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나리자 (Mona Lisa) 」 그림의 궁금한 것들
1) 모나리자 그림 값은 얼마나 될까요 ?
* 하루 2 만여 명이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해서 「 모나리자 」 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 ‘ 모나리자의 비밀을 간직한 신비
의 미소 ’ 를 보러 오는 것일까 ?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평생에 그린 20 여 점의 그림 가운데 ‘ 최후의 만찬 ’ 과 함께 전 세계인이 주목을 받고 있는
「 모나리자 」 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 명작 「 모나리자 」 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
①보험료로 환산한 값은?
*1962년도 미국 워싱톤과 뉴욕에 모나리자 그림을 순회 전시를 위한 보험에 1억$로 감정을 했다. 이것을 기준으로
2019년도이면 57년이 지났으니 현재 모나리자 그림의 보험보장 가격은 7억 6천600만 $쯤 된다. 한화로
약 9,073억원 정도로 세금 수수료를 포함하면 약 1조원을 넘는 가격이된다..
②루브르의 연간 입장객 수에 따른 계산
◉ 모나리자의 가격에 대한 여러 자료들이 나름대로 계산해서 나와 있지만 , 어떻게 수긍할 수 있을까요 ? 참고로 적어
둡니다 .
* 한 자료를 보면 루브르 연간 입장객 수 : 830 만명 ( 하루 22,000 명 )
* 입장료 : 15 $
* 수익률 또는 환원이률 5% 로 계산해서 약 40 조원 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온 것이 있습니다 .
참고로 2015 년 2 월에 사상 최고가격에 팔린 그림이 ‘ 폴 고갱 ’ 의 ‘ 너 언제 결혼하니 ?’ 가 약 3 억 달러 (3,269 억원 ) 에
개인이 산 가격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다 .
2) 그림속의 모델은 누구일까 ?
※ 오늘날까지 일치된 결론은 나오지 않았으며 여러 설이 있는데 두 가지만 적어 본다 .
① 피렌체의 여인이 모델 -
* 레오나르도의 첫째 전기 작가인 ‘ 조르지오 바사리 ’ 에 의하면 ‘ 리자 게라르디니 ’ 라는 피렌체 여인이 ‘ 모나리자 ’ 의 모델
이었다고 한다 . 그녀의 남편은 피렌체의 비단장사인 ‘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 ’ 이며 , 상인의 아들 ‘ 안드레아 ’ 의 출산을 기념
하여 이 작품을 의뢰했다는 것이다 .
★ 2004 년 이태리 학자 쥬세페 팔란티니는 이 모나리자가 1479 년생으로 24 세 때 레오나르도의 모델이 되었으며 , 5 명의
자녀를 낳고 1542 년 63 세로 죽어 상오슬라 수도원에 묻혔음을 밝혀냈다 .
②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자신이 모델 ?
* 뉴욕의 여류 예술가 ‘ 릴리인 슈워츠 ’ 는 컴퓨터 작업 중에 레오나르도와 모나리자의 초상화를 컴퓨터로 합성한 결과
두 사람의 얼굴이 거의 일치 한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모나리자의 모델을 레오나르도 자신이었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
레오나르도가 수년간 모델 없이 미완성 작품을 계속 그리다보니 자신의 얼굴을 모델로 삼았을 것이라고 한다 .
★ 이외에도 몇 가지 풍설이 더 있으나 생략한다 .
3) 「 모나리자 」 그림의 재료와 크기는 ?
* 화판은 포플라 나무로 된 목판이며 . 유채 ( 안료에 기름사용 ) 를 사용하였다 .
* 작품 크기는 77×53cm 이다 . (20∼25 호 사이정도 )
1
4) 제작 연대는 ?
* 재작 연대는 1503-1506(1507) 년경이며 피렌체에서 시작하여 두 번째 밀라노 체류 시기에도 그렸으며 , 죽기까지 10 년
간 가지고 다녔던 그림이다 .
5) 「 모나리자 」 가 미완성인 까닭은 ?
★ 그리던 중 여인 ( 모델 ) 이 남편 따라 외국 여행을 가서 그만 병으로 사망하여 더 이상 못 그렸다고 하는 풍설 .
