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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재도(晩才島) 여행 첫날 : 마구산(큰산)과 물생산 트레킹
여행일 : ‘19. 5. 20(월)-21(화)
소재지 : 전남 신안군 흑산면 만재도리
트레킹 코스 : 숙소→내연발전소→안부 삼거리→오른쪽 마구산(등대) 왕복→안부삼거리→왼쪽 물생산 왕복→안부 삼거리→숙소(소요시간 : 2시간 정도)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만재도는 '먼데섬'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우리나라 섬 가운데 접근하기가 가장 어려운 섬이다. 무려 5시간여나 걸린다. 흑산도와 하태도, 가거도 등을 에둘러 돌아간 쾌속선이 맨 마지막에 닿는 곳이기 때문이다. 해안선의 길이가 5.5㎞인 이 섬의 주민(45가구 100여 명)들은 변변한 밭뙈기 하나 없이 바다만 바라보며 살아간단다. 뭍에서 접근하기가 어려운 만큼 섬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자동차는 물론 오토바이도, 경운기도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어선 엔진소리를 제외하면 온통 자연의 소리뿐이다. 하지만 최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숫자가 부쩍 늘었단다.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과 ‘삼시세끼-어촌편’의 촬영지가 되면서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다.
▼ 찾아오는 방법
만재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목포 연안여객선 터미널’까지 와야만 한다. 하태도를 포함한 흑산면 소재의 섬들로 들어가는 배가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목포에서 만재도까지는 약 142km, 뱃길로 대략 5시간 정도가 걸린다. 참고로 이곳 목포연안여객선 터미널은 쾌속선이 바다를 향해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1980년 지어진 옛 건물이 낙후되자 총 사업비 250억 원을 들여 2005년에 새로 지었단다.
▼ 대합실에는 시화전(詩畵展)이 열리고 있었다. ‘제8회 유권자의 날’을 맞아 전남선관위에서 주관한 ‘소녀시대 할머니의 선거이야기’이다. 순천그림책도서관의 한글작문교실 할머니 회원들이 직접 참여하여 선거와 투표 참여의 중요성을 주제로 쓰고 그린 작품들이란다. 그중 자기가 선택한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자신이 운영하던 식당에 온 모든 손님들에게 홍어와 막걸리를 공짜로 제공했었다는 할머니의 작품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 오전 8시10분에 출발하는 쾌속선(남해엔젤호)을 타면서 만재도 여행이 시작된다. 목포항을 출발한 이 배는 비금·도초도와 다물도, 흑산도, 상태도, 하태도, 가거도를 거친 다음 만제도에는 13시30분에 도착한다. 참고로 이 배는 목포로 돌아갈 때는 가거도를 거치지 않는다. 운항사 또한 다르다. ‘남해고속훼리’와 ‘동양고속훼리’ 두 회사가 짝수일과 홀수일에 번갈아가며 운항하기 때문이다.
▼ 가거도 선착장에 도착한 배는 40분간의 휴식을 취한다. 만재도로 들어가는 승객들에게 하선(下船)의 자유가 주어짐은 물론이다. 4시간 10분을 배속에 갇혀있던 승객들에게는 달콤한 휴식이라 하겠다. 참고로 이곳 가거도의 옛 이름은 ‘아름다운 섬’이란 뜻의 '가가도'(嘉佳島, 可佳島)‘였다고 한다. '가히 살만한 섬'이란 뜻의 '가거도(可居島)'는 1896년 이후부터 불리게 된 이름이란다. 일제 때는 소흑산도(小黑山島)로 불리었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40분이면 대리(가거1구) 마을을 둘러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가거도는 ’1구‘인 대리와 항리(2구), 그리고 대풍리(3구) 등 3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는 약 400여명, 그 중 대부분은 1구인 대리에 모여 살고 있다. 주민(住民)들의 주요 수입원(收入源)은 어업(漁業)인데, 찾아오는 관광객(觀光客)들이 늘어나면서 요즘에는 민박집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단다.
