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화실의 미소]
1. 수행인(修行人)의 길
--< 편집자 주 >------------------------------------------------------
큰스님의 법문 대신에 큰스님께서 30여 년 전
문경(聞慶) 봉암사(鳳岩寺)에 사실 때의 이야기를 싣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몇 분 스님들의 수도 행적을 돌아봄으로써
오늘날 수도하는 수행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수행에 보탬이 되고
새로이 자세를 가다듬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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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봉암사에 들어 간 것은 정해년(丁亥年) 내 나이 36살 때입니다.
지금부터 38년 전입니다.
봉암사에 들어간 주동(主動)은
입적(入寂)한 청담(責潭)스님하고 자운(慧雲)스님하고
또 입적(入寂)한 우봉스님하고 그리고 나하고 넷인데
우리가 어떻게 근본 방침을 세웠느냐하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순간적인 이익 관계를 떠나서
오직 부처님 법대로만 한번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을 고치고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 이것이 원이요 근본 목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처소는 어디로 정하냐?
물색한 결과 봉암사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법대로 사는데 있어서
그 중에 내가 좀 많이 안다고 보고 있으니 만큼
내가 부처님 법에 따라서 청규(淸規)를 세울 테니
내 생각이 조금이라도
부처님 법이나 조사스님 법에 틀렸으면 지적해서 고치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하고 실천하자,
곧 내일 모레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 해도
법대로, 법 가깝게 우리 한번 살아보자.
그렇게 약속이 되었습니다.
처음 들어갈 때는 우봉스님이 살림을 맡고
보문스님하고 자운스님하고 내하고 이렇게 넷이 들어갔습니다.
청담스님은 해인사에서 가야총림(伽倻叢林)을 한다고
처음 시작할 때는 못 들어 오고 서로 약속은 했었지만
그 뒤로 몇 해 전에 입적한
향곡(香谷), 월산(月山), 종수(宗秀)스님이 같이 정진하였고
젊은 스님으로는 도우(道雨), 보경(寶庚), 법전(法傳), 성수(性壽),
혜암(慧魔)스님 등 약 20명가량 되었습니다.
처음 공양을 하는데 당장 바루가 없어서
처음에는 양은그릇으로 사용하다가
나중에 옹기점에 가서 옹기바루를 맞추어서 썼습니다.
장삼(長衫)은 법대로 된 예천 장삼이 마침 송광사(松廣寺)에 있었습니다.
예전 보조(普照)스님께서 입던 장삼인데
전에 우리가 송광사에 있을 때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운스님이 쫓아가서 보고 와서는
오늘날과 같은 장삼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육환장(六環杖:스님네가 탁발할 때 짚는 고리가 6개 달린 지팡이)도 새로 만들고,
요새는 안 쓰지만 스님은 옛 부터 언제든지 육환장을 짚게 되어 있으니까요
또한 삿갓도 만들었습니다.
삿갓을 만들어놓으나 이것은 이조(李朝) 5백 년 동안에
스님네 핍박하려고 만든 것인데 왜 내 놓느냐고 사방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본에도 중국에도 삿갓은 선승(禪僧)들에게 거의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백장스님 청규에도 삿갓을 쓰도록 되어 있고……
그리고 아침에는 꼭 죽을 먹었습니다.
공양은 사시(巳時)밖에 없으니까 오후에는 약석(藥石)이라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율(律)에 보아서는 저녁 공양은 없는데
청규에는 약석이라고, 약(藥)이라 해서
참선하는 데에 너무 기운이 없어도 안 되므로
바루 펴지 말고 조금씩 먹도록 되어 있습니다.
포살(布薩)도 처음으로 거기서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제도를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일종의 혁명인 샘이지요.
이런 중에서도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무엇이던지 우리 손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밥해먹는 것도 우리 손으로 한다.
나무하는 것도 우리 손으로 한다.
밭 매는 것도 우리 손으로 한다.
일체 삯군 일꾼은 안 된다 말입니다.
이것이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의
청규 그대로 근본정신 아닙니까?
그래서 이미 있던 부목처사도 공양주도 보내고
전부 다 우리들이 손수 했습니다.
쉬운 것 같지만 실제는 이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 이후 우리는 이조 시대의 스님들에 대한
인상을 바꾸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만해도 스님들을 아주 천대했기 때문에
신도법을 세우기 위하여 보살계(菩薩械)를 설(說)하기로 하였습니다.
보살계 한다는 소문이 전국 각지에 나서
각처에서 수백 명이고 봉암사 골짝까지 왔어요.
방에 전부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당신네가 여태까지 절에 다니면서 부처님께는 절했지만
스님네 보고 절한 일 있나? 생각해 봐.
