 단풍 든 산들이 사방으로 둘러있는 풍경을 가리킨 말이다.
96.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안문점망비로봉(雁門岾望毗盧峯)
안문재에 가을 해 저무니 鴈門秋日晏
쌓인 싸락눈 이내 얼어붙었네 積霰遂成凍
예는 신산(神山)의 안팎이 나뉘는 곳 神山別內外
낙엽이 바위 골짝에 평평히 덮였네 落葉平巖洞
험준한 고개는 하늘까지 닿았는데 峻嶺上造天
겨울 참새 지저귀는 소리만 들려라 但聞寒雀哢
망망하구나 저 너른 바다에 茫茫大海水
섬들은 어찌 그리도 많은지 島嶼一何衆
우리 유도(儒道)를 행할 수 없어 吾道不可行
애오라지 상송(商頌)을 읊어 보네 商頌聊一諷
이미 성각(省閣)에 얽매임을 끊었으니 已絶省閣牽
점차 구학에 숨고자 하는 꿈 고요히 꾸네 稍靜丘壑夢
신선은 아득하여 따르기 어려우니 靈仙杳難攀
맑은 경치만 희롱할 뿐이네 淸景秪自弄
중향성만 아직도 나를 따르며 香城尙隨我
아득히 저 멀리서 배웅해주네 迢迢遠相送
―― 강한 황경원(江漢 黃景源, 1709~1787), 「안문(鴈門)」
주) 안문재는 안문봉(雁門峰)의 남쪽 줄기로 내금강(內金剛)과 외금강(外金剛)의 분기점이
다. 신산(神山)은 금강산을 가리킨다.
97.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외선담(外船潭)
가을 깊으니 시냇물 빛 깨끗하고 秋盛川光淨
서리 차가우니 마름도 시들었네 霜寒蘋藻衰
회도는 물길은 노처럼 빙빙 돌고 洄流環似榜
움푹 꺼진 바위는 절로 언덕을 이루었네 陷石自成坻
아득한 구름은 저 멀리 날아가고 杳杳雲飛遠
두렷한 달은 더디게도 뜨는구나 亭亭月上遲
구연동의 신이한 경관 일변하더니 九淵神景變
비 기운이 동쪽 가득 드리웠네 雨氣徧東垂
―― 강한 황경원(江漢 黃景源, 1709~1787), 「외선담(外船潭)」
98.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만경대(萬景臺)
바람 앞에서 한 번 읊조리고 높은 대에 오르나니 臨風一嘯上高臺
무한한 푸른 물결은 쉬지 않고 흘러 오네 何恨蒼波袞袞來
어떻게 하면 붕새처럼 날개를 쳐 9만 리에 치솟아 安得鵬摶九萬里
저 동해를 굽어보면 잔만큼 보일꼬 下看東海正如杯
―― 오식(吳軾), 「만경대(萬景臺)」
99.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중내원(中內院)
남쪽으로 시내를 건너 1리쯤 가면 백련암(白蓮菴)이 있는데 도승 법견(法堅)이 살고 있다.
그 옆에 종련암(種蓮菴)이 있다. 유점(楡岾)에서 북쪽으로 가다가 시내를 건너면 조계암(曹
溪菴)이 있다. 조계암 남쪽에는 볼 만한 수석이 있다. 물이 모여 연못이 된 곳을 ‘선담(船
潭)’이라고 하는데 내산의 화룡담(火龍潭)과 비슷하다. 물가를 따라 십 리쯤 가서 복령(複
嶺)을 오르면 만경대(萬景臺)이다. 시야가 매우 넓어서 은신대(隱身臺)보다 더 웅장하니, 고
성 읍내가 곧장 내려다보이고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아래 남쪽 골짜기에는
상내원(上內院), 중내원(中內院), 하내원(下內院)이 있고, 동쪽에는 영은암(靈隱菴)이 있는
데, 일명 자월암(紫月菴)이라고 한다.
―― 낙전당 신익성(樂全堂 申翊聖, 1588~1644), 「내외금강산 유람기(遊金剛內外山諸記)」
100.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유점사(楡岾寺)
금종이라 법상은 월지에서 들여오고 金鍾法像月支來
우람한 누각들은 보지에 열렸구려 傑構耽耽寶地開
팔부의 용신은 옥좌에 굽실대고 八部龍神趨玉座
육시의 천악은 향대에 들썩여라 六時天樂動香臺
재를 닦아 상기도 광릉의 복을 빌고 修齋尙祝光陵福
지은 기는 민지의 재주를 칭찬하네 作記猶稱閔漬才
무슨 일로 허순은 근기가 사뭇 얕아 何事許詢根苦淺
의발을 가져다가 진애에 뒤섞었나 却將衣鉢混塵埃
―― 교산 허균(蛟山 許筠, 1569~1618), 「유점사(楡岾寺)」
주) 광릉(光陵)은 조선 세조(世祖)를 가리킨다. 세조는 불교를 신봉하여 1466년 유점사에
거둥하여 중 학열(學悅)에게 명해서 개수함으로써 유점사가 거찰이 되었다. 고려 때의 문신
민지(閔漬, 1248∼1326)가 유점사의 기(記)를 지었다.