★ 레오나르도가 「 모나리자 」 를 완성하지 못한 것은 레오나르도의 오른쪽 몸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라고 이탈리아 미술
사학자인 ‘ 알렉산드로 베초시 ’ 가 발표했다 .
레오나르도의 오른쪽 팔에 붕대처럼 보이는 천을 감고 있는 초상화가 발견됐고 . 레오나르드는 왼손잡이라 그림을
완전히 그릴 수 없게 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로 작업하는데 힘들 것이라며 이런 마비증세는 손가락 마비증세로
올 수도 있었다고 한다 .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
6) 「 모나리자 」 는 왜 눈썹이 없을까 ?
★ 그 당시에는 넓은 이마가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져 여성들 사이에 눈썹을 뽑아 버리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
이 여인도 눈썹을 모두 뽑아 버려서 -
★ 학자 파스칼 코트는 미술 복원 중에 부주의로 눈썹이 지워졌을 가능성을 제기함 .
★ 2009 년 프링스 미술전문가가 특수카메라를 사용하여 분석한 결과 레오나르도는 3 차원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유약을
여려 겹으로 특수처리 하였고 가장 바깥에 그러졌던 눈썹이 오랜 세월동안 화학반응의 영향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주장을 하였다 .
7) 「 모나리자 」 가 루브르 박물관까지 간 경로는 ?
( 역사적 경로에 정확을 기하기 어려움 )
* 레오나르도가 미완성인 「 모나리자 」 를 보관하다가 말년에 프랑수아 1 세의 프랑스 왕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로 이사
하여 프랑스 왕에게 「 모나리자 」 를 팔았다 . 1500 년대 초로 4 천 에퀴에 사들인 왕은 그림을 퐁텐블로 성의 욕실에
걸려 두었다고 함 . 그 후 여러 곳을 거쳐서 나폴레옹이 집권하자 자신의 거실에 한 3 년간 걸어두고 ‘ 마담 리자 ’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
1804 년 생 - 클루성 ( 城 ) 에 들렸다가 루브르 박물관으로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
8) 모나리자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라는 의미는 ?
모나리자의 표정이 웃고 있는 건지 , 우울한 건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 표정 때문이지요 .
9) 모델의 기분전환을 위해 악단초빙 -
모나리자가 모델을 하고 있을 때 안타깝게도 자식을 잃고 슬픔에 젖어 있을 때여서 네오 라르도는 광대와 악사를 불러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서 그녀를 웃기려 해를 썼지만 그 때 억지로 웃는 웃음이 바로 모나리자의 웃음이 된 것이라
는 설도 있다 .
10 ) 모델의 질환
이탈리아 팔레르 모대 비토 프랑코 교수는 모나리자 지오콘도 부인의 건강이 좋지 않는 것으로 작품 속에서 나타
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
모나리자가 왼쪽 눈꺼풀에 노랗게 지방이 축척돼 형성된 안검황색증이 보인다 ‘ 고 설명한 다 . 그러면 원인은 지오콘도
부인의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
◉ 동시대 내과의 들의 < 모나리자 > 에 대한 병명 진단
모나리자에 대한 병명은 ‘ 갑상선 비대중 ’, ‘ 사시 ,’ ‘ 안면 마비증세 ’, ‘ 습관적인 이갈기 ’ 와 ‘ 근육의 비대중 ’, ‘ 기능저하증 ’
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
11)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중에 스푸마토 기법의 작품 ,
* 최후의 만찬 . * 그리스토의 세례 * 모나리자 .
최후의 만찬
그리스토의 세례
12) 레오날드 다빈치의 성격 , 병력과 동성연애
* 다빈치는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밑에서 자랐다 . 그는 주의력이 산만한 예술가로 언제나 산만하고 빨리
싫증을 내는 일이 많다 .
* 1515 년 뇌졸증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 < 주의 집중력 장애 (ADD)>
* 그는 완성된 그림이 겨우 20 여점에 불과하다 . 조각도 미완성으로 손상되고 파괴된 것이다 ,.