스님은 부처님 법을 전하는 당신네 스승이고
신도는 스님에게 법을 배우는 사람이야
그러므로 신도들은 제자고 스님은 스승인데
법이 거꾸로 되어도 분수가 있지
스승이 제자보고 절하는 법이 어디 있어,
이조 5백 년 동안에 불교가 망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데
그것은 부처님 법이 아니야.
부처님 법에는 신도는 언제나 스님네 한테 절 세 번하게 되어 있어.
그러니 부처님 법대로 할려면 여기 있고
부처님 법대로 하기 싫으면 오지 말아.
그렇다고 꼭 우리말대로 하라는 말 아니야.
하기 싫은 사람은 나가면 돼.」
그런데 한 사람도 안 나가요.
그리고 결국 그날 거기 모인 사람은 전부 절 세 번씩 하였습니다.
신도가 스님네 보고 절한 것 근세에는 이것이 처음입니다.
그리고 절 하는데 대한 일화(遭話)가 있습니다.
원래 묘관음사의 조실이던 향곡스님은 좀 늦게 참여 했습니다.
그때 향곡스님은 어느 토굴에 정진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와서 같이 모여서 정진하자고,
만약 안 오면 토굴에 불을 지르겠다고 내가 편지했더니
그 편지 받고 당장 쫓아 왔어요.
이렇게 도반을 생각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그런데 마침 그날 점촌에서 나이 많은 신도들이 깨끗한 옷을 입고 왔어요.
그런데 그 전날 비가 왔거든요.
내가 마당에 서 있는 걸 쳐다보더니
진구렁에서 넓죽 절을 세 번 했거던.
그걸 보고 깜짝 놀라 버렸다고 해요.
아무리 절을 하지만 비온 뒤 진구렁에서 넓죽넓죽 절을 세 번이나 하니
향곡스님이 어떻게 보겠어.
그런데 알고 보니 그이가 전진한(錢鎭漢)씨 어머니라
그때 사회부 장관했지요.
장관 어머니라는 사람이 스님보고 진구렁에서 절을 세 번이나 해 놨으니
참 이상했던 모양입니다.
두고두고 향곡스님이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천도(薦度)하는 것도,
처음에는 재(齊)가 하나 들었다가 그냥 가버렸는데
가만히 보니 사는 사람들이 스님 같고
영가(靈駕)를 맡기면 천도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하나씩 둘씩 재 해 달라고 가끔 와요.
우리 법대로 금강경 (金剛經)이나 반야심경을 읽어 주는데
그만 재가 어떻게나 많이 들어오는지...
왜 그런 가 들어보니 무슨 탈이 나가지고
무당을 데려다 굿을 한다, 별짓을 다해도 천도가 안 되는데
봉암사에다 재를 올리면 그만이다 이것입니다.
자꾸 온다 말입니다.
자 금강경은 너무 시간이 걸려서 안 된다, 심경을 하자.
심경 칠 편, 그것도 안 되어서 나중에는 삼 편씩 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스님네들 법대로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때 그렇게 살았던 것들이 지금 생각하면 참 꿈같은 일이지요.
지금 그럼 남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가사가 남았고 장삼도 남았고 바릿대도 남았는데
바릿대는 요새 들어 볼라치면 흔히 목 바루가 더러 나온다고 하는데
그것은 부처님이 금한 것이니 안 써야 됩니다.
예전 송나라에 대각연(大覺璉)선사라고 큰 스님이 있었습니다.
대각이라는 것도 천자가 지어 준 호입니다.
천자가 크게 존경하여 용뇌라는
아주 좋은 보물로 바룻대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칙사가 천자의 명(命)을 받아서 대각연 선사에게 바룻대를 갖다 드리니까
“허허 부처님 법에 바루는 와철(瓦鐵) 두 가지 뿐이야.
질그릇하고 쇠 바루 뿐 이것은 비법 (非法)이다”
하면서 그만 불속에 넣어 버린다 말입니다.
그것이 후대에 모범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면 여러 가지 남은 것이 좀 있는데
남고 안 남고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청규를 세워서 전국적으로 시행 할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그 당시 우리가 살면서 부처님 법 그대로 한다고 하면
너무 외람된 소리지만 부처님 법에 가깝게는 살아야 안 되겠나
그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좋으나 궂으나 할것 없이
자기 이익을 완전히 떠나서 신심으로 부처님만 바로 믿고 살자 이것입니다.
우선 좀 손해를 본다 싶어도 그것이 바른 길이면,
또한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이라면,
아무 의심 없이 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떻게든 노력해서 바른 길로 걸어가 봅시다.
* 법문 출처 : 해인지 <해인법문>
대한불교 조계종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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