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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44코스
여행일 : ‘20. 7. 4(토)
소재지 :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과 손양면, 강현면 일원
여행코스 : 수산항 입구(5.7km)→오산리 선사유적지→낙산 해변(0.5km)→낙산사 입구(1.9km)→낙산사→설악해변(4.2km)→물치항→속초 해맞이공원(소요시간 : 12.3㎞, 실제로는 16.44㎞/ 4시간 5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원래의 거리는 12.3㎞이나 낙산사 경내를 둘러보는 거리가 빠져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고 국가가 지정한 명승(名勝)이자 천년고찰인 낙산사를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이럴 경우 2㎞ 정도의 거리가 더 늘어난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아무튼 이 구간은 아름다운 경관은 물론이고 선현의 숨결까지 함께 느껴볼 수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낙산해변‘과 ’물치항‘ 같은 작은 포구들, 거기다 오산리 선사유적과 낙산사 등의 역사유적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코스를 약간 변경해 걸어보았다. 43코스를 답사하면서 연장했던 구간(1㎞)을 뺀 대신에 대포항까지 1㎞ 조금 못되는 거리를 추가로 더 걸었다. 중간에 낙산사 경내를 둘러봤음은 물론이다.
▼ 트레킹의 들머리는 ’손양 문화마을 정류장(양양군 손양면 도화리 257)
동해(속초-삼척)고속도로 하조대 IC에서 내려와 해안도로를 타고 양양방면으로 올라가면 달리다보면 ’수산항‘ 입구에 이어 ’손양 문화마을‘ 입구가 나온다.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버스정류장 곁에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1㎞쯤 더 올라간 지점에 위치한 ’오산리 선사유적지‘ 앞에서 시작했다. 지난 43코스 답사 때 이곳까지 걸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도로 건너, 그러니까 유적지의 반대편에는 ’쏠비치리조트‘가 위치하고 있다.
▼ 트레킹을 나서기 전에 먼저 ’오산리 선사유적(鰲山里先史遺蹟, 사적 제394호)‘을 둘러보기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박물관 문이 닫혀있기에 외부에 복원해 놓은 ’신석기인의 움집(竪穴住居)‘만 살펴봤다. 둥글게 생긴 움집의 내부 바닥은 진흙을 깔아 다지고 그 한가운데에 화덕(爐)을 배치한 모양새이다. 오산리 유적지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이런 집자리들이 14기나 별견되었다고 한다.
▼ 4차선 도로(선사유적로)의 가장자리를 따라 내놓은 ’국토종주 동해안자전거길‘을 따라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이번 44코스도 역시 자전거길의 표식인 파란색 선을 따른다고 보면 되겠다.
▼ 해돋는 마을이란 부제가 달린 ’오산리‘ 마을표지석 곁에 세워진 버스정류장이 눈길을 끈다. 양양을 대표하는 연어와 송이버섯 조형물을 덧댄 디자인에서 설계한 이의 진한 지역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동명천‘을 가로지르는 ’오산교‘를 건너자 ’송전해변‘으로 들어가는 길이 오른편으로 나뉜다. 옛 ’오산해변‘인데 우리 부부는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지난번 43코스 답사 때 곁눈질로나마 이미 구경을 했었기 때문이다.
▼ 잠시 후 이른 ’강원대 동해수련원‘. 도로 맞은편에는 ’바다캠핑장‘이 널따랗게 자리하고 있다. 도로(선사유적로) 양옆으로 넓게 들어선 푸르른 솔숲을 활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송전리 해변솔밭‘이라 불리는 이 숲속에는 별도의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오뉴월 땡볕이 부담스러울 경우 이 산책로를 따라 걸어도 된다.
▼ 오산교를 지나자 도로가애 해당화 화단이 조성되어 있었다. 개화시기가 조금 지났지만 게으른 놈들은 이제야 꽃망울을 활짝 열고 있다.
