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제(纛祭) 재연행사 소개
둑제(纛祭)와 둑기(纛旗)
둑제는 국가의 군사권을 상징하는 제사로서 고려시대부터 그 기록이 나오기 시작하여 조선 성종 때 편찬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소사(小祀)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제사는 유일하게 무관들이 주관하여 지내는 제사라 합니다.
둑(纛)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임금이 타고 가던 가마 앞, 또는 군대의 대장 앞에 세우던 큰 의장기(儀仗旗)라고 나오는데, 이를 ‘둑기’라고 하였습니다. 이 둑기는 삼지창 아래에 붉은 수술(털)을 사람 머리처럼 붙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까지도 둑기를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데, 서울의 뚝섬이 원래 그 사당이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 왕들은 이곳에서 매 사냥을 자주 하였는데, 병사를 사열하는 연무장(演武場)으로도 사용하였습니다. 이 연무장 근처에 둑신사(纛神祠)를 세우고 전쟁의 신인 치우천왕을 상징하는 둑기(纛旗)를 두어 제사를 지냈습니다.
뚝섬 표지석에 있는 글을 옮겨 적어 봅니다.
“<뚝섬>
뚝섬은 한강과 중랑천으로 둘러싸인 살곶이벌 (箭串坪, 전관평) 일대로 독 또는 둑(纛)과 관련된 지명이다.
둑이란 무신을 상징하는 치우천왕의 모습을 본뜬 것으로 큰 창에 소의 깃털을 꽂아 만들었다.
매년 봄 경칩과 가을 상강 때 그리고 왕이 군대를 열무(閱武)하거나 출병을 할 때 이곳에 둑기를 세우고 둑재를 지냈던 곳이라 하여 뚝섬으로 불리게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도 둑재를 지냈다고 난중일기에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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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기가 전주의 전라감영 관찰사 집무실인 선화당에 있는 것은 군통수권자인 관찰사에게 둑기가 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수청년유도회(회장 : 류찬길) 주관 纛祭 재연행사를 보면서 10년후에 현재 종중을 생각하면 젊은이들에게 종중에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둑제(纛祭)를 무관들이 주관했기에 조선조에서 문관들이 소사(小祀)로 분류하고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현재 종중은 80대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종중일에 기회를 주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纛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