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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보(丁福保)의《무량수경전주(無量壽經箋註)》는 팽소승 거사가 쓴 책에 근거한 것이며, 그밖에《화엄염불삼매론》(黃念祖 지음)을 쓴 것은 그가 정종(淨宗)에 정통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황념조 거사는《무량수경》을 평하여이 경을 분명하게 밝히고 선양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그 이유는 사실상 좋은 판본[善本]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황 거사가 이렇게 말씀을 한 이유는 당시에《무량수경》은 모두 5종의 번역본이 있었지만, 문자가 서로 일치하지 않은 부분들이 많아서 불법(佛法)을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취사선택할 방법이 없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진나라 때 번역한 소본(小本)인《아미타경》을 수지하였던 것입니다.
왕용서(王龍舒) 거사 역시 일찍이 회집본을 엮은 적이 있으며,《대아미타경》이라 하였습니다. 이 책은 현재《대장경》속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왕 거사는 오직 4종의 원역본에만 근거하였을 뿐만 아니라,《대보적경무량수회품(大寶積經無量壽會品)》을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의 회집본에는 빠진 부분도 있고, 또 원만하지도 않습니다.
청나라 함풍 연간에 위원(魏源) 거사 역시 회집하였는데, 그는 회집할 때 5종의 원역본을 포함시키기는 했지만, 취사가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에 의거해 경문을 마음대로 고쳤습니다. 인광대사(印光大師)는 이러한 태도를 가장 반대했으며, 이러한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위원거사의 학문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경을 고쳐서는 결코 안 되며, 만약 학인이 모두 워원 거사와 같이 행동한다면, 경의 원래 모습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 말씀하였습니다.
하련거 거사는 박학다식하고 통달한 분으로 종통(宗通)과 설통(說通)을 다 갖추었습니다. 또한 밀종(密宗)의 대덕이면서 현교와 밀교를 원융하게 익혔으므로 그의 회집본 역시 원만합니다. 작년에 저는 마이애미에서 경을 강의한 적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강의를 듣기 위해 참석하였고, 이때 증(曾) 거사가 통역을 맡아주었습니다. 제목은《인식불교(認識佛敎: 한국에서는《불교바로알기》로 삼보제자에서 출간됨)》이었으며, 5일 동안 강의하였습니다. 그때 우연히 외국인 중에서 신통을 얻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증 거사가 책 속의 하련거 거사의 사진을 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외국인은이 분은 살아 있을 때에는 비록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으나 대보살의 화신으로 몸이 투명하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말한 내용 중 몸이 투명하다는 것은 증명할 방법이 없지만, 그 나머지는 모두 들어맞았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하련거 거사는 왕생하기 전에 예언하기를,이《무량수경》회집본이 장래에는 해외에서 중국으로 전해질 것이고, 나중에는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질 것이라 하였다 하니, 그 분의 말씀이 머지않아 실현될 것입니다. 하련거 거사는 분명 이 세상에 다시 오신 분입니다. 그는 본 경을 회집하기 위해 3년 동안 폐관하였고, 원고를 10번이나 고쳤습니다. 거기에다가 혜명(慧明) 노화상의 인증을 거쳤으니, 대단히 신중한 분이십니다.
매광희(梅光羲) 거사는 하련거 거사와는 동학(同學)으로 또한 훌륭한 불교학자입니다. 그는 황념조 거사의 외삼촌이며, 또한 이병남 거사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병남 스승에게서 배웠으니, 저와 황념조 거사와도 어느 정도 인연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광희 거사가 쓴 본 경의 서문 몇 구절이 대단히 간절합니다.
하련거 거사의 교법(敎法)에 대한 안목(敎眼)은 원만하고 밝으며, 문자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으며, 오로지 공력(工力)을 오롯이 하여 오랫동안 닦았으며, 원역(原譯)을 두루 탐구하여 모든 판본을 환히 살펴보았다. 모든 경장(經藏)을 망라하여 5종 번역본이 갖고 있는 현의(玄義)와 미언(微言), 그리고 깊고 오묘한 문자의 뜻에 대해, 상세하게 참구하지 않은 말은 한 마디도 없으며, 서로 대조해보지 않은 글자는 한 글자도 없었으며, 힘써 정확하고 적절하며 명확하게 하여 확실한 근거를 두었다. 이에 원역 속에 있지 않은 뜻은 하나도 없으며, 본 경에서 벗어난 문장은 하나도 없다. 이는 모두 저 광희와 혜명 법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정성에 감응하여 여러 차례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났으나, 지금은 세속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 두려워 자세히 인용하지 않겠다.
