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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연경당(演慶堂) 주련(柱聯)
진장각(珍藏閣)이 있던 자리에 사대부의 생활을 알기 위해 효명세자가 순조에게 요청하여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일부 사료에는 순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경축 의식을 거행할 곳으로 건축했으며 ‘연경’이라는 이름도 이 때에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연경당은 속칭 궁궐 안의 99칸 집으로 유명하지만 순종대에 간행한 『궁궐지』에 따르면 실제로는 연경당(사랑채) 14칸, 내당(內堂: 안채) 10칸 반, 선향재(善香齋) 14칸, 농수정(濃繡亭) 1칸, 북행각(北行閣) 14칸 반, 서행각(西行閣) 20칸, 남행각(南行閣) 21칸, 외행각(外行閣) 25칸으로 모두 120칸이었다. 궁궐 안의 다른건물들이 단청과 장식을 화려하게 한 것에 비하여 이 집은 단청을 하지 않았고 구조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기둥 위에 공포를 두지 않은 민도리집이다. 처음 지었던 연경당은 없어지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그 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연경당’은 이곳의 건물군(群) 전체의 이름이면서 사랑채의 당호이기도 하다.
사랑채인 연경당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홑처마 집인데 이 집 주인의 일상 거처이다. 대궐에서 퇴궐하면 이 방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또 문객들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경(演慶)’은 ‘경사(慶事)가 널리 퍼진다’는 뜻이다. ‘연(演)’ 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늘이다(延)’, ‘널리 펴다’는 뜻이다.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1827(순조 27)년 효명세자가 대조(大朝: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는 경사스런 예(禮)를 만났고 마침 연경당을 낙성하였으므로 그렇게 이름하였다고 한다.
(1) 秦城樓閣烟花裏(진성누각연화리)
진(秦)나라 성의 누각은 연화(烟花) 속에 있고,
(2) 漢帝山河錦繡中(한제산하금수중)
한(漢)나라 황제의 산하는 금수(錦繡) 속에 있네.
청명(淸明)절을 맞은 도성(都城)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린 시 구절이다. 연화는 안개 속에 쌓여 있는 꽃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봄 경치를 은유한 표현이고, 금수는 수 놓은 비단이라는 뜻으로 풍광이 아름다울 때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진나라는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였고 한나라는 중국에 문화의 번영을 가져온 나라이므로 모두 중국을 비유하고자 관습적으로 끌어왔다. 두보의 시「청명(淸明)」 이수(二首) 중 제 2수에서 따 온 구절이다.
제작 정보 : ‘한제(漢帝)’가 여러 시선집에는 대부분 ‘한주(漢主)’로 되어 있으나 의미에 차이는 없다.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을 나타내는 ‘董其昌(동기창)’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3) 臨事無疑知道力(임사무의지도력)
일에 임하여 의문이 없으니 도력을 알겠고,
(4) 讀書有味覺心閒(독서유미각심한)
글을 읽음에 참맛이 있으니 마음 한가로움을 깨닫네.
도를 깨달아 막힘 없고 만족스러운 마음을 갖고, 책이나 읽으면서 한가한 삶을 누리는 경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송나라 승려 각범(覺範, 1071~1128년)의 「이십일우서(二十日偶書)」 이수(二首) 중 제 2수의 함련(?聯)에서 따 왔다.
제작 정보 : ‘심(心)’이 다른 문헌에는 ‘신(身)’으로 된 곳이 있다. 좌측에 쓰인글씨는 불명확하지만 형태로 보아 ‘옹방강(翁方綱)’을 모사(模寫)하면서 잘못새긴 것으로 보인다. ‘方綱(방강)’과 ‘覃谿(담계)’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어 청나라 학자 옹방강 4)의 글씨임을 알려 준다. 담계는 옹방강의 호이다.
(5) 雲裏帝城雙鳳闕(운리제성쌍봉궐)
구름 속 도성에는 한 쌍의 봉궐(鳳闕)이요,
(6) 雨中春樹萬人家(우중춘수만인가)
빗속의 봄 숲에는 수많은 인가로다.
구름 속에 우뚝 솟은 궁궐의 모습과 봄비 내리는 중에 숲속에 싸여 있는 평화로운 민가의 모습을 묘사했다. ‘봉궐’은 궁궐을 달리 부르는 말인데 한나라 때 궁궐 꼭대기에 구리로 만든 봉황을 설치한 데서 유래한 호칭이다. 당나라 시인 왕유의 「봉화성제 종봉래향흥경각도중 유춘우중 춘망지작 응제(奉和聖製從蓬萊向興慶閣道中留春雨中春望之作應制); 임금께서 지으신 「봉래궁에서 흥경궁을 가는 도중에 봄비 속에 머물면서 봄 경치를 바라보며」라는 작품에 화답하여 짓다)」에서 따 온 구절이다.