* 반면에 가장 많이 남은 것이 노트인데 악 1 만 3000 여 쪽에 달하는 분량으로 분실된 것이 더 많을 것으로
본다 ,
* 다빈치는 다른 네명의 청년들과 공식적으로 남색행위를 하여 고소당했다 . 메디치 가문이 통치하던 시절 ,
동성연애는 용인되었지만 남색행위는 불법이었다 . 사형으로 다스려야 했으나 정치적관계로 혼방되었다 .
13) 「 모나리자 」 의 수난사건에 대하여 -
①도난과정과 범행자
*100 년 넘게 루브르 미술관에서 전시되어 있던 「 모나리자 」 가 1911 년 8 월 22 일에 사라 졌다 . 그림이 사라
지자 박물관은 물론 휴관하고 프랑스 국경까지 폐쇄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
도난은 아르헨티나인 사기꾼 발띠에르노의 사주를 받은 이탈리아인 페루자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
페루자는 전년도에 도난을 막기위해 그림 주위에 유리벽을 시공한 작업부였다.
사주자 발티에르노는 6점을 모사해서 미국 부호들에게 팔기도 했으며, 진품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자 실행범인
페루자가 진품을 가져가 돈이 곤궁해지자 2년뒤에 피렌체의 화상에게 진본을 매갹하려다가 경찰에 검거되었다.
진본 모나리자는 이탈리아 전역을 순회전시한 후 1914년에 프랑스로 반환되었다..
② 범행 동기(설)
*사주자인 아르헨티나인 사기꾼 발티에츠노는 모사를 해서 팔려는 것이 동기라고 했다.
*다른 범행 동기 설로는 「 모나리자 」 를 조국의 품으로 돌려주고 싶다 . 이탈리아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약탈해
간 나폴레옹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다고 했다 .
( 도난 과중과 범인에 대한 기록도 조금 다른 것도 있다 )
③ 모나리자그림이 도난당한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경위
모나리자의 도난사건 1911 년 8 월 22 일 화요일 아침 문을 열자마자 한 프랑스화가가 모나리자를 스케치하러
루불 박물관 에 입장 , 모나리자가 걸려 있던 데로 갔었는데 , 모나리자는 없고 빈 벽만 보였다 . 화가는 경비에게
모나리자가 없는데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 . 경비는 잘 몰라 박물관 담당에게 물어 보았다
④ ‘ 모나리자의 도난사건 ’ 에 연류 된 피카소
1911 년 8 월 22 일에 일어났던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모나리자 그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
이 모나리자 절도 사건에 피카소가 연루되어 감옥까지 갈 번한 사연을 알아보자 ..
피카소의 친구인 시인 기욤 아플리네르가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벨기에 출신 친구 게리 피에르란 사람으로
1911 년 루브르에 갔다가 허술한 경비의 눈을 피해 작은 돌에 새겨 만든 리베리아 조각상 두 점을 코드속에
감추어 나왔다 . 이것도 두 번이나 훔쳤다고 한다 . 게리 피에르는 훔친 조각상을 친구 시인 기욤 아플리네르
에게 주었고 아플리네르는 다시 피카소에에 선물하였다 .
그 후 1914 년 피에레가 경마에서 많은 돈을 잃자 , 친구 기욤 아플리네르가 그를 구해 주었다 . 이에 고마움을
느낀 게리 피에르가 또 루불어 박물관에 가서 작은 조각상을 훔쳐서 감사의 표현으로 시인 기욤 아풀리네르
에게 주었다고 한다 .
얼마 후 잃어버린 모나리자에 관한 소식이 신문에 대서특필로 나자 , 게리 피에르는 그 상황을 이용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갖고 자신이 훔친 예술품을 신문사에 가져가서 훔친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자 ,
이 소식을 들은 경찰은 피카소와 기욤 아풀리네르를 감옥에 가두어버렸다 . 나중에 이들의 적극적인 해명으로
모나리자 사건과는 관련이 전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석방하였다 .<, 옮긴 글 >
14) 그 외 각종 사건
① 산을 뿌린 사건
+1956 년 신원미상의 사람이 산을 모나리자에 뿌려 그림 하단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
② 돌맹이를 던진 사건
*1956 년 12 월 30 일에 「 모나리자 」 의 팔굼치에 돌맹이가 날아 왔댜 . 범인은 볼리비아 ‘ 빌레 가라 ’ 라는 남자가
돌을 던진 것이다 . 범행 동기는 비록 경찰서 유치장일망정 따뜻한 곳에 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는 것이 간절
한 소망이라고 했다 .