101.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상발연(上鉢淵)
한 골짝을 달려온 물결 모여 못을 이루고 奔波一壑滙成淵
바위에 고였다가 숲 뚫고 동천에 들어간다 坐石穿林入洞天
다시 산승에게 물놀이 제공하며 更有山僧供水戲
순리대로 흐르고 고이니 소승선과 같구나 安排流坎小乘禪
―― 동주 이민구(東州 李敏求, 1589~1670), 「발연에서(鉢淵)」
102.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만물초(萬物草)
그 명유(名遊)라는 것 한 가지가 가장 가증스러운데, 명유라는 것은 바로 명성을 탐하여 노
니는 것입니다. 대체로 그 산의 안팎을 통틀어 말하자면, 구룡연(九龍淵)과 만폭 팔담(萬瀑
八潭)이 제일이고, 천일대(天一臺)ㆍ헐성루(歇惺樓)는 진기한 구경거리이며, 수미탑(須彌
塔)은 기괴한 구경거리이고, 마하연(摩訶衍)은 10일 동안을 머물러 있어도 싫증나지 않는
곳이며, 영원동(靈源洞) 또한 구경하지 않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밖에도 그윽한 골
짜기나 기이한 동굴과 하나의 암석이나 한 줄기의 계곡도 곳곳마다 있지 않은 데가 없어 스
스로 일단의 볼 만한 것이 갖추어져 있어서 명성을 탐할 만한 곳이 많거니와, 만물초(萬物
草)가 더욱 좋으니 이것이 노년의 답산(踏山)하는 수고로움을 덜고 명성 탐하는 데로 쫓아
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완당 김정희(阮堂 金正喜, 1786∼1856), 「권이재 돈인에게 주다(與權彝齋,
二十一)」에서
103.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옹천(甕遷)
바다를 향해 솟은 바위는 낭떠러지 이루었고 峻巖臨海作懸崖
하늘에 걸린 잔도는 바라만 봐도 아찔하네 棧道緣空望欲迷
거센 물결 내려다보니 깊이를 알 수 없고 俯瞰狂瀾深莫尺
가파른 돌층계 올라가니 미끄러워 힘드네 仰攀危磴滑難梯
행인들 엉금엉금 두 손으로 기어가고 行人匍匐投雙手
여윈 말 부들부들 네 발을 오그리네 羸馬凌兢跼四蹄
호통치던 왕공도 두려워 조심하고 叱馭王公猶畏愼
재빠른 군사도 엎어지고 자빠지리라 解飛漢士亦顚躋
험하고 높음을 어찌 정형에 비교하랴 險㠊豈與井陘比
요충지로는 응당 함곡관과 같으리라 要害應將函谷齊
들으니 적군이 이곳을 지나갔다던데 聞道賊軍曾過此
훌륭한 장군의 한 덩이 진흙 없음이 부끄럽네 愧無良將一丸泥
―― 근재 안축(謹齋 安軸, 1282∼1348), 「옹천길(瓮遷路)」
104.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연주담(連珠潭)
금강산의 내산 및 외산의 최남단으로부터 3리를 가면 두 못이 서로 이어져 있는데, 그것을
연주담이라 한다. 서쪽의 암벽은 마치 긴 성(城)과 같다. 또한 서쪽으로 3리를 가면 비봉폭
이 나타난다. 한 가닥 활옥(活玉)이 차(茶)를 달이는 연기와 같은 하얀 줄기를 형성하였는
데, 위는 곧고 아래는 약간 휘었다. 그 밑에는 푸른 옥빛의 작은 못이 있다. 또 무봉폭이 있는
데, 위에서는 누운 듯이 흐르다가 아래에서는 날아 내리는 폭포가 되었다.