▼ 마을 주변에 갈풀이 많이 자생한다고 해서 ’갈벌‘이라 불린다는 ’가평리(柯坪里)‘ 마을표지석을 지나자 연어와 송이버섯이 보초를 서고 있는 ’낙산대교‘가 길손을 맞는다. 양양의 풍경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으로 트레킹을 시작한지 30분 만이다. 참! 남대천에 가까워지면서 백두대간이 조망되기 시작했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진행방향 저 멀리서 백두대간의 준봉들이 나 여기 있다며 손짓하고 있는 것이다. 설악산 대청봉이 불쑥 치솟았는가 하면. 대청봉 우측 푹 꺼진 지점에서는 울산바위와 달마봉이 자신의 울퉁불퉁한 근육질을 자랑하고 있다.
▼ 낙산대교는 그 길이가 470m나 된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남대천(南大川)‘의 수량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양양의 대표 하천인 남대천은 갈대가 무성하고 백로가 이따금씩 쉬어 가는 여유로움이 찾는 이의 발목을 잡는 곳이다. 봄에는 황어, 7~8월엔 은어, 10~11월엔 연어 떼가 돌아오는 어머니의 강이기도 하다. 참고로 남대천은 양양군의 팥밭무기(현북면) 인근 오대산(부연동 계곡)과 두로봉 등지에서 발원하여 삼산리, 법수치리, 어성전리에서 큰 물줄기를 이룬 후 양양읍 남쪽을 지나 동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원도 최대의 강이다. 지류로는 점봉산에서 발원한 ’오색천‘과 구룡령에서 발원한 서림천(西林川, 일명 갈천)이 있다.
▼ 낙산대교를 건넌 탐방로는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 낙산해변으로 향한다. 왼편은 읍내로 들어가는 길이니 참조한다. 이어서 남대천을 오른편에 끼고 10분 조금 못되게 걷자 낙산해수욕장이 드넓게 펼쳐진다. 모래가 깨끗하고 수질이 맑은데다 접근성까지 뛰어나 여름철이며 피서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과 강릉 경포대해수욕장과 함께 동해안의 3대 해수욕장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 낙산해변은 울창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1㎞를 훌쩍 넘기는 백사장이 기다랗게 펼쳐져 있다. 해변의 끄트머리까지는 20분 정도가 걸리는데 모래사장과 송림 사이에 데크로드가 놓여있으니 이를 따르면 된다.
▼ 드넓은 모래사장이 텅 비어있기에 의아했는데 바다로 조금 더 나가자 물놀이를 하고 있는 피서객들이 눈에 들어온다. 솔숲에 가까운 곳과 바다 근처의 모래사장 경사도(傾斜度)가 서로 다르다는 증거일 것이다. 바다 쪽의 경사가 훨씬 더 가팔랐음은 물론이고 말이다. 참고로 낙산해수욕장은 여름에는 여름대로 활기참이 가득하고 가을이나 겨울에는 아늑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깨끗한 모래와 수질 덕분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데, 수상레저를 즐기려는 젊은 층이 특히 많다고 한다. 덕분에 바나나보트나 수상오토바이 등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 우리 부부는 해안도로의 가장자리를 따라 내놓은 탐방로를 따르기로 했다. 모래사장으로 연결되는 진입로 입구에 ’조류인플루엔자(AI) 전파가능성이 높은 철새도래지‘라서 출입을 통제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 현수막이 꼭 아니더라도 도로가 더 나을 것 같다. ’러브 의자‘와 ’의자 그네‘ 같은 사진 찍기 딱 좋은 조형물들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 중간쯤에서 해변으로 나가 이번에는 데크로드를 따른다. 이때 만나게 되는 게 ’해변캠핑장‘인데, 근처 소공원에는 강아지와 함께 독서하는 인물상이 만들어져 있었다. 사진첩에 담아둘만한 멋진 기념사진 하나쯤 건지기에 충분한 포토존이다. 이밖에도 해변에는 부부가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있는 형상의 ’친한 사이‘와 공연장면을 나타낸 '환영(幻影)-Concert', 빗자루를 타고 행복의 여행을 떠나는 '달 따러 갑니다', ’나의 오벨리스크‘ 등 수많은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 배후단지와 모래사장 사이에는 이곳 낙산해수욕장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날개를 활짝 편 갈매기를 형상화했다는데 낙산해변과의 연관성에 대한 정보는 찾아볼 수 없었다.
