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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마태복음6장1~18절
제목 : 은밀하게 행하라
당시 유대인들의 모든 생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 삶은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5:21-48(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보복, 원수사랑)에서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잘못된 율법 해석을 폐기하고,
원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미로 새롭게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의 경건 생뢀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경건 생활의 원칙에 대해서 언급하신 다음(1절), 경건생활의 세 가지 예인 자선(2~4잘),기도(5~15절), 금식(16~18절)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서,
천국 백성의 바른 삶(의)을 제시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외식으로 자기 경건을 드러내지 말고,
-은밀하게 행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기도와 관련하여 천국의 제자들이 드리는 기도의 본을 제시하십니다.
1. 서론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1절)
“[1]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 이 구절은 1-18절까지의 서론에 해당됩니다.
이 단락에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지켜오던 세 가지 종교적 의무,
즉 의(2-4절), 기도(5-15절), 그리고 금식(16-18절) 등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이 제시되고있습니다.
즉 5장에서 예수께서는 율법의 직접적인 내용에 대한 올바른 정신과 해석을 설명하시고도 높은 경지의 의를 가르치신 후,
이곳에서부터는 율법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은 유전과 관습에 관한 바른 지침 및 그들이 당면할 종교적 위선의 위험성을 계시하고 있는것입니다.
특히 예수께서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외식적으로 이 같은 종교적 관행을 하고 있음을 비난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란 '그 행동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사람에게 과시하고, 인정받으려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제시합니다.
이처럼 전적으로 인간을 의식하고 그의 판단을 고려하면서 취하는 행동은 항상 위선의 위험성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성을 익히 아시고, 또 그것을 능히 극복케 하시는 하나님을 먼저 고려하고 날마다 신전의식을 지닐때 인간의 오류와 위선은 최소화 될 수 있다.
너희 의를 - 어떤 사본에는 이 말이 '너희 구제를'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 까닭은 아마 '의'란 간혹 구제를 위한 의를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신6:25).
이 '의'는 예수의 제자들이 지켜나가야 할 의로운 생활 방식의 배후에 있는 거룩한 동기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행치 않도록 - 의를 행한다고 하는 것은 율법의 요구 사항을 실천하고 율법의 규정에 따라 바른 행위를 함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또 사람들로부터 경건한 자로 인정받기 위해 고의적으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만 이를 행하였습니다.
이에 주께서는 이러한 위선적 행위를 규탄하고 하나님의 실존을 의식하고 그분이 미구에 내려주실 온전한 보상만을 기대하며 몸과 마음을 일치시켜 하나님께 진정으로 헌신해야 할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주의하라 - 이는 '이것을 항상(생각)하라','오직 이 일에 마음을 집중시키라'는 뜻이 된다.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더 염려했으며, 또 그들에게서 이미 위대하며 경건하다는 칭찬을 상으로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사람의 행위 전체를 바라보고 계셨던 하나님께는 받을 상이 없는 것입니다.
2. 구제할 때의 태도(2~4절)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4]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1) 너희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말라(2절)
외식하는 자- 이는 '가면을 쓰다', '위선적 태도를 취하다', '...인 체하다'는 등의 뜻인 '휘포크리노마이'에서 유래한 말로서 '타인의 흉내를 내는 사람', '배우'등으로 이해됩니다.
'외식'은 타인과 자신을 동시에 속이는 악행으로서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반드시 단죄될 것이다(고후 5:10).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 외식자들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는 동기에서 사람들의 눈에 띄기 쉬운 회당과 거리에서 이러한 종교 의무를 했던 것입니다.
실로 그들은 인간의 본분인 하나님께 '오직 영광'(전12:13;롬11:36)을 돌리는 데는 전혀 무신경했던 것입니다.
나팔을 불지 말라 - 예루살렘 성전 내에서 궁핍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성금을 모을때 나팔을 불던 것을 가리킨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칼빈은 구제자들이 성금을 내면서 이 사실을 알리고자 나팔을 불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랑하지 말라'는 뜻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상을...받았느니라 - 바리새인들이 원하던 것은 하나님의 상이 아니라 대중의 칭찬이었으므로 그들은 헛된 영광의 상을 이미 받은 것입니다.
2)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3절)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 왼손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도와주며 이둘은 항상 함께 일한다. 따라서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는 말은 자신이 베푼 자선을 도무지 기억지말고 의식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그 선행이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듯이 하라는 당부인 것입니다.
이 구절에 대한 몇가지 설명을 들자면,
(1) 겸손하고 은밀하게 그리고 말없이 주는 것을 상징한다.
