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신앙생활을 살펴보면 본질이 아닌것에 집중할때가 있음을 많이 봅니다, 본질이 아닌 비본질에 매여있으면서, 의식과 형식에 맞추는 것이,마치 신앙이 좋은 것처럼 착각을 한다든지, 그것이 영성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의 책 ‘부흥’에서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을수록 예배는 형식화 됐다. 반면 신앙이 회복될수록 성령이 주관하시는 예배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예배엔 형식은 필요하지만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예배는 형식적이 되고 영적 침체에 빠져들지만, 성령이 주관하게 되면 심령의 변화가 생기며, 공동체는 부흥이 일어나고 성령께 속한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쇠퇴하는 20세기 영국 교회들을 향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예배에서 의식에 사로 잡힌 나머지 성령을 소멸시키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신학자 존 파이퍼도 그의 책 ‘하나님을 기뻐하라’에서 예배의 의식적인 부분이 하나님께는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예배는 찬송하고 손을 들고 기도하고 ,암송하고, 설교하고, 교인은 듣고,정결하게 하는 의식들”인데, 파이퍼 목사는 성령이 없이는 “이 모든 것이 헛된 일이 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예배의 형식과 의식이 성령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교회가 만들어 낸 예배의 순서지대로 예배하라고 하지 않고 반드시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했습니다. 물론 순서대로 하면서 영과 진리에 집중하면 좋을 것이지만,예배에 임하는 사람이 먼저 경건하지 않으면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경건은 무엇일까요?
야고보서 1장 27절에 보면 경건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서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라는 그것이니라"
이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은 헬라어로 드레스케이아인데 이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뜻의 드레스큐오에서 파생했습니다. 즉 경건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경건하다는 것은 옷을 말끔하게 입고, 음성을 내리깔고,농담도 하지 않으며,미소를 띄면서 걸음걸이도 젊잖게 걸어야 된다는것이 아니라, 옷은 허름해도 어려운 사람을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그 누구에게나 친절한 마음으로 대하며, 늘 깨어 자기를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노력하는자가 경건한자라고 성경은 알려 주고 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주님이 이땅에 오셔서 보여주신것 즉 본질에 충실한 신자입니다, 많은 사람들보면 지금 이 시대는 영성이 약해졌다느니,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둥 말을 하지만 자신은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지? 자신을 먼저 보는 눈을 가져야 됩니다, 올해도 마무리 되어 가는 싯점까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면 당신은 경건한 예배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속에 언제나 소수의 사람만이 본질에 충실하여 그 맥을 이어왔습니다.예배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 죽는 시간이고 예수님의 의로 말미암아 은혜 안에서 생명을 다시 찾는 시간이고. 생명의 약속을 재확인받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지키는 경건한 마음으로 영과 진리로 예배 드리는 신자가 되길 바랍니다. 이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첫댓글 아멘 본질적인 신앙인으로 생을 마치기를
기원합니다.그 일이 쉽다면 예수님이 낙타가 바눌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겠습니까요?
본질적인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요?눈물없이 못가는길 예수님의 피없이 못가는 길입죠?
오직 예수님의 희생의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요 우리주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받은자만이
가는 길입죠? 주예수를 믿어야만 가는 길입죠? 믿음을 지키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더 힘든일입죠?
오직 믿음의 기도로만이 구원에 이른다고 전해야죠.아멘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