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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17일 : 호미해안 둘레길
경북 포항시 동해면 / 호미곶면.
산행코스 : 입암2리 - 선바위 - 하선대 - 먹바위 - 비문바위 - 미인바위 -
장기목장성비 - 장군바위 - 구룡소 - 대동배1리 - 노적송 -
모아이상바위 - 구만리 - 해맞이광장 주차장 하산완료.
산행시작 : 입암2리 입구 09시 56분.
산행종료 : 해맞이 광장 14시 08분.
소요시간 : 약 14.5km / 4시간 12분 소요 / (휴식시간 포함)
09 : 56 입암2리 입구.
10 : 01 선바위 도착.
10 : 09 하선대 도착.
10 : 28 미인바위.
10 : 48 장기목장성비.
11 : 59 구룡소 전망대.
12 : 42 대동배1리.
13 : 14 모아이상바위.
14 : 08 해맞이광장주차장 하산완료.
▲ 09시 56분 : 입암2리 입구 도착.
▲ 입암2리로 가는길.
호미해안둘레길 2코스 출발지점인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입구에서 내렸어야 되는데
산악회에서 산행출발 지점을 정하지도 않고 왔는지
2코스냐.. 3코스냐.....우왕좌왕 하는사이에
약 2.2km를 지나쳐 와 버렸다..
그래도 갠차나유~
앞에 가는 여성회원 3명과
동행이니까..ㅎㅎ~
▲ 가우라.
섹시한 연인.
떠나간 이를 그리워 함....이라는
아름다운 꽃말을
가지고 있다.
▲ 눈썹 화장의..백구.
▲ 마을에 들어서자 마자
짭쪼롬한 생선내음이 코를 찌른다.
▲ 삶의 현장..
▲ 10시 01분 : 하차후 출발 5분여만에 만나는 <선바위>.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한반도지도에서 호랑이꼬리부분으로
동해면, 호미곶면, 해맞이광장까지
이어지는 트레킹로드 로...
해병대 상륙훈련장인청림동에서 시작해서
호미곶광장까지의 25km 구간을 말하는데
4개코스로 나뉜다.
▲ 높이 약6m의 선바위로,
평택 임씨가 처음.. 이마을을 개척하면서
마을 이름을 입암(立岩)이라 하였다.
▲ 콘크리트 레미콘을 부어놓은 듯하다..
화산활동에 의한 백토가 박혀 있다.
▲ 왕관바위..라고..
▲ 흰디기.
옛날 노씨(盧氏)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면서
흥(興)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흥덕이라 했는데
음이 변하여 흰덕에서 흰디기로
불리워 졌다고 하며..
또 다른 유래 로는..
흰바위가 많은 언덕 즉 흰 언덕으로 불리다가
흰덕에서 흰디기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 뒤돌아 본 흰디기.
▲ 해안 데크는 다시 이어진다.
▲ 하선대(下仙臺)에
어느 총각 어부가.. 간절함으로 쌓았을까..?
장가 못간 총각 어부가
선녀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 먹바위(검둥바위).
▲ 멸치는 아닌것 같은데
작은 생선을 해풍에 말리고 있다.
아래 댓글로 가르쳐 주시네요
국물을 내는 "디포리"
"디포리" 는
국어 사전에 보리멸의 방언(전라지역)..
이라고 되어 있다.
▲ 디포리..
옛말에..
"서해안의 조기도 먹을 사람을 정해 놓고 잡힌다..."
라는 말이 있다.
어느 가정의 식탁에
인연이 될까..
▲ 갯바위에 낚시꾼이...
무얼 타고 어떻게 들어 갔는지...
나는 발품을 통해서 멋진 풍광을 만나고자 함이고
저 강태공은 기다림으로 고기를 만날 것이다.
▲ 휘어지는 낚시대.
기다림에 어신(漁信)이 왔나보다.
▲ 비문(鼻紋)바위.
