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한복판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
우리의 판문점과 달리, 브란덴부르크는 독일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독일인들의 가슴 위에서 일상의 아픔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독일인의 가슴에서 한시도 떠날 수 없었던 절실한 과제로 있었다.
교류와 협력을 통한 통일 노력은 독일 민족의 영광으로 나아가려는 전통적 의지의 연장이었다.
동서독간의 동질성과 유사성이 유지되고 있었다.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은 과거 프로이센 왕국의 개선문이었다.
슈프레 강가에는 강을 따라 2키로미터에 달하는 분단 시절의 장벽이 남아 있다.
그 장벽에는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환희를 새긴 수많은 글과 그림들이 가득 차 있었다.
‘사상은 하늘을 나는 새들의 비행처럼 자유로운 것이다’
분단이란 땅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늘을 가르려고 하는 헛된 수고임을 깨닫게 하는 글 귀였다.
누군가 한글로 적고 있었다.
‘우리도 하나가 되리라’
첫댓글 신영복교수의 새천년여행기를 다시 계속합니다.조금 무겁더라도 가끔 올라올 것이오니 한번씩 세계역사지리가 나와 함께 하는, 새로운 시각으로, 이제와는 전혀 다른 관점도 있을 수 있다는, 정리기회됐으면 합니다.
qkdwkd, tnrhrk aksgrnfy.한글로 쳐야 하는데 다 쳐놓고 고개를 드니 요 모냥이다.
"방장, 수고가 많구료." 무슨 말인가 궁금하여 수남의 암호를 옮겨보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