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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南伽倻山(충남가야산)♣♡*
충남 가야산
伽倻山抱大明堂:가야산포대명당
精氣誕生曾二王:정기탄생증이왕
崇峻靈峰千瑞繞:숭준영봉천서요
?嶸環脈萬機藏:증영환맥만기장
龜頭石突神奇態:귀두석돌신기태
獅子巖雄太古光:사자암웅태고광
楓色秋?挑興醉:풍색추량도흥취
觀聞觸者總文章:관문촉자총문장
충남의 가야산이 대 명당을 안고 있어
정기가 두 분 왕을 일찍 탄생 시켰었다.
높이 솟은 신령한 봉 천의 서기 여려있고
언틀먼틀 고리 맥은 만기를 감추었네.
거북 머리 돌출하여 신기한 형태인데
사자바위 웅장함이 세월 오랜 광경이다.
단풍 빛 가을바람 흥취를 돋아줌에
보고 듣고 만지는 것 모두가 문장 된다.
2018. 10. 14
萬機: 정치상의 모든 중요한 기틀, 임금의 정무, 많은 비밀.
*♡♣충남 가야산을 오르다♣♡*
덕산상가리-남연군묘-쉬흔길바위-옥양봉-석문봉-거북바위-가야봉
-헬기장-상가저수지-남연군묘-주차장
백두대간 사랑회 2018년 10월 제237차 정기산행을 충남의 명산 가야산으로
단풍구경을 하게 된다
06시에 집을 나와 연화재 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워두고 버스에 오르는데,
오늘은 참가 인원이 30명도 못 채운다.
아침을 나눠먹고 한 번 더 휴게소를 거쳐 산행들머이에 도착해 단체촬영을
하니 11시가 되어간다.
산행은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남연군 묘소 오른쪽 길을 택해 옥양봉을 향해
오르는데, 뒤에 쳐져 천천히 오르기로 한다. 쉬지 않고 오르다가 보니
쉬흔길바위 안내판이 서있는 능선 잿마루에 올라서니 12시 12분이 되고 여기
50 길 높이의 절벽바위 전망대에 올라서니 거의 선두가 되는지라 두 다리
힘차게 딛고 버텨 서서 조망을 즐기며 시조 한 가락을 토해내고 나니 손재익
전 회장이 올라와 함께하여 옥양봉에 올라 사진을 주고받으며 찍으니
12시 20분이 된다.
여기서 뒤를 기다리며 약 10분을 머물고 가파른 계단 길로 내려 한동안
진행하다가 점심을 먹는데, 옥분씨가 삶아 온 계란 한 개와 반찬이라고
가져온 정구지 전만 먹으니 배가 불러 밥은 또 고스란히 남는다.
13시 19분에 일어나 13시 25분에 595봉을 지나 어느 산악회가
백두대간종주를 기념하여 세운 탑이 섰고,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는 석문봉에
도착하니 13시 28분이다. 해발 653m인 이 석문봉(石門峰)은 가야산 주봉은
아니지만 남연군 묘소 명당에서눈 주산이 되어 좌우로 청룡백호의
능맥으로 에워싸며 언틀먼틀한 중앙 맥을 이어 뻗어
끝을 들고 있는 산세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2016년 11월 20일에 동지산악회가 오늘과 같은 코스를 걸은 바 있고,
그에 앞서 2011년10월 16일에 금북정맥 제10차 구간으로 예산군 사천리에서
가루고개까지 종주를 하면서 종주기의 가야산 지점기록에 이렇게 적고 있다.
‘9시2분에 가야산에 도착했으나 정상에는 방송국 중계시설이 차지하고 있어
철조망 가를 둘러 지나는데 바윗길이 험하다. 시설 관리인 한 사람이 있어
대화를 나누니 3일씩 교대근무를 한다고 한다. 능선에 올라서서는 계단을
잘 설치해놓아 조망을 즐기면서 내릴 수 있다. 이 가야산은 예산군과 서산군,
당진군 등 3개 군에 걸쳐 들판에 우뚝 솟아 산세가 당당하고 곳곳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어 은은한 풍경을 자아낸다. 주봉인 가야봉(677.6m)을 중심으로
원효봉(677m), 옥양봉(621.4m), 일락산(521.4m), 수정봉(453m),
상왕산(307.2m)등의 봉우리가 연결되는 다양하면서도 어렵지 않은 등산로가
개설되어 노약자 및 여성, 어린이도 쉽게 산에 오를 수 있다.