제작 정보 : ‘운리(雲裏)’가 ‘설리(雪裏)’로 되어 있는 문헌도 있다. 좌측에 ‘董其昌書(동기창서)’라고 쓰여 있어 동기창의 글씨임을 알려 준다. 경복궁의 함화당, 창덕궁의 한정당에도 같은 내용의 주련이 있다.
(7) 瑞氣逈浮靑玉案(서기형부청옥안)
상서로운 기운은 아득히 청옥안(靑玉案)에 떠 있고,
(8) 日華遙上赤霜袍(일화요상적상포)
햇빛은 멀리 적상포(赤霜袍) 위로 솟아 오르네.
주변 공간을 신선들이 사는 세계에 빗대어 신선의 책상에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고 신선의 옷자락에는 햇빛이 솟아오른다고 묘사하였다. 청옥안은 청옥으로 만든 책상이라는 뜻으로서 여기서는 신선의 책상을 말하며, 적상포도 신선이 입는 도포로 모두 선계를 가리킨다. 당나라 경위(耿?, ?~?년) 5)의 시 「조하기한사인(朝下寄韓舍人)」 중 함련에서 따 온 구절이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을 나타내는 ‘米?(미불)’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미불은 북송 시대의 서화가로, 소동파, 황정견 등과 친교가 있었다.
(9) 雲近蓬萊常五色(운근봉래상오색)
구름은 봉래궁(蓬萊宮)에 가까워 늘 오색 빛이요,
(10) 雪殘?鵲亦多時(설잔지작역다시)
눈은 지작관(?鵲觀)에 남아 오랫동안 쌓여 있네.
봉래궁이 하늘에 드높이 솟아 구름이 가까이 떠 있으며 항상 상서로운 오색 빛을 띠고 있고, 지작관의 응달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는 말이다. 봉래궁은 원래 신선이 산다는 전설 속의 이름인데 여기서는 궁전의 이름으로 쓰였다. 중국 당나라 때 장안의 용수산(龍首山)에 있던 대명궁을 봉래궁이라고 고쳐 불렀다. 지작관은 한나라 때 감천원(甘泉苑)에 있던 누관(樓觀) 7)의 이름인데, 이 누관이 크고 높아서 깊은 응달이 졌음을 말한다. 두보의 「선정전퇴조만출좌액(宣政殿退朝晩出左掖; 선정전에 조회를 마치고 저녁에 문하성을 나서며)」 중 경련(頸聯)에서 따온 구절이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을 나타내는 ‘米?(미불)’이 적혀 있다.
(11) 山中老宿依然在(산중노숙의연재)
산 속의 노스님은 늘 그대로 앉은 채로
(12) 案上楞嚴已不看(안상능엄이불간)
책상 위에 『능엄경(楞嚴經)』을 이미 보지 않고 있네.
걸림 없는 무애(無碍)의 경지에서 경전마저 초월한 불립문자(不立文字) 8)의 생활을 하는 노스님의 초탈한 생활을 읊은 시구이다. 『능엄경』은 심성의 본성을 밝힌 불경의 하나로 선종 승려들이 많이 연구했다. 이는 송나라 시인 소식의 「증혜산승혜표(贈惠山僧惠表)」중 함련에서 따온 구절이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을 나타내는 ‘劉墉(유용)’이라는 글을 적었다. 유용은 청나라의 서예가로서 옹방강과 동시대 인물이다.
뜻풀이 :
(13) 名將存心惟地理(명장존심유지리)
명장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오직 지리(地理)뿐이요,
(14) 聖門傳業只官書(성문전업지관서)
성인 문하에 업을 전하는 것은 다만 관서(官書)일 뿐이네.
명장은 전쟁에서 승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지형의 이치를 잘 알아야 하고,성인의 문하에서 업을 전수하는 것은 오직 관서로써 한다는 말이다. 관서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다.
제작 정보 : ‘李丙熙印(이병희인)’, ‘三州後人(삼주후인)’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이병희는 호가 농천(農泉), 농암(農巖)이며 대구 출신으로 군수를 지냈다. 행서와 초서에 능했으며 강릉 선교장(船橋莊)의 활래정(活來亭) 주련을 비롯해 수많은 고택과 사찰의 주련을 썼다.
