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데모하러 올라온 거, 내친김에 갈 수 있는 데는 다 갔다 왔습니다.
팔레스타인 BDS(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운동이라는 게 있어요. 국제 네트워크로 되어 있는 건데, 외부에서 이스라엘한테 보이콧∙투자철회∙제재로 맞서자는 거예요. 한국에서도 관심 있는 단체들이 연대체 마련해서 이번에 이스라엘 규탄 집회를 했어요. 저는 병역거부운동 활동가들이랑 같이 왔네요.
그간 있었던 시오니즘이나 무력진압, 아파르트헤이트를 고려해서 분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해요. 이스라엘의 일방성을 강조하면서, 이번 사태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여과된 정보들로 구성된 담론이 아니라 이런 문제들을 가능케 하는 구조를 봐야 한다는 거죠.
평화운동, 노동운동, 종교인, 퀴어운동가들도 오고, 이집트, 시리아인이 연대 발언을 했어요. 분위기는 완전 투쟁 현장. 노동운동 단체가 디게 많이 껴 있었어요. 모일 수 있는 정파는 다 모인 것 같더라구요. 머릿수에 비해 발언권은 적게 주더군요. "레닌이 일찍이 말하기를" 하면서 시작하는 입장문 나눠주기도 하구...
심각한 사안이라 분위기는 자못 비장했어요. ○○주의 사람들이 트럼펫을 어찌나 그렇게 구슬프게 부르던지... 집회 양상은 다른 데랑 비슷하네요. 연대발언 쫙 하고 행진.
이스라엘 대사관 가서 항의서한 전달하려고 했는데 경찰이 행진 허가를 안 내줘서 옆으로 지나갔네요. 대사관 있는 골목 앞에서 "우우우우우~" 하고 집단적으로 야유하는 정도로 마무리.
지나가던 아랍인들이 과자랑 음료수 사와서 나눠줬어요. 쉽게 감동하면 공부하기 힘든데, "아, 그래서 이 사람들이...!" 싶던 순간들이 있었어요. 왜 주네가 팔레스타인을 좋아했는지 알겠더라구요.
시위대 맨 앞쪽은 이민자랑 난민들이 앞장서서 갑니다. 팔레스틴인인 내지는 아랍 쪽 사람들인데, 정말 잘 하더라구요. 마이크도 안 쓰고 사람 끌어모으는 힘이 있어요. 소리통으로 하는 맛을 아는 거죠. 막판 가서는 커다란 팔레스타인 국기를 맞잡고 위아래로 흔들면서 구호를 외치는데, 누구라도 그 광경을 본다면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어요. 전장에서 궁지에 몰린 사람들 같은...
멕시코, 영국, 프랑스에서도 연대 집회가 열렸다고 해요. 사실 연대라는 말도 그렇고(하나의 띠로 이어버린다니!), 시위 양상 자체가 폭력적인 부분도 많이 있어요. 그래서 재미있긴 하지만. 형식은 물론이고 내용도 비슷한 방식으로 맞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도 고생하는 사람들 보면 굳이 토를 달 필요가 없겠구나 싶을 때가 있어요. 지성을 너무 많이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안이 워낙 심각해서 즐겁고 신나는 운동이 과연 가능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집회 자체가 울혈 방출의 시간인지라, 사람들 표정은 대체로 밝아 보였어요. 저도 오랜만에 팔뚝질도 하고 구호도 외쳐보고 했네요. 옆에 있는 사람들이랑 중간중간 딴소리 하면서 걸어가는 맛도 있었구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렁찬 현장의 소리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왔네요.
"한국정부는 이스라엘과 모든 교류를 즉각 중단하라!"
"한국정부는 이스라엘에 무기공급 중단하라!"
"이스라엘은 지금 당장 점령지에서 철수하라!"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연대를! 정의를!"
"프리 프리 팔레스틴!"
"다운 다운 이스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