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흘구곡(武屹九曲) 아라리오 손 진 담
지난 7월 26일(금) 오후는 폭염에다 폭우가 간간이 내리는 날씨였다. 대덕과우회 회원(박성열 회장 외 15인)은 차량 5대에 분승하여 하계 연찬회 장소인 경북 성주군 금수면 성주 호반으로 향하였다. 추풍령을 지나고 김천시 남부에 도착하니 맑은 시냇물 대가천(大伽川)이 반겨주었다. 이곳 증산면에서 성주 금수면과 수륜면의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흘러가는 대가천은 지형상 전형적인 감입곡류(嵌入曲流)에다 경관이 수려하여 여름 물놀이 지역으로 사랑을 받아온 터이다. 멀리 수도산(1,317m)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급류가 되어 화강암 지반을 깎고 깎아 굽이마다 기암괴석과 물웅덩이가 발달하며 절경을 낳으니 옛날부터 시인 묵객들의 좋은 소재가 되어 왔다. 우리도 차 안에서나마 30번 국도가 커브를 돌 때마다 창밖으로 전개되는 비경에 탄성이 절로 나며 범인(凡人)마저 시심(詩心)을 일으켰다.
무흘구곡(武屹九曲)은 성주 출신의 대현(大賢)인 한강 정구 선생(AD 1543-1620)께서 중국의 무이구곡(남송 때 성리학자 주희가 명명)을 본 따 대가천의 아홉 굽이(九曲) 절경을 선정하고 의미를 주어 이름을 달고 칠언 절구의 시를 지은 곳이다. 수도산 아래 용소폭포(제9곡 용추), 증산면 평촌리의 와룡암(제8곡)과 만월암(제7곡), 유성리의 옥류동(제6곡), 증산면과 금수면의 경계부에 위치한 사인암(제5곡), 금수면 영천리의 선바위(입암, 제4곡), 무학리의 배 바위(무학정, 제3곡)들은 모두가 대가천의 인공 호수인 성주호(금수면 봉두리) 상류에 위치한다. 장장 35km 연장의 대가천 하류이자 성주호 아래 쪽인 수륜면 수성리와 신정리에는 한강대(제2곡)와 봉비암(제1곡)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한강 선생은 41세(선조 16년) 때 봉비암 근처에 회연초당(현 회원서원 자리)을 짓고 빼어난 자연경관을 사랑하며 ‘월삭강회계’를 만들어 제자들을 가르쳤다. 모든 관직에서 벗어난 62세(선조 37년)에는 와룡암과 만월암 사이에 무흘정사를 짓고 칠팔 년 동안 많은 저술 활동을 하였고, 주자학에 심취하여 무흘구곡을 경영하면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고, 도중에 선조의 부름으로 안동부사 재직시(선조 19년) 지방 선비들의강학회를 주관하셨다. 당시 구곡을 경영하는 것은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자연을 완상하는 도학적 이상향의 해법으로 여겨졌다.
독용산성 아래 성주 호반의 별장(청주한씨 집안 소유)은 대덕과우회 한기익 명예회장의 배려로 매년 연찬회장으로 사용되어 왔다. 오래전 댐 건설로 보상토지에 이주하게 된 현대식 가옥과 재사(영모재)가 경관 좋은 호반에 위치하다 보니 대덕과우회원들의 하계연찬회 및 휴식처로 안성맞춤이 된 지 어언 5년이 되었다. 약간의 장내정리가 끝난 후 이번에도 김웅기 사무국장의 과우봉사단 상반기 실적 보고에 이어, 유명인사들의 주제 강연과 청소년 과학교육 확산 토의가 이루어졌다. 주제는 한국의 원자력발전(이종찬 박사), 건강한 노화와 장수(정안식 명예교수)와 우리나라 경제 전망(한기익 명예회장) 으로 질의와 열띤 토론도 있었다. 우려낼 때로 우려낸 영천 ‘포항할매곰탕’까지 등장한 저녁식사와 편안한 잠자리, 새벽에는 주)아라 월드(Ara world)에서 제공하는 공용 샤워와 호반 산책을 통하여 맑은 호수를 음미해 보았다. 갑자기 ‘아라’의 어원이 궁금하였다. 나는 ‘아리랑 아라리오’ 인줄로만 알았는데 물, 호수, 바다라는 뜻도 있단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니 대가천 무흘계곡의 최상류인 용추폭포가 생각났다. 와룡암(臥龍巖)에 누워있던 ‘용이 솟아올랐다(龍湫)’는 폭포가 위치한 수도산 일대에 산책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호반의 단골 식당인 이화가든에서 어죽으로 아침을 끝내고 증산면 수도산 수도암으로 차를 몰아갔다. 신라 헌안왕 3년 (서기858년) 도선국사에 의해서 창건된 청암사의 부속 자인 수도암은 800m 고지에 위치한 사찰로 용소폭포(용추) 그리고 ‘인현왕후길’로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증산계곡(옥동천) 입구에 위치한 무흘전시관에 들러 동행한 정안식 교수(한강 선생 후손)로부터 직접 해설을 들으며 무흘구곡의 칠언절구를 감상하였다. 지면상 사연도 많은 사인암(제5곡) 하나를 적어본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섯 굽이라 맑은 못 그 얼마나 깊은 고 (五曲淸潭幾許深)
못가의 솔과 대가 저절로 숲을 이루었네 (潭邊松竹自成林)
복건차림 은자가 높은 당에 앉아서 (幅巾人坐高堂上)
인심이요 도심을 도란도란 얘기하네 (講說人心與道心)
고려 시대의 관리 한 사람이 이곳의 경치에 반하여 관인(官印)을 버리고 이곳과 영원히 인연을 맺고 살기를 원했던 곳이라 하여 사인암(捨印巖)이라 했답니다.
자연에서 인간의 위치를 찾아 헤매는 자연 과학도를 만나면 한강 선생은 어떤 가르침을 주실까 궁금해지며 그 임이 그리워진다. 그리움 때문에 선비는 학문을 한다고 누군가 말한 것이 떠오른다. 대덕과우회 회원들은 일박이일의 연찬회를 무사히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무흘계곡과 아라월드를 뒤로하고 추풍령을 넘어왔다. 대전이 가까웠을 때 승용차 오디오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가 들려오는데, 나는 반사적으로 ‘무흘구곡 이제 난 알아요’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