(15) 九天日月開新運(구천일월개신운)
구천(九天)의 해와 달이 새로운 운을 열어 주니,
(16) 萬里雲霞醉太平(만리운하취태평)
만리의 구름과 노을은 태평에 취해 있네.
드높은 하늘의 해와 달이 국가가 새롭게 발전할 운을 열어 주니 만리에 걸쳐 떠있는 구름과 노을도 태평에 취한 듯 붉게 물들어 있다는 말이다. 구천은 드높은 하늘이라는 뜻으로, 궁궐이라는 의미도 있어 여기서는 중의적으로 쓰였다. 나라가 새로운 기운을 받아 태평성대를 이룬 모습을 노래한 구절이다.
제작 정보 : ‘이병희인(李丙熙印)’, ‘삼주후인(三州後人)’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17) 千里春風回碧巒(천리춘풍회벽만)
천리에 봄바람은 푸른 봉우리를 돌아오고,
(18) 南極祥光兆吉昌(남극상광조길창)
남극성(南極星)의 상서로운 빛은 길상(吉祥)을 알려오네.
천리 멀리에서 불어온 봄바람은 푸른 산봉우리를 휘돌아 오고, 수명을 주관하는 남극성은 상서로운 길조(吉兆)를 보여 준다는 말이다. 남극성은 남극노인성으로 인간의 수명을 주관한다고 여겨져 장수를 축원할 때 곧잘 언급되었다.
제작 정보 : ‘李丙熙印(이병희인)’, ‘三州後人(삼주후인)’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19) 請於上古無爲世(청어상고무위세)
상고 시대와 같은 무위(無爲)의 세상에서
(20) 長作天家在野臣(장작천가재야신)
길이 천자의 백성이 되기를 청하네.
요순 임금이 다스리는 무위지치(無爲之治)의 세상에서 오래도록 벼슬도 하지 않는 평범한 백성이 되어 살아가고자 하는 소망을 노래하였다. ‘무위’는 백성을 교화하거나 인위적 통치를 하지 않아도 세상이 잘 다스려짐을 뜻한다.
제작 정보 : ‘李丙熙印(이병희인)’, ‘三州後人(삼주후인)’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21) 功崇六宇郭中令(공숭육우곽중령)
공이 온 세상에 높은 이는 곽중령(郭中令)이요,
(22) 荷香風共聖之淸(하향풍공성지청)
연꽃 향기 바람과 함께 하는 이는 성인 중에 맑은 사람일세.
명신 곽중령(郭中令, 697~781년)과 같이 높은 공을 세우는가 하면, 연꽃처럼 맑은 백이(伯夷)의 정신을 본받기도 한다는 뜻이다. 곽중령은 당나라의 곽자의(郭子儀)인데, 그는 높은 벼슬에 올랐으며 자식도 많아 팔자 좋은 사람의 전형으로 일컬어진다. 세상에 나아가 경륜을 펼치거나 물러나 절조를 지키는 출처(出處), 행장(行藏)을 읊은 구절이다.
제작 정보 : ‘李丙熙印(이병희인)’, ‘三州後人(삼주후인)’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23) 兩京名詔皆高士(양경명조개고사)
두 서울 11)에 조서로 부르는 자는 모두가 고사이니,
(24) 四時和氣及蒼生(사시화기급창생)
사시에 온화한 기운이 온 백성에게 미치네.
온 나라에 조서를 내려 훌륭한 인재를 천거해 올리라는 명을 내리니 거기에 응해 온 인물들이 모두 고상한 선비들이어서, 이들에 힘입어 훌륭한 정치를 행하여 언제나 온화한 기운이 백성들에게 미친다는 말이다. 고사(高士)는 인격이 높고 성품이 깨끗한 선비를 뜻한다.
제작 정보 : ‘李丙熙印(이병희인)’, ‘三州後人(삼주후인)’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25) 山靜日長仁者壽(산정일장인자수)
산은 고요하고 해는 길어 어진 이는 장수하고,
(26) 月明人影鏡中來(월명인영경중래)
달 밝으니 사람 그림자가 거울 속에 비춰 오도다.
고요한 산 속에서 참된 성정을 기르면서 밝은 달밤에 연못가를 산책하는 모습이다. ‘거울 속’은 거울처럼 맑은 물을 가리킨다. 첫 구절은 『논어(論語)』의 「옹야(雍也)」편에 나오는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활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니,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워하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라는 내용을 응용한 표현이다.