(2) 오른손으로 일을 해놓고 왼손으로 그 결과를 거두려고 하지 말라. (3) 선을 행하고는 그것을 바다에 던지라 고기들은 모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아시리라(동양 격언) 등을 열거할 수 있다.
3)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4절)
은밀하게 하라 - 이는 아무도 모르게 하라는 명령이기도 하고 또한, 사람의 상을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
우리가 우리의 자선을 잊게되면 잊게 되는 만큼 하나님이 주목해 보실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그것을 높이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한 만큼 하나님은 그것을 무시하실 것입니다.
3. 기도할 때에(5~13절)
1) 외삭하지 말라(5절)
“[5]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기도는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직접 아뢰는 것으로서 인간으로서는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따라서 이는 구제보다 더 즉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호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
(1) 악하면서도 선을 가장하는 유형,
이런 사람은 자신이 남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22:15-18).
(2) 자기 만족에 도취하여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속이면서 또 타인을 속이는 유형,
이런 유형의 의식자들은 보통 스스로 경건한 체하지만, 타인을 속이지는 못하고 곧 발각된다(9:1-5).
(3) 외식을 하면서도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스스로 가장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유형,
이는 가장 완벽한 위선자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그 행위를 보는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습니다.
회당과 큰 거리 어귀 - 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로서 1차적으로 외식자들이 자신의 경건 생활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수단으로서 이 장소를 택해서 기도하고 있음을 비난한 내용입니다.
대개의 경우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회당에 올라가 기도를 드렸다(눅18:9-14;행 3:1;10:9). 만약 외출 중에 기도 시간을 맞게 되면 길가에 서서라도 기도하는 열성을 보였다. 이렇듯 그들 행위의 처음 의도는 순수했으나 이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식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즉 기도 시간에 일부러 외출하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오직 하나님과 자아와의 순결한 만남의 장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교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명성을 얻고자하는 것은 금을 주고 돌을 사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며,
나아가 창조자의 순결한 사랑을 인간의 음흉한 위선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 됩니다(눅 18:1-4).
서서 기도하기를 - 성경에는 기도의 자세가 몇 가지 언급되고 있다.
즉 기도는 엎드려서(민 16:22;단 8:17;계 11:16),
또는 무릎을 꿇고(대하 6:13;눅 22:41;행 9:40),
또는 앉아서(삼하 7:18)
또는 서서(삼상 1:26;막 11:25)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도의 자세가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려' 한 그들의 헛된 동기인 것입니다.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 외식자들은 관례에 따라 기도 시간(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에 맞추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 장소에 나아가 수려하고 장엄한 언어로 기도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해서 사람들의 영광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여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공적인 기도와 사적인 기도의 구분이 기도하는 사람의 동기를 판단하는 좋은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정보다 사람의 칭찬에 더 관심있는사람, 곧 경건보다 경건으로 인한 명성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 사적인 기도는 무시한채 공적인 기도만을 추구할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식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다음에 이어지는 '골방 기도'이다.
2)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6절)
“[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네 골방에 들어가 - 골방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 드리던 장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왕하 4:33).
문을 닫고 - 사 26:20에는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을지어다'란 말씀이 있는데,
본문은 분명히 이 예언의 말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은밀한 중에...기도하라...갚으시리라 -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분 앞에 아무런 숨김없이 간구하는 자에게 그 기도의 자리에 함께 하셔서, 모든 것을 듣고 계셨던 그 하나님께서 모두 '갚으실'(4절) 것입니다.
3) 중언부언하지 말라(7절)
“[7]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중언 부언 - '중언 부언'이란 말은 잡다할 정도로 말을 길게 끌거나 아무 의미 없는 말을 거듭 반복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방인들은 이와 같은 주문과도 같은 내용을 지겹고도 공허하게 계속 반복함으로써 그들의 신을 질리게 만들었습니다(왕상18:26, 28)
말을 많이 하여야 - 이는 중언 부언하는 기도의 방법입니다.
그렇다고 기도를 언제나 짧고 간단하게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께서도 잡히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에서 온 밤을 지새우며 오랫동안 기도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는 기도의 길이에 관계 없이, 그분이 자신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또한 기쁘게 응답해 주실 것을 믿는 마음으로 간구하는 것입니다(사 65:24;히 11:6)
4)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8절)
“[8]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본받지 말라 - 기도를 길게 하거나 반복하게 되면 기도의 효력이 강화되어 쉽게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미신적인 생각을 가진 이방인들의 어리석은 신앙관(왕상18:26-28)에 미혹되어 신앙의 본질을 망각치 말라는 당부하십니다.