또한 정상에서는 서해바다가 아련하게 보이고 봄철에는 철쭉과 진달래 등 각종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등 사시사철 경치가 수려하다. 주변에
백제시대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보원사지, 개심사, 일락사, 보덕사, 원효암등 백제초기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사찰들과 해미읍의 명소로 이름난 해미읍성, 홍성 면천읍성이 있다.’
개인과 단체 촬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출발해 가는데 ‘백년초’와
같이 쳐져 사진 찍어주기 짝이 되어 진행하여 13시 40분에 사자바위,
13시 59분에 소원바위, 14시 01분에 거북바위를 지나 14시 29분에 계단길을 올라
가야봉 정상(678)에 올라서니 김태호 감사가 기다리며 사진을 찍어준다.
뒤쳐진 백년초를 부탁하고 내리는데, 헬기장까지는 금북 종주 시에 걸은 바도
있고 하여 바로 하산키로 하는 데, 처음은 가파르고 돌길이 험했으나 반쯤
내려와서 부터는 길이 좋은 편이다. 14시 59분에 헬기장 길과 만나는 지점을
통과해 15시 10분경에 물을 만나 윗몸만 씻으려고 시작을 했는데
결국 알탕까지 하게 된다.
옷을 갈아입고 걸어 저수지 둑길을 걸어 남연군 묘소에 올라서니
15시 39분이다. 고종과 순종 두 왕을 탄생시킨 명당, 도굴사건, 대원군의
아버지 등으로 이름난 남연군의 묘소이기에 오늘도 다시 올라, 옥새를
상징하는 바위와 흥선 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쓴 비문 등을 사진에 담아
주차장에 도착해 하산을 마치니 16시가 되어 가는데 주차장 맞은편에 자리한
식당에서 하산하는 순서대로 저녁을 먹게 된다.
귀로의 차 안에서 백년초 축시작품도 전달하고…….
*♡♣假道滅?(가도멸괵)♣♡*
진(晋)나라의 헌공이 괵나라를 칠 생각으로 신하인 순식에게 의견을 물었다.
내용인즉슨 괵나라로 가는 중간쯤에 규모가 작은 우(虞)나라가 있어서 반드시
그곳을 지나가야 했는데 묘수가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이에 헌공의 물음에
순식이 답하였다.“괵나라의 왕은 욕심이 매우 많으므로 왕께서 좋은 구슬과
명마를 보내면서 길을 빌려 달라고 부탁하면 가능할 일입니다.”헌공이
순식의 말대로 선물들을 보내니 우나라 왕의 마음에 회가 동하였다.
그렇지만 우왕도 염려가 되어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경으로 궁지기라는
모사에게 이 일을 의논하기에 이른다. 이에 궁지기가 답하기를,“진나라군은
우리나라의 길을 빌려 괵나라를 무너뜨린 다음에 틀림없이 우리 우나라를
무너뜨릴 것이니, 왕께서는 부디 허락하지 마십시오. 우리 우나라와
괵나라는 마치 이(齒)와 입술(脣) 같아서 입술이 망가지면 이가 시린 것처럼
괵나라가 망하면 우리 우나라도 필히 위험해 질것입니다.”라고 간언하였다
그렇지만 궁지기의 충언을 뿌리치고 구슬과 명마에 눈이 어두워진 우나라
왕은 진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여 길을 열어주고 말았다. 그 결과 진나라는
괵나라를 멸망시키고, 회군 중에 다시 우나라를 쳐서 함락시켜 버렸다.
궁지기의 충언을 무시해버린 우나라의 왕은 결국 그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되었다.‘처음에 길을 빌려 쓰다가 나중에는 그 나라를 쳐서 없앰’
을 일러주는 고사(古事)로서 가도멸괵(假道滅?)의 내용이다.
천자문(千字文)에 보인다.
*이 글은 앞서 보낸바 있으나 다시 보내는 뜻은
작금의 나라 꼴과 너무나 유사한 바가 있어 더 짚어보고자 한다.
晋자 대신 文자를, 虞자 대신 李자를, ?자 대신 朴자를 넣어보면
흥미를 끌게 되는데, 혹시라도 한 발 더 나아가
晉자대신 김정은, 虞자 대신 문재인, ?자 대신 트럼프가
될 것 같아 생각들을 해보게 하고자 해서다.
미국 큰 나라야 어찌 할 수 있겠냐만 4년 임기의 트럼프는
지금도 위태롭게만 보여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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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亭(정자 솔) 朴載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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