제작 정보 : ‘李丙熙印(이병희인)’, ‘三州後人(삼주후인)’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27) 半窓?影梅花月(반창소영매화월)
창 한 켠에 성긴 그림자는 달빛에 매화요,
(28) 一榻淸風栢子香(일탑청풍백자향)
책상에 맑은 바람은 측백의 향기로세.
매화나무 가지에 달이 떠올라 성긴 매화 가지의 그림자가 창문에 비치고, 측백나무 향기가 섞인 바람이 책상 위로 불어오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속세를 벗어난 듯한 맑고 깨끗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첫 구절은 북송 때의 시인 임포(林逋, 967~1028년)의 시 「산원소매(山園小梅)」에 나오는 “맑고 얕은 물가에는 성긴 가지 비껴 있고 / 달 뜨는 황혼녘에 은은한 향기 도네(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라는 구절을 응용한 표현이다. ‘백(栢)’자를 우리나라에서는 『두시언해』 이후로 흔히 ‘잣나무’로 번역하지만 원래는 측백나무를 뜻하므로 여기서는 원 뜻대로 번역하였다.
제작 정보 : ‘李丙熙印(이병희인)’, ‘三州後人(삼주후인)’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뜻풀이 :
(29) 山逕繞邨松葉暗(산경요촌송엽암)
산길은 마을을 두르고 솔잎은 짙은데
(30) 柴門臨水稻花香(시문임수도화향)
사립문은 물에 가까워 벼꽃은 향기롭네.
마을을 둘러 산길이 나 있고 산에 자란 솔잎은 짙은 그늘을 이루고 있는데, 사립문은 물 가까이 있어 벼꽃 향기가 바람에 풍긴다. 시골 산촌의 한가롭고 정겨운 모습을 묘사하였다. ‘邨(촌)’은 ‘村(촌)’과 같은 글자이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을 나타내는 ‘春? 于湘蘭(춘원 우상란)’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31) 於此閒得少佳趣(어차한득소가취)
이 곳에서 한가히 약간의 아름다운 흥취 얻으니,
연경당의 안채 정문이며 장락문을 들어서면 서쪽에 있다. 장양문이 남성의 공간인데 비해 수인문은 여성의 공간이어서 행랑채와 높이가 같은 평대문이다. 일부 해설서에서 장양문은 솟을대문으로 높이 세우고 수인문은 평대문으로 세운 것에 대해 조선의 남존여비 사상 때문이라고 하고 있으나, 이는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여성은 초헌을 탈 일이 없으므로 굳이 솟을대문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며, 실생활에서의 기능에 따라 문의 높이를 정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뜻풀이 : ‘수인(修仁)’은 ‘인(仁)을 닦는다’는 뜻이다. 인(仁)은 『논어』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한 공자의 핵심 사상이다.
‘청수정사(淸水精舍)’는 ‘맑은 물이 두르고 있는 정사’라는 뜻이다. ‘정사(精舍)’는 ‘학문을 강론하는 집’ 또는 ‘정신을 수양하는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밖에 절이라는 의미로도 널리 쓰이지만 여기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연경당 동쪽에 있는 14칸짜리 건물로 책들을 보관하고 책을 읽는 서재이다. 가운데 큰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었으며 앞면에 설치한 차양이 다른 건물들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뜻풀이 : ‘선향재(善香齋)’는 ‘좋은 향기가 서린 집’이라는 뜻이다. 책을 보관하던 곳이기에 좋은 향기란 책 향기를 가리킨다.
(1) 道德摩勒果(도덕마륵과)
도덕은 마륵(摩勒)의 과일이요,
(2) 文章鉢曇花(문장발담화)
문장은 우담바라의 꽃이로다.
황금 과일처럼 고귀한 도덕과 우담바라 꽃처럼 진귀한 문장이라는 뜻이다. 그러한 도덕과 문장을 갖춘 사람을 찬양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마륵은 금중에서도 가장 훌륭하다는 자마금(紫磨金)을 말한다. 우담바라는 불교에서 전륜성왕(부처)이 나타날 때 핀다는 상상의 꽃이다. 우담바라는 한자로는 優曇婆羅, 優曇波羅, 優曇跋羅華, 優曇鉢華, 優曇華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한다.
