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간『단국문학』2018년 12월
얀 반 에이크*를 위한 소고
ㅡ <아르놀피니 결혼>의 불편한 진실
끈적대는 저 촉수를 뽑아버리고 싶다
감시카메라 앞 사랑은 경직성 근육질환이다
가로등 아래 입맞춤에는 온기가 있다
애무는 자연이다 사랑도 자연이다
낯설다 저 손, 받쳐들다니
체온을 예서체로 써 버리면
품속 기러기는 연못을 찾아 날아가버릴 것 같다
풍성한 스란치마 속 비밀은 감시자의 몫이다
그들의 결혼은 생물학적 동거란다
목 줄 없는 개, 가방이 복선이다
감시카메라를 쫓아내야한다
눈 먼 사랑이고 싶다
다뉴브 강에 배를 띄우고 싶다
로렐라이 언덕의 유혹에 휘말리고 싶다
발가벗은 빨간 침대포가 발정을 한다
사랑은 땀이 밴 밤의 요설이 깔려있어야한다
채칵채칵 감시자의 행간이 싸늘하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사실이다
거꾸로 가는 시계를 갖고 싶다 현실이다
그림편지는 유효기간이 없다
미술관 옆 경매장 얀 반 씨의 사실이 잘 팔리고 있다
경매장 옆 사진관 간판이 젊다
빗살무늬 바람이 쇼 윈도우를 때리고 있다
*얀 반 에이크 : (1395?~1441) 북유럽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네덜란드 화가.
리얼리즘을 기본으로 종교적 신앙을 표현한 종교화와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최초로 유화를 그린 화가이다.
대표작으로<아르놀피니의 결혼>, <켄트의 제단화>, <어린 양에 대한 경배>등이 있다.
*『단국문학』에 실린 저의 시<얀 반 에이크*를 위한 소고>는 송고한 원고 원본(22,23행)과 다름을 밝힙니다. 하여, 원고 원본을 올립니다.
가을비 오는 저녁
일몰을 지우는 저녁 강 안개
산허리마다 흐르는 낮은 구름
붉게 물든 가을 산 저녁놀 삼키는 화엄입니다
가자, 어느 새 추적추적 늘어나는 빗방울
가자. 붉은 저녁 휘감는 구름에 두 손 모으고
사과나무 지나 자두나무 지나 나를 지나
지분 없는 그루터기에 앉아
오선지를 꺼내 우리 달려온 시간 노래합니다
여행을 떠나는 빗방울 버스킹
똑똑 동그라미 여울진 강물은 알레그로
우루루 우루루 강화알미늄 지붕은 모데라토
따다닥 따다닥 양철지붕은
내 동생이 두고 온 작은 북소리입니다
오선지를 뛰노는 빗방울 화음에 나의 긴 걸음은
어느 새 가을의 경전을 품고 배후가 어둠인 저녁
작별을 주저 않는 낙엽의 행간을 읽고
나를 지나간 빗방울 거리 익명의 가을비
내 생의 마지막 언어를 조각해 줄 조각비
집 짓는 거미처럼 섬세한 조각가
참으로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