▼ 1998년에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원도의 힘'이 촬영되었던 장소임을 알리는 표지석도 세워져 있었다. 옛 연인이었던 주인공들이 각각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한국 영화사상 '가장 낯설은'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제51회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정식으로 초청되었는가 하면, 제19회 청룡영화상에서는 감독상과 각본상까지 수상했다. 하지만 예술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그저 일탈의 영화로만 보였을 따름. 영화를 보는 내내 불륜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감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추측은 사실로 드러나 버렸다. 그 이후 나는 그가 제작한 영화는 일절 외면해오고 있다.
▼ 해변에 설치된 수많은 조형물 가운데 ’오줌싸개 소년‘ 동상이 가장 눈길을 끌지 않았나 싶다. 간밤에 이부자리에 오줌을 싼 아이가 부모에게 혼이 난 뒤 키를 뒤집어쓰고 울면서 이웃집에 소금을 얻으러 가는 장면과, 그 뒤에서 어린 동생을 업고 이를 웃으며 쳐다보는 누이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그 해학적인 표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데,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얼굴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의 장난이겠지만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으로 인한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 해수욕장 주변을 달리는 꽃마차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동물보호단체에서야 ’동물학대에 노동력 착취‘까지 덧붙이지만 저만한 관광 상품이 또 어디 있겠는가. 또한 말을 반려동물처럼 모셔놓고 기를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 낙산해수욕장이 끝나는 곳에서 해파랑길은 왼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오른편에 보이는 언덕으로 오른다. 낙산사를 둘러보기 위해서인데, 후문으로 들어갔다 정문으로 빠져나오는 코스가 낙산사 투어의 가장 짧은 동선(動線)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설악의 끝자락이 동해와 만나는 지점으로 놓인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천년고찰 ‘낙산사(洛山寺)’가 나온다. 신라 문무왕 11년(671년)에 의상(義湘)이 창건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의상은 파랑새로 변장한 관음보살의 인도에 따라 바닷가 굴에 들어가 정진한 결과 바다의 용왕으로부터 수정염주와 불상 및 붉은 연꽃을 얻어 대나무가 자라는 곳에 절간을 세웠다. 그래서 낙산사는 관음도량이고, 그것도 해수관음도량이다. ‘낙산(洛山)’이라는 이름도 관음보살이 거주하고 있는 인도의 ‘보타낙가(補陀落伽, Potalaka) 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 낙산사도 화마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통일신라를 비롯해 여러 번 불에 탔다. 2005년에는 강풍을 타고 번진 산불로 인해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후 문화재청의 도움으로 사찰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으나, 주변 숲은 아직도 회복 중에 있다.
▼ 낙산사로 올라가다 뒤돌아본 낙산해수욕장 풍경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모래사장 오른편에는 같은 길이의 고층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그만큼 찾는 이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 매표소를 거쳐 경내로 들어서자 ‘낙산사 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한낱 낙산사에 놓인 ‘갈래 길’들을 소개하는 지도에 불과한데도 선(禪)을 추구하는 절간답게 ‘길에서 길을 묻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인간은 살아 있는 날까지 알 수 없는 길을 따라 길 위를 걷는다. 이런 이치를 깨달은 옛 선인들은 우리에게 삼간(三間), 즉 공간(空間)과 시간(時間), 인간(人間)과 친하라고 권했다. 또한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고도 했다. 끊임없이 사색하고 명상하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 오늘만은 나도 구도자(求道者)의 자세로 경내를 돌아보자. ‘해를 맞이하는 길’과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을 이용해 ‘의상대’와 ‘홍련암’을 먼저 둘러본다. 이어서 ‘근심이 풀리는 길’의 끄트머리에서 ‘해우소’를 들른 다음, 이번에는 ‘설레임이 있는 길’을 따라 ‘해수관음상’으로 간다. 그리곤 ‘꿈이 이루어지는 길’을 통해 원통보전‘으로 가면 낙산사 방문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아니 정문이랄 수 있는 홍예문도 만나봐야겠다.