▲ 선답자들이 먼저 올려 놓은 곳에
남은 소원이라도 비는 마음으로 던져 보지만 어렵다.
▲ 비문(鼻紋)바위.
소의 코 근처 맨살로 된 부분에 있는 무늬를 가리키는
비문(鼻紋)이 있는데 이 바위가 소의 코 근처에 있는 무늬를 닮아서
비문바위라 이름지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참고로 소의 비문(鼻紋)은사람의 지문과 같이
소마다 무늬가 다르고 일생 동안 변하지 않기 때문에
소의 개체 식별에 사용되기도 한다.
-- 빌려 온 글 --
▲ 자연 풍광도 아름답지만..
때로는.. 데크도 그림이 될때도 있다.
▲ 미인바위..
▲ 파도와 바람의 합작으로 빚어 만든
자연의 딸이다.
뒷쪽에서 보니 풀어헤친 머리며..눈, 코, 입. 턱선
긴 목에...가녀린 어깨선이 뚜렷하다.
▲ 신랑각시바위라는데..
▲ 바람과 파도가 만든 자연의 미인을..
<신중현>의 "미인"...처럼
한번 보고 두번 보고...자꾸만 보고 싶네~..
▲ 흥환리 포구.
▲ 멀리.. 발산리 등대가 보인다..
▲ 장기목장성비.
이곳 호미반도(장기면)에는 조선제일의
말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잊혀진 이곳의 이야기가 있다.
포항남부초등학교를 나오고 대구교육대학교를 졸업한
작가 "김일광"이 쓴 <조선의 마지막 군마>라는 책에 보면
빼앗긴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일제시대에 우리가 빼앗긴 많은 것들 중 일부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빼앗긴 것조차 모르는 것들도 많다.
이 책은 바로 잊혀진 문화유산인 "장기마"에 관한 이야기다.
조선시대 최대 국영 목장이었던 영일 장기목장과
그곳에서 나고 자란 조선 최고의 군마 장기마에 대해 알려준다.
혈통 좋은 군마들이 자란 역사 깊은 목장이었지만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모두에게 잊혀진 이곳의
소설속 이야기 한구절...
구한말의 어느 날,
평생을 장기마를 키우는 데 바친
우? 노인과 원 서방, 원서방의 아들 재복이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목장을 폐쇄하고 기르던 말들은
모두 일본군이 징발해 간다는 것이었다.
불행중다행으로 난산으로 고생하던
어미 말 <학달비>와 새끼 <태양이>는
징발을 면하게 된다...
▲ 함께 하게된 일행들..
▲ 발산리 등대.
▲ 발산리의 생선 말리기.
발산리(發山里)는 봄이 되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골짜기에 꽃이 만발한다고 해서 불려지게 된 이름이라 하는데,
지형이 바랑처럼 생겼다 하여 바랑골 또는 발미골이라고도 한다.
남동쪽 홍환리와의 경계지점에 있는 봉우재에는
옛 발산봉수대 터가 있고, 동쪽 골짜기에는 발산못이 있다.
▲ 땅채송화.
▲ 그냥 찔레꽃인줄 알았더니..
"돌가시나무" 랍니다..
▲ 갯까치수영(갯까치수염).
▲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이라며.. 슬쩍이..
들이대고 한 컷..ㅎㅎ~
▲ 11시 21분 : 장군바위.
아래쪽으로 철조망이 처져 있다.
군사용도는 아닐터인데..보기에 흉하다.
장군바위도 보호하고,,
또는 허물에 질것 같은 안전상의 문제라면..
뽄대나는 안전펜스로 교체 함이..
▲ 도로 위에서..
▲ 뒤에서도...
이 바위는 장군이 아이를 업고 영일만으로 걸어가는
형상이라 하여 장군바위라 부른다.
▲ 11시 24분 : 발산2리.
▲ 그물 손질을 하는 어촌아낙의 손길이 바쁘다.
