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토요일 아침에 산책 나가면서 부산시티투어를 2박 3일간 다녀오느라고 바빠서 가마득히 잊어버렸던 5대조 전사(典祀)에 관한 일이 떠올랐습니다.
올해 2월 정기총회에서 배부한 세계도(世系圖)를 전달하기 위해 우리 집 건너편에 사는 원큰댁 장조카님한테 간 적이 있었습니다. 올해 80이 넘으셔서 출입에 불편을 겪는 것을 보았고, 추석에 5대조 묘소에 가보니 벌초가 안 되어있었습니다.
이런 사유로 연락이 오지 않는 것으로 추측하였습니다.
그런 생각이 스친 후 한참을 지났는데 종형(從兄)으로부터 내일 전사에 함께 가자는 전화가 오고 이어서 장손(長孫)으로부터 통보도 받았습니다.
한글 홀기도 점검하고 축문에 쓸 간지(干支)도 확인하여 산신제축문과 시제축문도 준비하였습니다.
셋째 주 일요일은 매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122번지 戌座 5대조 전사(奠祀)날입니다.
옛날에는 후손들이 쌀1말씩 내어서 유사(有司)를 지정하여 돌아가면서 전사(典祀) 준비를 하였고 지난해 유사와 비교가 되므로 정성을 들여 제물을 준비하고 음력날짜로 봉행하여 평일에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회사에 나가는 직장인들은 참여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없는 모순이 있었으며, 학생들도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최근에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여러 가지를 개선하게 되었으니, 10월 둘째 주 토요일은 왕산 곰자리 전사를 봉행하고, 다음 주 일요일은 관음리 전사를 봉행하고, 홀기도 한문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한글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전사가 끝난 후 점심식사도 국밥이나 도시락을 지참하던 것을 식당에서 갈비탕이나 막국수를 사 먹는 것으로 간소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선전씨 필구공 문중에서 전사 보조비로 매년 700,000원을 배부하므로 개인별로 거두던 쌀 1말을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문중 집행부에 감사드립니다.
묘소 입구에 도착하여 약 250m 정도의 산으로 제물을 운반하기 위해서 제관(祭官)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순재 조카한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큰 집에 갔더니 기척이 없어서 어떻게 된 사정인지 궁금하다고 하여서 우리는 묘소 입구에 이미 도착해 있으니 오라고 하였습니다. 춘천 가평을 생활권으로 살다가 최근에 강릉에 내려왔기에 지리(地理)가 익숙하지 않고 재작년에 한 번 온 적이 있어 자신이 없어 하였습니다. 전화연락과 다른 제관들의 차를 뒤따라서 장소에 도착하는 에피소드(episode)가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제관이 7명이었는데,
올해는 13명(윤재 내외, 찬득, 찬균, 우찬 내외, 성표 내외, 호웅, 과웅, 찬흥, 찬진, 순재)이었습니다.
먼저 산신제는 성표 아저씨가 초헌관을 하였습니다.
이어서 묘제에서는 초헌관 윤재, 아헌관 찬진, 종헌관 찬흥, 축관 찬균, 집례 과웅, 사준 호웅으로 한글홀기에 따라 정성껏 봉행하였습니다.
간단히 음복을 하면서 종사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전 번 이사회에서 전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여비를 지급하자는 안건이 있었음을 이사들이 말씀하였습니다. 이 안건을 듣고 강릉지방 여러 성씨(대표적으로 진주강씨, 양천허씨)들이 이미 시행하고 있음을 여러 제관들이 이야기 하였습니다.
제관들이 대체적으로 공감하였으나, 참여하는 학생들은 제외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저는 학생들도 전사에 대한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도서상품권을 주자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오늘 모인 제관들이 전부 60세 이상이어서 앞으로 조상을 추모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도 나누었습니다.
묘소에서의 행사가 끝난 후 교동에 있는 마당갈비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하면서 11월 첫째 주 일요일에 광명에서 봉행하는 충근정량 호성공신 선조의 시제 참여에 대하여 의논하였습니다.
강릉 왕산에 주로 거주하는 임하군파와 합동으로 버스전세를 내는 일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하고 산회(散會)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