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개와 더불어 사람과 교감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단일하지 않다. 고양이는 사람 위주로 적응하는 개와 달리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도 자신의 행동방식 대부분을 유지해왔다. 게다가 고양이는 무리 생활을 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동물이다. 일단 가축화가 되면 자신들만의 습성이 약화되는 여타 동물들과는 다르다. “인류학자인 마르셀 모스는 ‘인간은 개를 가축화했다. 그러나 고양이는 인간을 가축화했다.’고 말했다. 이 당혹스러운 판단은 기존의 동물 가축화 이론을 뒤집는 동시에 개와 고양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수많은 논쟁을 야기했다.” -데틀레프 블룸 지음, 두행숙 옮김, 『고양이 문화사』, 들녘, 2008, 252면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에 대한 역사는 명확하지 않다. 고고학자들은 이집트의 벽화나 무덤을 통해 인간과 고양이의 공생이 시작된 원인이 유목 생활에서 농경사회로의 변화 때문이라 추측하였다. 유목민들은 목초지를 따라다니며 이주하였고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기에 유목민과 고양이는 서로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농경사회로 변모하면서 곡식을 저장하는 정착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이때 저장된 곡식이 쥐 떼들에게 약탈의 대상이 되면서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주목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고양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조선시대 문인들도 이러한 궁금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궁금증을 문헌과 실험을 통해 검증한 이가 이익(李瀷)이다. 조선문인 대부분은 고양이가 중국에서 조선으로 건너왔다고 믿었지만, 그러한 고양이가 중국의 토착 동물인지 외국에서 유입된 동물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문헌에 의하면 고양이는 서역에서 유입된 동물이다. 중국 명나라 양종(楊淙)의 『사문옥설(事文玉屑)』에서는 당나라 때 삼장법사가 인도에서 불경을 얻어 올 때, 쥐가 불경을 뜯어 먹는 것을 막기 위해 함께 데려온 것이라 하였다. 이 이야기는 중국은 물론 조선시대 민간전역에 유포되어 사실처럼 믿어졌다. 조선에서 이 기록에 대한 검증은 이익보다 먼저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는 삼장법사가 당나라 태종 때 인물인데, 한나라 때 기록인 『예기(禮記)』에서 고양이의 기록이 이미 등장하기 때문에 삼장법사가 고양이를 데려왔다는 이야기를 허탄한 것이라 규정하였다.[三藏乃唐太宗時僧, 其說誣矣.] 이수광보다 후대 사람인 이익은 이 기록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고양이의 유입과 관련된 다른 설에 주목하였다. 그는 『본초강목』에서 ‘고양이는 한나라 때 장건(張騫)이 서역 지역에서 데려왔기 때문에 코가 늘 차며 하지 때만 따뜻하다.’라는 기록을 검증하게 된다. 이를 확인하는 방법은 실제 하지 때 고양이의 코를 만져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고양이의 코를 만지기 위해서는 하지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행히 하지가 그리 멀리 않다면 큰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어제가 하지였다면 최대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고양이의 코를 만지기 위해서는 고양이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익이 고양이를 길렀는지는 알 수 없다. 집고양이가 없다면 길고양이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야 했을 것이다. 한 번쯤은 경험할 수도 있겠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는 사람에게 자신을 그리 쉽게 허락하지는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하지가 되었고, 집고양이든 길고양이든 그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고양이가 마침 옆에 있다. 이익은 그간의 기다림과 궁금증을 일시에 해소하기 위해 떨리는 손을 고양이의 코에 갖다 댔다. 하지만 고양이의 코는 차가웠다. 이익은 고양이를 더욱 세밀하게 관찰하였다. 한밤중에 고양이의 털끝에서 불빛이 생기고 털이 꼬부라지는 것을 바라보게 되었다. 장건이 고양이를 서역에서 데려왔다는 설은 거짓이었다. 이익은 전문(傳文)으로만 지식을 검증하는 과정이 아닌 실험을 통해 문헌 정보를 검증하였다. 그는 『예기』와 『시경』을 근거로 삼아 고양이의 서역 유입설에 반박하였다. 먼저 『예기』에서의 ‘고양이에게 제사를 지내 준다[迎貓爲其食田鼠也].’라는 기록을 근거로 고양이가 한나라 이전에 중국에 서식하였음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시경』에서 ‘고양이도 있고 범도 있다[有貓有虎]’고 하는 부분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고양이가 외국에서 유입된 동물이 아닌 토착 동물이라 결론지었다. 이익이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했던 것은 『시경』을 정확하게 이해하자는 시경명물학(詩經名物學) 작업의 일환이었다. 이익의 궁금증은 여기에서 끝났을까? 그는 결국, 아득한 옛날이야기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던 듯하다. 하지만 고양이의 근원과 유래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신비로 남아있었던 것 같다. 현재 이란 지역에서 전해지는 고양이 설화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고양이를 어디서 온 존재로 여겼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아득한 옛날 페르시아의 전설적 영웅 루스탐은 한 노인을 구해줬다. 바라는 선물이 있으면 뭐든지 주겠다는 노인의 말에, ‘아니요. 저는 아무것도 바라는게 없습니다. 보세요. 모닥불의 따뜻함과 나른함, 피어오르는 연기에서 나는 냄새, 그리고 머리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저 별들의 아름다움까지, 아름다운 모든 것이 이미 여기에 다 있는데, 바랄 게 뭐가 더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노인은 모닥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한 줌 취하고, 거기에 혀를 날름거리는 불길 한 자락을 더하고, 반짝이는 수많은 별 중에서 가장 빛나는 별 두 개를 땄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손으로 함께 이겨 두 손에 고이 모아 쥐고, 그 안으로 ‘후’하고 숨을 불어넣었다. 이어서 모아 쥔 그 두 손을 루스탐 쪽으로 뻗더니 그의 눈앞에서 살며시 벌렸다. 벌어진 그의 두 손바닥 위에는 조그만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털이 연기처럼 잿빛이요. 두 눈은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앙증맞은 혀는 마치 한 자락 빨간 불길 같았다고 한다.” -진중권,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천년의상상, 2017, 28~3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