▼ 표지석에서 오른편으로 돌자 독실산(犢實山)으로 연결되는 ’가거도 탐방로 1구간‘의 들머리가 나온다. 능선을 끊어 생긴 절개지가 시퍼렇게 날이 서있는데 탐방로는 그에 기대어 나있다. ’김부연하늘공원‘으로 불리는 이 일대는 원래 채석장이었다. 1979년부터 30년간 돌을 채취했단다. 인구가 500명도 못되는 섬에 무슨 돌이 그리 많이 필요했을까 궁금하겠지만 풍랑 때문이란다. 2011년 8월 태풍 무이파가 왔을 때는 방파제의 테트라포드가 가거항 광장까지 날아와 떨어졌을 정도였단다. 하나의 무게가 64톤이라는데 그런 어마어마한 무게를 날린 바람이다. 때문에 인간의 방파제는 수없이 깨지고 부서지기를 반복해왔고 가거항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이처럼 돌은 대부분 방파제와 가거도항에 쓰였다. 현재는 기능을 바꿔 전망 좋은 산책로로 제공되고 있다. 그렇다면 공원의 이름인 ’김부연‘은 누구일까. 가거도 출신 순국열사다. 그는 목포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 서라벌예고 재학 중 4.19혁명에 동참했다가 19세에 순국했다. 국립 4.19민주묘지에 안장됐지만 그를 기리기 위해 이 공원에 이름을 남겼다. 출장소 앞에는 그의 흉상도 세워져 있단다.
▼ 절개지의 앞은 동개해수욕장이다. 사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오른편에는 장군봉이 있다. 장군봉은 아래쪽에 작은 굴이 하나 있어서 굴섬이라고도 부르는데, 가거도항의 대표 풍경 중 하나다. 이 장군봉의 왼편에 분포되어 있는 ’몽돌해안‘이 동개해수욕장이다. 해안의 끄트머리에 있는 바위봉우리가 ’동개바위‘인데 해수욕장의 이름은 여기서 따왔다고 한다. 해안은 300m 정도의 날렵한 유선형이고 장군봉과 동개바위가 양 끝을 아늑하게 막아주는 예쁜 해변이다. 그건 그렇고 가거도는 낚시 포인트가 많은 반면 해수욕장은 귀하다. 모래사장은 아니지만 한번쯤은 해안을 걸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부둣가에 서면 ’회룡산(回龍山)‘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눈에 담아도 하나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산이다. 회룡산의 정상은 ’선녀봉‘이다. 이곳은 서·남해 용왕의 아들이 수도하던 곳이었다고 하는데, 이를 본의 아니게 방해한 이가 선녀들이다. 용왕의 아들은 선녀들의 아름다움에 취해 수도하는 것은 잊고 매일 놀러 다니기 바빴다. 이 사실을 안 용왕은 화가 치밀어 아들을 용산으로 만들어 버렸단다. 선녀들은 이를 불쌍히 여겨 눈물을 흘리다가 하늘로 올라갔단다. 선녀봉에는 항상 물이 마르지 않는데 이를 선녀의 눈물이라 하고, 그들이 춤추고 놀던 곳을 가무작지(歌舞作地)라 한단다.
▼ 가거도를 출발하고 30분쯤 지나자 만재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마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첫 번째 절경은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이다. 각지고 검은 바위들이 거대한 해안절벽을 통째로 점령하고 있는 게 장관이라 하겠다. 그동안 국내에서 보아오던 수많은 주상절리 중에서 가장 큰 규모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주상절리 기둥이 마치 초가지붕을 이고 있는 듯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지붕바위‘가 아닐까 싶다.
▼ 두 번째 볼거리는 ’코끼리바위‘이다. 코끼리가 물을 마시고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렇다면 저 코끼리는 가슴까지 빠지는 물속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저 바위는 ’남대문‘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니 기억해 두자.
▼ 그 외에도 작은 돌섬들이 바다에 널려있다. 그 하나하나가 기괴한 몸짓들을 하면서 말이다.
▼ 목포항을 출발한지 5시간 20분 만에 ’만재도(晩才島)‘에 도착했다. 아니 중간에 가거도에서 40분을 머물렀으니 정확히는 4시간 40분이 걸린 셈이다. 참고로 ’만재도‘는 ’소중간군도(小中間群島)‘의 주도(主島)이다. 이 군도(群島)는 만재도를 비롯하여 국도(菊島)와 삼태도(三苔島)·녹도(鹿島)·흑도(黑島)·외마도(外馬島)·내마도(內馬島)·백서(白島)·제서(濟島)·간서(間島) 등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흑산도와 함께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서해의 낙도군(落島群)이라고 보면 되겠다.
