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즈음 만년에 있어서 필요한 네 가지를 허용, 납득, 단념 그리고 회귀하고 생각하게끔 되었다.
즉 이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선과 악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허용이며, 내 자신에게 일어난 여러 가지 상황을 정성을 다해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 납득이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신의 의지를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것에서 보고자 하는 노력이다.
갈망하였으나 이루지 못했던 것은 어떠한 인간의 생애에도 있으며, 그때 집착하지 않고 슬그머니 물러날 수 있다면 오히려 여유있고 온화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단념이다.
그리고 회귀란 사후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생각하는 것이다. 무라고 좋으나 돌아갈 곳을 생각하지 않고 출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벌거숭이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왔다.’
정말이지 우리는 누구 할 것없이 재능도, 돈도, 옷도, 건강도 어느 것 하나 지니지 않은채, 이 세상에 태어났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면 아주 조그마한 것일지라도 지금 내가 뭔가 지니고 있다는 것은 실로 위대한 은혜라 아니할 수 없다.
노년의 행복은 이런 판단이 가능한가, 어떤가일 것이다. 노년의 행복은, 정신이 흐려질 때까지는, 어린아이들과는 달리 스스로의 행복을 발견하는데 책임이 있다. 인생의 마지막 기량을 보여줄 부분이다.
빈손으로 태어나 옷 한벌을 걸쳤으니 수지맞은 장사다?... 언젠가 연속극의 주제가가 생각난다. 젊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많은 걸 포용하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늙음도 참 좋은 것이구나.... 그런데 이 작가님 말씀은 육체적으로 늙는다고 저절로 훌륭한 정신이 깃드는 것은 아니라는 거겠지?
첫댓글 만년에 필요한 네가지는 청년시기부터도 필요한게 아닐까? 작은 사고나 실패에도 더 큰 시련이 아님을 감사하고 항상 회귀를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모두가 마음이 넉넉한 세상일텐데. 좋은 글 읽게해준 방장께 ㄱ ㅅ ㄱ ㅅ
빈손으로 태어나 옷 한벌을 걸쳤으니 수지맞은 장사다?... 언젠가 연속극의 주제가가 생각난다. 젊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많은 걸 포용하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늙음도 참 좋은 것이구나.... 그런데 이 작가님 말씀은 육체적으로 늙는다고 저절로 훌륭한 정신이 깃드는 것은 아니라는 거겠지?
마지막 기량? 이라,,, 부끄럽고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