황념조 거사의 이 일생의 발원 역시 이 회집본이 크게 광명을 놓아 항상 세간을 비추기를 희망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이 경은 이미 30만권을 인쇄하였으니, 아마도 하련거 거사와 황념조 거사의 소원을 이룬 것 같습니다.
이 경의 수승한 점은 이치에 계합하고 근기에도 계합하는 데에 있습니다. 경전의 교학은 우리들의 현재 상황의 요구에 부합되기도 하고 부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법문이 훌륭하다면, 배워서 당장 이익을 얻을 수 있어야 최고의 수승한 경전이 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경전은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모두가 진여본성 속에서 흘러나온 언어문자인 것이며, 밀교에 근거해서 말하면 바로 진언(眞言)인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진실한 지혜에 머무시며, 중생 역시 진실한 지혜에 머물기를 원하십니다. 보편적 이치[理]의 입장에서 말하면 평등한 것이지만, 차별적 현상[事]의 입장에서 말하면 결코 평등한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높고 낮음[高下]이 존재하며, 반드시 일정 부분의 무명을 깨뜨려 일정 부분의 법신을 증득해야만 비로소 진실한 지혜에 머물 수 있습니다.
만약 교하(敎下)에서 원만한 이해[圓解]가 크게 열리지 않고, 선(禪)을 배우나 철저히 깨닫지 못해 마음을 밝혀 본성을 보지 못하고, 밀종에서 삼밀(三密)이 상응하여 현교(顯敎)와 밀교(密敎)가 융통하지 않으면, 모두가 진실한 지혜에 머물 수 없습니다. 화엄회상에서의 41위(位)의 법신대사는 진실한 지혜에 머물지만, 권교(權敎)의 이승(二乘)은 해당되는 몫이 없습니다.
무량무변한 법문 중에서 만약 염불법문을 선택한다면, 그것이 바로 진실한 지혜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 법문은 한 생[일생[一生]에서 부처가 되는 법문인데, 어떻게 해서 지금 절묘하게도 이 수승한 법문을 만난 것일까요? 《화엄경》에서는십지보살은 언제나 염불을 떠나지 않는다[十地菩薩始終不離念佛].라고 말하고 있으니, 오직 진실한 지혜가 있어야만 이 법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오늘 이 법문을 선택하여 또한 성실하게 수학하기만 한다면, 결코 그들에게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서방의 극락세계에 왕생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즉, 믿음[信]ㆍ발원[願]ㆍ행(行)입니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두 분 법신대사의 왕생 또한 이 세 가지 조건인 것이며, 우리들이 왕생하는 조건[因]도은 법신대사 등각보살과 같습니다. 원인(因)이 평등하면 결과(果) 역시 평등하고, 서방에 왕생하여 과보를 받는 것 역시 서로 같으니, 사토삼배(四土三輩)의 과보가 모두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법문들은 이와 달라서 만일 두 사람이 함께 참선을 하더라도 서로 수행하는 정도가 같지 않으면 과보 역시 같지 않습니다. 오로지 정토법문만이 원인(因)이 같으면 결과(果) 역시 같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한 마디 부처님 명호에 둔다면, 이것이 바로진실한 지혜에 머무는 것[住眞實慧]입니다. 우리들의 수행방법이 시방세계의 등각보살과 둘이 아니며 차별이 없습니다.
진실한 모습을 열어 보인다[開化顯示眞實之際]함은 불법(佛法) 교학의 내용이 우리들에게 우주와 인생의 참 모습을 분명하게 알게 해준다는 말입니다.진실한 이익을 베풀어[惠以眞實之利]는 것은,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이 범부에서 성인이 되기를 희망하고 노력하도록 그 길을 열어 보여주신다는 말입니다. 세간의 모든 이익은 무상하고 일시적인 것입니다. 만약 세간에 도모할 만한 이익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바로 미혹되고 전도된 것입니다. 삼계(三界)안에는 말할 수 있을만한 진실한 이익은 없으며, 진실한 이익은 오로지 삼계 밖에 있으며, 삼계 밖의 이익 가운데는 원만(圓滿)한 것과 원만하지 않은 것이 있을 뿐입니다.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누리게 되는 이익은 모든 부처님과 같습니다. 이는 48대원에서 아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면 우리들은 아미타불의 신체의 모습과 완전히 같게 됩니다. 정보(正報)가 같고, 의보(依報) 역시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법을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부처님 말씀에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금강경》에서여래는 참된 말씀을 하시는 분이며, 실다운 말씀을 하시는 분이며, 여여한 말씀을 하시는 분이며, 속이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며,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다[如來是眞語者, 實語者, 如語者, 不誑語者, 不異語者].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속일 리가 없습니다.