―― 임하 이유원(林下 李裕元, 1814~1888), 『임하필기(林下筆記)』
105.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비봉폭(飛鳳瀑)
106.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무봉폭(舞鳳瀑)
깎아 세운 듯 수백 장(丈)이나 되는 푸른 절벽이 있는데, 폭포 한 줄기가 그 이마에서 비스듬
히 떨어지다가 중간에 바위의 모서리에 갑자기 부딪혀 흩어져 주렴을 드리우는데, 바닥에 닿
을 즈음에는 그 폭이 사오십 무(武)나 된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큰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치고 다리를 뻗은 채 몸을 세우고 목을 빼어 서 있는 것 같다. 산속 사람이 예로부터 ‘무폭
(舞瀑)’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한 자를 더하여 ‘무봉폭(舞鳳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 성재 유중교(省齋 柳重敎, 1831~1893), 『봉황폭기(舞鳳瀑記)』
107.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구룡련(九龍淵)
깎은 돌병풍은 검을 배열해 검푸르고 削屛排劍黝
거대한 심연은 기름을 쌓아 푸르도다 巨壑蓄膏蒼
신령한 용은 몇 년이나 안에 누워 있을까 神物何年卧
날리는 샘물은 만고토록 바쁘기도 하여라 飛泉萬古忙
무지개가 마시는 것은 감히 배울 게 못 되지만 飮非虹敢學
교룡이 울부짖으면 비가 올 테니 무방하도다 吼想雨無妨
평소의 회포 유쾌하게 잠시 읊조리며 暫寄平生快
애오라지 휘파람 한번 길게 부노매라 聊爲一嘯長
―― 죽석관 서영보(竹石館 徐榮輔, 1759~1816), 「《삼연집》의 시에 차운하다(九龍淵
次三淵集韻)」
108.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백정봉(百鼎峰)
바위의 오목한 부분이 대개 수백 개가 된다. 또는 백정봉(百井峯)이라고도 일컫는데, 큰 가
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굽어보면 산과 바다가 만물초와 같은데, 승경은 중향성에 비하면 좀
뒤떨어진다.
해산정은 고성(高城) 관아의 뒤에 있는데, 명종(明宗) 정미년(1547)에 군수 차식(車軾)이
세운 것이다. 여러 봉우리들이 나열해 있고 바닷물은 아득하였으며, 칠성봉(七星峯)과 구암
(龜巖)이 좌우로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영랑호(永郞湖)는 군 소재지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있고 호수 가운데 있는 석봉(石峯)은 남쪽으로 육지에 이어졌다. 또 구선봉(九仙峯)이
있는데, 영랑(永郞)이 놀던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간성(杆城)에도 이와 같은
호수 이름이 있다.
―― 임하 이유원(林下 李裕元, 1814~1888), 『임하필기(林下筆記)』
109.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해산정(海山亭)
110.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영랑호(永郎湖)
111.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현종암(懸鍾巖)
하늘 서쪽 길이 막혀 석주 가로 놓였고 天西路阻石舟橫
밤새 내린 가을 서리에 골짝마다 청량하다 一夜秋霜萬壑淸
아득히 차가운 종소리 먼 절에서 들릴 제 杳杳寒鍾蕭寺遠
푸른 바다 동쪽 끝에 큰 고래 울어대네 滄溟東畔吼長鯨
―― 동주 이민구(東州 李敏求, 1589~1670), 「현종암에서(懸鍾巖)」
112.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해금강(海金剛)
바다 속의 금강산은 더욱더 사랑스러워라 入海蓬山更可憐
험준한 바위 봉우리 골짝이 갑절 정겨웁구나 嵌岩峯壑倍依然
불두와 선인장 같은 봉우리는 삼천 겹이요 佛頭仙掌三千疊
이무기 자라는 만년 비 서리를 겪었네그려 蜃雨鰲霜一萬年
물거품이 화석으로 변했다고 말하긴 어렵고 難道泡漚能化石
엉긴 안개가 형체 이룬 거라 추측할 뿐이네 强求形氣是凝烟
푸른 바다 밑바닥은 두루 비춰 볼 길 없거니 無由遍照靑蒼底
벽해가 겁후의 상전 되는 것만 헤아릴 뿐일세 只算滄桑劫後田
―― 매천 황현(黃玹, 1855~1910), 「해금강에서(海金剛)에서」
113.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삼일호(三日湖)
삼일호는 고성군에서 5리쯤 떨어진 지점에 있는데, 관동팔경(關東八景)의 시작으로서 길이
는 6, 7리가량 되고 너비는 그 길이의 3분의 1이다. 안에는 소라처럼 생긴 36개의 봉우리가
있고, 호수 중심에는 섬이 4개가 있는데 큰 것은 흙이 쌓인 언덕이었다. 서쪽에는 돌 감실(龕
室)이 있는데, 붉은 글씨로 ‘영랑도 남석행(永郞徒南石行)’이라 새겨져 있다. 앞에 있는 바위
는 ‘단서암(丹書巖)’이라 하고, 위에 있는 작은 정자는 사선정이라 한다. 신라 때 영랑(永郞)
ㆍ술랑(述郞)ㆍ남석행(南石行)ㆍ안상(安詳) 등 네 사람이 여기서 놀며 3일을 돌아가지 않
았기 때문에 호수 이름을 삼일호라고 한 것이다.
―― 임하 이유원(林下 李裕元, 1814~1888), 『임하필기(林下筆記)』
114.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환선정(喚仙亭)
솔숲 사이 그림 누각 구름 높이 솟았거니 松間畫閣出雲衢
봉래도의 나는 신선 부를 수가 있으리라 蓬島飛仙定可呼
술은 깨고 밤 깊기에 촛불 불어 꺼버린 채 酒醒夜深揮燭退
맑은 달빛 호수 위에 가득한 걸 바라보네 坐看晴月滿平湖
――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 「환선정에 머무르다(宿喚仙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