▼ 절의 창건자인 의상스님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의상기념관‘과 다래헌(차와 기념품 판매)을 지나자 일출의 명소라는 ’의상대(義湘臺)‘가 나온다. 의상이 수도하던 절벽 위에 지은 정자로 관동팔경의 하나이며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연출하는 비경이기도 하다. 의상대를 호위하듯 절벽 끝에 아찔하게 서 있는 소나무. 관음송(觀音松)이 ‘그림’이고, 의상이 좌선했을 대에서 의상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바닷가 해안절벽도 한 컷의 ‘사진’으로 충분하다. 특히 파도소리 청량한 절벽을 끼고 홍련암까지 이어지는 벼랑길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 의상대의 맞은편 바위절벽에는 ’홍련암(紅蓮庵, 강원도 문화재자료 36호)‘이 둥지를 틀었다. 2005년 4월 5일, 하필이면 식목일에 일어난 엄청난 화마까지도 범접을 못했던 신비의 암자이다. 그게 이유는 아니겠지만 홍련암은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찾는 비원과 염원의 장소 중 하나다. 불교 신도들은 '기도성지' '관음성지'라고 부르는데 불교도가 꼭 아니더라도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기도발이 센 곳’이라는 소문을 듣고 소원을 빌러 오는 사람들이다. 홍련암의 또 다른 특징은 절경이라는 것이다. 동해 바닷가 석굴 위, 독특하고 아름다운 해안 경관 속에 자리 잡았다. 이 암자의 법당 밑에서는 바닷물이 출렁이며 쉴 새 없이 석굴(觀音窟) 안을 드나든다. 참고로 의상대와 홍련암 일대는 따로 명승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다. 주변 해안이 독특하고 경관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의상대사의 전설이 깃든 곳이라서가 아닐까 싶다.
▼ 해수관음상을 만나러 가는 길, 연꽃 가득한 연못(관음지)을 지나자 보타전(普陀殿)이 중생을 맞는다. 원통보전·해수관음상과 더불어 낙산사가 우리나라의 대표적 관음성지임을 상징하는 불전이다. 안에는 천수(千手)·성(聖)·십일면(十一面)·여의륜(如意輪)·마두(馬頭)·준제(準提)·불공견색(不空羂索)의 7관음과 32응신(應身), 그리고 1500관음상을 봉안했다. 1993년에 지은 이 전각은 2005년의 산불 때도 무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 산자락을 돌아 위로 오르자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이 손짓한다. 높이 16미터 둘레 3미터의 거대 불상으로 불상조각가 권정학씨가 1971년 시작해 6년 6개월이 걸려 완성했다고 한다. 동양 최대의 크기라는 해수관음상은 어느 불상보다도 예쁘고 인자하기까지 하다. 왼손에 감로수병을 받쳐 들고, 오른손은 천의(天衣) 자락을 살짝 잡고 있으며, 미간에는 백호(白毫)를 박아 온누리에 퍼지는 자비의 광명을 상징하고 있다. 참! 사진은 생략했지만 해수관음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해수관음 공중사리탑(海水觀音空中舍利塔, 보물 제1723호)‘이라는 사리탑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비문에 따르면 1683년 숙종 9년에 홍련암 불상에 금칠(개금)을 다시 할 때 주변에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더니 공중에서 오색찬란한 사리들이 쏟아져 1692년 석겸스님 등이 큰 뜻을 세우고자 조성했단다.