▼ 만재도에 발을 딛는 일은 ‘상륙작전’을 방불케 한다. 바다가 얕아서 선착장에 쾌속선을 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쾌속선이 바다에 멈추면 조그만 연락선이 승객과 짐을 태우러 온다. 이것은 만재도를 빠져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입도(入島)가 불가능하단다. 목포에서 142km쯤 떨어졌다는 만재도는 같은 흑산군에 소재하고 있는 가거도(145㎞) 보다는 분명 가깝다. 하지만 섬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가거도보다 더 길다. 거기다 뭍으로 오르는 일도 훨씬 더 힘들다. 그러니 가거도보다도 더 외딴섬이라 하겠다.
▼ 선착장에는 화장실을 갖춘 대합실이 반듯하게 지어져 있다. 하지만 매표(賣票)는 배에서 하고 있단다. 그렇다고 화장실까지 이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화장지까지 비치해놓지는 않았지만 도회지 공중화장실보다도 더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었다. 민박집이 화장실 하나를 공동으로 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고마운 시설이라 하겠다.
▼ 선착장에서 마을까지는 시멘트 포장길로 연결된다. 옛날 ’삼시세끼-어촌편‘의 출연진들이 짐을 실은 리어카를 끌며 힘들어하던 구간이다. 그런데 앞서 걷던 집사람이 헛웃음을 짓는 게 보인다. 엄청나게 멀리 보이던 방송과 현실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두 지점의 거리는 200m도 채 되지 않는다. 특히 경사도 거의 없다. 그들 정도의 젊음이라면 웃으면서 리어카를 이끌었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방송. 특히 ’삼시세끼‘ 같은 예능프로그램이라면 보다 자극적인 상황 연출과 반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 마을 앞에는 널따란 해수욕장이 들어서있다. '앞짝지 해수욕장’으로 앞산 밑에 위치한 '건너짝지'와 마을 남쪽 벼랑아래의 '달피미짝지' 등 세 곳의 몽돌해수욕장 가운데 대장격이라고 한다. 둥그런 반원을 그리며 돌아나가는 모양새가 너무나 정연하다. 그래서 ‘반월도(半月刀)’를 닮았다는 표현을 쓰는가 보다.
▼ 마을은 온통 ’돌담 투성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집들은 하나같이 지붕만 살짝 보일 따름이다. 그만큼 바람이 세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최상복(TEl : 010-6262-7193)‘씨 집도 역시 그런 돌담 속에 갇혀있었다. 건물 사진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 배정 받은 방에다 짐을 풀자마자 트레킹을 나선다. 오늘은 만대도에서 가장 높다는 마대산(큰산)과 바위봉우리인 물생산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숙소를 빠져나와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길이 둘로 나뉜다. 왼편은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이니 개의치 말로 오른편으로 향할 일이다.
▼ 동네에는 폐가(廢家)가 꽤 많아 보인다. 그중에는 담쟁이넝쿨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을 정도로 버려진지 오래된 곳도 눈에 띈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집들도 파도가 높은 겨울이면 비워지는 곳이 많단다. 많은 집들이 자식들이 사는 목포로 떠난다는 것이다. 고기 잡는 철이 아니어서 소일거리도 없거니와 아프기 쉬운 계절이라서 병원이 가까운 대처로 나갈 수밖에 없단다.
▼ 마을을 벗어나자 내연발전소가 길손을 맞는다. 이 섬에 전기가 들어온 지는 채 20년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폐교된 만재분교에 발전기가 들어오면서 부터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각 집에서는 전구만 켤 수 있었단다. 그것도 해진 후에서 자정까지로 시간까지 정해져 있었다. 그러다가 1997년 내연발전소가 완공되면서 전기는 더 이상 부족하지 않게 되었단다. 덕분에 TV는 기본이 되었고, 전자레인지와 세탁기·냉장고 등은 필수품이 되었다.
