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제다다회 후기 글에서 부분 발췌한 글입니다.
*사진은 임의로 넣은 것입니다.
___녹차 만들기의 예술성__
녹차는 여러 차류 중에서도 가장 인공적인 방식의 차라고 생각된다. 녹차가 가장 자연에 가까운 차라고 여기는 우리 인식에 위배된다. 왜냐하면 녹차는 자연 상태 그대로를 최대한 유지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자연에 위배된 인공적인 방식으로 자연의 상태를 유지하는 아이러니를 녹차는 갖고 있다. 그렇기에 만드는 공정도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간다. 바로 이 지점이 '녹차 만들기'가 예술성을 획득하는 지점일 것이다. 인식에 위배된다는 것을 재발견 또는 재인식할 때 인간은 쾌감을 얻는다. 그것이 예술의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이 모여 차를 만든 것일까? 예술적 행위를 한 것일까? 그것은 모두 각자의 느낌적 차이일 것이다. 무엇을 하든 느끼는 만큼만 그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미 완성품들을 보니까 그것에 대한 상상력을 상실하거나 약화되는 거 같다. '작품이 되어 가는 과정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 자신의 인식을 재구성하게 되니 관점을 달리하게 만드는 거 같다.
모든 예술 작품이 그러하듯이
조각도 대리석이 처음부터 비너스 상은 아니듯이
대리석만으로는 비너스 상을 상상하기 어렵고
단지 작가의 영감과 예감에 의해 어떤 비전을 문득 보며
그 느낌 좇아서 조각해 내면
문득 순간에 비너스상이 드러나듯이(완성되어)
그리고 그렇게 드러난 것은 이전에는 없던 것이었고
그 광경을 접한 작가 그 자신은 환희감에 흠뻑 젖어든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작품은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
대리석의 그 자체의 용도와 비너스 상의 용도는 다르니까.
찻잎에서 완성된 차를 상상하기까지는
녹차 만들기의 그 과정에서 발현된다.
차나무와 완성된 차는 다르다.
그것은 전혀 다른 어떤 것이다.
변화한 것이다.
다기와 물과 만난 차가 새롭게 부활하는 그 순간의 환희
이 모든 것은 자연상태를 벗어나 인간에게로 와서 인간의 정신세계와 신체 활동으로 스며든다.
예술적 행위와 예술 작품은 다시 예술 작품과 예술적 행위로 이어져
차이적 반복을 일으킨다.
예술을 창조하는 것은 인간의 창작활동은 반복적인 어떤 행위적 행위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인 듯하다.
그러므로 차에서 느끼는 예술성은 '장인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하는 시간의 그 양상에서
문득 상상을 넘어서서 전달되는 어떤 감각들, 그 순간의 기쁨!
그것이 바로 예술적 감성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