▼ 맨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낙산사의 금당(金堂)인 ’원통보전(圓通寶殿)‘이다. 서기 671년 의상이 홍련암 관음굴에서 21일 기도 끝에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여의주, 수정염주와 함께 사찰의 건립위치를 전해 받은 곳에 원통보전을 세웠다. 법당의 안에는 보물 제1362호인 ‘건칠관음보살좌상’을 모셨다. 고려 후반 전통 양식을 띤 이 불상은 조선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지금까지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원통보전 앞에는 칠층석탑(보물 제499호)이 있다. 이 탑은 창건 당시 3층이던 것을 세조 13년(1467)에 이르러 7층으로 높였다. 부분적으로 손상됐으나 탑 꼭대기에 있는 쇠붙이까지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 기단부에서 투박한 겹연꽃 무늬를 볼 수 있다. 참! 원통보전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4호)도 낙산사의 또 다른 명물이다. 기와를 쌓고 다진 흙 사이사이에 동그랗게 다듬은 화강석을 별모양으로 끼워 넣어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정감이 느껴진다. 담이라는 본래의 실용적 기능에 이처럼 정감을 덧붙여놓은 안목과 소박한 정서로부터 받는 감동은 낙산사의 어떤 문화재가 주는 감동보다도 깊다.
▼ 홍예문을 나서기 바로 직전에 만나게 되는 ‘낙산(洛山) 배 시조목(始祖木)’도 눈여겨볼 만하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재래종 황실배가 낙산사 주변에서 재배됐다고 한다. 이에 배 품종의 하나인 장십랑을 1915년 주지스님이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낙산배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단다. 참! 원통보전을 빠져나오는 길에 동종도 볼 수 있었다. 2005년 산불에 소실된 것을 이듬해 복원한 것이란다. 낙산사 안 의상기념관에는 당시 화재에 녹아내리다 남은 동종의 일부가 전시돼 있단다.
▼ 몇 걸음 더 걷자 홍예문((虹霓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호)이 세속으로 돌아가는 중생에게 이별을 고한다. 무지개문인 홍예문은 세조 때 인근의 26개 고을로부터 장대석(긴네모꼴 돌) 하나씩을 기증받아 지었다고 한다. 장대석이 2중으로 문의 아치를 만들고 담과 그 사이를 막돌로 채워 넣었다. 위의 누각(樓閣)은 1963년에 세운 것으로 2005년 산불로 소실되었던 것을 2007년 복원한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곳 홍예문은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주차장에서 올라온 해파랑길이 홍예문 앞을 지나 ‘후진항’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몰랐던 우리 부부는 역방향인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 주차장을 향해 잠시 걷자 탐방로가 도로를 벗어나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곳에서라도 계속해서 도로를 따랐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 부부는 그러지를 못했다. 만일 그랬더라면 인월요(印月堯, 옛 낙산유스호텔)과 일주문을 거쳐 7번 국도로 내려섰을 텐데도 말이다. 아무튼 우린 ‘관음성지 낙산사’라는 명찰을 단 일주문을 거쳐 대형주차장으로 내려섰고, ‘전진1리’ 마을 표지석 앞에서 ‘7번 국도(동해대로)를 만난 다음 북진했다. 그러다가 만난 게 낙산사의 일주문(一柱門, 五峰山 洛山寺), 가까운 코스를 놓아두고 빙 에둘러서 돌아온 셈이 되어버렸다. 낙산해수욕장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 10분이 걸렸다.
▼ 해파랑길을 놓친 우리 부부는 7번 국도의 가장자리를 따라 난 ’동해안종주 자전거길‘을 따랐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민박요금 예고 시범마을이라는 ’전진 2리‘로 들어선다. 참고로 전진리(前津里)는 오봉산 낙산사를 중심으로 하여 남쪽 마을을 앞나루, 북쪽 마을을 뒷나루로 불러오다가 두 마을이 통합되면서 전진리가 되었다.
▼ ’뒷나루‘ 마을 앞은 ’설악해변‘이다. 길이 600m에 폭이 80m인 백사장을 품고 있는데, 수심이 얕은데다 낙산사라는 명승을 가까이 두고 있어 가족동반 피서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해수욕장 뒤편에 늘어선 민박집들은 침실에서도 일출을 볼 수 있단다.