▼ 내연발전소의 앞은 ’할머니 당숲‘이다.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당제(堂祭)를 지내오며 신성시 여기는 곳이란다. 주민들이 이곳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숲의 바로 아래에 섬의 유일한 식수원인 샘이 있기 때문이란다. 당숲에는 후박나무가 지천이다. 위장병과 천식에 좋고 목재는 가구와 선박재로 사용되는 유익한 나무이다.
▼ 탐방로는 발전소 옆에서 열린다. 이정표는 보이지 않으나 데크로 계단을 만들어놓았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계단을 잠시 올라가면 이내 산책길이 이어진다. 능선으로 오르는 길가에는 작은 밭뙈기들이 몇 보인다. 척박한 땅이지만 고구마나 감자, 시호라는 약초 등을 재배하고 있단다.
▼ 능선으로 오르는 길.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시야가 뻥 뚫려버린다. 그리고 망망대해를 향해 뻗어나간 능선이 시선을 붙잡는다. 해안절벽으로 이루어진 경관이 자못 빼어나다.
▼ 마을에서 출발한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능선에 오른다. 만재도 사람들이 ’움틈개‘라고 부르는 곳이다. 안부인 이곳에서 길은 좌우로 나뉜다. 왼쪽은 ’물생산‘으로 연결되고, 오른편 능선은 등대가 있는 마구산(큰산)으로 이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가던지 정상을 답사한 후에는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 움틈개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비경이다. 만재도의 새끼섬인 내마도(內馬島)와 외마도(外馬島)가 눈에 들어온다. 아까 만재도로 들어오면서 보았던 풍경들이다. 한시도 눈길을 떼지 못하게 만들던 코끼리바위는 외마도의 오른편에 위치한다. 참! 첫 모습은 두 섬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잠시 후에는 두 개로 나뉘지만 말이다, 아니 작은 암초들까지 합칠 경우 그 숫자는 두 배로 늘어난다.
▼ 먼저 등대가 있는 마구산부터 다녀오기로 한다. 억새 가득한 능선에는 마치 곱게 빗어 넘긴 가르마 같은 좁은 오솔길이 나 있다. 참고로 이 능선은 일몰 장면이 아름답기로도 소문난 곳이다.
▼ 억새밭을 지나자 산죽(山竹) 숲이 나오고, 이어서 산길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숲속으로 파고든다. 길은 정성들여 가꾼 흔적이 역력하다. 길가의 잡목들이 잘 다듬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곳은 데크로 계단까지 만들어 놓았다.
▼ 조금 더 오르자 또 다시 동백과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아니 그 밀도가 한층 더 높아졌다. 큰산 아래쪽에 ’할아버지 당숲‘이 있다고 했는데 이곳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오래된 나이를 보여주는 굽어진 아름드리 둥치가 예사롭지 않다. 땔감이 부족한 섬이었지만 그 동안 주민들이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할머니 당숲‘과 함께 신령스럽게 모셔왔기 때문이다.
▼ 길을 나선지 30여분 만에 정상에 올라선다. 높이라야 176m 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만재도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마구산‘이라는 이름 말고도 ’큰산‘으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정상에는 무인등대(無人燈臺)가 홀로 봉우리를 지키고 있다. 크지 않은 등대는 수풀에 가려져 더욱 왜소해 보인다.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등대가 정상석을 대신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 모양이다.
▼ 등대의 너머는 아득한 낭떠러지이다. 그래선지 절벽 쪽으로 목제난간을 만들어 통행을 막고 있다. 이 절벽의 아래에는 만재도가 자랑하는 주상절리대가 있다. 직사각형의 바위를 차곡차곡 포개 놓은 모양새라는데 선상에서 봐야만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가 있단다. 눈대중이라도 해볼까 해서 난간을 넘으려는데 집사람의 날카로운 지청구가 뒤따른다. 아까 섬으로 들어오면서 본 풍경인데 위험까지 감수해가면서 다시 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기껏해야 곁눈질 정도라면서 말이다.
▼ 안부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물생산‘으로 향한다. 참고로 잠시 후에 오르게 될 ’물생산‘을 ’물세이산‘, 즉 ’물살이 센 산‘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산봉우리 아래의 물길이 센데서 비롯된 이름이 아닐까 싶다.