화엄회상에서의 모든 보살들의 과위(果位)는 평등하지 않으며, 지혜와 덕용(德用) 역시 평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방극락세계에서는 범인과 성인이 모두 평등합니다. 세존께서 49년 동안 경전을 설하실 적에 중생의 근기에 가장 맞춘 것은 바로 본 경입니다.
《화엄경》에서는 단지 41위(四十位)의 법신대사들만을 위주로 제도하며, 권교의 이승은 해당되는 몫이 없습니다. 그러나 본 경은 위로는 등각보살을 제도하고, 아래로는 지옥의 중생을 제도합니다. 예외 없이 평등하게 제도합니다. 다른 법문은 중생에 대해 결코 평등하게 제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업장이 대단히 무겁지만 우리가 서방에 태어나기만 하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우리들이 평등하게 일어나고 평등하게 앉으며, 일체 여래 또한 평등하게 일어나고 평등하게 앉습니다. 모두가 아미타불의 학생입니다.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고불(古佛)의 화신으로, 현재는 등각보살의 신분으로 나타나시고, 우리들은 그분들과 함께 공부하는 사이가 되는데, 어찌 퇴전(退轉)할 수 있겠습니까?
정종(淨宗)의 묘(妙)함은불법(佛法)을 떠나지 않고 세간법을 행하며, 세간법을 없애지 않고 불법을 증득함[不離佛法,而行世法;不廢世法,而證佛法]에 있습니다.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지, 혹은 사무가 번잡하거나 간단하거나, 혹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다 수지(修持)할 수 있어서 대단히 편리합니다.
정종(淨宗)의 수행방법은 오로지아미타불명호만이 있을 뿐입니다. 일을 할 때 만약 생각할 필요가 없으면, 일과 동시에 염불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면, 부처님 명호를 내려놓았다가 일을 다 마친 후에 다시 곧 바로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 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어 장소와 시간에 장애가 없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수행은 옆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손에 염주를 들고서 염불을 하면 다른 사람이 보고서 역시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부를 수 있으니, 이 염불의 금강종자(金剛種子)가 심어지게 됩니다. 사회에 염불하는 사람이 많으면, 염불하는 여러 사람의 힘으로 많은 재난들을 피해 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법운(法運)은 1만 2천 년으로, 정법(正法)이 천 년이고, 상법(像法)이 천 년이며,말법이 만년입니다. 1992년은 중국 역사 기록에 의하면 불기 3018년이며, 바로 말법시대의 두 번째 천 년의 시작입니다. 앞으로 말법의 시대가 모두 지나 불법(佛法)이 다 없어질 때가 와도, 이 경은 세상에 100년 동안 더 머무를 것입니다. 그때가 되어도 중생의 무거운 업장이 이 경을 만나면 모두 제도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법문은 이 세계와 타방의 일체 유정(有情)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즐거움을 얻는 구경보리의 법요(法要)입니다.
금년 초에 싱가포르에서 경을 강의하였는데, 당시 이목원(李木源) 거사가 저에게 이런 말을 전해준 적이 있습니다. 싱가포르에 한 노부인이 반년 전에 이 법문을 듣고서 반년 동안 염불을 하였는데, 그 노부인은 때가 온 것을 미리 알았고, 앉아서 왕생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최근의 일입니다. 왕생은 결코 매우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진실한 마음이냐 아니냐에 달려있습니다. 진정으로 가고 싶어 하면서도 이 세계에 대해 여러 가지로 미련이 남아 차마 떨치지 못한다면 희망이 없게 됩니다. 염불하여 왕생을 구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일생에서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세간법이 끼어들어 섞이게 해서는 안 되며, 출세간법 역시 끼어들어 여러 가지로 섞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만을 수지하고, 관상(觀想)조차도 모두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간의 것은 모두가 거짓인 것이니, 오롯하게 깨끗이 툭 털어버리고 걸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를 끝까지 부르며, 일심을 얻을 때까지 불러야 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윤회생사의 업입니다. 세간법은 평소처럼 늘 행하여도 모두가 방해되지 않습니다. 다만 마음에는 담아두어서는 안 되며, 생각 생각마다 아미타불만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송나라 때 황타철(黃打鐵)이란 사람이 바로 좋은 하나의 실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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