(3) 張子野詞伯(장자야사백)
장자야(張子野)는 사(詞)에 뛰어난 문인이고,
(4) 李將軍?師(이장군화사)
이장군(李將軍)은 그림에 특출한 화가로다.
사에 뛰어났던 장선(張先, 990~1078년)과 그림에 뛰어났던 이사훈(李思訓,651~716년)을 찬양한 표현이다. 장자야는 송나라 사람인 장선을 가리키는데, 사(詞)에 뛰어나서 남조 때의 유운(柳?, 465~517년)에 비견되었다. 당나라 화가 이사훈은 벼슬이 우무위대장군(右武衛大將軍)에 올랐으므로 대리장군(大李將軍)으로 불렸고 그의 아들 이소도(李昭道) 역시 산수화에 능하여 소리장군(小李將軍)으로 불렸다. 이들 부자는 북종화(北宗?)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또는 이들처럼 뛰어난 문인이나 화가를 비유적으로 칭찬하는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
(5) 汝南尋孟博(여남심맹박)
여남(汝南) 땅으로 맹박(孟博)을 찾아가고,
(6) 高密訪康成(고밀방강성)
고밀(高密) 땅으로 강성(康成)을 방문한다네.
후한(後漢)의 명사인 맹박, 즉 범방(范滂, 137~169년) 2)이나 강성, 즉 정현 3)과 같은 훌륭한 학자를 그들의 고향으로 찾아가서 만나고 교유(交遊)하고 싶은 소망을 나타내었다. 하남성 여남 지방은 범방뿐 아니라 진번(陳蕃)·설포(薛包)·황헌(黃憲)·원안(袁安) 등과 송나라 때 범중엄(范仲淹, 989~1052년)·주돈이 등의 명사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산동성 고밀은 정현의 고향이다.
(7) 細讀斜川集(세독사천집)
사천(斜川)의 문집을 세밀히 읽고,
(8) 新烹顧渚茶(신팽고저다)
고저(顧渚)의 차를 새로 달이네.
독서하며 차를 마시는 담박(淡泊)한 생활을 읊었다. 사천은 송나라 때 문인 소식의 아들인 소과(蘇過, 1072~1123년)의 호이다. 하남성 허창현(許昌縣)의 지명이기도 한데, 소과가 여기에 살아서 호로 삼았다. 고저는 절강성 장흥현(長興縣)에 있는 산의 이름이다. 차의 명산지인데 이 곳에서 난 ‘고저차(顧渚茶)’가 유명하다.
제작 정보 : 송나라 시인 육유의 칠언율시 「재중농필우서시자율(齋中弄筆偶書示子聿)」에서 함련(?聯)의 앞 두 글자씩을 생략한 것이다. 거의 모든 주련은 원래 시의 구절을 그대로 따 온 것이 일반적인데, 이처럼 7언시를 줄여서 5언시로 만든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점이다.
(9) 養竹不除當路筍(양죽불제당로순)
대 기르기 좋아하여 길에 자란 죽순도 베지 않고,
(10) 愛松留得?門枝(애송류득애문지)
솔을 사랑해 문 가린 가지도 남겨 두었네.
자연을 사랑하여 인위적인 손상을 가하지 않는 천연스런 삶을 읊었다. 당나라 승려 관휴(貫休, 832~912년)의 「산거시(山居詩)」 이십사 수(二十四首) 중 제 8수의 함련에서 따온 구절이다. ‘門(문)’은 대부분의 문헌에 ‘人(인)’으로 되어 있다.
경복궁의 함화당에도 같은 문구의 주련이 있다.
(11) 史編作鑑推君實(사편작감추군실)
역사를 편찬함은 『자치통감(資治通鑑)』 을 지은 사마군실(司馬君實)을 추대하고,
(12) 賦筆凌雲擬子虛(부필능운의자허)
부(賦) 짓는 솜씨는 구름을 뛰어넘는 기상의 자허(子虛)에게 비기네.
앞의 구절은 『자치통감』을 지은 송대(宋代)의 명신 사마광(司馬光, 1019~1086년)이 역사의 대가로 추앙을 받는다는 뜻이며, 뒤의 구절은 사부(辭賦) 7)를 짓는 문장 솜씨가 한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 기원전 179~기원전 118년)와 같은 문장의 대가에 견줄 만하다는 뜻이다. 군실은 사마광의 자이다. 자허는 사마상여가 지은 「자허부(子虛賦)」에 나오는 인물인데, 여기서는 사마상여를 가리킨다. 구름을 뛰어 넘는 기상이라는 것은 사마상여가 「대인부(大人賦)」를 지어 바쳤을 때 천자가 크게 기뻐하면서 “구름을 타고[凌雲] 훨훨 날아오르는 기상이 있도다.”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뒤 구절의 문맥으로 보아 앞 구절도 사마광처럼 역사에 뛰어난 인물을 견주어 칭찬하는 것이다.