체험이 아닌 생활의 일부인
일상.. 그 자체다..
▲ 어민이 내일의 출항을 위해 배의
이상유무를 점검하고 있다.
▲ 모감주나무군락지.
발산리의 모감주군락지는
1992년에 천년기념물 371호로 지정 되었다.
▲ 미국질경이.
▲ 솔나물.
▲ 해안가를 벗어나 구룡소로 가는 오름길.
▲ 약 20m 정도의 짧은 오름이지만
힘들게 느껴짐은.. 평지만 걸어와서 일 것이다.
▲ 먼나라의 야자매트가 여기에도..
▲ 이국적인 분위기의 숲길에서.
▲ 까치수염에게 아는체를..한다.
까치와 큰까치의 구분법을 알았다고...
▲ 싱가포르에서의 세기의 악수로..처분만 기다리는데..
사대(射臺)의 총열받침대만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 톱풀,,
내눈에는 지네가 우글거리는 것 같다..ㅎㅎ
▲ 휴전(休戰)..종전(終戰)..평화(平和)..
동족상잔..
아픔의 역사가 남긴 산물들을
무조건 없애 버리는 것 만이
능사일까?...
▲ 갯취. 처음본다.
키가.. 멀대같이 길다..아니 높다.
▲ 구룡소 전망대가 보인다..
▲ 11시 59분 : 구룡소전망대.
여기서 민생고 해결..
▲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하였다는 구룡소(九龍沼).
▲ 대동배1리 전경.
▲ 좌측끝단부가 우리나라 최동단부 호랑이 꼬리다.
▲ 바위에 소나무가..
사는날까지 지금처럼 꼿꼿하게 살아 다오..
▲ 벌노랑이.
▲ 12시 42분 : 대동배교회.
여기서 교회뒤로 가면 안내도 상의 소나무숲길로
가는 길이 나온다.
우리는 그대로..직진.
해안도로 따라서 고고!~~.
▲ 노적송.
대동배(大冬背) 마을은
영일만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전형적인 어촌마을로
학달비산의 유래와 ‘구룡소의 전설,
그리고 ’학달비의 팔경‘의 풍광이 있는 곳이다.
대동배는 신라시대 ‘동을배곶’이라 칭해
봉수대의 이름으로 사용됐다.
1664년, 조정의 관리인 김상구가 이곳에 정착해 작시한
동해순토학달비라는 시구에 연유해 처음에는 학달비라 했다.
그후에.. 1679년 박현섭이라는 어부가
마을 뒷산이 달비 같다 하여 ‘한달비’라 칭해오다가
1914년 대동배로 통칭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돈이 흔해 개가 지화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생긴 만큼의 부촌으로
일본 유학생이 많았다..고.
▲ 노적봉.
대동배1리 주민들이 정성으로 보살피는 곳이다.
대동배리는...
여름에는 천연기념물 제371호로 지정된 모감주나무에
꽃이 만발하면 마치 황금비가 내리는 듯한 장관을 연출하며,
노암식수, 구룡소 등의 명승지가 있다.
▲ 백석(白石).
검은돌들 속에 흰돌이..
겉 희고 속 검은 돌은 아닐테지..
ㅎㅎㅎ~.
▲ 갯메꽃의 노래..
▲ 호미반도에는 먹거리가 풍부한가보다.
갈매기들의 배설물이..
▲ 그런데.. 이기머꼬?..
▲ 바위틈새에서 흘렀는데..???~
▲ 다시 데크로 올라서면..
▲ 안내도상의 <모아이 상>이다.
▲ 얼굴 윤곽. 눈썹.코.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는 입..
강인한 턱선.
▲ 돌아보면.. 아니다.
▲ 14시 08분 : 상생의 손이,,있는..해맞이 광장.
트레킹 끝이다..
▲ 해맞이 광장.
