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시스의 진정한 의미 .............................................. 마광수
정화(淨化, purification)와 배설(purgation) 을 의미하는 말인 <카타르시스>는 연극 또는 문학이 독자에게 주는 직접적인 효용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져 지금까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플라톤은 연극이 쓸데없이 인간의 감정을 고양시켜 이성적 생활에 방해를 초래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감정을 억제하고 평정한 이성을 회복하는 것이 이데아 즉 실재의 세계를 실현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는 반대로, 이성적인 생활의 혼란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감정을 적절히 표출시키고 배설시켜야만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는 감정의 억제가 아니라 감정의 배설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복잡하고 미묘한 의미, 즉 교훈적 의미나 심미적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면 된다.
실상 카타르시스는 의학적인 뜻이 더욱 강한 말로서, 우리 몸 안에 축적되어 있는 찌꺼기를 사하(瀉下)시켜 병을 치료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카타르시스라는 말은 원래 ① 도덕적 의미로서의 purification (순화)라는 뜻과, ②종교적 의미로서의 lustration (깨끗하게 함), 또는 expiation (속죄)라는 뜻과, ③ 의학적 의미로서의 purgation (배설)이라는 뜻이 있는 말이라고 하는데 때때로 복합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악이든 연극이든 모든 예술이 주는 효용을 우선 의학적인 의미의 카타르시스 효과에 있다고 보고, 거기에 부수적으로 교육적, 종교적 효과가 곁들여진다고 본 것 같다. 그러므로 카타르시스는 배설을 위주로 하는 의학적인 치료술과 유사한 정서적 요법의 의미로 쓰여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설사 종교적인 정화의 의미로 카타르시스라는 말이 쓰여졌다 해도, 그것은 열광적 입신(入神)을 통한 신체적 정화와 치료의 의미를 더욱 강하게 띠고 있다 하겠다.
먹기만 하고 배설을 못 할 경우엔 몸 안에 남아 있는 음식물 찌꺼기들이 갖가지 독소를 뿜어내어 여러 가지 병을 유발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에는 헬레니즘 문화의 전성기였기 때문에 인간중심, 육체중심, 쾌락중심의 문화풍토가 이루어졌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도 연극의 목적을 자연스럽게 배설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세 이후 서구사회가 점점 금욕주의적 정신주의 풍토로 변해 가면서부터, 육체는 정신보다 더러운 것으로 간주되고 모든 배설행위는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배설기피 의식은 더욱 악순환을 가져와 서구문화를 정신주의와 이성주의 방면으로만 치닫게 했던 것이다. 그 부작용으로 배설의 억제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신체적 증상과 정신적 증상, 이를테면 우울증, 히스테리 등은 그 시대의 모든 문화 형태를 도착적인 것으로 굴절시켜 버렸다.
서구에서는 줄곧 배설의 문제가 무언가 천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것과는 반대로, 우리나라와 중국을 대표로 하는 극동문화권에서는 예부터 배설의 문제를 지극히 중요시하였다. 의학적으로 배설의 문제를 극도로 중요시한 것이 바로 한방의학의 이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카타르시스를 축적된 감정의 배설의 의미로 썼다면, 이것은 한방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바로 기(氣)가 울체된 것을 풀어주는 것이 된다. 희로애락 등의 칠정(七情)이 울결(鬱結)할 때 가지각색의 증상이 초래되는데, 그것을 소도(消導)시켜 주는 것이 바로 해울(解鬱)에 의한 치료법이다.
그렇다면 카타르시스가 본래 의미하고 있는 억압된 감정 또는 욕구의 대리적 배설이 과연 어떤 육체적 매커니즘을 통해서 가능해지게 되는 것일까? 현대인들은 갖가지 스트레스에 짓눌려 살아가기 때문에 스포츠를 즐긴다. 직장의 상사가 미워 죽겠는데 직접 때려 줄 용기는 없다. 그래서 권투경기를 보면서 감정을 이입(移入)시켜 스트레스를 대리적으로라도 풀어보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축적된 감정의 찌꺼기들을 육체를 통해 대리배설시켜 버리는 방법은, 직접적 행동에 의한 방법과 간접적인 참여의 방법 두 가지가 있다. 만약 누군가를 때려 주고 싶을 때, 폐차장의 자동차를 부수기나 태권도식 벽돌 깨뜨리기 등을 통해서 해결하는 방법이 직접적인 대리배설이고,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거나 영화, 연극 등을 보거나,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 간접적인 대리배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연극의 효용으로 카타르시스를 내세운 것은 바로 이 간접적 대리배설을 염두에 뒀던 것 같다.
(마광수 저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