③ 찻잔을 던진 사건
*2009 년 8 월 2 일 한 러시아 여성이 찻잔을 모나리자를 향해 던졌다 . 방탄유리 상자에 들 어 있어 해를 입지
않았지만 이 여성은 체포되어 정신질환 유무와 동기를 알아보았다 .-5-
동기는 프랑스 국적을 못 받아 화가 나서 그랬다고 했다 . 정신질환은 이상이 없고 그 후 석방되었다 .
15) 「 모나리자 」 의 해외 나들이 ( 전시 ) 는?
①1962년 12월부터 1963 년 3월까지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 순회전시 .
해외 전시는 거의 하지 않았는데 , 1961 년 케네디의 프랑스 방문 때 프랑스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가 재클린의 매력에 빠져 , 미국 전시 약속을 해버렸기 때문에 이 전시
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 미국 순회전시를 위한 보험에 1 억불로 감정하였다 .( 현가 약 6 억 7 천만 달러 )
② 1974 년 4 월 20일부터 6월 10일까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전시 .
당시에 이번 일본전시가 해외전시로 마지막이라고 프랑스 정부가 선언했으며 , 일본 전시 때 4 천 3 백만 달러의
보험에 들었고 . 1974 년 4 월 17 일 일본에 도착하자 국빈대우로 30 여명의 무장경호를 받으며 장갑차로 박물관
까지 수송하였다 .
19 일부터 관람시에 3 명이 한 줄로 서서 16 초씩 관람하도록 제한하였다고 한다 .
③1974년 소련 모스코바에 잠시 전시
일본에서 전시를 마치고 루브로로 가지않고 바로 모스코바에 잠간 들러 전시했다.
※ 「 모나리자 」 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과 각종 재해방지를 위해 방탄유리로 씌워진
신세가 되었지만 , 하루에도 2 만여 명의 방문객이 루브르 박물관을 찾아와서 모나리자를
보는 것이다 . 이 그림은 미완의 명작 , 표정의 수수께끼 , 배경의 언발런스 , 보는 이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준 스푸마토 기법 , 긴장과 감정이 함축된 작품으로 인류 역사상 제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불후의 명작으로 온갖 명예를 독차지하고 있다 .
카페 게시글
아름다운 예술...
네오날드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에 대한 여러가지 궁금한 것들?
두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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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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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누군동 확실치는 않으나 연세가 비슷한 동연배시라 정회원으로 등업혔니더....ㅋ
누군지 우선 밝히니더. 나도 4기 7반 김종환이 뒷번호 남종국이며 풀섶회 회장으로 활동. 지금 부산에 살며 근래의 상황은 '시사 뉴스 저널 7월호' P110-113에 게재되어 있음.
이달 말쯤되어 '스포츠 서울'에 기사가 나올 예정임. 너무 죄송. 두메는 닉네임. 저서도 있음.
아 ! 그 멋재이 친구 남종국 ! 참으로 반갑소야 앞으로 자주 자주 들러 소통함서리 지냅시다 친구 !!!연세도 연세니 만큼 이거이 사는거 아니것소 !!! 카페지기 2반 김수봉 인사허요.스포즈서울 발간되면 한부 보내주소 대구서 사지면 다행이고...카페에 안내도 할 겸 !
2반 김수봉 멋진 동기 잘 지냈소. 김수봉 동기의 멋지다는 자랑을 잉삼는 친구가 부산에도 있소
두메님 반갑소이다. 부산에 대구교대 졸업생 카페가 있었는데 지금은 키페 이름도 잊었지만 몇년 전 자주 들렀었는데. 멋진 활동이 기대됩니다. 병춘이 수영이도 잘 있는가? 난 1반 윤경식
반갑구만요. 처음으로 동기회 카페에 들어왔지만 고향집을 찾은 듯, 동기님들의 체취가 그 옛날 그대로 이군, 부산 병춘이는 대구얘기 많이 하지, 수영이는 나와 동영상 리레이 감상 멋있지! 윤경식 안부 전하겠어. 좋아할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