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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번호 | 6422 | ||
성명 | 전영균 | 한자 | 全榮均 |
이명 | 없음 | 성별 | 남 |
생년월일 | (1903) | 사망년월일 | 1919-03-01 |
본적 | 강원도 홍천 乃村 物傑 | ||
주소 | 江原 洪川 乃村 物傑 |
포상정보
운동계열 | 3.1운동 | 포상년도 | 1990 | 훈격 | 애국장 |
공적개요 (한글병기)
1919.3.1 江原道 洪川郡 乃村面 物傑里에서 太極旗를 높이 揭揚하고 1,000餘 群衆과 함께 獨立萬歲를 高唱하며 示威中 倭憲兵이 쏜 銃彈에 맞아 現場에서 殉國當한 사실이 확인됨.
1919.3.1 강원도(水原道)홍천군(洪川郡)내촌면(乃村面)물걸리(物傑里)에서 태극기(太極旗)를 높이 게양(揭揚)하고 1,000여(餘)군중(群衆)과 함께 독립만세’(獨立萬歲)를 고창(高唱)하며 시위중(示威中)왜 헌병(倭憲兵)이 쏜 총탄(銃彈)에 맞아 현장(現場)에서 순국당(殉國當)한 사실이 확인됨.
공훈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강원도 홍천(洪川) 사람이다.
1919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乃村面 物傑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곳에서 자체적으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순국 8열사(殉國八烈士) 중 한사람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이곳은 면사무소나 헌병파출소도 없는 마을이었으나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을 연결하는 물화교류(物貨交流)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행정구역에 관계없이 군내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만세운동도 물걸리에서 일어났으며 이곳 주민이 주동하여 부근의 여러 부락 주민을 모아서 일으켰던 것이다.
그는 1919년 4월 3일 이곳에서 태극기를 높이 게양하고 이문순(李文淳)의 선창에 따라 1천여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하던 중에 일헌병이 쏜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3·1運動實錄(李龍洛) 834面
구국의 등불(殉國八烈士)(洪川郡 敎育廳) 63∼71面
紀念碑文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570∼573面
太白의 邑面(上) (江原日報社) 130·131·158·159面
[출처]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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