(13) 瀑布之餘雲盡水(폭포지여운진수)
폭포의 밖에서는 구름이 온통 물이 되고,
(14) 茯?其上樹交花(복령기상수교화)
복령(茯?)의 위에서는 나무가 꽃과 어울렸네.
거대한 폭포의 주변에 물보라가 일어 구름을 형성하고 그 구름이 또 물방울로 화하는 모습과, 뿌리에 복령이 난 나무가 우뚝 서서 꽃을 피운 모습을 표현하였다.
복령은 버섯의 일종으로 소나무를 벤 뒤 5~6년이 지나면 그 뿌리에서 자란다. 『회남자』 「설산(說山)」 편에서는 “천 년 된 소나무 밑에는 복령이 있다(千年之松, 下有茯?).”고 하였다. 웅장하고 신비한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한 구절이다.
(15) 却對眞山看?圖(각대진산간화도)
문득 진짜 산을 대하니 그림을 보는 듯하도다.
실제의 산을 눈 앞에 보니 마치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말이다. 송나라 시인 정구(程俱, 1078~1144년)의 시 「희제화권(戱題?卷)」의 함련 중 한 구절이다.
짝이 되는 앞 구절은 분실되었다. 분실된 앞 구절은 다음과 같다.
如今掃迹長林下(여금소적장림하)
이제야 깊은 숲 아래서 속객 자취 쓸어버리고,
우신(佑申)’은 ‘돕기를 거듭한다’는 뜻이다. ‘신(申)’은 ‘거듭’이라는 의미이다. 즉 하늘이 나라를 돕기를 거듭한다는 말이다. ‘우신(佑申)’이 단어로 독립되어 쓰인 용례는 문헌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우나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그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예조참판 서명응(徐命膺, 1716~1787년)이 상소하여 「천우 오장(天佑五章)」의 시(詩)를 올렸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순 임금은 오십에도 부모를 생각하였는데, 우리 임금은 지금 팔십에도 사모하신다. 하늘이 내려 보시며, 도우심을 거듭하도다[保佑申申]. 거듭 도우시는 것은 무엇인가? 긴 눈썹으로 천년을 장수하시는 거라네. 남쪽에 남극성이 있어, 우리 동방(東方)을 비추도다. 붉은 대궐 뜰에 임하여 빛을 발하니 아름답고 빛나서 그 상서로움이 밝도다. 상서로움이란 무엇인가? 만수무강하심이로다.’ 라고 하였다.”
‘통벽(通碧)’은 ‘푸른 곳으로 통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벽(碧)’의 의미는 ‘벽산(碧山, 푸른 산)’이나 ‘벽성(碧城, 신선이 산다는 성)’ 등이 될 수 있는데, ‘벽산’ 정도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부엌으로 가는 문이라는 기능에 비추어 보면 이름과 어울리지 않으며 따라서 이 문은 기능과는 상관없이 일반적인 관례대로 전아(典雅)한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연경당 사랑채 뒤로 가는 문이다. 농수정(濃繡亭)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앞 쪽에 있는 일각대문이다.
뜻풀이 : ‘태일(太一)’은 도가적(道家的) 용어로서 ‘우주 만물의 본원’이라는뜻이며 ‘도(道)’와 같은 의미로도 쓰인다. 『장자(莊子)』 「천하(天下)」 편에서“관윤(關尹)과 노담(老聃)은 그 기풍을 듣고 기뻐하여 항상한 허무의 도를 세우고 태일(太一)이라는 절대의 도를 주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당나라 성현영(成玄英, 601?~690년) 은 태일을 “‘태(太)’는 광대하다는 명칭이고‘일(一)’은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지칭한다. 큰 도가 넓고 아득하여 둘러싸지 않음이 없으며 만물을 담아서 통하여 하나가 됨을 말한다. 그러므로 태일이라고 한다.”라고 풀이하였다. 『여씨춘추(呂氏春秋)』 「대악(大樂)」 편에서는 “도라는 것은 지극히 정밀하여서 형체를 지을 수도 없고 이름할 수도 없다. 억지로 이름한다면 태일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