▼ 설악해변이 다 끝나간다 싶으면 곧이어 '후진항’이 나온다. 입구에 세워진 '비치 마켓 후진항'이라고 적힌 조형물이 눈길을 끌지만 항구로 들어가 보는 것까지는 생략하기로 한다. 후진항의 볼거리인 ‘비치 마켓’이 열리는 날(매월 둘째 주말)에 맞추지 못했으니 일부러 들어가 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 후진항의 모퉁이를 돌아서면 ‘정암해변’이다. 물놀이가 금지된 정암해변에는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만이 해변을 지키고 있다. 이 구간은 도로의 가장자리가 아닌 바닷가를 따라 별도의 탐방로(자전거길)가 조성되어 있다. 덕분에 가없이 뻗어나간 망망대해를 실컷 구경할 수 있다. 커다란 바다는 그의 모든 파도를 가지고 바닷가로 몰려온다. 커다란 분노를 일으키듯 몸집을 키워가며 모래밭을 향해 몰려온다. 하지만 모래밭에서 하얀 거품으로 사라질 때는 허무하기까지 하다.
▼ 군 초소 위에 새롭게 들어선 전망대에라도 오를라치면 동해바다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수평선이 좌우로 길게 완만한 곡선 모양으로 뻗어있다. 또한 산책로 주변에 만들어놓은 쉼터용 조형물들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 가운데서도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누워서 휴식할 수 있는 의자가 유독 시선을 끌었다.
▼ 그런데 눈앞에 펼쳐지는 바닷가가 왠지 낯설다. 강원도 땅으로 들어오고 나서는 눈에 들어오는 바닷가마다 해안절벽이 아니면 모래사장 일색이었는데, 이곳은 유독 자갈과 돌로 이뤄진 것이다. 쌍천과 물치천 등 동해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의 돌들이 바다로 흘러갔다 다시 조류를 타고 해변에 쌓이면서 동해안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지자체인 양양군에서 이를 놓쳤을 리가 없다. 몽돌 및 몽돌에 부딪치는 독특한 파도소리에다 예술적 감성을 더해 ‘몽돌 소리길’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 정암해변의 끝은 ‘물치천(沕淄川)’이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둔전리에 이르러 향산폭포(香山瀑布)를 이루고 다시 석교리를 지나서 물치 남쪽에서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 14.74㎞의 하천이다. 참고로 지명인 ‘물치’의 ‘물(沕)’은 '물에 잠긴다', ‘치(淄)’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송시열(宋時烈)이 이곳을 지나다 물에 잠긴 이 마을에서 길이 막혔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세월을 낚는 것은 강태공만이 아닌가 보다. 소꿉장난에 정신이 없는 저 모녀를 보면 말이다. 그 정겨운 풍경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도보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로움이 아닐까 싶다. 도보여행의 장점은 언제든 원할 때 출발했다가 원하는 곳에서 멈출 수 있고, 눈길을 유혹하는 모든 것을 바라보거나 구경할 수 있으며, 원할 땐 언제든 멈춰 서 관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물치항 입구에도 특이한 외형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바다·축제·자연·일출의 하모니를 콘셉트로 삼아 동해안 일출의 감동을 극대화하는 시각적 메타포(metaphor)로 디자인했다는데 내 눈에는 그저 난해한 조형물로만 보일 따름이다. 설악해변에서 이곳까지는 45분이 조금 더 걸렸다. 참! 물치교(沕淄橋)를 건너는 도중 설악산의 웅장한 자태를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높이 1,708m로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높은 산이다. 음력 8월 한가위에 덮이기 시작하는 눈이 하지에 이르러야 녹는다 하여 설악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 작은 어선 몇 척이 정박되어 있을 뿐인 ‘물치항’은 양양을 상징하는 송이버섯 모양의 빨갛고 하얀 등대가 특징이다. 더욱이 이게 수평선과 하나를 이루면 아무렇게나 카메라 셔터를 눌러도 예쁜 그림이 나온다.