▼ 능선의 오른편은 서슬 시퍼런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 만재도의 해안은 다양한 형태의 해식애(海蝕崖)로 이루어졌는데 눈에 들어오는 풍경마다 보두가 일품이다. 어느 하나 거대하지 않는 것이 없어 그 웅장함에 보는 이들이 압도당하고 만다.
▼ 물생산 쪽 능선에는 이동통신사(KT)의 중계시설이 세워져 있다. 참고로 만재도에 처음으로 전화가 들어온 것은 1986년부터였다고 한다.
▼ 아찔한 벼랑 밑으로는 코끼리를 닮았다는 내마, 외마 두개의 섬이 나란히 붙어 서있다. 참! 외마도 쪽으로 흘러내리는 가지능선으로도 길이 나있다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아쉬운 마음을 다른 이의 글로써 대신해본다. <우측으로는 마구산 해벽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물생산 해벽이 아찔하게 다가온다. 해안바위들이 특이하다. 악어들이 바다로 기어나가는 모습 같다. 가파른 절벽 위로 검은 염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가지능선 끝까지 가면 내마도와 외마도가 지척에서 내려다보인다.>
▼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이번에는 ’앞산‘으로 뻗어나간 바위능선이 손짓을 한다. 한 폭의 풍경화라 할 수 있겠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이다. 참! 만재도의 부속섬들도 눈에 들어온다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앞산 능선의 오른편에 보이는 자그만 섬이 ’녹도‘이고, 앞산의 뒤쪽 왼편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섬은 ’국도‘이다. 내일 앞산을 트레킹 할 때는 막상 볼 수가 없으니 가슴속에 잘 저장해 두자.
▼ 물생산의 정상은 험상궂은 바위능선으로 연결된다. 그동안 몇 명의 탐방객이 추락해 사망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목숨을 걸 정도로까지 위험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른쪽은 천 길 낭떠러지인 반면에 왼쪽 사면(斜面)은 흙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경사가 심한데다 바위를 붙잡고 용을 써야만 오를 수 있는 구간도 여럿 나오지만 주의만 조금 기울인다면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가 있다.
▼ 10년을 벼른 끝에 만재도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이생진 시인’, 섬 여행가이자 섬 시인으로 불리는 그가 저서인 ‘걸어다니는 물고기(2000년 펴냄)’에다 풀어놓은 물생산에 대한 느낌이 생각나 옮겨본다.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물생산은 험하면서도 자꾸 사람을 유인해 하늘로 끌고 갔다. 올라가면서 석양은 짙고 염소 우는 소리는 노을을 재촉했다. 절벽에 핀 천남성꽃이 절벽으로 올라오라 했다. 이런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뭍에서는 사람이 유혹한다. 하지만 섬에서는 꽃이, 새가, 나비가 유혹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 유혹에 조심해야 한다. 절벽은 험하고 무서울 정도다. ... 만재도의 새끼섬인 내마도, 외마도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야! 신비다. 이렇게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다. 초록빛 이마에 등갈색 암석이 내려지는 절벽, 절벽을 하늘 끝닿게 세워놓은 듯 눈이 빙 돈다>
▼ 안부를 출발한지 20분 만에 물생산의 정상에 올라선다. 두세 개쯤 되는 인근의 바위봉우리들이 다들 고만고만한데다 이곳이 정상이라는 표식까지 없는 탓에 헷갈렸지만 우리 부부는 그중 가장 높아 보이는 곳에서 인증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이곳까지 오지를 못하는 일행들도 꽤 많았다. 눈어림만으로도 엄청나게 위험해보였기 때문이다. 이생진 시인의 생각도 크게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조금씩 끌리는 대로 올라간다. 물생산 정상에 올라왔다. 발 한 번 헛디디면 깊은 물속으로 떨어진다.>라고 쓴 것을 보면 말이다.
▼ 정상에 서면 좌우 방파재 안에 들어선 만재마을의 포구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 오른편에는 기암괴석들이 용의 지느러미처럼 줄을 지어 늘어섰다. 그중 뽈록하니 튀어나온 바위가 ’미남바위‘이다.
▼ 더 이상의 진행을 그만두고 이쯤에서 하산하기로 한다. 이후부터는 좌우 양측이 모두 서슬 시퍼런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호랑이처럼 노려보고 있는 집사람의 눈길이 더 무서웠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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