구하기 전에...아시느니라 -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과의 인격적 대화를 원하시며 또한 그들이 당신께 대한 깊은 신뢰감을 지니기 원하시기 때문에 그 필요를 구하기를 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이러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많은 기도와 많은 노력을 통해 신에게서 탈취하듯 복과 소원을 앗아 옴으로써 그 간구한 바를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5) 기도의 예로 주어진 주의 기도(9~13절)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기도의 시작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주르는 것입니다.
첫째, 청원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둘째, 청원은 하나님의 나라, 곧 하늘나라 내지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영광스럽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드러나고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셋째, 청원은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계획과 목표를 가리키며, 제자는 자신의 뜻이나 사탄의 의도가 아니라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실현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위의 세 청원은 자녀의 필요를 위한 것입니다.
넷째, 청원은 빵, 즉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의 땅에서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것 같고, 나의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으시는 것 같고, 세상의 무거운 짐이 오늘의 나를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섯째, 청원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들에게 용서를 베푼 것처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용서하는 신자는 하늘 아버지를 향해 자신의 죄를 고하면서 자비를 구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악의 결속력이 약화되고 긍휼이 땅에서 순환됩니다.
여섯째 청원은 자신의 약함과 한계를 인정하면서 인생의 위기에서 구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참된 기도는 용서하는 삶으로 입증됩니다(14~15절).
6) 기도의 적용 또는 점검(14~15절)
14~15절은 경건 생활의 상호성을 강조하는데, 주의 기도가 영원한 요구이듯 용서하고 용서받는 방식이 일어나야 합니다.
(1)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용서하겠다고 하십니다(14절)
“[14]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잘못(파라프토마타) - 이 말의 문자적 의미는 '한 편에 치우침'이란 뜻으로서 진리나 의(義)로부터의 이탈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이는 분명 치명적인 결과를 안겨주는 근본적인 범죄, 곧 '하마르티아'와 구별됩니다.
용서하면 - 이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죄 용서함을 받는데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부적인(conditional) 공적(merit)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원하는 자가 타인을 용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실로 타인의 잘못을 용서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행위이며 참된 회개의 자세입니다.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 이는 주기도문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죄를 사하여 주옵시고"(6:12절)라는 다섯번째 갈구를 더욱 심화시키고 강조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상이 이곳 뿐만 아니라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18:23-35;막 11:25). 이는 예수님을 주로 모신 공동체의 성격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2)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15절)
" [15]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용서하지 아니하면 - 내용적 측면에서 14절의 반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로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 자는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라 하더라도 그로부터 용서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기 원하는 바를 우리는 형제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황금율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비를 얻고자 하면 형제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하나님과의 화해를 원하면 형제와 화해해야 합니다.
4. 금식에 대한 가르침(16~18절)
2)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16절)
"[16]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금식할 때에 - 모세의 율법에는 1년에 한 번 지키는 속죄일에 모든 백성이 다 금식(禁食)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레 16:29-31;23:26-32;민 29:7).
그리고 바벧론 유수 기간에는 하나님이 개입하셨던 지난 날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새로운 자세를 가다듬기 위해 정기적으로 금식할 것을 규정하였습니다(슥 7:3-5;8:19).
그러나 이런 국가적 차원의 금식 외에 각 집단이나 개인의 차원에서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금식이 행해지기도 하였습니다.
금식은 때때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를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또는 주앞에서 더욱 겸비해지기 위해서(느 9:1, 2;시 35:13;사 58:3;욘3:5 등) 그리고 헤어날수 없는 큰 번민과 위기 또는 절망에 빠졌을때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기 위한 방법으로(출 24:18;삼하 1:12;예 4:16;행 14:23 등) 행해졌습니다.
사실 이 금식은 구약 시대 뿐 아니라 신약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신앙적 측면에서 자기 훈련의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구약 시대에서부터 금식이 단순히 형식적이거나 위선적으로 행해지는 경우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이 가해졌습니다(사 58:3-7;렘 14:12;슥7:5, 6).
그중에서도 특히 금식을 하면서도 이웃 구제에 무관심한 사실에 대해 혹독한 비판이 내려졌었습니다(사 58:1-7).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 이는 바로 앞의 '금식할 때에'라는 말이 현재 시상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즉 당시에 금식은 어떤 특별한 행사라기보다 유대인들이 늘상 게속해 오던 행사였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한 주에 두 번, 즉 월요일과 목요일 경에 금식하였습니다.
