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간 월요일; 2020.7.27.; 이기우 신부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올 무렵인 조선 후기에는 거상(巨商)으로 알려진 임상옥(林尙沃. 1779 ~ 1855)이 살았는데, 그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의 제목이 상도(商道)였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세상의 모든 일을 종교적인 일처럼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뜻으로 길 도(道)자를 많이 붙여 왔는데, 상업에 대해서도 상업의 길 즉 상업으로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 길이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는 본래 최인호가 쓴 동명의 소설을 MBC에서 드라마로 만든 것으로서, 줄거리도 흥미진진하거니와 내용 안에는 그 제목답게 상업이 추구해야 할 도의적 경구가 들어있습니다.
그 첫째 경구는, “재상평여수(財上平如水) 인중직사형(人中直似衡)”로서,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말인데, 풀이하자면 재물은 물처럼 흘러야 한다는 말은 고이면 썩는 물처럼 재물을 나누지 않으면 없어진다는 뜻이고, 사람은 저울처럼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정직하지도 않고 신용도 지키지 않으면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보다 더 유명해진 둘째 경구는, “상즉인(商卽人)”으로서 장사가 사람이라는 말의 뜻인 즉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고 풀이될 수 있는 말입니다.
이 두 가지 경구와 함께 더 유명해진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평소에 늘 가지고 다니면서 교훈으로 삼았던 계영배(戒盈杯)였습니다.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는 술잔’이라는 뜻입니다.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술이 일정 이상 차오르면, 술이 넘친 만큼이 아니라 모두 새어 나가도록 만든 신기한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합니다. 이 잔에는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지나침을 경계하는 선조들의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임상옥은 자신이 늘 지참하던 계영배의 밑바닥에 위 두 경구를 새겨놓고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역관 집안 출신으로서 젊은 시절부터 중국어를 익히러 중국에서 생활해 보았기 때문에 붉은 색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심리를 알고 있었던 임상옥은, 품질 좋은 고려 인삼이 쉬이 상하기 때문에 오래 보관하기가 어려워서 조선 내에서만 거래가 될 뿐 거리가 먼 중국에까지는 팔 수 없었던 사정 때문에 고심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인삼을 찌면 붉은 색이 도는 삼 즉 홍삼이 되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색깔로 변하는데다가 보관하기도 쉽고 효능은 찌기 전보다 더 좋아질 수 있다는 데 착안하여 중국인들과 홍삼교역으로 막대한 이윤을 남겨서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임상옥은 큰 돈을 벌었지만 과연 계영배의 교훈과 그 밑바닥에 새겨넣은 경구대로 막대한 재산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가난한 백성을 돕는 데 썼습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에 보면,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활약하던 시절의 남유다왕국에서는 사람들이 교만과 탐욕에 눈이 어두워져서 하느님께서 그를 시켜서 경고를 하셨습니다. “나도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썩혀 버리겠다. 이 사악한 백성이 내 말을 듣기를 마다하고, 제 고집스러운 마음에 따라 다른 신들을 좇아 다니며 그것들을 섬기고 예배하였으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 띠처럼 되고 말 것이다.” 만약 계영배의 교훈과도 같은 하느님의 이 경고 말씀을 깨닫고 유다의 백성이 하느님께 순종했더라면 바빌론 세력에 의해 멸망당해서 유배 생활을 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빌론 유배의 쓰라린 역사적 교훈을 거울삼아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던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복음선포의 전망을 겨자나무에 담아 가르치셨습니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높이 자라서 하늘의 새들이 와서 둥지를 틀 수 있을 정도로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를 이 겨자씨와 그 나무에 비기셨다는 뜻은 하느님 나라의 현실 역시 그 시작은 보잘것없이 작아도 그 끝은 성대하고 번성하리라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의 현실이 겨자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라날 수 있으려면 그 시작이 교만이나 탐욕이 아니라 겸손과 순종이어야만 가능합니다.
시작 단계부터 겸손하게 하느님의 뜻에 맡겨드리면 그 일은 비록 우리 손을 거칠지라도 하느님의 일이 될 수 있지만 교만하게 굴면 그 일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일이 되고 말아서 성패를 장담하기 어려워집니다. 또한 성장 과정도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섭리에 따라 순종할 수 있으면 잠시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그 성대한 끝이 보장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이 섭리를 무시하거나 거역하면 잠시 잘 나갈 수는 있어도 그 성패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계영배의 교훈에서처럼, 겸손의 덕목으로 우리가 행하는 사도직을 겨자씨처럼 작게 시작하고 순종의 덕목으로 섭리에 순종하면, 넘치는 법 없이 순조롭게 사도직이 이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순종, 성실, 겸손....모든 생활에서 항상 지녀야 할 덕목이라 생각됩니다.
예, 겸손하게 하느님의 뜻에 맡겨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