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이달의 훈화- 성령강림 대축일
김영진 바르나바 신부
김영진 바르나바 신부는 1980년 원주교구에서 서품을 받고 현재 도계성당 주임신부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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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이달의 훈화-소꿉놀이 같은 인생
성당 뒤 뜨락에서 들깻잎 몇 장을 뜯어 간장 종지에 담가 놓고 산보하러 나갔더니 빈 집터 아무렇게나 자란 풀들 속에 봉숭아꽃이 눈에 띄었다. 그 꽃잎을 돌 위에 찌어 새끼손가락에 붙여 보면서 아무리 어릴 때 생각이 나서 그런다고 해도 내가 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깻잎이 간장종지에 들어가니 얼마나 쓰라리겠으며. 봉숭아꽃이 돌멩이 위에서 짓이겨지니 얼마나 아프겠는가. 미안한 생각에 후회를 하면서도 멈추거나 돌아서지 않고 반복해서 저지르는 나약하고 이기적인 내 습성을 발견한다.
사실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깻잎을 간장종지에 담듯 쓰라림을 주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그 예쁜 봉숭아 빛을 새끼손가락에 물들이겠다는 욕심으로 짓이기듯 말과 행동으로 피눈물의 아픔과 정신적 죽음을 주었는지 나는 안다. 내 성급한 성격 때문에, 내 무지로, 그릇된 내 편견으로, 나의 인격적 결함으로 많은 이들이 간장종지에 들어가는 쓰라림과 또 많은 이들이 돌멩이에 짓이겨지는 아픔과 죽음 같은 고통을 느꼈을지 나는 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하루 종일 옆집 친구와 놀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놀 듯 내 삶은 여전히 어린 시절의 놀이를 계속한다. 깨어진 사금파리로 땅 빼앗기를 하던 어린 시절 참 많이도 싸웠고 우겼고 숨겼다. 억지로 또는 살짝 숨겨서 1㎝라도 더 가지려고 했다. 동심의 욕심은 어른이 되어서도, 아니 사제가 되어서도 평생 내 곁을 맴돈다. 나라는 인간이란 그렇게 나약하고 어리석고 부족한 존재이다.
그런 존재와 인류구원 사업을 함께 하시겠다고 하느님은 독생 성자 예수님을 내 곁으로 보내셨다. 그렇게도 나약하고 어리석고 부족한 나의 존재를 하느님은 믿으셨고 희망하셨고 사랑하셨기에 지금도 내 곁을 지키고 계시는 분이시다. 인간을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 내가 보는 눈으로 볼 것인가! 하느님이 보시는 눈으로 볼 것인가!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 인간은 믿을 만한 존재가 되고 희망할 수 있으며 사랑 받을 만한 존재가 될 수 있다.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아웅다웅 했지만 해가 지면 손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고 집으로 돌아가던 모습처럼 인간은 언젠가 자신의 업보를 툭툭 털고 저 세상이라는 집으로 가야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지금 너무 열심히 소꿉놀이를 하느라 해가 지면 돌아가야 하는 생각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린 친구가 바로 지금의 나는 아닐까 생각해본다.