그리고 '안나'와 같은 경건한 여선지는 일상적으로 금식하였습니다(눅 2:37).
그런데 이러한 금식을 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배고픔과 같은 육체적인 고통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같은 고통을자기 의(義)와 경건을 자랑하는 도구로 사용하여 자연적 고통에 인위적인 표정까지 가미(加味)하는 위선을 범하지 말 것을 명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일상의 신앙 생활을 결코 자기의(義)를 만족시키는 도구로 전락(轉落)시켜서는 안 됩니다.
오직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이뤄져야 하는 참된 경건인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 금식을 할 때에 자연적으로 용모가 흐트러지고 또한 자신의 내적인 죄악을 깊이 통회하고 자복하는 중에 기름을 바르지 않고 재(災)를 뒤집어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지적하시는 것은 자신의 진실된 통회의 표시로써 금식이 행해졌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 자신의 종교심을 자랑하고 또 사람의 칭찬과 존경을 받으려는 동기에서 외식적인 금식이 행하여졌던 것에 대해서입니다.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 여기서 '흉하게 하다'는 뜻의 원어 '아파니주신'과 사람에게 '보이려고'라는 뜻인 '파노신'은 그음운상비슷한단어로서 헬라문학에있어서의 일종의 재담적(才談的)표현입니다(Robertson).
한편 '얼굴을 흉하게 하는'것이란 먼지와 재 등을 머리에 뒤집어 씀으로서 본 얼굴을 거의 보이지 않게 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삼하 15:30;겔 24:17).
3)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17절)
"[17]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 여기서 기름을 바르는 행위는 어떤 특별한 기름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몸단장을 위한 한 절차로서 사용된 것을 말합니다(룻 3:3;삼하 12:20;전 9:8). 그 한 예(例)로써 다윗은 밧세바가 낳은 아이의 병을 위해 금식하다가 그 아이가 죽고 나자 금식을 중단하고 일어나 몸을씻고 기름을 발랐습니다(삼하 12:15-20).
이처럼 기름을 바르는 것은 금식의 행위를 밖으로 나타내 보이지 않는 구체저긴 대응 방법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얼굴을 씻으라 - 이 역시 일상의 몸단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지시를 하신 예수께서 금식 그자체를 금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예수께서는 금식의 필요성을 절대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9:14, 15).
다만 진정한 금식은 하나님을 향하여 하는 것이므로 특별히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슬픈 기색을 지을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4)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18절)
"[18]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네 아버지께 보이게 - 금식은 자기 부정의 행위이며 육신의 고행(苦行)이고, 또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위한 일종의 육체적 단절 행위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온갖 세상욕망과 혈기를 죽이고 더욱 거룩,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금식은 반드시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여야지 조금이라도 사람을 대상으로하면 차라리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합니다(4절 참조).
우리는 피상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깊이 있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남몰래 은밀히 행한 일을 보시고, 그 행한 대로 보상하십니다(1,4,18절).
하나님은 드러난 행위에 속지 않으시며 마음의 동기를 감찰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동기에서 행한 모든 착한 행실을 기억하시고 보상해주십니다. 사람들에게서 인정받기 위해 애써 자기를 선전하거나 과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인정받지 못했다고 실망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시고 높이신다면, 누구의 인정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사람에게 보이려는 목적으로 ‘의’를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1~6,16~18절).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본받지 말고, 은밀하게 구제하고 하나님 앞에서만 기도하고 금식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착한 행실(구제, 기도, 금식)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동기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만 아시도록 은밀하게 구제하고 있습니까?
혹시 기도와 금식을 자신의 경건과 믿음을 선전하는 도구로 여기거나 이용하지는 않습니까?
2)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인격적인 대화입니다( 7~10절).
아버지가 자녀의 필요를 아는 것처럼 하늘 아버지도 우리들의 필요를 이미 알고 계십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하고, 오랜 시간 많은 말을 해야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가난한 심령으로 그분께 나아가는 태도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과 그분의 나라의 임재와 그분의 뜻의 성취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3) 하나님 이름의 영광과 그분의 나라의 임재와 그분의 뜻의 성취는 제자들의 순종을 통해서 실현됩니다(11~13절).
그래서 제자들은 일용할 양식과 죄 용서, 악에서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내 기도는 내 뜻과 이익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나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까?
기도
공동체-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고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게 하소서.
열방-중국 농촌 지역에서 정부정책에 대한 불만을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의 개발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