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일요일.
나도 오랜만에 다정다감한 남자이고 싶었다.
집사람을 설득하여 영화 ‘트로이’를 보러 가기로 하였다.
뭔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
누가 모두 낳았단 말인가.
게으른 우리 부부까지 나왔으니 사람이 많을 수 밖에.
백화점과 함께 있는 어느 영화관 앞은 사람들이 넘치고 또 넘쳤다.
우리가 예약한 영화는 ‘트로이’, 오후 2시 45분.
천천히 점심을 먹고 가면 시간이 딱 좋겠다 싶었다.
‘맛 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
내 입맛에 그만인 냉면집이 10층 식당가에 있었다.
‘아이쿠, 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이곳도 벌써 사람들이 넘쳐 나고 있었다.
번호표를 주면서 15 분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부부처럼 번호표를 들고 모두들 ‘당첨’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 한끼를 해결하는데도 이렇게 힘들어 기다려야 하다니,
세상이 좋아진 것인지 아닌지.
20여분을 기다리니 드디어 ‘당첨’
‘물 하나, 회 하나 그리고 사리 하나’
숨도 쉬지 않고 서둘러 주문하였다.
냉면이 오기까지 그 시간이 또 그렇게 길고 길 줄이야.
애꿎은 육수를 두 그릇이나 먹어 치웠다.
그런데 고 놈의 육수 맛, 어찌 깊은 속을 후리는지, 끝내 주었다.
드디어 ‘맛 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 하면서 나왔다.
우린 말을 거의 하지 않고 먹는 데에만 집중하였다(실제로 할 말도 별로 없다).
정말 ‘맛 좋은 냉면’이어서였는지, 기다리면서 이미 맛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린 ‘함포고복’.
거기에 ‘트로이’를 보러 갈 것이니 뭐가 더 부러울 것인가.
얼마전 훑어본 그리스 신화를 생각하면서, 오늘 ‘트로이’는 어떨까 조금 기대하였다.
그런데, 그런데, 막상 영화를 따라가다 보니 이것은 신화가 아니었다.
실망 또 실망.
몰려오는 졸음을 쫓아내느라 나는 온통 깜박깜박하였다.
‘아빠, 효자동 이발사나 살인의 추억을 보셔요.’
영화라면 이미 매니어 수준인 큰넘의 충고를 들었어야 했었다.
신화를 따라 상상을 하다 보면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만날 수 있다 했는데,
권력에 대한 야망, 물질에 대한 탐욕 그리고 사랑에 대한 절규를 만날 수 있다 하였는데,
영화 ‘트로이’에는 신화가 하나도 없었다.
단지 난잡한 칼싸움과 아킬레스로 나오는 브래드 핏의 느끼한 근육질만 있었다.
거기에, 또 원본 그리스 신화와 다른 이야기는 나를 더 헷갈리게 하고 말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효자동 이발사’ 나 ‘살인의 추억’을 만나러 가야겠다.
졸립지 않아야 할 터인데......
내가 졸리면 좋지 않은 영화, 내가 졸리지 않으면 좋은 영화.
첫댓글트로이를 보고 나오는 복도에서 뒤에 따라오던 20대 여자애들의 하는 말. "우리 작은 엄마가 '브래드 피트의 알몸 모습이 3번 나오는데 정말 멋있더라' 고 얘기해서 나도 자세히 봤는데 과연 너무 너무 멋있더라" 영화를 보는 관점을 달리하면 영화를 좋아할 이유는 101가지도 넘을 겁니다.
첫댓글 트로이를 보고 나오는 복도에서 뒤에 따라오던 20대 여자애들의 하는 말. "우리 작은 엄마가 '브래드 피트의 알몸 모습이 3번 나오는데 정말 멋있더라' 고 얘기해서 나도 자세히 봤는데 과연 너무 너무 멋있더라" 영화를 보는 관점을 달리하면 영화를 좋아할 이유는 101가지도 넘을 겁니다.
그냥씨의 감상은 어떠하였는가? 그냥씨가 만족하고 흐뭇했다면 박동희가 졸리고 사기 당한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근데 살인의 추억을 아직도 하나? 머리나 깎어!
트로이가 숨막히게 재미있었다는 어느 중년남성의 권유로 보러 갈 예정이었는데 이걸 어쩐다아? 그냥씨! 어떻게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