우리나라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며
한반도 최동단에 위치하여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2000년 및 2001년 1월 1일 두차례에 걸쳐
국가지정 해맞이 축전이 개최되었으며
해마다 한민족 해맞이 축전이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이곳에 조성된 해맞이 광장에는 천년대의 마지막
햇빛과 날짜변경선인 피지섬의 첫 햇빛, 그리고..
이곳 호미곶에서 채화된 2000년 시작의 햇빛 등을 합해
영원의 불로 간직하고 있는 영원의 불씨함이 있다.
-- 다음백과 --
▲ 상생의 손..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축하하며
희망찬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99년 6월 제작에 착수한지 6개월만인
그해 12월에 완공됐다.
-- 다음백과 --
▲ 상생의 손은
국가행사인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기리는 상징물이다.
-- 다음백과 --
▲ 육지에선 왼손,
▲ 바다에선 오른손인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를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든
조형물인 상생의 손은 두 손이 상생(상극의 반대)을
의미한다.
-- 다음백과 --
▲ 성화대의 화반은 해의 이미지이며,
두 개의 원형고리는 화합을 의미한다.
-- 다음백과 --
▲ 호미곶 등대(경상북도 기념물 제39호)..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근대식 등대이다.
등대의 높이는 26. 4m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높으며,
둘레는 하부 24m, 상부 17m이다.
광력(光力)은 1,000촉으로 16마일 해상밖까지 등불이 보이고
2마일 해상밖까지 들리는 안개신호기가 설치되어 있다.
1901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에서
러시아세력을 몰아내기 위하여 러일전쟁을 준비하던 중
일본의 수산실업전문학교 실습선이 우리 나라 연안의 해류,
어군의 이동상황, 수심 등을 조사하기 위하여
대보리 앞바다를 지나다가 실습선이 암초에 부딛혀
전원이 익사하는 사건이 있었다.
일제는 이 사건의 책임을 한국정부에 전가하면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등 생트집을 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1902년 1월 우리 돈으로 일본인에게
등대시설을 청부시켜 1903년 12월 준공하였다.
-- 다음백과 --
▲ 연오랑세오녀상.
트레킹 첫출발지가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이었는데
못가서 아쉽다.
이 설화는 원래 <수이전>에 실려 있었으며,
고려 때 <삼국유사>에 채록되어 전한다.
157년 동해안에 살던 연오랑은 바닷가에서 해조를 따다가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는 바람에 일본에 건너갔다.
이를 본 왜인들은 연오랑을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다.
세오녀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그를 찾아 나섰는데
남편의 신이 바위 위에 있었다.
바위에 올라갔더니 바위가 움직여
세오녀도 일본에 가게 되었으며,
부부는 다시 만나고 세오녀는 귀비가 되었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는데,
일관은 해와 달의 정기가 일본으로 가버려서 생긴 괴변이라 했다.
왕이 일본에 사자를 보냈더니 연오랑은 세오녀가 짠 비단을 주며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라고 했다.
신라에서 그 말대로 했더니
해와 달이 빛을 찾았다.
"일본 왕실의 핏줄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으로 시작됐다",,
라는 것을 암시하는 설화다.
-- 다음백과 --
▲ 전국 최대의 가마솥.
지름 3.3m, 깊이 1.2m, 둘레 10.3m로
내부는 고강도 스텐레스. 외부는 주철로 만들어 졌으며,
무게는 약 1톤이 된다.
이 가마솥은 2004년 1월 1일
해가 가장 먼저뜨는 이곳에서 개최된
"한민족 해맞이 축전" 행사에 참여한 관광객들이
새해아침에 직접 떡국을 끓여 먹는 체험 행사용으로
특수제작 된 것이다.
▲ 메밀꽃.
▲ 창질경이.
▲ 사철나무.
▲ 해당화..
▲ 해당화 열매.
▲ 밝음이가 빨리 찾아 오는 곳이라 그런지
포항제철 너머로 어둠이가..
빨리도 내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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