▼ 한적하기 짝이 없는 포구에 비해 횟집상가는 큼지막했다. 아니 웬만한 항구들보다도 훨씬 더 컸다. 하긴 해마다 초겨울이 되면 도루묵축제까지 열린다는데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호기심에 끌려 들어가 본 상가는 요즘 잘 잡힌다는 오징어 한 마리를 놓고 만원을 부르고 있었다. 해삼도 마리 당 만원이란다. 요즘 관광지에서의 바가지 물가가 뉴스에 자주 오르던데 이곳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 물치항을 벗어난 탐방로는 해안공원인 ‘황금 연어공원’으로 들어선다. 길이 6.4m의 노란색 연어가 주인인 ‘황금연어공원’은 양양을 대표하는 어종인 ‘연어’를 테마로 하고 있는 공원이다. 여느 공원처럼 그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연어를 상징으로 만들어져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이곳만의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정자와 벤치도 만들어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멋들어진 정자에 앉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즐기노라면 세월 가는 줄도 까맣게 잊을 것 같다. 참고로 양양 남대천에서 태어난 연어는 넓디넓은 망망대해로 나가 성장한 다음 산란철이 되면 자신의 고향인 남대천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후대를 위해 산란한 뒤 장엄한 죽음을 맞는 회귀성 어류이다.
▼ 공원에는 연어 조형물 외에도 멋진 조망과 짜릿한 스릴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스카이워크 전망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바다를 향해 길게 고개를 내민 데크의 끝부분에는 강화유리를 깔아 스릴을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스카이워크처럼 규모는 크지 않지만 스릴을 느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이때 좌우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화는 덤이라 하겠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 또한 일품이라고 한다.
▼ 황금연어공원과 맞닿은 ‘쌍천(雙川)’은 양양군과 속초시가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다. ‘쌍천’은 길이 12.6㎞의 지방하천이다. 설악동 대청봉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 동으로 우회한 후 대포동에서 동해로 유입된다. 상류에서 흘러가던 물줄기가 하류인 물치 부근에서 두 가닥으로 나누어져 흐르기 때문에 두 가닥의 하천이라는 의미로 ‘쌍천’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쌍천교’ 다리를 건너자 ‘국제 관광엑스포’ 기간에 맞추어 개방했다는 ‘해맞이 공원’이 길손을 반긴다. 설악산과 동해바다에 대한 조망 외에도 해돋이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라서 ‘해맞이공원’이란 이름이 붙었단다. 공원은 처음 보는 순간 ‘깔끔하게 조성된 공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바다 바로 앞에 자리한 것, 그리고 초록과 돌들이 이어진 구성 등은 누구라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 공원은 해맞이광장과 연인의 길, 행복의 길, 사랑의 길 등 다양한 테마로 꾸며져 있으며, 바다를 주제로 한 여러 조각 작품들과 함께 설악산 관문 상징조형물, 조명분수대 등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갖가지 시설이 들어서 있다. 또한 해변 쪽에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여러 개의 벤치를 놓아두었다. 벤치에 앉은 연인들아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얼마나 멋진 풍경이겠는가. 거기다 떠오르는 해라도 함께 해준다면 이보다 더 즐거운 추억이 어디 있겠는가.
▼ 참! 이곳 해맞이공원이 ‘해파랑길 44코스’의 종점이라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공영주차장의 한켠에 설치되어 있다. 한편 옛 이름이 ‘내물치(內勿淄)’이었다는 이곳에서는 잠수함관광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날머리를 대포항로 변경한 탓에 탑승해보지는 못했다. 동해바다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잠수함 이름은 포세이돈의 자식 이름을 딴 ‘트리토네 마린(Tritone marine)’. 트리토네는 반인반어의 모습으로 바다가 잔잔할 때 물위로 나와 인어의 모습으로 소라 고동을 분다고 한다.
▼ 트레킹 날머리는 ‘대포항 주차장’
해파랑길 44코스의 날머리는 본래 ‘해맞이공원’이지만 우리 부부는 대포항 주차장까지 연장해서 걸었다. ‘7번 국도’의 해안 쪽 가장자리에 내놓은 ‘자전거길’을 따라 1㎞ 조금 못되게 걸으면 된다. 오늘은 총 16.44㎞를 걸었다. 44코스의 원래 길이는 12.3㎞이지만 낙산사와 오산리 선사유적지를 둘러보느라 4㎞ 정도를 더 걸었던 모양이다. 소요시간은 4시간 5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겠다며 꼼꼼히 살폈던 점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빨리 걸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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